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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 - 아나운서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 작성일 2008-03-21
  • 조회수 2,387

문학동네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그녀는 2년간 FM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9시 뉴스> 진행을 위해 그 프로그램을 그만두어야 했을 때, 마지막 녹음을 하던 스튜디오의 문 뒤에서 그녀는 애인과 헤어지기라도 하듯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녀를 잘 설명해주는 에피소드이다.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먼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가슴속으로 가득 번지는, 악기로 말하자면 첼로를 닮은 목소리. 아나운서 유정아가 자신의 목소리만큼이나 매혹적인 책 『마주침』을 펴냈다.

어느 날 그 음악, 아니 그 사람과 마주치다

“내가 쓴 음악 이야기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신에게 바치든 귀족의 구미에 맞추든 대중에게 음반을 팔기 위해서든 혹은 절로 우러나는 선율을 쏟아내든, 결국 사람이 음악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도 우리처럼 아프고 후회하고 실망하고 질투하고 때로 획책하고, 그리고 사랑하였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의 초점은 음악보다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그 ‘사람’들과의 운명적인 마주침에 관한 이야기를 섬세한 필치로 책 속에 담아냈다. 책장을 넘기면 매우 친숙한, 혹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음악가들의 구체적이고 다채로운 모습과 만나게 된다.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계승과 혁신’ ‘희망과 절망’ ‘비범과 평범’ ‘사랑과 우정, 혹은 이별’ 등의 주제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들의 음악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범박한 삶과 예술의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클래식이 지극히 ‘인간적인’ 음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푸르트벵글러는 나치 독일을 떠나지 않고 폭격 속에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올랐으며,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좋은 계약조건으로 지휘하기 위해 히틀러와 괴벨스 등 권력자의 도움을 청하거나 줄다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 그러나 그가 예술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였지 정치를 위해 예술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가 보호한 건 한 사람의 유대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훌륭한 예술가였다는 점에서, 그가 지키려 한 것은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예술로 고양된 인간 정신의 정점, 정치에 대한 문화의 우위였음은 확실해 보인다.(「예술은 정치를 초월하는 것인가」)

비발디는 한마디로 당시의 많은 베네치아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쇠퇴해가는 도시에서 카니발로 수없이 이어지는 여흥과 연예와 그에 매료된 외국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점을 십분 발휘할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타고난 영감과 상상력, 빠른 펜놀림, 고된 일을 좋아하는 기질 등이 그의 작업을 뒷받침했다. 실제로 비발디가 “나는 그 어떤 필경사가 내 콘체르토 악보를 베끼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작곡할 수 있다”고 떠벌리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비발디의 재발견」)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백건우는 소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데에 어떤 표준화된 틀이 있는 것은 아니건만 아무튼 백건우는 말을 잘하는 축에 분류되지 않는다. (……) 유창함이란 말의 요체를 파악하는 것이 귀찮아 귀 기울여 듣지 않아도 분간할 수 있는 손쉬운 분류 기준이다. 그러나 유창함 속에 얼마나 무진정과 무감동과 심지어 무질서가 스며 있을 수 있는지 또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말을 들을 땐 한마디의 진정이, 백건우의 타건 같은 한마디가 그리워진다.(「백건우와의 이별여행」)

이 밖에도 예술가적 양심 혹은 양심적 예술가의 참뜻을 몸소 보여주었던 세기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 신동에서 거장으로 우뚝 선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동생 펠릭스 멘델스존만큼 음악적으로 뛰어났으나 시대적 제약 때문에 재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던 파니 멘델스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합을 위해 사회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손잡고 창단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총소리를 음악소리로 바꾸어놓은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리마 돈나 마리아 칼라스 등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당신의 음악을 듣는,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우리에게 고전음악은 흔히 이해하기 어렵거나 따분한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클래식이 대중음악보다 여러모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오랫동안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저자는 누구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에 대한 편견과 진입 장벽을 허물고 고전음악 고유의 매력에 눈뜰 수 있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을 책 속에 담았다. 음악보다 인간을 책의 테마로 삼은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 때문이다.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가운데 하나로 만든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그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하고 장갑까지 낀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만의 특수의자에 앉아 녹음에 몰두하곤 했던 기인이었다. 굴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 시간 너머로hereafter>의 한 장면은 굴드의 무덤을 찾은 이탈리아 볼로냐의 한 할머니의 모습을 비춘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의 연주를 듣고 이미 세상을 떠난 그와 사랑에 빠져버린 그녀가 저세상의 굴드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이 내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음악을 듣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일입니다.” 한 편의 음악을 듣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아름다운 순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초판에 한정하여 모차르트, 베토벤, 차이콥스키, 보로딘, 레온카발로, 마스네,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등의 명곡을 빈 필, 베를린 필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카를 뵘, 카라얀, 아바도 등의 거장, 그리고 파바로티, 흐보로스토프스키 등 뛰어난 성악가가 연주한 컴필레이션 CD를 부록으로 드립니다.

음악은 누구의 것인가? 음악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했으며,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유정아는 이야기한다.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는 기적처럼, 가난을 예술로, 총소리를 음악소리로 바꾸어놓았다. 이와 같이 음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긍정적인 힘이며, 분열된 사회를 한가족으로 만든다. 유정아의 『마주침』을 읽으며 지구 위에, 아름다운 선율로 하나가 된, 크나큰 가정을 꿈꾸어본다. 백건우(피아니스트)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그녀의 친근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클래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듬뿍 담긴 유정아의 『마주침』을 읽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음악의 아름다움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기를 바랍니다. 유인촌(배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음악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음악적 재능에 대한 추상적 환상 때문에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의 음악에 대한 글은 비현실적이고 절제되지 않은 과장이란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정아는 이러한 함정들을 멀리 비켜 가며 그녀 특유의 섬세함과 담담한 필치로 작곡가와 작품, 그리고 연주가들에 대해 겸손하고도 사랑스러운 시각으로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써내려간다.
종종 그녀의 예민한 감성은 음악가들조차도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는 큰 매력 중 하나이다. 비전문가들에게는 음악에 대한 정확하고 흥미로운 정보를, 음악가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음악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김용배(전 예술의전당 사장, 추계예대 음악학부 교수)

유정아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화여중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열린 음악회> <클래식 사전> 등의 TV 프로그램과, <멜로디를 따라서> <한낮의 음악실> <저녁의 클래식> 등 FM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97년 퇴사 후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다수의 토론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시에 신문, 잡지 등의 필자로 활동해왔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서울대에서 ‘말하기’ 강의를 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KBS FM 스튜디오에서 매일 아침 9~11시 과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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