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일년」 중에서

      최은영 │ 「일년」을 배달하며…       그녀의 이름은 '지수'고 그녀 팀의 인턴 이름은 '다희'군요. 이 이야기는 그녀의 회사에 계약 인턴으로 1년간 근무했던 다희를 몇 년 후 그녀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둘은 친하고 조용하고 서로를 배려하긴 하지만-카풀 통근을 하는 사이였으니까요-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둘 사이의 미묘한 긴장이, 그리고 그 긴장을 한 땀도 그냥 건너뛰는 법이 없는 최은영의 문장이 이 소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이들의 긴장은 어딘가 슬퍼 보이는데요. 회사라는 수익집단에 속하게 되거나 속하려 하면서 본모습과는 시시각각 멀어지는 자신들의 현재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참[…]

최은영, 「일년」 중에서
/ 2019-09-19
임승훈, 「2077년, 여름방학, 첫사랑」 중에서

      임승훈 │ 「2077년, 여름방학, 첫사랑」을 배달하며…       인류의 얼굴이 삼십대 중반의 한국 남자 얼굴로 똑같이 변했다고 해도 성별이 바뀐 것은 아니었으니 성아의 오빠인 성훈을 성아로 오인한 민수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고 독자들은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럴 줄 알고 작가 임승훈은 소설에서 그가 착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적어 놓은 걸까요.     그런데 문제는 뭐 그게 아니고, 이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소리야?     -니 친구 성훈이라고.     이어지는 대화가 이처럼 끔찍하다는 거요.     성훈이가 동성 친구인 민수를 사랑하는 게 끔찍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요. 끔찍한 건 성훈이를[…]

임승훈, 「2077년, 여름방학, 첫사랑」 중에서
/ 2019-09-05
김소연, 「과수원」

      김소연 | 「과수원」을 배달하며…       사과는 모순의 과일이다. 인간의 입맛에 봉사하면서도 삼키면 복통을 일으키는 천연 청산가리를 씨앗 속에 품고 있는 과육. 눈 덮인 천산 산맥 어디엔가 있다는 세상 모든 사과들의 고향을 사과는 잊지 않았나 보다. 따가운 산정에서 서늘한 계곡 속까지 깎아지른 온도의 낙차 속에 꿀을 쟁이는 야생을 끝끝내 놓지 않고 지구를 여행하고 있나 보다.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사과의 디아스포라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원의 향수 같은 것이 있다. 길들이면 길들이는 대로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앙큼한 모반의 씨앗이 흑점처럼 사과를 폭발케 한다. 이미 멸종해 버린 누군가의 식성이 씨앗의 심연[…]

김소연, 「과수원」
/ 2019-08-29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중에서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배달하며…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프랑스 본국으로부터 베트남에 파견된 가톨릭 수사와 수녀입니다. 18세기와 19세기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베트남까지 가는 중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습니다만 도착해서도 베트남 황제의 보복(사연이 길어 생략합니다)으로 거의 목숨을 잃습니다. 게다가 본국이 대혁명의 와중이어서 베트남에서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선교사들조차 프랑스로부터 완전히 잊히게 됩니다. 프랑스도 베트남도 이제 그들에게는 모두 '다다를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이지요. 간신히 목숨을 건진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느 수녀는 황제의 추격부대를 피해 베트남의 오지로 숨어듭니다. 막다른 곳에서 그들은 수사와 수녀가 아닌 남자와 여자가 됩니다. 부분 발췌[…]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중에서
/ 2019-08-22
안도현 , 「섬」

      안도현 | 「섬」을 배달하며…       모난 돌이 정 맞는 건 육지에서의 일이다. 섬에선 모난 돌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어느 돌 하나 쓸모없는 돌이 없다. 모가 나면 모가 난 대로 모난 구석끼리 암수를 끼워 맞춰 돌담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슬포 어느 돌담 올레길이었나.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깨지고 부딪치다 쓸모없어진 나도 섬의 슬하에 들어 모처럼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하염없이 귀를 맡겨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와 적절한 거리를 설정해야만 생기는 발견이나 성찰 같은 뭍의 저 습관적 의식도 저만치 접어 둔 채.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오직 근원적인[…]

안도현 , 「섬」
/ 2019-08-08
김채원, 「흐름 속으로―등잔」 중에서

      김채원 │ 「흐름 속으로―등잔」을 배달하며…       그래서 정은 어떻게 했을까요? 성냥을 켜서 성냥개비가 타들어가는 순간에 책을 이어 읽습니다. 까맣게 탄 성냥개비가 자꾸 늘어났지요.     그등잔의 석유가 닳을까 봐 책을 못 읽게 했던 시절입니다. ‘오래전 어느 날’이란 자매와 자매의 어머니가 퇴각하는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갔던 때를 말합니다. 정말 오래전 어느 날이네요. ‘뛰지 마라 배 꺼질라’라는 말을 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석유 닳는 게 무섭고 배 꺼지는 게 무섭던 시절이었지요. 무서운 기억은 오래갑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생한 소설이 됩니다. 저의 짐작입니다만, 소설 속의 저 두 자매는 나중에 실제로 작가가[…]

김채원, 「흐름 속으로―등잔」 중에서
/ 2019-08-01
장만호, 「김밥 마는 여자」

      장만호 │ 「김밥 마는 여자」를 배달하며…       '김밥을 말다가 문득 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이런 디테일들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은 구체적인 몸짓을 갖게 된다. 바쁘게 한 끼를 떼우고 요금을 낸 뒤 붐비는 거리 속으로 사라지면 그만일 일상의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문득 삶은 반복되는 소비와 소멸의 흐름 속에서 구출된다. 그때 시작되는 은유는 얼마나 곡진한가.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 놓은' 은유는 '발에서 죽간으로, 뗏목으로 그리고 검은 두루마리'로 연쇄되면서 삼색의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하여 고단한 시장의 일상이 붓꽃 같은 손으로 필사되는 문장이 된다. 상한 속을[…]

장만호, 「김밥 마는 여자」
/ 2019-07-25
김숨, 「모일, 저녁」 중에서

      김숨 │ 「모일, 저녁」을 배달하며…       추억이랄 것까진 없지만, 붕장어인 ‘아나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소설 속 장면보다 좀 더 잔혹했던가. 널판의 튀어나온 못에 대가리를 박아 꿰고 목에 해당할 부위를 빙 둘러 얕게 칼집을 낸 뒤 펜치로 껍질 끝을 집어 아주 빠르게 꼬리방향으로 주욱 잡아당기면 눈 깜짝할 사이에 홀라당 껍질이 벗겨지며 ‘아나고’는 순식간에 백사처럼 희고 투명해진다. 꿈틀거리는 그것을 오이 썰 듯 송송송송 탕탕탕탕 썰면 ‘아나고회’가 되는데, 살아 있던 붕장어가 접시 위의 ‘아나고회’가 되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빠르기. 그 스킬이 생활의 달인이 되고도 남았다. 아무 생각 없이[…]

김숨, 「모일, 저녁」 중에서
/ 2019-07-18
신휘, 「코뚜레」

      신휘 │ 「코뚜레」를 배달하며…       시적인 포즈나 거창한 수사 없이 담담하게 들려주는 고백이 성찰과 함께 하면서 울림을 주는 시다. 고향을 떠날 때 이삿짐 보따리 속에 할아버지께서 넣어주신 것이 코뚜레였다. 현관문에 걸어놓으면 복이 들어온다고 해서 나는 아직도 삼대째 내려오는 코뚜레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신에도 아름다운(美) 믿음(信)이 있는가. 둥근 코뚜레를 보면 나는 짐승과 인간이 우애를 나누고 서로를 측은해하면서 짐진 자의 수고와 고통도 여물처럼 묵묵히 되새김질할 줄 알던 그 의젓한 시절이 그리워진다. 힘들어 앓아누운 날 자신의 고통보다 송아지의 고통에 먼저 가슴 아파하는 시인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신휘, 「코뚜레」
/ 2019-07-11
셔우드 앤더슨, 「숲 속의 죽음」 중에서

      셔우드 앤더슨 │ 「숲 속의 죽음」을 배달하며…       노파가 잠든 언덕 꼭대기란 노파가 사는 마을과 읍내 사이에 있는 산등성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노파는 평생 그 언덕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읍내 정육점에서 동물의 뼈와 간 따위를 거저 얻어다가 불량배인 남편과 아들을 위해 스프를 끓이고 정성스레 짐승을 먹였습니다. 남편과 아들로부터 종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삶을 누려본 적이 없는 노파는 묵묵히 억척같이 오로지 집안의 생명들을 먹이고 이웃의 개도 먹여 살립니다. 오죽하면 이웃의 개가 주인도 아닌 그녀를 따라 읍내까지 갈까요. 이 날도 읍내 정육점에서 한 자루 가득 얻은[…]

셔우드 앤더슨, 「숲 속의 죽음」 중에서
/ 2019-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