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보낸 편지

  겨울이 보낸 편지   장구소리가 마루바닥을 뛰어 다닌다초등학교에서 복도를 뛰는 것은교칙위반이었다추억이 마루를 뛰어 다니는 것도위반이다오르간 위를 뛰어다니던긴 생머리 여학생의 긴 손가락도 위반이다휘모리 장단은 자장 무렵이 되서야위반법으로 잡혀갔다알 수 없는 추억의 장단이밤새내 갈비뼈 사이를 지나 다녔다

겨울이 보낸 편지
/ 2005-06-03
연애하는, 달

 연애하는, 달    죽염이란 말이 왜 죽음으로 들렸을까작은 거울 안에,커다란 대문니를 드러낸 할머니는 보름달 같다둥글게 칫솔을 말아 쥔 주먹, 벌어진 세월처럼달의 칫솔이 가장 먼저 벌어진 겨울부터가 아닐까 새로 사 드린 칫솔이궤짝에 쌓여 가면서 아무도 칫솔을사 드리지 않는다 몰래 새 칫솔을 놓으러방에 들어갔다 관절염 걸린 가구들이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렸다치약보다 난 이게 좋다야굵은 소금을 녹이고 달래기 위해 칫솔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부드러워졌을 것이다소금도 설탕이 될 때가 있다 늦은 밤,때늦은 연애도 부끄러운 것일까가족들에게 들킬까봐 불도 켜지 않고스스로 빛을 만드는 달 세면대 거울에 반사 된 미소가 조금씩 새어 나온다  소금밭으로 걸어가는 달은온몸이 길이다 집 안이 환하다  

연애하는, 달
/ 2005-06-03
담배값 인하를 촉구한다

 담배는 가난한 이를 위로하는 신의 은총이다.5월 23일 밝힌 보건복지부 방침에 따르면 7월부터 담배값 500원이 인상될 예정이다. 지난 연말에 오백원이 올랐으니 반년의 시차를 두고 천원이 오른 셈이다. 가격압박 정책을 매우 강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단기적인 흡연률 감소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특히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는 청소년 흡연자에겐 큰 타격임이 분명하다. 지나가는 학생들의 주머니에 기대 사는 동네 깍두기의 수고도 그만큼 늘어날 테고.    허나, 담배는 중독성 강한 기호식품이다. 서너달 지나면 흡연률은 원래대로 복귀한다. 그렇게 되면 올 연말쯤 TV시사토론 시간에는 '담배값만 올렸다'는 국민비난이 압도적으로 많아질 게 자명하다. 벌써 물가상승 영향을 상당히 주었다는[…]

담배값 인하를 촉구한다
/ 2005-06-03
수담의 변증법

 변증법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초기 불교 세계관과 고대 중국 철학에서도 변증법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리스 철학자들은 주장과 반박을 통해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변증법은 가장 완전하고 심오하며 일면성으로부터 벗어난 형태의 발전 이론으로서, 그 본질은 세 가지 법칙을 통해 표현된다. '양질 전화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 그것이다. 변증법이 우리에게 당부하는 요구는 물질 세계의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변화 속에서 고찰할 것, 현상들의 다양한 상호 연관에 주의하면서 분석할 것, 대립되는 구성요소들 속에서 통일체를 인식할 것 등이다. 변증법은 항상 새로운 것, 스스로 발전하는 것에 주목한다.수담은 우리 말로 바둑을[…]

수담의 변증법
/ 2005-06-02
겨울청계천

 간다면 어디로 가는가. 널브러진 불쌍한 서울 핏줄아! 귀한 아들 딸, 허리 휜 어미의 연인 그 용감한 사람들을 남겨두고. 지난 봄 나는 사랑하는 고향 하늘을 지독한 염색공장의 굴뚝 속에서 잃었지. 너는 믿지 못할 나를 염려하고 나는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키다리 너를 두 눈 퀭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기름밥이 고향의 배고픔보다 쓰리게 혁명의 성장기를 울리던 시절, 너는 시집 간 언니가 일러준 낯선 거리에서 만나 바람에 흩어지는 콧노래와 다정한 웃음으로 반갑게 나를 안아주었다.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가난한 젊은 날이 가진 외로움을 노리고 어느 누가 착한 마음 노략질 하였기에 부지런히 놀리던 야윈 손가락으로 이마[…]

겨울청계천
/ 2005-06-02
꽃피지 않는다

             꽃 피지 않는다             우리들 달밤 깨지고             동녘 눈거울 틈새             창백한 해 그림자 다가선다             녹슨 경원선 자락             기름 퍼내는 누이의 볼우물             금붕어 놀라 날뛰는 건             그놈의 백혈병 때문 아니나              화약냄새 잠겨든 소라 조약돌에             입을 맞추었다 물론             시냇물 바싹 말랐고              꽃 피지 않는다             지금쯤 멀리 떠나야 하는 데             문고리 걸고 두렁 가야 하는 데             흙바람 거세고             곡기 끊은 송아지             턱 뭉개진 돼지새끼             그냥 버려두면 어떻하지             시월 아기조카 저렇게 태두르면 어떻하지             나이 없는 죽음 사태기에             새로 난 풀가진             하얗게 불살라진다              꽃 피지 않는다             큰 학교 가는 길엔             살충제 같은 최루탄             따갑고[…]

꽃피지 않는다
/ 2005-06-02
그리움은

 예전에그리움은가보지 못한산골에 핀 꽃 나이 들어뼈마디 깍여나간아픔임을 알았습니다 보고 싶어도 어딘지 몰라모든 눈물 태워버린 후에야 그리움은날마다 새벽창에  빈 가슴 도려낸 칼날임을기어코 나를 죽여 알았습니다  

그리움은
/ 2005-06-02
어느 한 여름밤

 꼭지 돌아 더듬고 헤매며 돌아 온 밤,거실 창 밖 살랑대는 여름 잎을 하염없이 본다.잔이 돌수록 커지고 많아지던 말수는 간 데 없고,말 못하고 죽은 이 나 앉은 듯 서로 말 한마디 없었으니-힘겹게 뻗어 누운 육신 위에 바람을 흩뿌리던 십년 선풍기돌기 멈추고 꼭지 돈 주인과 같이 돌자 한다. 그새 바람 타고 온 死神이 잠시 놀다 갔다.[詩作 메모]이 시는 IMF사태에 뒤이어 구조조정은 곧 감원이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명예퇴직이라는 美名 하에 나이를 우선으로 짤라내기 작업이 한참이던 시기에 (이 시기로 말하면 눈치 보여 빨리 퇴근도 못하고, 그냥 오기도 虛虛하여 소주+삼겹살을 많이 했었다.) 2차까지 먹고 들어와 草[…]

어느 한 여름밤
/ 2005-06-02
家訓과 左右銘

 지금도 그렇겠지만, 옛날에도 초등학교 4~5 학년쯤 되면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우리집 가훈이 무엇입니까?' 하고 여쭤 봤더니 '우린 그런 거 없다.' 라는 말씀이셔서 머쓱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가훈따위를 생각하고 살 만큼 여유도 없었고,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 가는 게 바로 가훈이라고 여기셨을 것 같다.훗날 나도 가정을 꾸리고 애를 가지고, 애들이 초등학교 들어 가니 당연하게도 똑 같은 질문을 받게 되었는 데, 30년도 넘은 그 머쓱한 기억 때문인지 가훈 같은 건 따로 천천히 생각할 여유도 없이 직장생활에 쫒겼던 때문인지 별로 대답할 기분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하면 숙제를 못해가기[…]

家訓과 左右銘
/ 2005-06-02
유월의 장미

유월의 장미/ 배현순 그대, 유월의 장미여! 꽃 잎은 여린 단삼 가시는 정절을 세우는 잠들지 않는 은장도 붉다 못해 선홍빛으로 터지는 너울 두르고 새벽을 여는 한송이 장미 정오의 열망을 태우려 질주하고 있다.

유월의 장미
/ 200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