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을 배달하며       오늘은 말(馬)과 말(言)이 같은 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말과 말은 다만 소리만 같은 걸까. 우리가 말과 말의 사용법으로 말을 때리는 것밖에 모른다면, 그리고 경쟁적으로 누가누가 더 세게 때리는지에만 온통 정신이 쏠려 있다면, 말과 말은 지치고 상하고 미치고 흉포해진다. 우리가 말과 말의 세기와 속도에 취해 말과 말의 비명소리에 둔감해지고 무감해진다면, 말과 말은 멈춤을 뺏기고 잠을 뺏기고 꿈을 다 잃어버린다. 인간은 말과 말의 영육(靈肉)을 착취하면서 저 자신의 몸을 소진하고 영혼을 고갈시킨다. 인간은 말과 말을 주인처럼 때리면서 말과 말의 원한을 생산하고 말과[…]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 2020-08-06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송지현의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배달하며       소설은 뭐니뭐니해도 캐릭터가 끌고 나가는 이야기죠. 캐릭터란 무엇일까요? 성격일 수도 있고, 태도일 수도 있지만, 그냥 인물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성격이 곧 운명이라는 말도 아마 거기에서 기인한 정의일 것입니다. 여기 고시원에서 살다가 이모의 뜨개방을 봐주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온 미주가 있습니다. 예전 밴드를 하다가 망한 적이 있고, 지금은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인물이지요. 하지만 이 인물은 그러거나 말거나 명랑하기 그지없습니다. 한치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칠게볶음을 먹으면서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중에서
/ 2020-07-30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를 배달하며       한 그루 나무 그늘 밑에는 평상이 놓여 있고, 오가는 길에 뙤약볕을 피해 퍼질러 앉은 동네 사람들은 부채를 부치며 흐르는 시간을 잊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불러 세우기도 했다. “집에 가니?” 집으로 가는 길을 빤히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마을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만, 전생처럼 그런 마을은 떠나온 고향의 풍경 같다. 그곳에서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갔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갔고,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소포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간 날도 있었어. 그런 시간은[…]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 2020-07-23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중에서

      조정진의 「임계장 이야기」를 배달하며       한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겠죠. 우리에게 이름이 있고, 얼굴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사람만의 장소, 자리가 필요하겠죠. 지친 등을 쉬게 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잠시라도 숨길 수 있는 공간. 오랜 세월, 우리에게 방이나 집이 중요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 자기만의 공간, 자기만의 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경비원만 해도 그렇죠. 우리의 공간을 지켜주고 있는 그들이, 실제로는 제대로 된 자리에서[…]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중에서
/ 2020-07-16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을 배달하며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을 꼭 쥐고서 “우리의 행운”과 “모든 운수”를 지키는 수호자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소년, 동네 슈퍼를 나와서 다시 한 번 손바닥을 열어보며 뿌듯해하는 이 소년의 기분을 아마 당신도 맛본 적 있을 거예요. 뭔가를 꼭 쥐면 소중해지고 간절해지는 마음까지 만져지잖아요. 지구 반대편에서 글을 썼던 보르헤스 씨의 문장을 소년과 함께 나눠 읽어도 좋겠어요. “아마도 나는 쉬지 않고 자히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것이 닳아 없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동전 뒤에서 하느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보르헤스, 송병선 역, 「자히르」, 『알레프』, 민음사, 2012).[…]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
/ 2020-07-09
안희연, 「백색 공간」

      안희연 ┃「백색 공간」을 배달하며       흰 종이에 글을 쓴다. 이를테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쓴다. 그렇게 쓰면, “눈앞에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글쓰기의 백색공간에서는 내게 말을 걸고, 항의를 하고, 가시권 밖으로, 이 세계의 극지로 떠나는 사람이 태어난다. 그 사람은 유리창 안쪽에 물러나 있는 나를 깨뜨려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내가 그를 썼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나를 쓴다. 나는 그를 더 많이 더 깊이 읽어야 하는데, 자칫 그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     시는 백색공간을 자기 말로 점령하지 않는다. 시의 언어는 백색공간에 내려앉으면서 또[…]

안희연, 「백색 공간」
/ 2020-06-25
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에서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을 배달하며       작가 김봉곤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일부분만 배달할 수 있나? 그냥 가구 배달원처럼 통째로 배달하면 안 되나? 이게 무슨 수능 모의고사 지문도 아니고, 이 소설을 어떻게 한 장면만 들려주나? 난감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제 말이 뻥이 아닌 게 위 지문의 대사를 한번 보세요. 듣기평가 시험 준비하듯 한 번 소리 내서 따라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위 대사 다음에 올 혜인의 말 중 가장 적절한 것은? 1번 “말 다 했나?” 2번 “니 꼬치다 개자슥아”…… 작가 김봉곤은 누구보다 유머를 잘 아는[…]

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에서
/ 2020-06-18
심보선, 「‘나’라는 말」

      심보선 ┃「‘나’라는 말」을 배달하며       나르키소스가 사로잡힌 사랑은 저주받은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해서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년은 끝내 사랑이 아니라 거울에 빠져 죽고 맙니다. ‘나’라는 말은 당신이라는 타자에게 가기 위한 말입니다. ‘나’라는 말은 나의 지평선을 찢고 당신이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꺼내놓는 말입니다. ‘나’라는 말이 어떻게 당신에게 가닿았을까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너’로 돌아오는 ‘나’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나’입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니라 당신이 보내는 선물처럼 배달된 ‘나’입니다. 이 세계에 당신이 있어서, 나는 ‘나’라는[…]

심보선, 「‘나’라는 말」
/ 2020-06-11
루시아 벌린, 「안녕」 중에서

      루시아 벌린의 「안녕」을 배달하며       여기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동생을 간호하고 있는 한 언니가 있습니다. 침대 옆에서 언니는 대화를 계속 시도하려고 하지만 여동생은 허파의 통증 때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죠. 그 침묵의 시간 속에서 언니는 자신의 삶을 바라봅니다. 언니가 동생의 현재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죠. 그래서 그런지 문장과 문장 사이 침묵과 여백이 꽤 크고 깊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많은 것을 생각할 것 같지만, 루시아 벌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작은 것들, 무심히 스쳐 지나간 것들, 용서보다는 원망을, 후회보다는 인정을, 그리고 소소한 일화들. 어쩌면[…]

루시아 벌린, 「안녕」 중에서
/ 2020-06-04
이원, 「서울의 밤 그리고 주유소」

      이원 ┃「서울의 밤 그리고 주유소」를 배달하며       그래, 이 시였다. 그로테스크하고 황량한 사막 같은 세계를 가로질러 "우리는 언제나 조금 더 길을 가야 한다"라는 문장이 내게 도착했다. 내가 절망과 무기력에 빠져있을 때, 이 문장이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와 일으켜주었다. 이 시가 발음하는 "우리"라는 말, "언제나"라는 말, "조금 더"라는 말은 어둠 바깥에서 내미는 부드러운 손 같은 환영이 아니었다. 세계의 악몽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어떤 전망도 내비치지 않았다. 희망 없이 가자고 했다. 다만 걸을 힘이 남아 있으니 순수하게 근육을 써서 조금 더 걸어가자는 것이었다. 이 문장을 중얼거리면 뭔가가[…]

이원, 「서울의 밤 그리고 주유소」
/ 2020-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