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원, 「불펜의 시간」 중에서

    김유원 ┃「불펜의 시간」을 배달하며       야구를 잘 모르지만 친구를 따라 야구장에 가본 적 있습니다. 응원하는 무리에 섞여 타자가 친 공이 떠오르는 걸 지켜보노라니, 야구는 공이 그리는 아름다운 포물선을 보기 위한 경기가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파울볼이나 뜬공을 보는 것도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야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어서 해본 생각이겠지요. 프로 스포츠니까 당연히 야구는 승부를 내야만 합니다. 이긴 팀이 있으면 지는 팀이 있고, 동점이 되면 연장전에 돌입해서라도 승패를 결정 짓습니다. 당황스럽게도 주인공 혁오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피하고자 일부러 볼넷을 던져왔습니다. 남들은 선발투수가 되고 싶어하지만 혁오는[…]

김유원, 「불펜의 시간」 중에서
/ 2021-10-14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중에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를 배달하며       이 작품은 원제인 'Time and again'을 ‘번번이’라고 번역해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번번이’는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될 때 사용하는 부사입니다. 빈도를 나타내는 말이면 ‘여러 번’도 있고 ‘매번’이나 '몇 번이고'도 있는데, 어째서 ‘번번이’를 제목으로 삼았을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를 참고하면 이 말에는 '약속을 번번이 어기다'나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와 같이 어떤 일의 실패가 되풀이된다는 뉘앙스가 담긴 듯 합니다. 여러 부사 중에서 어째서 ‘번번이'를 제목으로 삼았을지 작품을 읽으면서 짐작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좋은 소설은 여러 말의 뉘앙스 차이를 발견하게 해주니까요.     이 소설에는 연쇄살인범이 나옵니다.[…]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중에서
/ 2021-09-30
최유안, 「보통 맛」 중에서

      최유안 「보통 맛」을 배달하며       누군가의 후배일 때, 우리는 자주 ‘그런 선배’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치졸하게 굴고 쉽게 잔소리하고 싫은 말을 참지 않는 사람이 대개는 ‘그런 선배’가 되지요. 하지만 일단 선배가 되고 나면 속 좁게 굴기는 너무 쉽습니다. 어느새 후배의 못마땅한 점이 눈에 많이 띄고, 내가 저 나이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자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매사 지적하고 싶은 것이 많아집니다. 그런 마음을 힘겹게 눌러 참거나, 참지 못하고 화를 낸 후에는 한없이 씁쓸해지기 마련입니다. 나 역시 어느새 그저 ‘그런 선배’가 되어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

최유안, 「보통 맛」 중에서
/ 2021-09-16
강태식, 「영원히 빌리의 것」 중에서

      강태식 「영원히 빌리의 것」을 배달하며       어렸을 때 이런 상상을 해보신 적 있을 겁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먼 친척이 세상을 떠나면서 막대한 유산을 남기는 상상이요. 만화나 동화에서 익숙하게 봐온 설정이지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망상에 가깝지만, 인생이 따분하게 여겨지거나 지금의 삶 너머를 꿈꿀 때면 흔히 빠져드는 몽상이기도 합니다.     만약 유산으로 물려받는 게 행성이라면 어떨까요. 어두컴컴한 밤하늘 사진을 한참 들여다봐야만 겨우 존재를 드러내는 행성이 바로 내 것이라면요. 사실 그건 유산이 전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리로 갈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고 현금으로 바꿔 빵을[…]

강태식, 「영원히 빌리의 것」 중에서
/ 2021-09-02
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 중에서

      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를 배달하며       다른 사람의 직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종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얘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먹고 사는’ 일과 관련된 분투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노가다’라고 부르는 건설업 종사자가 쓴 건설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하는 것부터 인력 사무소 소장에게 떼어주는 수수료, 건설 현장의 각종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실제로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들 기술을 배우라고 하는 건설 현장에서, 그 중에서도 돈[…]

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 중에서
/ 2021-08-19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을 배달하며       다정하고 따뜻했던 마음은 언제 흐트러질까요. 어떤 관계든 몹시 허기지고 추운 날을 맞게 되기 마련입니다. 사이가 괜찮았을 때는 눈썰매를 타는 것처럼 붕 떠올랐던 마음이 어느 순간 아득하게 아래로 꺼져 버리죠. 그럴 때면 상대가 미워진 나머지 모든 걸 상대 탓으로 돌리고 싶어집니다.     마음이 식고 나서야,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관계가 나빠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 줄 아느냐고 질문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인 줄 몰랐던 것처럼요. 마음이 두터울 때는 서로 다른 게 미덕이 되지만 마음이 희박해지면 어느 것도 참을 수 없어집니다.     “우린[…]

정한아,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 2021-08-05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 중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을 배달하며       그럴 때 있지 않나요. 마음이 언짢고 잔뜩 꼬여서 세상이 볼품 없어 보일 때요. 신디는 병을 앓으면서 부쩍 그렇게 됐습니다. 이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러자니 외롭고, 남편이 구두쇠여서 자주 짜증이 나고, 친구들이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리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그저 경황이 없을 뿐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간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에 취해 다른 사람의 사정을 미처 헤아리지 않았던 거죠.     무엇보다 올리브와 신디가 함께 바라본 2월의 햇빛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2월이 어중간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햇빛」 중에서
/ 2021-07-22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지금 이 사람들은 뭘 하는 걸까요. 느닷없이 파이팅을 외치더니 ‘프로틴’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프로틴은 민이 어머니나 춘희 아버지, 원장님 같이 이 자리에는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한바탕 분노를 퍼붓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잠자코 듣고 나더니 프로틴이 화를 낸 방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합평을 해줍니다.     ‘까마귀 클럽’은 ‘화를 못 내는 사람, 억울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들을 ‘노력형 분노자’로 만들어주는 모임입니다. 말하자면 화내는 연습을 하러 모인 사람들이에요. 굳이 연습해서 화를 내야 할 만큼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못하는 순하디 순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이원석, 「까마귀 클럽」 중에서
/ 2021-07-08
박온유, 〈유원〉 중에서

      백온유 〈유원〉을 배달하며       사람들은 유원을 ‘이불 아기’ 혹은 ‘생존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이불에 싸인 채 떨어지다가 한 아저씨가 구해줘서 기적처럼 살아났거든요. 그 후 유원은 자신을 구해준 아저씨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아저씨가 자신을 구하다 몸을 다쳤고, 그로 인해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면 죄책감과 미안함을 참기 힘들지만, 아저씨에게 실망하는 마음도 쌓이지요. 무거움에 짓눌려 있던 유원은 친구 수현을 만나 마음을 터놓으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의 무게도 짐작해보게 됩니다.       친구란 그런 사람인가 봅니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함께 할 일을 상상하면 웃게 되고, 삶의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박온유, 〈유원〉 중에서
/ 2021-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