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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작성일 2022-04-14
  • 조회수 1,184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송지현

이모는 내게 코바늘을 쥐여주더니 사슬뜨기를 알려주었다. 이게 제일 기초라고, 내 키만큼 떠보라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아무리 꽉 쥐어도 실은 손에서 자꾸 빠져나갔고, 바늘은 힘을 주어 흔들어 빼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평상에 누웠다. 이모가 수세미를 뜨며 말했다. 
-힘을 빼.
-아무리 빼도 안 돼.
-네가 힘을 빼야 실도 힘을 빼지.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니까.
-실이 네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그럼 실에 자연스레 공간이 생겨나. 그 사이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돼. 
-……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야. 대충 해. 
이모는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바늘과 실을 움직여쏙 금방 딸기 모양의 수세미 하나가 완성되었다. 이모는 딸기 모양의 수세미를 몇 개 더 만든 뒤에 오렌지 모양과 수박 모양의 수세미도 만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수세미는 앞에 내놓고 천오백원씩 받아서 팔면 돼.
-파는 거였어?
-그럼 뭐하러 만드니. 
그러게, 뭐하러 만들까. 모든 게 팔려고 만들어지는데, 안 팔리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이왕 이런 시대에 태어난 거, 잘 팔리는 걸 만드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능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뭐랄까 안목이랄까 선택이랄까, 애초에 그런 게 잘못된 느낌이었다. 매번 실패하는 투자자처럼 시장성 없는 것에만 자신을 투신하는 안목. 실패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한번 더 하는 사람. 
-잘 팔려?
-생각보다 팔려. 
이모는 나 같은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마침 손님이 들어와서 나는 뜨개질을 더 해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가게에서 나왔다. 시장이 끝나는 길에서 한 블록을 더 가니 어제 간 청년몰이 나왔다. 거기까지 가자 왠지 미간을 찌푸리며 골몰해 핫도그를 튀기는 핫도그 가게의 사장이 보고 싶었다. 이래서야 팔릴까 싶은, 딱 예상한 맛의 핫도그. 그 핫도그도 한번 더 먹고 싶었다. 

핫도그를 사오자 이모는 애처럼 이런 걸 먹느냐고 하면서도 자기 몫의 핫도그를 잘 먹었다. 오늘은 칠리핫도그를 사보았는데 오리지널보다는 좀 나았다. 약간의 개성이 느껴진달까. 
-이모, 맛있어?
-그냥 사왔으니까 먹는 거지. 이런 거 안 좋아해.
-이거 팔릴가?
-이런 건 위치가 중요하지 않나. 
-청년몰에서 사왔어. 
-거기 위치 별로야.
-초등학교 앞인데도?
-이거 얼만데?
-삼천원.
-애들이 삼천원짜리를 어떻게 사 먹어. 요 앞의 도넛이 천원에 열 개야. 
-그럼 망하겠네. 
-곧 망하겠지. 
핫도그 받침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뒤로도 사슬뜨기에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작가 : 송지현
출전 :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문학동네, 2021) p.21-p.24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송지현

이모는 내게 코바늘을 쥐여주더니 사슬뜨기를 알려주었다. 이게 제일 기초라고, 내 키만큼 떠보라고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아무리 꽉 쥐어도 실은 손에서 자꾸 빠져나갔고, 바늘은 힘을 주어 흔들어 빼도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평상에 누웠다. 이모가 수세미를 뜨며 말했다. 
-힘을 빼.
-아무리 빼도 안 돼.
-네가 힘을 빼야 실도 힘을 빼지.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니까.
-실이 네 손에서 빠져나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쥐어. 그럼 실에 자연스레 공간이 생겨나. 그 사이로 바늘을 통과시키면 돼. 
-……
-꼭 쥐면 오히려 놓치는 거야. 대충 해. 
이모는 말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바늘과 실을 움직여쏙 금방 딸기 모양의 수세미 하나가 완성되었다. 이모는 딸기 모양의 수세미를 몇 개 더 만든 뒤에 오렌지 모양과 수박 모양의 수세미도 만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수세미는 앞에 내놓고 천오백원씩 받아서 팔면 돼.
-파는 거였어?
-그럼 뭐하러 만드니. 
그러게, 뭐하러 만들까. 모든 게 팔려고 만들어지는데, 안 팔리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이왕 이런 시대에 태어난 거, 잘 팔리는 걸 만드는 능력이 있으면 좋을 텐데, 능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뭐랄까 안목이랄까 선택이랄까, 애초에 그런 게 잘못된 느낌이었다. 매번 실패하는 투자자처럼 시장성 없는 것에만 자신을 투신하는 안목. 실패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한번 더 하는 사람. 
-잘 팔려?
-생각보다 팔려. 
이모는 나 같은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마침 손님이 들어와서 나는 뜨개질을 더 해보려고 노력하는 대신 가게에서 나왔다. 시장이 끝나는 길에서 한 블록을 더 가니 어제 간 청년몰이 나왔다. 거기까지 가자 왠지 미간을 찌푸리며 골몰해 핫도그를 튀기는 핫도그 가게의 사장이 보고 싶었다. 이래서야 팔릴까 싶은, 딱 예상한 맛의 핫도그. 그 핫도그도 한번 더 먹고 싶었다. 

핫도그를 사오자 이모는 애처럼 이런 걸 먹느냐고 하면서도 자기 몫의 핫도그를 잘 먹었다. 오늘은 칠리핫도그를 사보았는데 오리지널보다는 좀 나았다. 약간의 개성이 느껴진달까. 
-이모, 맛있어?
-그냥 사왔으니까 먹는 거지. 이런 거 안 좋아해.
-이거 팔릴가?
-이런 건 위치가 중요하지 않나. 
-청년몰에서 사왔어. 
-거기 위치 별로야.
-초등학교 앞인데도?
-이거 얼만데?
-삼천원.
-애들이 삼천원짜리를 어떻게 사 먹어. 요 앞의 도넛이 천원에 열 개야. 
-그럼 망하겠네. 
-곧 망하겠지. 
핫도그 받침 종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뒤로도 사슬뜨기에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작가 : 송지현
출전 :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문학동네, 2021) p.21-p.24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배달하며

 

    뜨개질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몇 번 해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능숙한 뜨개질의 비밀은 힘을 빼는데 있다는 걸 말입니다. 뜨개질을 처음 하게 되면 혹여 놓칠까봐 실도 꽉 쥐고 바늘도 꽉 쥐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바느질한 땀이 엄청나게 촘촘하고 단단해집니다. 땀 사이에 바늘을 찔러넣기도 힘들 정도가 됩니다. 그러니 바느질은 힘든 일이 됩니다. 실을 꽉 쥐느라 온몸의 힘을 주다 보니 손목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등을 동그랗게 구부리고 있느라 어깨도 아파옵니다. 힘을 주면 결국 뜨개질을 오래 못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뜨개질을 하려면 몸의 힘을 빼야 합니다. 한 땀 한 땀 느슨하게 떠나가야 그 다음 땀으로, 다음 단으로 수월히 계속 이어갈 수 있습니다. 손에 힘이 안 들어가니 실과 바늘을 움직이는 일이 편해지고 손도 팔도 어깨도 가벼워집니다. 땀과 단의 크기가 일정해지기도 하고요.
뭐든 꽉 쥐고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내게서 빠져나가도 된다는 마음으로, 놓쳐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힘을 빼는 일. 그렇게 가볍게 마음을 먹어야 무슨 일이든 오랫동안 능숙하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힘 빼기’야말로 매일의 삶을 한땀 한땀씩 살아나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힘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 편혜영

 

작가 : 송지현

출전 :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문학동네, 2021) p.21-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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