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하늘

유월 하늘 먼 하늘 청춘이 뜨겁게 곤두박질 쳐오면담장에도, 안방 책상 위에도 장미 한 송이제 가시에 찔렸는지 사방에는 선혈이 낭자하고 유월의 대지는 붉디붉은 피 토해 내며 수은주를 마구 달군다비료 포대 쌀 포대 몇 번 남북을 오르내리더니어느 누가 그리하자 했는지 주적단어 은근슬쩍 사라지고날이면 날마다 탈북 행렬 끝이 없는데도아, 지금 유월 하늘은 서울역전 노숙자보다도 못한 신세아이들이 유월 하늘을 송두리째 잊고 산다흑석동 골짜기, 대전 양지바른 언덕배기에 오십년 유월 당신께서 남기신 유언은어머니의 나라 조국 수호 였건만개성공단에 갖다 묻었는가, 금강산 관광길에 잃어버렸는가이제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그냥 이대로 살잔다아무리 잠을 청하여도 잠이 오지 않는다올해 현충일에는[…]

유월 하늘
/ 2005-06-06
수채화

                 수채화 금요일에는 그림을 그린다누군가에게 보여야할 인생은 없다마음가는 대로 강물 흐르는 대로 그리다 보면바다에 닿는다어느새 그리운 얼굴 두 세 개가 눈에 삼삼하다사과를 그리고 생일 케이크를 그리고 석기시대 식탁에 둘러앉아 내부를 갉아먹던 조개무덤들허구의 먹을 것이 생겨도 눈에 밟히는 얼굴들가난한 아버지가 되어호젓한 바닷가에 소금냄새를 펼친다온 세상의 주지 못하는 아픔이 파도에 밀려온다고호를 깎고 피카소를 삶던 때는 그리워해야 할 얼굴들은 없었다나 하나의 자유와 권태로움을 야금야금 꺼내 먹었지만아하, 금요일의 어느 날갈비뼈와 빗장뼈와 종지뼈를 닮은야윈 얼굴들이내 화폭의 아랫목으로  지지고 볶던 아랫목으로모여든다한껏 입을 벌리고 제비새끼처럼 빨간 입 속을 들이밀 때혀가 달콤하면 혀를 내주고더 달라고 소리치면 구겨진 위장을[…]

수채화
/ 2005-06-05
바다로-4

   현수가 아파트로 돌아와보니 덕만이 문 앞에 앉아 자고 있었다. 벨을 눌렀더니 금방 혁이 문을 열어주었다. 아무래도 덕만은 벨도 안 누르고 이 앞에 쓰러진 모양이었다. 혁도 벨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겨울 해가 늦게 뜬다는 걸 감안해서 바닷가에는 여섯시 쯤 가보기로 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혁은 이왕 일어난 김에 자기는 그냥 있을 테니 현수에게 잠시라도 눈을 붙이라고 했다. 덕만은 그러든지 말든지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현수는 몹시 피곤하긴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지금 이 새벽까지 일어난 일들. 잡혀간 사기꾼들, 물 탄 휘발유, 급체, 낯선 여자의 슬픈 사랑[…]

바다로-4
/ 2005-06-04
바다로-3

「미안하다.」   한참을 이어진 침묵을 깬 것은 덕만의 사과였다. 덕만은 계속 운전은 하고 있었지만 룸미러로 모두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침묵이 이어졌다. 특히 혁이 분을 삭이며 참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모두들 눈치만 볼뿐이었다. 「얼마나 줬냐?」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혁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덕만은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냥 밥값이나 하라고…….」 「글쎄, 얼마나 줬냐고!」   현수는 혁이 짜증내는 걸 보면서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생각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주유소에서 휘발유 넣었다고 생각하면 되지, 뭘 화를 내고 그러는 걸까? 「3만원 줬어.」 「으이구…….」   혁은[…]

바다로-3
/ 2005-06-04
바다로-2

  덕만의 운전 솜씨는 좀 거친 편이긴 해도 고속도로에서는 무리 없이 잘 하는 편이다. 오랜만의 운전이라고 걱정을 했는데 차는 씽씽 잘 달리고 있었다. 「야, 어떠냐? 서울 벗어나니까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냐?」   덕만이 룸미러로 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 좋다! 진작에 이렇게 나올 걸. 이야! 저 산에 눈 쌓인 거 봐라. 예술이다, 예술!」   혁은 대답도 없이 그냥 웃고만 있었고, 감동하길 좋아하는 병진이 창 밖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두들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현수도 창 밖을 봤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대학을 졸업한 것이 햇수로 4년이 된다. 그동안 해놓은 일이라고는 공무원[…]

바다로-2
/ 2005-06-04
바다로-1

바다로 정한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피우는 담배가 몸에 정말 나쁘다는 것은 현수도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현수는 최근에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를 반 갑씩으로 줄인 상태다. 아침 담배가 주는 몽롱함은 오래간다. 가뜩이나 담배를 줄여야 하는 마당에 가장 효과가 큰 담배를 포기한다는 건 비논리적인 일이다.   귀에 담배를 하나 꽂고, 주머니에 라이터를 넣고 쓰레빠를 끌고 문 밖으로 나간다. 뒤에는 늘 그렇듯 모친의 잔소리가 와서 박힌다. 현수도 안다. 모친이 얼마나 답답한 심정일지. 하지만 역시 현수는 안다. 모친 역시 자신을 가엾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이 다가구 주택의 옥상에 올라가[…]

바다로-1
/ 2005-06-04
바다의 일상

                 바다의 일상                                                  정토 하루 종일 바다만 보네. 등 뒤의 세상은 너무 무서워 바다만 보네. 그러다 지루하면 소주 한 병 들고, 버린 낚시 대를 테이프로 둘둘 말아 세 쪽 갈고리로 만든 바다 병장기로 문어사냥을 하네.  어차피 인생에서도 오르다가 내려가는 것처럼 바다에서도 좋은 날이 있을 때에는 돌미역이 밀려오고, 한번 쿡 찍으면 주먹만한 머리의 문어도 잡히고,  마을 어르신 통발 속에도 놀래 미가 들어 앉아 다한 인연의  힘을 쏟지만, 별로 좋지 않은 날에는 그 흔한 조개하나 없어 할 수 없이 라면 말아 안주하네. 어쩌다 운수 좋아 풀어 놓은 통발에 물짐승 하나 잡히면  온 마을이 술잔치 마셔도 취하지 않네. 당신은 평생을 물질하며 살아온 해녀남편 ‘주 내 끼’ 당신은 작은 배로 낚시하며 때론 ‘머 구 리’ 도  하고, 당신은 오징어잡이, 대게 잡이 가리지 않는 선원 종사자 지난 세월 회한으로 한탄해도 바다는 말이 없고, 술에 취해 사는 것이 가장의 업(業)이라면 누가 믿을까? 처음엔 몰랐지만 바다에는 숨겨놓은 친구 있어 술 마시며 말문을 놓는 것이 세상 떠난 절제이니 이것이 봉구미 등대 마을. 아 아 어찌하나 이웃 마을의 비극 죽음보다 두려운 가족 해체여~ 다시 술을 마시다 당신은 무엇 하나 바다를 보니, 오늘도 그 일상 변함없네. 눈물 흘리네.    

바다의 일상
/ 2005-06-04
진달래

진달래 울긋불긋 여기저기 아름답게피어 있는 진달래꽃 군락봄 바람에 춤을 추듯 하늘거리네멀리 보일땐 분홍색 물감을 담뿍 쏟아 놓은 듯 가까히보면 아름다운 진달래꽃 여리고 예쁜 꽃잎으로 아름답게피었네 상춘객 마음도 꽃따라들뜨고 꽃잎에 입맞춤하네미소 또한 꽃이 되었네

진달래
/ 2005-06-03
털! 털털털

 얘기를 해야 한다. 어디서 시작할까. 하고 싶지 않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것 아니면 저것일 뿐. 아버지와 아들이 짚신 장사를 한다. 짚신을 만드는 건 숙련이 필요 없다. 같은 논바닥 지푸라기다. 질적 차이가 없다. 시장에서 아버지의 짚신은 두 푼, 아들은 한 푼이다. 그리고도 아들 짚신은 잘 팔리지 않는다. 아버지 단골손님이라고 특별하진 않다. 일부러 두 켤레 값을 치룰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딘가 기술이 부족하리라. 아들은 공을 더 들여 짚신을 만들었다. 다시 아버지와 아들은 시장에 나간다. 사람들이 짚신을 살펴본다. 역시 값비싼 아버지 것이 선택된다. 몹시 억울하다. 아들은 이유를 끝내 알아내지 못한다. 십수 년을 그렇게[…]

털! 털털털
/ 2005-06-03

 길을 갑니다. 열렸다고 다 길이 아닙니다. 만나서 사랑해야 합니다. 당신이 멈춰있는 것은 질시 때문입니다. 공중을 나는 새가 자유롭습니다. 무리 졌으나 앞서가는 새와 부딪치지 않습니다. 동무들과 주변 풍경에 완전히 어울려 있습니다. 모술의 드넓은 사막에서 헬기 2대가 떨어졌습니다. 전쟁 때문입니다. 이번엔 적이 아닌 자기편끼리 충돌했습니다. 길이 아니면 언제나 비좁습니다.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방팔방 뚫렸다고 모두 길은 아닙니다. 교류하고 나누는 길이 진짜 길입니다. 당신이 한눈을 팔기에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갑니다. 길이 있어 걸음을 옮깁니다. 저기 당신이 보이네요. 이제 달려가야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안녕!  

/ 2005-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