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을 배달하며       시인 백석의 이야기입니다. 백석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기행’이지요. 북쪽으로 넘어간 뒤 소식이 끊긴 시인의 사정을 작가 김연수가 눈물겹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놓은 소설이 바로 『일곱 해의 마지막』입니다. 소설가는 직관적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구분하는 친구들이죠. 저는 대부분 전자의 경우만 소설로 풀어내는데, 거기에는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이 게으르기 때문이죠. 쓸 수 없는 이야기란 쓸 수 없는 몸과 마음이란 뜻. 쓸 수 없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자료를 모으고 좌절하고 다시 쓰고, 그러다가[…]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2020-09-24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을 배달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별할 수 없는 시간. 모든 것의 실루엣이 흐려지고 뭉개지는 시간. 그래서 개이기도 하고 늑대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그 모든 것이 되는 시간. 어두워지는 순간은 그런 시간이지. 그리고 저물녘 노을의 아름다운 회오리를 보고 있으면, 여기 한 시인과 같이 우리도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이 들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시간이 버무려지는 ‘순간’. ‘영원성’이 현현하는 ‘순간’. 그러므로 늑대처럼 오래 우는 저 한 마리 개는 “다른[…]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 2020-09-17
서수진, 『코리안 티처』 중에서

      서수진 『코리안 티처』를 배달하며       한국어의 시제 표현도 다른 언어와 유사하게 엄연히 과거와 현재, 미래의 3시제가 존재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과거’와 ‘비과거’, 두 가지 시제밖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미래란 그저 ‘추측’과 ‘의지’뿐이라는 것. 그것도 언제나 틀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좀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또 한편 우리에게 ‘미래’라는 존재를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줍니다. 말인즉슨 ‘추측’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는 다가온다는 것. 우리의 ‘추측’과 ‘의지’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

서수진, 『코리안 티처』 중에서
/ 2020-09-10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배달하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2003년 6월과 7월에 지구에서 발사되어 2004년 1월 3일, 2004년 1월 25일에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이 붙여진 붉은 행성에 착륙한 화성탐사 로봇의 애칭이었다. 각각 화성의 정반대편에 떨어진 이들 쌍둥이 로봇은 그 황량한 행성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지구에서 이들을 우주로 떠나보내면서 예상했던 수명은 단 90일이었지만, 스피릿은 2010년 화성의 혹독한 겨울에 동면에 들어갔다가 깨어나지 못했고, 오퍼튜니티는 2018년 5월 말 대기의 태양빛을 가렸던 엄청난 모래 폭풍 속에서 영원한 잠에 빠졌다. 그 길고 고독한 시간 동안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화성의 데이터들에서[…]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 2020-09-03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정용준의『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배달하며       말더듬 때문에 고통 받고 상처받은 중학생이 사람들 많이 지나다니는 대로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말더듬 교정을 위해 다니고 있는 스피링 언어 교정원의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죠. 응원해주는 동료 수강생도 있고, 또 연습도 많이 했지만 쉽게 말이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속엣말은 많은데, 그래서 공책엔 그렇게 많은 말을 쏟아냈는데, 정작 사람 앞에만 서면 말은 단단한 돌덩이가 되어 부스러기만 간신히 흘러나올 뿐입니다. 말이란 결국 소통이죠. 우리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아도 잘 되는 척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소통을 믿을 수[…]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 2020-08-27
신용목, 「공동체」

      신용목 ┃「공동체」를 배달하며       이 시의 ‘나’는 공동묘지가 되려는 것 같습니다. 공동묘지가 ‘나’를 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슴에 묻어야 하는 죽은 자가 생기나니, 그리고 마침내는 저 자신의 죽음에 묻히나니, 인간 존재는 본래 묘지의 속성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죽음을 의식(意識)하고 의식(儀式)함으로써 인간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공동묘지를 가져서 공동체입니다. ‘나’는 공동묘지처럼 죽은 자들의 이름을 부르려고 합니다. 그 마음의 연결에서 죽은 자들의 이름이 또한 내 이름이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밤이 일찍 찾아오는 북구의 어느 도시에서 눈이 내리는 11월의 공원묘지를 하염없이[…]

신용목, 「공동체」
/ 2020-08-20
강화길, 「가원」 중에서

      강화길의 「가원」을 배달하며       여기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손녀를 키운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력하다 못해 사기도 당하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우는 일 정도죠. 그래서 할머니는 독하게 손녀를 키웁니다. 밥값 하라는 말도 자주하고 구구단을 못 외우면 손목을 때리기도 합니다. 자연 손녀는 그런 할머니보다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함께 만화책도 보고 콘칩도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다 큰 손녀는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왜 나에게 그토록 냉정했는가? 할아버지는 왜 나에게 다정할 수 있었는가? 내버려둔다는 말이 참 비정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또 그만큼 가족 안의 사랑과 미움은 영원히 끝나지[…]

강화길, 「가원」 중에서
/ 2020-08-13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을 배달하며       오늘은 말(馬)과 말(言)이 같은 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말과 말은 다만 소리만 같은 걸까. 우리가 말과 말의 사용법으로 말을 때리는 것밖에 모른다면, 그리고 경쟁적으로 누가누가 더 세게 때리는지에만 온통 정신이 쏠려 있다면, 말과 말은 지치고 상하고 미치고 흉포해진다. 우리가 말과 말의 세기와 속도에 취해 말과 말의 비명소리에 둔감해지고 무감해진다면, 말과 말은 멈춤을 뺏기고 잠을 뺏기고 꿈을 다 잃어버린다. 인간은 말과 말의 영육(靈肉)을 착취하면서 저 자신의 몸을 소진하고 영혼을 고갈시킨다. 인간은 말과 말을 주인처럼 때리면서 말과 말의 원한을 생산하고 말과[…]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 2020-08-06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배달하며       소설은 뭐니뭐니해도 캐릭터가 끌고 나가는 이야기죠. 캐릭터란 무엇일까요? 성격일 수도 있고,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냥 인물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도 아마 거기에서 기인한 정의일 것입니다. 여기 고시원에서 살다가 이모의 뜨개방을 봐주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미주가 있습니다. 예전 밴드를 하다가 망한 적이 있고, 지금은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 인물은 그러거나 말거나 명랑하기 그지없습니다. 한치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칠게볶음을 먹으면서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2020-07-30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를 배달하며       한 그루 나무 그늘 밑에는 평상이 놓여 있고, 오가는 길에 뙤약볕을 피해 퍼질러 앉은 동네 사람들은 부채를 부치며 흐르는 시간을 잊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불러 세우기도 했다. “집에 가니?” 집으로 가는 길을 빤히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마을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만, 전생처럼 그런 마을은 떠나온 고향의 풍경 같다. 그곳에서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갔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갔고,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소포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간 날도 있었어. 그런 시간은[…]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 2020-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