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속죄

  • 작성자 모스케어
  • 작성일 2015-06-28
  • 조회수 358

    

그는 언제나 피아노를 바라본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내지만 정작 피아노를 치는 일은 일주일에 한번 있을까 말까였다. 그것도 아주 잠시 손끝을 건반위에 얹은 상태로 힘주어 누르는 것뿐이었다. 딩-하고 짧은 소리의 울림이 끝날때쯤이면 그는 겁먹은사람처럼 재빨리 손을 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았다. 피아노를 향한 그의 집착은 나도 감탄할 정도였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피아노를 쳐다보기만 했다. 하루는 저 멀리서, 또 하루는 피아노 의자에서, 하루는 식탁에 앉아, 또 어떤날은 바닥에 앉아 우러러 보듯이 피아노를 쳐다봤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가만히 서서 피아노를 응시하고 있었다.

    

“피아노 치고 싶어요?”

    

수일간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내가 물었다. 멍하니 피아노를 바라보던 그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렸고 이내 피아노에 고정되었다.

    

“아니…아니. 치기 싫어.”

    

그는 속삭이듯이 대답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 어떤 피아니스트가 와도 그보다 피아노를 더 오래 쳐다볼 수는 없었다. 피아노를 치기 싫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집요하게 피아노를 칠 수 있을까. 나에게 그의 대답은 절대로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는 일종의 결심으로 들렸다.

    

“쳐도 돼요.”

    

그래서 내 허락이 그의 결심을 무너뜨리길 바라며 말했다. 누구보다 피아노를 원하는 사람의 연주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울 것이 뻔했으므로. 그러나 그는 오히려 내 말에 겁을 먹은 듯 몸을 떨었다. 그의 시선은 나와 피아노를 번갈아 왔다갔다 거렸다. 그는 입을 뻐끔거렸다.

    

“안 돼. 나는 치면 안 돼.” 

    

그는 거의 울먹이듯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막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렇게 숨막히는 얼굴로 칠 수 없다도 아니고, 치면 안된다고 말하는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요?”

“난, 피아노가 싫어.”

    

목졸린 사람처럼 그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담았다. 그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의 말이 진심처럼 들려서 나는 더더욱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루종일 피아노를 쳐다보면서 피아노를 치지 않는 남자. 나와 대화할 때조차도 피아노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피아노가 싫다는 남자. 나는 도통 남자를 알 수가 없었다. 이 뻥 뚫린 방에서 그는 마치 피아노와 그 단둘이 있는 밀실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밀실을 벗어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밀실에 더욱 남고 싶다는 듯이 진득하게 피아노를 쳐다본다. 오로지 쳐다보기만 한다. 그렇게 싫다는 피아노를 질리도록 바라본다. 

    

“그렇게 싫으면 치울게요. 피아노.”

    

나는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피아노에서 그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다. 무엇이 그를 피아노에 옭아 메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의 비정상적인 집착을 더 이상 두고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러지 마.”

    

하지만 그에겐 피아노에게서 벗어날 의지가 없었다. 온몸을 떨면서 눈물을 떨구어도 그는 피아노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았고 피아노에서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제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떨리는 손을 잡았다. 곧고 얇은 손은 피아노를 치면 딱 알맞을 것 같았다. 그는 내 행동에 신경조차 쓰지않고 피아노를 쳐다봤다. 그 절절한 눈빛이 질투가 났다.

    

“왜 그래요? 대체 왜?”

    

내 말에 그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처음으로 그의 반짝이는 눈이 오로지 내게 고정되었다. 그의 눈은 피아노처럼 까맣게 가라앉아있었다. 반짝거리는 그의 눈동자에 슬픈 나의 모습이 비춰졌다. 피아노를 바라볼때면 언제나 올곧았던 그의 눈은 나를 향하자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눈을 깜빡일때마다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차라리…차라리 손목을 잘라버렸으면 좋겠어. 두 번다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그는 대답대신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말 없이 그를 끌어안는 것 뿐이었다. 그는 소리조차 없이 울었다. 나는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야윈 그의 등은 뼈가 도드라져 있었다. 밥도 먹지 않고 매일 피아노를 쳐다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껴안았지만 그는 덜덜 떨면서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밀어내려 하면서 끅끅 울음을 눌러담았다.

    

“피아노 치는 건 죄가 아니에요.”

    

나는 그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내 말이 두려운 것처럼 나를 보려 하지 않았다. 나는 차갑게 식은 그의 뺨을 쥐었다. 젖은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말없이 그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 내 말을 그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밀실의 문을 열기를 주저하며 끊임없이 피아노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가도 힘없이 손을 떨어뜨리고 주춤거린다. 검은 피아노의 그림자가 그의 발목을 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림자는 사르르 자취를 감춘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곳은 더 이상 밀실이 아니었다. 열린 문이 그의 앞에 있었다.

    

“정말?”

    

그는 작은 희망을 품고 내게 묻는다.

    

“네.”

    

나는 그의 눈밑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의 눈은 마치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흔들리던 그의 눈은 올곧이 나를 바라본다. 

    

“그러니까 치고 싶으면 치고, 치기 싫으면 치지 마요. 더 이상 바라보고만 있지 않아도 돼요.”

    

나는 그의 희망에 화답하며 웃는다. 얼떨결하게 나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내 품에 있는 그는 아직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더 이상 집요하게 피아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이제 나를 본다. 그의 눈 속에 내가 환하게 웃는다. 그는 어설프게 나를 따라 웃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아직은 조금 떨리는 손이 희미하게 내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열린 문으로 함께 걸어나갔다.    

    

 

    

   

    

모스케어
모스케어

추천 콘텐츠

소원

   소중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외로움도 우울도 하나로 모아서 본 내 소원은 그것이었다.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도 좋으니까, 내가 사랑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사랑받겠다는 생각따위 애전에 버린지 오래였다. 내가 사랑받는다는 것은 지나가던 개새끼도 울만큼의 헛소리였다. 그러니 사랑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내 가여움과 외로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쏟아부어 줄 수 있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 울렁거리며 넘쳐나는 감정을 줄 수 있는 네가, 내 모든 걸 줄 수 있는 네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걸 나에게 쏟아붓는 건 울음이 치밀어오를 정도로 비참한 일이었다. 곁에 없어도 좋으니까 있어만 주면 좋겠다. 내가 네 곁에 갈 테니까. 네가 존재하기만 하다면, 나는 네게 가서 너를 사랑할 것이다. 죽을 듯이 사랑해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너의 손끝 하나 발끝 하나마다 입을 맞추고 머릿결에 입을 맞출 것이다. 내 모든 걸 바쳐서 너를 사랑할 것이다. 너의 발아래 무릎꿇고 너를위해 개짓이라도 하리라. 나의 비참한 아양으로 너의 미소한점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가질 수 없겠지만, 영혼이라도 쓸어담아서 너를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너의 머리카락 한 올 하나 온전히 가지기 위해 나는 목숨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너에게 나를 종속시킬 것이다. 싫어해도 나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아무리 거부하며 손을 뿌리쳐도 나는 주먹 쥔 손을 펴내 내 목줄을 쥐여줄 것이다. 모든 것을 줄 테니까 내 모든 것을 가져라. 그것만이 내가 행복해지는 일이었다.  나를 너에게 묶음으로서 나는 비로소 존재하고 생명을 틔울 것이다. 사랑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너를 사랑한다. 백번을 빌면 네가 존재할까. 천 번을 빌면 네가 존재할까. 천 일 동안 치성을 드리고 공양을 드리고 삼백일 동안 산에 오르는 모든 걸 할 수 있으니 네가 존재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바쳐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데 왜 너는 없는가. 그 사실이 못내 나를 더없이 슬프게 했다. 매일을 술에 허우적거리고 미친사람처럼 너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너는 없었다. 저 땅끝에는 네가 있을까, 하늘 너머에는 네가 있을까.  수많은 울부짖음 속에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나의 사랑을 너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데 써야 하는가보다. 내 목숨을 버리고 너를 살려야 네가 존재하나 보다. 나와 너를 맞바꾸어 너를 존재하게 해야겠다. 나는 이걸 왜 이제 알았을까. 사랑하는 너는, 나로 인해 태어나는구나. 그로써 나는 영원히 너에게 종속되는구나.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세상에 이처럼 황홀한 일이 더 있을까!  네가 나로인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은 발끝이 저릴만큼 짜릿한 일이었다. 나에게 우울한 세상이 너에게는 무지개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너는 찬란한 세상을 보아야 한다. 흘러가는 시냇물을 지저귀는 새를 도시의 화려함을 인생의 아름다움을 너는 보아야 한다. 애초에 내가 볼 것이 아니었다. 그래, 네가 아니라 나였기에 세상이 그렇게 우울하였구나.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였다

  • 모스케어
  • 2013-11-0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