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일, 「그리움엔 길이 없어」

      박태일 | 「그리움엔 길이 없어」를 배달하며…       왜 '괭이갈매기'가 아니고 '재갈매기'인가. 왜 '출렁출렁'이 아니고 '자란자란'인가. '쓰러지다'나 '무너지다' 대신 '주저앉다'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재갈매기-재다-자란자란-주저앉다'로 연결되는 음의 연쇄는 재갈매기가 다른 말로 대체할 수 없는 필연의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한다. 한발짝 더 나아가 자음 'ㅈ'이 뜻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뜻을 뿜어내는 장면을 보라. 하늘을 '재는' 상승과 '주저앉은' 하강을 동시에 품고 운동하는 '자란자란'에 이르면 넘칠 듯 말 듯한 그리움의 밀도까지 생겨난다. 소리내어 외워야 맛이 나는 시가 있다. 이런 시들은 시각보단 청각에 더 호소한다.   시인 손택수   작가 : 박태일[…]

박태일, 「그리움엔 길이 없어」
/ 2019-09-26
김소연, 「과수원」

      김소연 | 「과수원」을 배달하며…       사과는 모순의 과일이다. 인간의 입맛에 봉사하면서도 삼키면 복통을 일으키는 천연 청산가리를 씨앗 속에 품고 있는 과육. 눈 덮인 천산 산맥 어디엔가 있다는 세상 모든 사과들의 고향을 사과는 잊지 않았나 보다. 따가운 산정에서 서늘한 계곡 속까지 깎아지른 온도의 낙차 속에 꿀을 쟁이는 야생을 끝끝내 놓지 않고 지구를 여행하고 있나 보다. 고향을 떠나 유랑하는 사과의 디아스포라엔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원의 향수 같은 것이 있다. 길들이면 길들이는 대로 고분고분해 보이지만 앙큼한 모반의 씨앗이 흑점처럼 사과를 폭발케 한다. 이미 멸종해 버린 누군가의 식성이 씨앗의 심연[…]

김소연, 「과수원」
/ 2019-08-29
안도현 , 「섬」

      안도현 | 「섬」을 배달하며…       모난 돌이 정 맞는 건 육지에서의 일이다. 섬에선 모난 돌도 귀한 대접을 받는다. 어느 돌 하나 쓸모없는 돌이 없다. 모가 나면 모가 난 대로 모난 구석끼리 암수를 끼워 맞춰 돌담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슬포 어느 돌담 올레길이었나.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깨지고 부딪치다 쓸모없어진 나도 섬의 슬하에 들어 모처럼 달려드는 파도소리에 하염없이 귀를 맡겨 보고 있었다. 무엇인가와 적절한 거리를 설정해야만 생기는 발견이나 성찰 같은 뭍의 저 습관적 의식도 저만치 접어 둔 채.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오직 근원적인[…]

안도현 , 「섬」
/ 2019-08-08
장만호, 「김밥 마는 여자」

      장만호 │ 「김밥 마는 여자」를 배달하며…       '김밥을 말다가 문득 발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는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이런 디테일들을 만날 때 우리의 삶은 구체적인 몸짓을 갖게 된다. 바쁘게 한 끼를 떼우고 요금을 낸 뒤 붐비는 거리 속으로 사라지면 그만일 일상의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문득 삶은 반복되는 소비와 소멸의 흐름 속에서 구출된다. 그때 시작되는 은유는 얼마나 곡진한가. '밥알의 끈기로 붙들어 놓은' 은유는 '발에서 죽간으로, 뗏목으로 그리고 검은 두루마리'로 연쇄되면서 삼색의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하여 고단한 시장의 일상이 붓꽃 같은 손으로 필사되는 문장이 된다. 상한 속을[…]

장만호, 「김밥 마는 여자」
/ 2019-07-25
신휘, 「코뚜레」

      신휘 │ 「코뚜레」를 배달하며…       시적인 포즈나 거창한 수사 없이 담담하게 들려주는 고백이 성찰과 함께 하면서 울림을 주는 시다. 고향을 떠날 때 이삿짐 보따리 속에 할아버지께서 넣어주신 것이 코뚜레였다. 현관문에 걸어놓으면 복이 들어온다고 해서 나는 아직도 삼대째 내려오는 코뚜레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신에도 아름다운(美) 믿음(信)이 있는가. 둥근 코뚜레를 보면 나는 짐승과 인간이 우애를 나누고 서로를 측은해하면서 짐진 자의 수고와 고통도 여물처럼 묵묵히 되새김질할 줄 알던 그 의젓한 시절이 그리워진다. 힘들어 앓아누운 날 자신의 고통보다 송아지의 고통에 먼저 가슴 아파하는 시인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신휘, 「코뚜레」
/ 2019-07-11
서정주, 「시론」

      서정주 │ 「시론」을 배달하며…       일터가 삶터일 수 있을까. 삶터를 그리움의 터로 만들 수 있을까. 해녀에게 바다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상 속엔 '님'을 떠올리게 하는 '제일 좋은 전복'이 있다. 아끼고 아껴서 키운 전복 덕분에 타분한 일상의 바다가 설레는 비일상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얼핏 보티첼리의 이 스치기도 한다. 일상의 일터가 여행이나 신화 같은 비일상을 잊지 않도록 시인은 시의 전복, 시의 비의를 성마르게 다 따지 않고 애써 숨겨둘 줄 안다. '바다에 두고 바다 바래여 시인'이라? 아득하다. 일터에 아껴둔[…]

서정주, 「시론」
/ 2019-06-27
구상, 「시법(詩法)」

      구상 │ 「시법(詩法)」을 배달하며…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연암 박지원은 사마천의 비유를 든다. "아이들이 나비를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앞다리는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벌리고 앞으로 가서 손이 닿을 동 말 동할 때, 나비는 날아가고 만다. 사방을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겸연쩍게 웃고 부끄러운 듯 성난 듯 하는 이 경지가 바로 사마천이 글을 지을 때이다." 사마천을 시인으로 바꿔 읽어보자. 연암의 말처럼 구상 역시 숱한 실패를 거듭했나 보다. 이 시 속엔 사물과 기호의 어긋남, 즉 외양과 속살 더[…]

구상, 「시법(詩法)」
/ 2019-06-13
장석남,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장석남 │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를 배달하며…       빨래는 한낮의 따가운 볕에 잘 마르겠지만 마음은 열기가 꺾인 저녁 해라야 더 잘 마른다. 이글대는 불에 마음을 그대로 말렸다간 그을려 까맣게 타버리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같은 불이라도 기울어 사납지 않고 다감한 몽상의 불이다. 이 다감한 불의 이미지가 저녁의 시간대를 부르고 노을빛을 닮은 소를 부른다. 이삭 핀 보리의 따가움이 부드럽게 다가오는 것도 송아지 등을 핥는 어미소가 있어서다. 저녁해와 어미소와 보리밭을 불어가는 바람이 흙탕물에 핥퀸 마음을 핥아준다. 이 불은 그러니까 '젖은 불'이다. 나는 젖음으로서 마른다는, 고통을 마주함으로써 치유된다는 역설이[…]

장석남, 「저녁 햇빛에 마음을 내어 말리다」
/ 2019-05-23
유강희, 「소금쟁이」

      유강희 │ 「소금쟁이」를 배달하며…       풀밭이 연못으로 바뀌고 화자는 또다른 소금쟁이로 둔갑을 한 것 같다. 나는 소금쟁이의 점프력에 놀라고 그 순간을 날렵하게 포착한 시인의 관찰력에 다시 한번 놀란다. 결정적 순간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누군가에겐 그저 시시한 연못에 지나지 않겠지만 골똘한 시선을 가진 누군가에겐 생명의 사건들로 가득찬 경이로운 장소로 바뀐다. 상상력은 두뇌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이런 작고 희미한 것들의 기미를 읽을 줄 아는 마음과 더 관계가 깊다. 가스통 바슐라르였던가. "돋보기를 든 인간은 그냥 친숙한 세계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대상 앞에서 신선한 시선이 된다. 돋보기는 바로 되찾아진[…]

유강희, 「소금쟁이」
/ 2019-05-09
정종목, 「작은 주먹」

      정종목 │ 「작은 주먹」을 배달하며…       꽃멍울을 닮은 주먹이다. '야물딱지게' 꽃을 움켜쥐었는데도 꽃잎 한 장 다치지 않는다. 분노와 적의, 치욕에 부르르 떨거나 무슨 대단한 결의에 차서 쥐는 주먹만 있는 줄 았았더니 주먹에서도 꽃이 피는구나. 손가락을 부드러운 감촉의 꽃잎이 되게 하는구나. 주먹을 쥐려면 이런 향기로운 꽃주먹을 쥐어야지. 세상에서 익힌 언어들에 지쳤을 때, 함부로 내뱉는 언어들에 상처 입고 가슴앓이를 할 때, 아기의 말을 배우자. 아기와 엄마가 말 없이도 교감하고 소통하듯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자. 이제 막 도착한 이 여행자는 비록 울음과 웃음밖에 모르지만 온몸으로 '최초의 언어'이다. 생명의 비밀과 기쁨을[…]

정종목, 「작은 주먹」
/ 2019-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