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 중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을 배달하며       그럴 때 있지 않나요. 마음이 언짢고 잔뜩 꼬여서 세상이 볼품 없어 보일 때요. 신디는 병을 앓으면서 부쩍 그렇게 됐습니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러자니 외롭고, 남편이 구두쇠여서 자주 짜증이 나고, 친구들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리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그저 경황이 없을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간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에 취해 다른 사람의 사정을 미처 헤아리지 않았던 거죠.     무엇보다 올리브와 신디가 함께 바라본 2월의 햇빛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2월이 어중간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 중에서
/ 2021-07-22
김행숙, 「입맞춤-사춘기2」

      김행숙, 「입맞춤-사춘기2」를 배달하며       작품에 등장하는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저는 이 복도를 걸어본 적도 또한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 같은 복도가 어떤 복도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별 생각 없이 달려갔다 다시 달려올 수 있는 곳이라면, 이쪽을 저쪽이라 부르고 저쪽을 또 이쪽이라 부를 수 있다면, 웃음과 욕과 맹목이 한데 뒤섞이는 시간이라면, 이 시간이 깃드는 장소라면. 이들은 모두 선일여자고등학교 2층 복도를 닮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이 수록된 김행숙 시인의 시집 『사춘기』의 뒷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 “무조건 달리고 또 달릴 거야. 다만 멀어지기 위해.[…]

김행숙, 「입맞춤-사춘기2」
/ 2021-07-15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지금 이 사람들은 뭘 하는 걸까요. 느닷없이 파이팅을 외치더니 ‘프로틴’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프로틴은 민이 어머니나 춘희 아버지, 원장님 같이 이 자리에는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분노를 퍼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자코 듣고 나더니 프로틴이 화를 낸 방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합평을 해줍니다.     ‘까마귀 클럽’은 ‘화를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들을 ‘노력형 분노자’로 만들어주는 모임입니다. 말하자면 화내는 연습을 하러 모인 사람들이에요. 굳이 연습해서 화를 내야 할 만큼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 2021-07-08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을 배달하며       얼마 전 처음으로 오이꽃을 보았습니다. 아, 오이도 꽃이 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의 무지와 무심에 웃음이 났습니다. 오이꽃은 늘 오이꽃처럼 피어왔던 것이니까요. 상치꽃이 ‘상치 대궁만큼’ 웃고 아욱꽃이 ‘아욱 대궁만큼’ 웃듯이 우리도 우리가 웃을 수 있을 만큼 웃고 사는 듯합니다.       다만 이 시를 쓴 박용래 시인은 사람으로 태어나 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울었던 이였습니다. 생전 시인과 가까웠던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 울지 않던 그를 본 것이 두 번밖에 되지 않았다고 회고할 만큼. 그는 갸륵한 것과 소박한 것과 조촐한 것과[…]

박용래, 「상치꽃 아욱꽃」
/ 2021-07-01
박온유, 〈유원〉 중에서

      백온유 〈유원〉을 배달하며       사람들은 유원을 ‘이불 아기’ 혹은 ‘생존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불에 싸인 채 떨어지다가 한 아저씨가 구해줘서 기적처럼 살아났거든요. 그 후 유원은 자신을 구해준 아저씨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아저씨가 자신을 구하다 몸을 다쳤고, 그로 인해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죄책감과 미안함을 참기 힘들지만, 아저씨에게 실망하는 마음도 쌓이지요. 무거움에 짓눌려 있던 유원은 친구 수현을 만나 마음을 터놓으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의 무게도 짐작해보게 됩니다.       친구란 그런 사람인가 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함께 할 일을 상상하면 웃게 되고, 삶의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박온유, 〈유원〉 중에서
/ 2021-06-24
박형서, 「실뜨기놀이」 중에서

    박형서 「실뜨기놀이」를 배달하며       가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소설을 있습니다. 제겐 박형서의 많은 소설이 그런 경우인데요, 이번엔 국내 최초로 달라이라마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의정부 가능동에 살고 있던 어린 아들 성범수가 만약 환생한 16대 달라이라마라면? 그래서 그 아이를 티베트로 보내야 한다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또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나면 부모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언젠가 박형서 작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야 하고, 말이 되어야 하고, 의미심장해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환생한 달라이라마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렇게 믿을 만하게, 또 마지막엔 이다지도 가슴 먹먹하게 쓴 것을 보니 자신의 말에 책임을[…]

박형서, 「실뜨기놀이」 중에서
/ 2020-12-24
황인찬 , 「법원」

      황인찬 ┃「법원」을 배달하며       할머니의 세월을 생각해본다. 아침마다 양동이에 쥐덫을 빠뜨리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할머니. 죄를 지으면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언덕 위의 법원을 가리키던 할머니. 일상의 잔혹에는 무감각하고 권력의 상징에는 공포심을 내면화한 영혼, 그것은 근대사와 현대사가 훈육하고 길들인 우리의 영혼이다. 그러나 쉿, 법원이라는 이름의 상징 권력에 포획되면, 물에 빠진 쥐처럼 버둥거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런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던 세월이 있었다. 근대사의 유령 같은 그 세월의 그늘 속에서 우리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의 정세 속에서 다시 베스트셀러로 회귀한 까뮈의[…]

황인찬 , 「법원」
/ 2020-12-17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중에서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를 배달하며       전염병과 함께 한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변했지만, 계층에 따라 자리에 따라 그 체감이 다르게 다가온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 2020년 2월, 처음으로 ‘새경프라자 304호’에 월세 계약을 하고 자영업을 시작한 한 여성이 있습니다. ‘나리공방’ 천연 비누와 캔들을 직접 만들고 제작하는 공방이지요. 마음 단단히 먹고 공방을 시작했는데, 바로 그 무렵 감염병 위기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된 것이죠.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히 자영업의 어려움이나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소설의 결을 쭉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어려움과 위기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중에서
/ 20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