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학, 「밤기차」

      안상학 ┃「밤기차」을 배달하며       종종 기차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승강장에 조금 이르게 나가 기차를 기다립니다. 물론 제가 탈 기차는 정시에 도착하거나 몇 분 정도 지연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기차는 단 한번도 약속된 시간보다 이르게 온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알면서도 미리 나가 기차를 기다립니다. 승강장에는 제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타는 사람만 이곳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누군가를 배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짐을 들어주고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잘 들리지도 않는 당부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 저는 그들이 기차가 떠나고[…]

안상학, 「밤기차」
/ 2022-03-10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을 배달하며       알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은 곧잘 눈을 감습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내어다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든 바닷가 마을에는 전해지는 미신이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다고 해도 될 테고 믿음이 많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 마음처럼 생각처럼 바다의 일이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인 듯 배를 띄워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바다와 사랑은 닮았습니다. 나를 띄워보내야 하는 숱한 처음들.   시인 박준   작가 : 이현호 출전 : 『아름다웠던[…]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
/ 2022-02-24
김참, 「아득한 거리」

      김참 ┃「아득한 거리」을 배달하며       어느 강변입니다. 둔치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요. 시의 주인공은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소나무 그늘로 갑니다. 그런데 이 소나무 아래 누가 풍금을 버리고 갔습니다. 누가 이 풍금을 버리고 갔을까 궁금해하면서 물끄러미 서 있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강의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강 건너편에는 느티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그 나무 그늘 아래에는 어느 한 사람이 내가 있는 이 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건너편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강 건너편의 나를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혹 저 사람은 왜 저기서 나를 바라보는가? 왜 풍금을 버리고 가는가? 하고 의아해하지는 않을까요. 새로운 한[…]

김참, 「아득한 거리」
/ 2022-02-10
이혜미, 「빛멍」

      이혜미 ┃「빛멍」을 배달하며       빛에 멍이 든다는 것. “환한 것에도 상처”를 입는다는 것. 곰곰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오래 전 선물 받은 그림 한 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이 그림은 네모난 액자에 고이 들은 것은 아니었고 캔버스도 아니었습니다. 그해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있었지요. 유리창 너머에는 맑게 개인 하늘이 있었고 그 아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는 노트를 펴고 가방에서 펜을 꺼내 눈 앞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담은 환한 그림. 이내 그는 노트의 페이지를 주욱 찢어 제게 건냈습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그날의 날짜를 함께 적어주었습니다. 저는[…]

이혜미, 「빛멍」
/ 2022-01-27
유혜빈, 「미주의 노래」

      유혜빈 ┃「미주의 노래」을 배달하며       마음의 소리는 어떤 것일까요. 말이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말 없는 순간에도 우리는 마음을 전하거나 읽을 수 있으니까요. 모국어로 삼아 구사할 수 있는 말이 서로 달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알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 아마 마음의 소리는 웃음이나 울음 혹은 노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일까요. 왜 마음먹기도 전에 들어차 있을까요. 이렇게나 가깝고도 먼 것일까요.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길래 누구는 볼 수 있고[…]

유혜빈, 「미주의 노래」
/ 2022-01-13
박철, 「김포행 막차」

      박철 ┃「김포행 막차」을 배달하며       늦은 밤, 마지막 배차 순서의 버스가 달리는 풍경이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버스 안에 혼자 남아 있던 손님까지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이고요. 그 손님은 이내 골목 끝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손님이라는 존재를 시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의미는 한결 넓어집니다. 그동안 기쁘지 않은 시간만큼 울었고요. 슬프지 않은 시간만큼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손님이 없지만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버스를 운전하는 한 사람이 핸들을 꼭 쥐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사랑도 많았던 지난 시간들을[…]

박철, 「김포행 막차」
/ 2021-12-30
이유리, 「왜가리 클럽」 중에서

    이유리 ┃「왜가리 클럽」을 배달하며       모든 존재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왜가리가 부리를 내리꽂아 은빛 송사리를 낚아채듯, 우리에게는 삶의 한 순간을 잡아두기 위해 온 마음을 모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걸거나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언제나 성공만 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리 몰두해도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뭔가 낚아챘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면 그저 요란하게 물만 튕긴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의지를 다잡고 시작한 일이 결국에는 실패로 끝나는 것도 자주 겪습니다. 뜻을 이룰 때보다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상할 때가 더 많고요. 그러다 보면 본래 간절히 바라던[…]

이유리, 「왜가리 클럽」 중에서
/ 2021-12-23
나희덕, 「그 이불을 덮고」

      나희덕 ┃「그 이불을 덮고」을 배달하며       혹한의 날들을 앞두고 얼어붙지 않기 위해 나무는 스스로 말라갑니다. 뿌리로 수액을 내뿜기도 하고 넓은 잎을 땅에 떨구기도 하면서. 하지만 이러한 나무의 버림은 다른 존재에게 얻음와 생명이 되기도 합니다. 겨울 산중에 쌓인 낙엽을 들췄을 때 그 속에는 이르게 돋아난 어리고 연한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이니까요.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은 곧 내 곁의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싶은 나날들입니다.   시인 박준   작가 : 나희덕 출전 :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4)    

나희덕, 「그 이불을 덮고」
/ 2021-12-16
김정환, 「서시」

      김정환 ┃「서시」을 배달하며       서시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책에는 서시가 적혀 있습니다. 시집에서 머리말 역할을 하는 시를 우리는 서시라고 부르니까요. 물론 꼭 시집이 아니어도 짧게 쓰인 책의 서문은 종종 시처럼 읽히니까요. 시인이나 작가들이 합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서시는 자기 반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반성인 동시에 다짐의 글이 되기도 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1957년 「서시」를 쓰며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尖端)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라며 반성했고 시인 민영은 역시 「서시」라는 시에서 “나 혼자 남으리라 남아서 깊은 산 산새처럼 노래를 부르리라 긴 밤을[…]

김정환, 「서시」
/ 2021-12-02
현택훈, 「캠프파이어」

      현택훈 ┃「캠프파이어」을 배달하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번씩 번갈아가며 문장의 앞뒤 주어를 바꿔 말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야영지는 바닷가였지”라고 적은 뒤에 “바닷가는 우리의 야영지였지”라 적고, “파도 소리가 못다 한 이야기를 데리고 갔네”라는 문장 다음에는 “못다 한 이야기는 파도 소리가 데리고 갔네” 이렇게 다시 앞뒤를 바꿉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말과 글은 순서를 바꾼다고 해서 의미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간혹 도치법(倒置法)처럼 강조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은연중 사용하는 말의 순서에는 미세한 마음의 결이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이 춥다, 보고 싶어’라는 문장이 ‘보고 싶어, 날이[…]

현택훈, 「캠프파이어」
/ 2021-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