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배달하며       소설은 뭐니뭐니해도 캐릭터가 끌고 나가는 이야기죠. 캐릭터란 무엇일까요? 성격일 수도 있고,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냥 인물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도 아마 거기에서 기인한 정의일 것입니다. 여기 고시원에서 살다가 이모의 뜨개방을 봐주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미주가 있습니다. 예전 밴드를 하다가 망한 적이 있고, 지금은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 인물은 그러거나 말거나 명랑하기 그지없습니다. 한치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칠게볶음을 먹으면서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2020-07-30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중에서

      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를 배달하며       한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겠죠. 우리에게 이름이 있고, 얼굴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람만의 장소, 자리가 필요하겠죠. 지친 등을 쉬게 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잠시라도 숨길 수 있는 공간. 오랜 세월, 우리에게 방이나 집이 중요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경비원만 해도 그렇죠. 우리의 공간을 지켜주고 있는 그들이, 실제로는 제대로 된 자리에서[…]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중에서
/ 2020-07-16
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에서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을 배달하며       작가 김봉곤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일부분만 배달할 수 있나? 그냥 가구 배달원처럼 통째로 배달하면 안 되나? 이게 무슨 수능 모의고사 지문도 아니고, 이 소설을 어떻게 한 장면만 들려주나?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 말이 뻥이 아닌 게 위 지문의 대사를 한번 보세요. 듣기평가 시험 준비하듯 한 번 소리 내서 따라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 대사 다음에 올 혜인의 말 중 가장 적절한 것은? 1번 “말 다 했나?” 2번 “니 꼬치다 개자슥아”…… 작가 김봉곤은 누구보다 유머를 잘 아는[…]

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에서
/ 2020-06-18
루시아 벌린, 「안녕」 중에서

      루시아 벌린의 「안녕」을 배달하며       여기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생을 간호하고 있는 한 언니가 있습니다. 침대 옆에서 언니는 대화를 계속 시도하려고 하지만 여동생은 허파의 통증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죠.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언니는 자신의 삶을 바라봅니다. 언니가 동생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죠. 그래서 그런지 문장과 문장 사이 침묵과 여백이 꽤 크고 깊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많은 것을 생각할 것 같지만, 루시아 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작은 것들,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들, 용서보다는 원망을, 후회보다는 인정을, 그리고 소소한 일화들. 어쩌면[…]

루시아 벌린, 「안녕」 중에서
/ 2020-06-04
장류진, 「탐페레 공항」 중에서

      장류진의 「탐페레 공항」을 배달하며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공항은 종종 찾아가곤 합니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무안국제공항이 있는데, 거기 일층 국제선 입국장 출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전광판에 뜨는 항공 스케줄을 멀거니 바라보는 것, 그게 제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무안국제공항은 아무런 비행기도 뜨지 않고, 그 누구도 도착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엊그제도 그쪽으로 가보았는데, 6월까지는 아무런 운행 스케줄도 잡혀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없는 공항은 마치 물길이 끊긴 항구 같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드라마도 없는 법. 공항이라는 장소는 정말이지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장류진, 「탐페레 공항」 중에서
/ 2020-05-21
오은, 「다독이는 안녕」 중에서

      오은의 「다독이는 안녕」을 배달하며       모두 힘든 시기이지만 작은 카페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오는 시절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자가 격리'를 이유로 책을 읽거나 그동안 미처 살피지 못한 자아의 어떤 지점을 돌아보는 것 역시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자아니 마음이니 하는 것들도 다 '밥' 다음에 오는 것이니까요. 이런 때일수록 서로의 말에 대해 더 고민하고 엄격해져야 하겠지요. 그 말을 살피는 것이 시인이고, 그 말을 상황에 적용하는 게 소설가의 일인데, 이런 문장을 쓰는 시인 앞에선 그냥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띄워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올라오는 게[…]

오은, 「다독이는 안녕」 중에서
/ 2020-05-07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중에서

      백수린의 「언제나 해피엔딩」을 배달하며       엔딩은 시간과 관련된 말 같지만 사실은 어떤 감정과 더 잘 어울리는 단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앞에 자꾸 '해피'나 '새드'가 자리 잡는 거겠죠.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 있으면 저 역시 '해피엔딩'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 후 쓱쓱 박 선생이 백팩 속에 물건을 밀어 넣듯 눈앞에 일들을 처리해나갑니다. 봄은 언제나 봄이죠. 봄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만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느껴야죠. 벚꽃도 보고 바람도 맞아야죠. 우리는 이미 이 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짧은소설도 매력 있지요?[…]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중에서
/ 2020-04-23
권여선, 「손톱」 중에서

      권여선의 「손톱」을 배달하며       때론 숫자를 읽는 일도 이렇게 슬플 수 있지요. 스물한 살 소희의 삶은 온통 숫자로 채워져 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있을 때나 늦은 밤 '24시간 짜장 짬뽕'집에 들어갔을 때나 소희는 언제나 계산을 하고 숫자로 상황을 판단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숫자는 정직하게 남는 법. 엄마도, 언니도, 똑같이 빚만 남겨 놓은 채 사라진 소희 앞엔 숫자의 구체성만 오롯이 살아 있습니다. 어쩌자고 작가는 이렇게 아픈 인물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은 걸까요? 힌트는 아마도 '얼어죽을 냉동치료'에 있겠죠. 그냥 '냉동치료' 해도 되는데 작가는 굳이 '얼어죽을'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작가는 너무너무[…]

권여선, 「손톱」 중에서
/ 2020-04-09
새로운 문학집배원(문장배달)을 소개합니다.

  문장배달 – 소설가 이기호       옛날, 시골 할머니 집에서 살 때의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찾아오던 집배원 아저씨가 있었는데, 이분은 읍내 터미널 옆 약국 건물 이층에 세 들어 사는 이십 대 후반의 솔로이기도 했다. 집배원 아저씨는 할머니 집에 들어서면 항상 자전거를 마당 한가운데 삐딱하게 세워두고 마치 제집인 양 신발을 벗고 툇마루로 올라왔다. 그러곤 할머니와 마주 앉아 군대 간 막냇삼촌이 보내온 편지를 쭉 찢어 소리 내어 읽어주곤 했다(할머니는 까막눈이었으니까). 막냇삼촌이 보낸 편지는 대부분 '아아, 그리운 어머님께'로 시작되곤 했는데(나중에 내가 다시 읽어보니 '아아' 같은 말은 없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훌쩍훌쩍[…]

새로운 문학집배원(문장배달)을 소개합니다.
/ 2020-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