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북촌

비가 내리면서 이따금 심심풀이처럼 쏘아 대던 총소리도 멎었고 온통 사방은 억수로 퍼붓는 빗소리뿐이었다. 아내는 칭얼대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다. 그러나 아이는 몇 번 빨다 말고 조바심을 내며 끙끙거렸다.

강 건너 북촌
/ 2006-11-06
성자를 위하여

“자, 이제 사람이 다 모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성자(聖者)에 대해서 얘기해 보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우선 준비해온 대로 성자 오 성중 선생의 행적을 간추려 듣고 나서 우리들의 의견을 피력하기로 합시다.”

성자를 위하여
/ 2006-11-06
내 마음의 옥탑방

나의 기억 속에는 세월이 흘러도 불이 꺼지지 않는 자그마한 방 한 칸이 있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었을 때, 나는 삼층 건물의 옥상에 위치한 그것을 처음 목격했었다. 목격했었다, 라고 말하는 건 당시에 내가 받았던 기이한 충격감이 반영된 결과일 터이다.

내 마음의 옥탑방
/ 2006-11-06
밤길

김신부는 천천히 수저질을 했다. 하루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에도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 신부가 설렁탕을 저어 기름기 빠진 고깃점을 떠넣고 우물우물 씹고 있을 때 식당문이 열리면서 한 떼거리의 손님이 들어왔다.

밤길
/ 2006-11-06
산란

종이 울렸다. 산사(山寺)의 뜨락에는 일제히 가사(袈裟) 빛 놀이 깔렸다. 길게 끌며 파문지는 종소리의 여운에 따라 엷은 무늬를 이루며 놀이 흔들렸다. 법당 뒤 산죽(山竹) 숲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산란
/ 2006-11-06

끼꺽―― 끼익꺽. 벼랑으로 아득하게 떨어져 내리던 잠이 끼꺽대는 소리에 덜미가 잡힌다. 그는 벌떡 등을 일으킨다. 무거운 짐을 실은 듯한 자전거가 창 밖으로 지나가는 소리였다. 그는 자전거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다시 등을 붙이고 눕는다. 눈을 뜨고 천장을 본다.

/ 2006-11-06
선생과 황태자

나는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어쩌면 환자가 아닐까 하는 자각 증상에 사로잡히고 만 것입니다.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없을까, 그때까지 몸에 이상이 있거나 이렇다 할만큼 치료를 받아 본 일이 없는데도 공연한 남들의 인사말,

선생과 황태자
/ 2006-11-06
우리의 사랑은 들꽃처럼

날선 바람이 살을 파고들었다. 이상난동 탓인지 겨우내 푸근했던 터이라 새벽일망정 뒤늦게 귓가에 소리도 성깔맞게 웽웽거리는 찬바람은 아무래도 낯설었다. 해도 그것이 모처럼 맛보는 겨울 풍경인만큼 싫은 바람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사랑은 들꽃처럼
/ 2006-11-06
쇳물처럼

“천씨, 오늘 같은 날은 마누라헌테 사랑받는 날잉께 대포는 적당히 해야 쓰겄제?”
“하모.”
일과가 끝난 현장 안은 그지없이 을씨년스러웠다. 벌건 쇳덩어리들을 파헤쳐 내고 남은 흑연과 탄가루만이 그득하게 현장 바닥을 메웠다.

쇳물처럼
/ 2006-11-06
가던 새 본다

겨울 찬 바람을 버티며 그 와중에도 암중모색 희고 노란 기운을 우려내던 진달래 개나리 벚 살구나무가 한동안 제 흥에 취해 흐드러지게 뿜어내던 진한 꽃기운을 하늘과 땅이 다 거둬가고서야 산과 밭은ㄴ 실로 낮고 더웁고 짙은 내음을 풍기기 시작했다.

가던 새 본다
/ 2006-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