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탐페레 공항」 중에서

      장류진의 「탐페레 공항」을 배달하며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공항은 종종 찾아가곤 합니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무안국제공항이 있는데, 거기 일층 국제선 입국장 출구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전광판에 뜨는 항공 스케줄을 멀거니 바라보는 것, 그게 제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 무안국제공항은 아무런 비행기도 뜨지 않고, 그 누구도 도착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엊그제도 그쪽으로 가보았는데, 6월까지는 아무런 운행 스케줄도 잡혀 있지 않다고 하더군요. 사람이 없는 공항은 마치 물길이 끊긴 항구 같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드라마도 없는 법. 공항이라는 장소는 정말이지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장류진, 「탐페레 공항」 중에서
/ 2020-05-21
주민현, 「스노볼」

      주민현 ┃「스노볼」을 배달하며       우리는 "겨울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겨울, 을 하나씩 갖게 되고", 봄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봄을, 여름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하나씩 갖게 되지. 사람의 마음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고이는 곳이야. 시간의 깊이가 그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 스노볼을 흔들면 그 겨울의 눈송이들처럼 "한낱 조각난 종이"들이 떠올라 반짝이고, 우리는 그걸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지"(「블루스의 리듬」). 그러면 마음 어딘가가 환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해.[…]

주민현, 「스노볼」
/ 2020-05-14
오은, 「다독이는 안녕」 중에서

      오은의 「다독이는 안녕」을 배달하며       모두 힘든 시기이지만 작은 카페나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더 크게 눈에 들어오는 시절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자가 격리'를 이유로 책을 읽거나 그동안 미처 살피지 못한 자아의 어떤 지점을 돌아보는 것 역시 사치일지도 모릅니다. 자아니 마음이니 하는 것들도 다 '밥' 다음에 오는 것이니까요. 이런 때일수록 서로의 말에 대해 더 고민하고 엄격해져야 하겠지요. 그 말을 살피는 것이 시인이고, 그 말을 상황에 적용하는 게 소설가의 일인데, 이런 문장을 쓰는 시인 앞에선 그냥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띄워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올라오는 게[…]

오은, 「다독이는 안녕」 중에서
/ 2020-05-07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를 배달하며       "네가 황급히 떨어뜨린 슬리퍼 한 짝"을 주웠네. 네가 흘린 신발을 가슴에 껴안고, 나는 네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그리 급히 달려가는지 떠올려본다네. 너의 낡은 신발 한 짝에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붉은 흙덩이처럼 달라붙어 있어. 그래도 신발은 늘 말없이 신비롭고 낯선 지도를 품고 있었다네. 나는 무한히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신발장수, "원인을 찾으러 오지 않고 원인을 만들러 온 자". 내가 모으는 것은 신발만이 아니야. 나는 재미난 샛길들과 새로운 시간들을 모으고 있지. 나는 매일 똑같은 노래만 들려주는 시계탑에 폭탄을 던지고 새로운 시간의 리듬을 발명할[…]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
/ 2020-04-30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중에서

      백수린의 「언제나 해피엔딩」을 배달하며       엔딩은 시간과 관련된 말 같지만 사실은 어떤 감정과 더 잘 어울리는 단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앞에 자꾸 '해피'나 '새드'가 자리 잡는 거겠죠. 지치고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 있으면 저 역시 '해피엔딩'만 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 후 쓱쓱 박 선생이 백팩 속에 물건을 밀어 넣듯 눈앞에 일들을 처리해나갑니다. 봄은 언제나 봄이죠. 봄은 늘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만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이 느껴야죠. 벚꽃도 보고 바람도 맞아야죠. 우리는 이미 이 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짧은소설도 매력 있지요?[…]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중에서
/ 2020-04-23
송찬호, 「눈사람」

      송찬호 ┃ 「눈사람」을 배달하며       한여름 밤, 열차는 자정을 향해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내 옆자리 창가에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겨울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여름이었는데, 눈사람은 엄혹한 겨울의 감옥에 갇힌 채 어느 계절로도 흘러가지 않았다. 겨울전쟁에서 패하고 그는 생의 그 어떤 변전(變轉) 가능성도 몽땅 몰수당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겨울의 얼얼한 마비상태에서 도무지 깰 수가 없다. 그는 겨우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겨울의 악몽을 깨워 한여름 밤의 현재로 그를 옮겨놓으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존재의 형상마저 세계의 커다란 입에 삼켜져 용해되어버릴 것만 같다. 우리는[…]

송찬호, 「눈사람」
/ 2020-04-16
권여선, 「손톱」 중에서

      권여선의 「손톱」을 배달하며       때론 숫자를 읽는 일도 이렇게 슬플 수 있지요. 스물한 살 소희의 삶은 온통 숫자로 채워져 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고 있을 때나 늦은 밤 '24시간 짜장 짬뽕'집에 들어갔을 때나 소희는 언제나 계산을 하고 숫자로 상황을 판단합니다. 사람은 떠나도 숫자는 정직하게 남는 법. 엄마도, 언니도, 똑같이 빚만 남겨 놓은 채 사라진 소희 앞엔 숫자의 구체성만 오롯이 살아 있습니다. 어쩌자고 작가는 이렇게 아픈 인물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은 걸까요? 힌트는 아마도 '얼어죽을 냉동치료'에 있겠죠. 그냥 '냉동치료' 해도 되는데 작가는 굳이 '얼어죽을'을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작가는 너무너무[…]

권여선, 「손톱」 중에서
/ 2020-04-09
새로운 문학집배원(문장배달)을 소개합니다.

  문장배달 – 소설가 이기호       옛날, 시골 할머니 집에서 살 때의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찾아오던 집배원 아저씨가 있었는데, 이분은 읍내 터미널 옆 약국 건물 이층에 세 들어 사는 이십 대 후반의 솔로이기도 했다. 집배원 아저씨는 할머니 집에 들어서면 항상 자전거를 마당 한가운데 삐딱하게 세워두고 마치 제집인 양 신발을 벗고 툇마루로 올라왔다. 그러곤 할머니와 마주 앉아 군대 간 막냇삼촌이 보내온 편지를 쭉 찢어 소리 내어 읽어주곤 했다(할머니는 까막눈이었으니까). 막냇삼촌이 보낸 편지는 대부분 '아아, 그리운 어머님께'로 시작되곤 했는데(나중에 내가 다시 읽어보니 '아아' 같은 말은 없었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훌쩍훌쩍[…]

새로운 문학집배원(문장배달)을 소개합니다.
/ 2020-04-09
김혜순, 「찬란했음 해」

      김혜순 ┃ 「찬란했음 해」를 배달하며       전염병의 시절, 공기는 자유의 원소가 아니라 의심과 공포의 물질로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단단하게 새장을 껴입은 듯 하구요. 어쩌면 그래서 당신 안의 새들이 더 크게 아우성치고 있을지도 몰라요. 새의 꿈을 밟지 마세요. 새를 죽이기 쉬운 무지막지한 나날이지만,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새들을 지켜야 해요. 시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아요. 시의 사운드에 심장을 맡겨 보아요.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질 거예요. 당신의, 당신의 뛰는 심장이며 타오르는 새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서 꿈을 꾸고, 꿈을[…]

김혜순, 「찬란했음 해」
/ 2020-04-02
새로운 문학집배원(시배달)을 소개합니다.

  시배달 – 시인 김행숙       안녕하세요. 새로운 문학집배원으로 시를 배달하게 된 김행숙입니다.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새장을 껴입은 것 같은 시절이에요. 그러나 작금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잠시멈춤은 나와 당신 사이의 소외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이웃하기 위해 겪어내야 하는 시간이겠지요. 이 황량한 시절을 부디 잘 건너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말, 운동선수, 새"의 동적인 몸짓에서 행복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로베르 브레송의 문장을 시와 함께 읽었어요. 여기에 우편배달부의 몸짓을 추가하며, 새장에서 새를 꺼내는 두근거림으로 배달하겠습니다.     * 김행숙: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산문집으로 『마주침의 발명』 『에로스와[…]

새로운 문학집배원(시배달)을 소개합니다.
/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