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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압구정을 걷지 않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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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압구정을 걷지 않는 것은

갈 때마다 첫사랑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있는 너의 얼굴은

눈 비벼도 사라지지 않는다

등 뒤에 손을 얹으려 할 때 문득

거리에 떠다니는 너의 얼굴에는

내 손의 지문이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명 후회할 거라는 너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

너는 압구정에 없고 캐나다에 있지만

너의 얼굴은 압구정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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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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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간은 지나간 시간을 잃어버렸고

다가올 시간은 지금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의 한순간을 담고 떠나가는

시간의 시간.

 

문득 나의 시간이

시간의 순장에서 벗어나

더 빨리 죽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내 시간을 항성 밖으로 밀어낸

너의 궤적을 따라간다.

 

소실점이 되어 나를 인도하는

너의 앞과

뒤쫓아 가는

나의 뒤에도

떨어지고 있는 별이 있을까.

 

우리는 우리 몸의 상여를 스스로 매고

허공 언저리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타버리는 몸에서

새로운 소원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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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사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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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소극장은 처음 가보는 극장이었습니다. 세 방향으로 관객석이 나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아담하면서도 느낌이 좋았어요. 무대에는 나무와 텐트, 노숙용품이 전부였습니다. 간소한 무대를 보며 그냥 가볍게 즐길만한 코믹극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때론 시놉시스를 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알아나가는 것도 흥미가 있어서요.

3분의 지연 끝에,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와 등진 채, 홀로 산에서 살아가는 아들과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의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유쾌한 부자간의 말싸움이 벌어져, 폭소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웠던 연출은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과거를 끄집어내 물고 늘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과거를 흉내내고, 아버지는 아들을 흉내내지요. 어조까지 따라하면서요. 워낙 연기가 뛰어나신 분들이라 그런지, 역동적인 역할변경이 이루어져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코믹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진행될수록 비밀과 가슴에 쌓여있던 울분들이 터져나왔습니다. 그것들이 그들 부자만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갖고 있는 고민들이라 남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청춘과 자유를 누리고 싶은 아들과 사회에 맞춰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 저 또한 비슷한 갈등을 맺고 있기에 깊은 이입을 했습니다. 현실에선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이 못마땅하기만 했는데, 이 극을 관람하며 조금은 부모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을 압박하기만 하는 진부한 부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던 아버지의 내막도 들어있거든요.

코믹과 진지 사이에서 기교를 부릴 줄 아는 김나정 작가의 글실력에 감탄했습니다. 반무섭 연출가의 연출도 당연 돋보였구요.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마지막 까지 연결되고 한답니다. 시간 되시면 꼭 한번 관람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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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여자 이발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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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등장인물들이 행동과 대화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독백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해서 답답했습니다. 또한 행동이 거의 없고 읊조리기만 하여 낭독극인줄 알았습니다. 등장인물도 여자들만 나오고, 남자 인물은 투명인간으로 설정해두었구요. 이러한 연출에서 연출가가 의도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남자배우가 직접 나왔다면 훨씬 역동적인 연극이 되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빨려들어갈 듯 몰입했습니다. 가슴 아픈 서사와 그녀들의 애절한 노래 소리가 가슴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비록 낭독극 비슷한 형태를 띄우고 있으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로 깊은 이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음악이었습니다. 보통 연극에선 음향기기를 이용하여 설정한 노래를 트는데, 여자 이발사의 노래는 모두 음악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연주한 것들이었습니다. 전통 악기와 현대 악기가 기묘하게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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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염쟁이 유씨' 관람 – 1인극 형식에 가졌던 편견의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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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을 관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강백의 희곡 '올훼의 죽음'을 읽은 후로, 꼭 한 번 1인극을 관람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이 희곡을 읽었던 당시에 여러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인물과 인물의 목표점이 부딪혀 갈등이 벌어지고, 대사와 행동이 충돌하여 역동성이 발휘되는데, 1인극은 그런 게 없지 않은가? 과도한 실험성에 얽매여 정작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텍스트로서의 희곡을 읽을 땐, 그럴싸하지만 실제로 연극으로 올려 졌을 땐 가망 없는 그런 형식으로.

하지만 연극을 관람하면서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연극 ‘염쟁이 유씨’는 비록 1인극이지만 무대와 소품 그리고 관람객과 호흡을 맞춰, 다인극 못지않은 역동성을 보여줬다. 염쟁이가 특이한 손님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잠시 수그려 썬그라스를 끼고 다른 인물이 되는 장면과 앞좌석에 앉은 관객들을 등장인물인 양 대하는 부분이 그러했다. 1인극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역동성을 이런 방식으로 보완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1인극만의 장점인 관객과의 내밀한 소통을 잃지 않았다. 또 정해진 대사를 주고받는 배우가 없다보니, 끊임없이 상황에 맞춰 뛰어난 즉흥연기를 보여줬다. 1시간 반 동안 내내 이어진 즉흥연기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노련한 배우의 중요성이었다. 이 연극의 캐스팅을 보면 알겠지만, 염쟁이 역을 맡은 세 배우 모두 연극판에 수십 년 동안 몸담은 노배우들이다. 그렇기에 15명이나 되는 억양과 행동 몸짓을 자유자재로 소화해낼 수 있고, 매번 관객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즉흥연기를 무리없이 펼쳐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번 연극 관람을 계기로 1인극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단순히 1시간 반 동안 연극 한 편 관람한 사소한 것이지만, 이 사소한 시간으로 인해 실험극에 대한 편견이 씻겨나간 기분이 든다. 앞서 밝혔듯, 나는 희곡 한 편을 읽고 1인극을 불가능하다 단정 지었었다. 초라한 희곡 독법과 연극관람 경험으로 만들어진 메커니즘에서 나온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극은 자유로운 연출로 다인극 못지않은 활력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의문을 가졌던 당시, 나는 1인극 안에서의 수많은 연출 가능성을 배제하고, 단지 1인극이라는 형식 그 자체에 편견을 가졌던 것이다. 살아있는 연극을 만나 전복 당해 기쁘다. 앞으로 대학로에 ‘염쟁이 유씨’와 같은 창조적인 연극들이 설 자리가 넓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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