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인 , 「달팽이」

      김사인 ┃「달팽이」을 배달하며       “귓속이 늘 궁금했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감을 수 없다. 잠이 찾아오면 눈은 스르르 감기지만,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귀는 활짝 열려 있다. 그러니까 내 의식에 닿지 않은 말과 온갖 소리들이 귀에는 닿았다. 잠든 사람 앞에서라면 어떤 고백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든 사람 앞에서라야 어떤 비밀은 꽁꽁 묶어두었던 보자기를 살며시 풀어볼 것이다. 잠든 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하는 말은 혼자 하는 말과 어떻게 다른가. 잠든 사람의 귓속에 공기분자의 파동을 일으키는 말은 혼잣말보다 덜 외로울까. 그것은 대화일까, 독백일까. 언젠가 잠든[…]

김사인 , 「달팽이」
/ 2020-11-19
기준영, 『들소』 중에서

    기준영 「들소」를 배달하며       때론 문장만으로도 탄복하게 되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에겐 기준영의 소설들이 그러한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문장이 작가의 손을 떠난 것’만 같은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이 단편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초등학생인 ‘고푸름’. 현재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녀죠. 그들 모녀가 거의 공짜로 세들어 살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는 오래전 둘째딸을 잃어버린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용을 했던 이에스더. 열여섯 살에 스위스에서 실종된, 할머니의 둘째딸 이름이 이에스더입니다. 고푸름은 할머니 앞에서 딱 한 번 이에스더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길우도 되어봅니다. 내가[…]

기준영, 『들소』 중에서
/ 2020-11-12
김언희, 「트렁크」

      김언희 ┃「트렁크」를 배달하며       나는 이따금 은밀하게 이런 꿈을 꾼다. 거대한 가방이 필요한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다.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느라 나는 점점 지친다. 그러다가 나는 가방의 크기를 줄여나가게 된다. 차츰 몸피가 졸아 들어가던 가방이 마침내 한 점 빛처럼 사라지는 곳에서 나는 과거를 전생처럼 끊고 새로운 내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내가 살아가는 곳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깨면 언제나 거대한 가방은 남아 있다. 커다란 트렁크처럼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나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져” 있다. 버려도 버려도 버려지지[…]

김언희, 「트렁크」
/ 2020-11-05
김홍, 『스모킹 오레오』 중에서

    김홍 『스모킹 오레오』 를 배달하며       한 가지 스포일러를 미리 말하자면, 저 위 문장에 등장하는 정아는 죽습니다. 그것도 누군가가 발사한 총알에 맞아 죽고 말죠. 정아는 늘 걱정을 안고 살던 친구입니다. 골든레트리버가 자신을 물을까 걱정하고, 화재가 일어날까 걱정하고, 자신의 아이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질까 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리고 그 전전긍긍에서 벗어나고자 매주 30만 원을 내고 의사와 상담합니다. 30만 원어치의 안심을 얻는 것이죠. 한데, 저 의사의 말이 좀 이상하진 않나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심을 주는 말이라곤 하지만, 어쩐지 자꾸 그런 일을 예감하게 만드는 말[…]

김홍, 『스모킹 오레오』 중에서
/ 2020-10-29
이장욱, 「두번째 강물」

      이장욱 ┃「두번째 강물」을 배달하며       때로 나는 내가 강가에 사는 사람 같아. 가벼운 저녁 산책을 나왔다가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저토록 성실하게 강물은 흘러가는데 내 얇은 그림자는 흐르지 않지. 그럴 때면 전생이나 후생의 메아리마냥 “나는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있네” 라고 노래 부르게 되지. 어제 신문을 오늘 오후에 읽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듯이 내일 신문을 오늘 아침에 읽었어.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늦은 저녁상을 차릴 거야. 식탁 위에 물 글씨를 쓰는데, 이곳은 너무 깊어 아직도 바닥에 닿질 않는구나. 그래도 우리는[…]

이장욱, 「두번째 강물」
/ 2020-10-22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중에서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배달하며       이근화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김경후 시인의 근사한 이야기를 먼저 마주하게 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벼를 재배해 밥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 볍씨를 발아 시켜 모종을 심고 이삭을 패서 낟알을 거둔 이야기. 그리하여 한 줌의 쌀을 얻었다는 시인. 이래서 시인은 괜히 시인이 아닌가 봅니다. 이근화 시인도 그런 동료 시인에게 존경과 감탄을 보내고 있죠. 하지만 저에겐 이근화 시인 또한 만만치 않은 공력을 가진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김경후 시인이 아파트에서 벼를 재배하듯, 이근화 시인은 아파트에서 고만고만한 아이 네 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는[…]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중에서
/ 2020-10-15
김경후, 「입술」

      김경후 ┃「입술」을 배달하며       나는 하지 않은 말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내가 한 말의 괴로움에 더 자주 시달린다. 정확하게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 놓이는 상황과 관계를 두루 헤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은 관계이므로, 말을 헤아리는 것은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면 말은 줄어든다. 제 내면의 동굴 속으로 아주 깊어진다면 면벽 수행(面壁修行) 중인 수도승의 것과 같은 마른 입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를 향해 깊어지고 깊어진다면, 그 “입술은 온몸의 피가 몰린 절벽”, “백만겹 주름진 절벽”과 같을 것이다. 아름다운 입술이다. 하지 못한 말의 괴로움이 극한에서 도달한 절경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다. 그러나[…]

김경후, 「입술」
/ 2020-10-08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을 배달하며       시인 백석의 이야기입니다. 백석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기행’이지요. 북쪽으로 넘어간 뒤 소식이 끊긴 시인의 사정을 작가 김연수가 눈물겹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놓은 소설이 바로 『일곱 해의 마지막』입니다. 소설가는 직관적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구분하는 친구들이죠. 저는 대부분 전자의 경우만 소설로 풀어내는데, 거기에는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이 게으르기 때문이죠. 쓸 수 없는 이야기란 쓸 수 없는 몸과 마음이란 뜻. 쓸 수 없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자료를 모으고 좌절하고 다시 쓰고, 그러다가[…]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2020-09-24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을 배달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별할 수 없는 시간. 모든 것의 실루엣이 흐려지고 뭉개지는 시간. 그래서 개이기도 하고 늑대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그 모든 것이 되는 시간. 어두워지는 순간은 그런 시간이지. 그리고 저물녘 노을의 아름다운 회오리를 보고 있으면, 여기 한 시인과 같이 우리도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이 들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시간이 버무려지는 ‘순간’. ‘영원성’이 현현하는 ‘순간’. 그러므로 늑대처럼 오래 우는 저 한 마리 개는 “다른[…]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 2020-09-17
서수진, 『코리안 티처』 중에서

      서수진 『코리안 티처』를 배달하며       한국어의 시제 표현도 다른 언어와 유사하게 엄연히 과거와 현재, 미래의 3시제가 존재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과거’와 ‘비과거’, 두 가지 시제밖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미래란 그저 ‘추측’과 ‘의지’뿐이라는 것. 그것도 언제나 틀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좀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또 한편 우리에게 ‘미래’라는 존재를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줍니다. 말인즉슨 ‘추측’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는 다가온다는 것. 우리의 ‘추측’과 ‘의지’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

서수진, 『코리안 티처』 중에서
/ 202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