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초혼招魂」

      김행숙|「초혼招魂」을 배달하며…       새해가 될 때마다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나만의 요정, 혹은 순수한 꿈을 잃어버릴까봐 자라기를 거부하는 아이가 항상 내 속에 있었죠. 스무 살부터는 서른 살이 올 것 같아 두려웠어요. 최승자 시인이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삼 십 세」)라고 노래했던 뻔뻔한 얼굴의 서른 살이 무서웠습니다.*     세월이 자꾸 흐르니까 잃어버린다는 것은 잊어버린다는 것의 다른 말이라는 걸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했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좋아했던 사물들과 장소들을 잊고 가끔은 내 존재도 까맣게 잊어버려요. 그렇지만 너무 겁먹거나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인은 말해줍니다. 떠나간[…]

김행숙, 「초혼招魂」
/ 2019-01-31
장이지, 「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

      장이지|「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을 배달하며…       눈이 큰 아이라니,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소년을 닮은 얼굴이 떠오릅니다. 소년이 눈을 감으면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이 어릴 것 같은데, 세상에나 그 맑은 눈으로 삥을 뜯고 있군요. 요새 아이들은 참으로 무섭다며 탄식해야 할까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골목을 지나치며 어른이 된 우리의 세계도 중2의 세계. 동료를 폭행하는 회사 오너에게 “수고가 참 많으십니다” 하고 얌전히 지나가는 세계. 해고된 동료에게 한 마디 위로도 못하고 돌아서면 거울 속의 내가 나를 향해 모리배**처럼 웃고 있어요. 중2 여러분, 새해에는 이[…]

장이지, 「중2의 세계에서는 지금」
/ 2019-01-17
김소연, 「노는 동안」

      김소연|「노는 동안」을 배달하며…       십이월에도 오월을 생각하는 마음은 추운 계절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상상하며 견디는 마음이겠죠. 심술궂은 겨울바람이 그 어여쁜 잎들을 다 떨어뜨렸으니, 너무 나쁘지 않나요? 시인은 “응, 그래서 좋아”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떨어진 나뭇잎들이 부서지고 땅과 섞여버렸기 때문에 그 땅의 힘으로 봄날, 새 잎이 단단한 가지를 뚫고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마룻바닥이 누군가 흰 무릎으로 기도를 올리는 아름다운 성소가 되기 전에 또 다른 기도가 있었어요. 더러운 바닥을 온몸으로 문지르고 다니는 걸레질의 기도. 그러고 보니 이 시는 희망의 마음으로 시작되어 헌신의 행위로 끝이 납니다. 새해예요.[…]

김소연, 「노는 동안」
/ 2019-01-03
1
곽효환, 「마당 약전(略傳)」

      곽효환|「마당 약전(略傳)」을 배달하며…       약전(略傳)은 한 사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록한 글입니다. 시인은 마당의 약전을 통해 하나의 공간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하나로 고정된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톡 치면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새 문양을 만들어내는 만화경 속 유희가 좋다.”* 지금이야 병원에서 태어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결혼식장에서 결혼하고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죠. 하지만 예전에는 모든 것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어요.     가족들이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들으며 기쁨으로 두 손을 맞잡던 곳도 마당. 집 밖이 익숙해지기 전까지 아이가 아장아장 걷던[…]

곽효환, 「마당 약전(略傳)」
/ 2018-12-20
김혜순, 「분홍 코끼리 소녀」

      김혜순|「분홍 코끼리 소녀」를 배달하며…       브레히트가 1927년 출간한 『가정기도서』에는 「영아 살해범 마리 파라에 대해」라는 시가 있어요. 마리는 남의 집에서 만삭의 몸으로 막일을 하던 고아처녀였죠. 이 미혼모는 불도 안 땐 자신의 골방이 너무 추워 하인들이 쓰는 뒷간에서 아이를 낳다가 우는 아이를 살해한 죄로 감옥에서 죽어갑니다. 그 시가 씌어진지 1세기가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소녀들은 공중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버립니다. 브레히트는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분노하지 마라. /무릇 피조물이란 모든 이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니.”*     코끼리는 신성하고 고귀한 영혼의 상징이기도 하죠.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몸이 낳은 것은 다 소중하고[…]

김혜순, 「분홍 코끼리 소녀」
/ 2018-12-06
고형렬, 「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

      고형렬|「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를 배달하며…       시인들은 종종 아버지 흉을 봅니다. 실비아 플라스는 시에다 “아버지, 개자식”이라고 쓰기도 했어요. 이 시의 늙은 학생 같은 남자 역시 좋은 아버지는 아닙니다. 아버지, 장남이라 귀하게 여기고 막내라서 이뻐하는 일도 없이 참으로 공평하게 내다버리셨군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에서 미움 대신 슬픔이 느껴집니다. 찢어진 벽지 속으로 들어갔던 ‘나’는 아버지처럼 늙은 학생 같은 아버지가 되었어요. 식구들은 내다버리고 검은 책만 챙겼던 아버지, 검은 책으로 혼자만의 집을 짓던 아버지처럼. 그러고 보니 거미는 참 쓸쓸한 곤충이네요. 늘 뿔뿔이 흩어져, 바람에 자기의 실이 가닿는 대로 집을 지으니 말입니다.[…]

고형렬, 「거미의 생에 가보았는가」
/ 2018-11-22
이장욱, 「괄호처럼」

      이장욱|「괄호처럼」을 배달하며…       문장을 쓰고 나서 괄호를 치면 안전한 기분이 듭니다. 포옹하는 기호처럼 느껴지거든요.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인간의 최초의 몸짓은 포옹”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아기들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손을 허우적댑니다. 노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팔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고 해요. 이 “두 번의 날갯짓 사이에서” 우리의 삶이라는 여행이 지나갑니다.*     시인의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은 두 팔의 포옹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는 포옹의 여러 양상을 보여줍니다. 눈꺼풀을 열어 네 모습을 부드럽게 안기, 입 속에서 신선한 과일을 씹으며 날카롭게 안기. 누군가에게 숨 막히게 안기거나 구덩이 같은[…]

이장욱, 「괄호처럼」
/ 2018-11-08
배수연, 「청혼」

      배수연|「청혼」을 배달하며…     선물상자가 불 위에서 혼자 끓고 있는 냄비처럼 느껴질 때까지, 냄비 속의 앵두가 익다가 졸아들어 앵두잼이 될 때까지 내내 당신 곁에 있겠어요. 오직 사랑하는 당신 곁에. 아침마다 앵두잼 병뚜껑을 열어 당신과 함께 떠먹겠어요. (우린 둘 다 너무 단 건 안 좋아하지만······)   내가 드리는 것이 슬픔이든 원망이든 남루함이든 나와 함께 맞아야 하는 것이 폭우든 폭설이든 결코 거절하지 않는 이는 당신뿐이랍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가 여러분 곁에 있으신지요?     시인 진은영   작품 출처 : 배수연 시집, 『조이와의 키스』, 민음사, 2018.    […]

배수연, 「청혼」
/ 2018-10-25
김경인, 「종이 상자」

      김경인|「종이 상자」를 배달하며…         제가 존경하는 철학자 한 분은 부엉이 목각인형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으세요. 부엉이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새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새로 알려져 있지요. 선생님 서재에서 여러 나라의 예쁜 부엉이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에세이스트 데이비드 실즈의 말이 떠오릅니다. “지혜는 없다. 많은 지혜들이 있을 뿐이다. 아름답고 망상적인…”*     여행 중인 지인분들이 이국의 작은 골목 가게에서 부엉이 인형을 발견할 때면 당신 생각이 난다며 꼭 사들고 오신대요. 선생님은 부엉이도 좋지만 먼 곳에서 당신을 떠올리며 가져온 그 마음이 더 좋으시다고.     한 사람을 위해 먼 곳에서부터 긴[…]

김경인, 「종이 상자」
/ 2018-10-11
송승환, 「클로로포름」

      송승환|「클로로포름」을 배달하며…         우리는 정신 차리고 똑바로 걸으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신곡』의 천국편에서 철학자 아퀴나스의 입을 빌어 다르게 말합니다. “부디 ‘네’와 ‘아니오’를 앞에 두고 가늠하다 지친 사람처럼 느리게 움직이도록 당신 발에 추를 달기 바랍니다.”* 삶이 던지는 물음 앞에서는 성급한 긍정과 부정을 내려놓고 지친 사람처럼 걸어보세요. 그렇게 걸으며 사물과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은 연기처럼 풀리며 내 속으로 스며들 거예요.     시인은 우리에게 견고한 세계를 기화시키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클로로포름에 취한 듯, 긴장을 풀고 움직여 봐. 그리고 천천히 둘러봐. 그러면 의식의 습관이[…]

송승환, 「클로로포름」
/ 2018-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