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중에서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배달하며       이근화 시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김경후 시인의 근사한 이야기를 먼저 마주하게 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벼를 재배해 밥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 볍씨를 발아 시켜 모종을 심고 이삭을 패서 낟알을 거둔 이야기. 그리하여 한 줌의 쌀을 얻었다는 시인. 이래서 시인은 괜히 시인이 아닌가 봅니다. 이근화 시인도 그런 동료 시인에게 존경과 감탄을 보내고 있죠. 하지만 저에겐 이근화 시인 또한 만만치 않은 공력을 가진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김경후 시인이 아파트에서 벼를 재배하듯, 이근화 시인은 아파트에서 고만고만한 아이 네 명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면지에 그림을 그리는[…]

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중에서
/ 2020-10-15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을 배달하며       시인 백석의 이야기입니다. 백석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기행’이지요. 북쪽으로 넘어간 뒤 소식이 끊긴 시인의 사정을 작가 김연수가 눈물겹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놓은 소설이 바로 『일곱 해의 마지막』입니다. 소설가는 직관적으로 자신이 쓸 수 있는 이야기와 쓸 수 없는 이야기를 구분하는 친구들이죠. 저는 대부분 전자의 경우만 소설로 풀어내는데, 거기에는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이 게으르기 때문이죠. 쓸 수 없는 이야기란 쓸 수 없는 몸과 마음이란 뜻. 쓸 수 없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자료를 모으고 좌절하고 다시 쓰고, 그러다가[…]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 2020-09-24
서수진, 『코리안 티처』 중에서

      서수진 『코리안 티처』를 배달하며       한국어의 시제 표현도 다른 언어와 유사하게 엄연히 과거와 현재, 미래의 3시제가 존재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과거’와 ‘비과거’, 두 가지 시제밖에 없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미래란 그저 ‘추측’과 ‘의지’뿐이라는 것. 그것도 언제나 틀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좀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다가오지만, 또 한편 우리에게 ‘미래’라는 존재를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용기를 가르쳐줍니다. 말인즉슨 ‘추측’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는 다가온다는 것. 우리의 ‘추측’과 ‘의지’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

서수진, 『코리안 티처』 중에서
/ 2020-09-10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정용준의『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배달하며       말더듬 때문에 고통 받고 상처받은 중학생이 사람들 많이 지나다니는 대로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말더듬 교정을 위해 다니고 있는 스피링 언어 교정원의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죠. 응원해주는 동료 수강생도 있고, 또 연습도 많이 했지만 쉽게 말이 튀어나오진 않습니다. 속엣말은 많은데, 그래서 공책엔 그렇게 많은 말을 쏟아냈는데, 정작 사람 앞에만 서면 말은 단단한 돌덩이가 되어 부스러기만 간신히 흘러나올 뿐입니다. 말이란 결국 소통이죠. 우리는 소통이 잘 되지 않아도 잘 되는 척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소통을 믿을 수[…]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중에서
/ 2020-08-27
강화길, 「가원」 중에서

      강화길의 「가원」을 배달하며       여기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손녀를 키운 외할머니가 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력하다 못해 사기도 당하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우는 일 정도죠. 그래서 할머니는 독하게 손녀를 키웁니다. 밥값 하라는 말도 자주하고 구구단을 못 외우면 손목을 때리기도 합니다. 자연 손녀는 그런 할머니보다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함께 만화책도 보고 콘칩도 먹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다 큰 손녀는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왜 나에게 그토록 냉정했는가? 할아버지는 왜 나에게 다정할 수 있었는가? 내버려둔다는 말이 참 비정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또 그만큼 가족 안의 사랑과 미움은 영원히 끝나지[…]

강화길, 「가원」 중에서
/ 2020-08-13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배달하며       소설은 뭐니뭐니해도 캐릭터가 끌고 나가는 이야기죠. 캐릭터란 무엇일까요? 성격일 수도 있고,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냥 인물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도 아마 거기에서 기인한 정의일 것입니다. 여기 고시원에서 살다가 이모의 뜨개방을 봐주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미주가 있습니다. 예전 밴드를 하다가 망한 적이 있고, 지금은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 인물은 그러거나 말거나 명랑하기 그지없습니다. 한치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칠게볶음을 먹으면서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2020-07-30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중에서

      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를 배달하며       한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겠죠. 우리에게 이름이 있고, 얼굴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람만의 장소, 자리가 필요하겠죠. 지친 등을 쉬게 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잠시라도 숨길 수 있는 공간. 오랜 세월, 우리에게 방이나 집이 중요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경비원만 해도 그렇죠. 우리의 공간을 지켜주고 있는 그들이, 실제로는 제대로 된 자리에서[…]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중에서
/ 2020-07-16
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에서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을 배달하며       작가 김봉곤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일부분만 배달할 수 있나? 그냥 가구 배달원처럼 통째로 배달하면 안 되나? 이게 무슨 수능 모의고사 지문도 아니고, 이 소설을 어떻게 한 장면만 들려주나?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 말이 뻥이 아닌 게 위 지문의 대사를 한번 보세요. 듣기평가 시험 준비하듯 한 번 소리 내서 따라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 대사 다음에 올 혜인의 말 중 가장 적절한 것은? 1번 “말 다 했나?” 2번 “니 꼬치다 개자슥아”…… 작가 김봉곤은 누구보다 유머를 잘 아는[…]

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에서
/ 2020-06-18
루시아 벌린, 「안녕」 중에서

      루시아 벌린의 「안녕」을 배달하며       여기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생을 간호하고 있는 한 언니가 있습니다. 침대 옆에서 언니는 대화를 계속 시도하려고 하지만 여동생은 허파의 통증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죠.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언니는 자신의 삶을 바라봅니다. 언니가 동생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죠. 그래서 그런지 문장과 문장 사이 침묵과 여백이 꽤 크고 깊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많은 것을 생각할 것 같지만, 루시아 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작은 것들,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들, 용서보다는 원망을, 후회보다는 인정을, 그리고 소소한 일화들. 어쩌면[…]

루시아 벌린, 「안녕」 중에서
/ 2020-06-04
장류진, 「탐페레 공항」 중에서

      장류진의 「탐페레 공항」을 배달하며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공항은 종종 찾아가곤 합니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무안국제공항이 있는데, 거기 일층 국제선 입국장 출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전광판에 뜨는 항공 스케줄을 멀거니 바라보는 것, 그게 제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무안국제공항은 아무런 비행기도 뜨지 않고, 그 누구도 도착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엊그제도 그쪽으로 가보았는데, 6월까지는 아무런 운행 스케줄도 잡혀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없는 공항은 마치 물길이 끊긴 항구 같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드라마도 없는 법. 공항이라는 장소는 정말이지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장류진, 「탐페레 공항」 중에서
/ 2020-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