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을 배달하며       오늘은 말(馬)과 말(言)이 같은 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말과 말은 다만 소리만 같은 걸까. 우리가 말과 말의 사용법으로 말을 때리는 것밖에 모른다면, 그리고 경쟁적으로 누가누가 더 세게 때리는지에만 온통 정신이 쏠려 있다면, 말과 말은 지치고 상하고 미치고 흉포해진다. 우리가 말과 말의 세기와 속도에 취해 말과 말의 비명소리에 둔감해지고 무감해진다면, 말과 말은 멈춤을 뺏기고 잠을 뺏기고 꿈을 다 잃어버린다. 인간은 말과 말의 영육(靈肉)을 착취하면서 저 자신의 몸을 소진하고 영혼을 고갈시킨다. 인간은 말과 말을 주인처럼 때리면서 말과 말의 원한을 생산하고 말과[…]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 2020-08-06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를 배달하며       한 그루 나무 그늘 밑에는 평상이 놓여 있고, 오가는 길에 뙤약볕을 피해 퍼질러 앉은 동네 사람들은 부채를 부치며 흐르는 시간을 잊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불러 세우기도 했다. “집에 가니?” 집으로 가는 길을 빤히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마을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만, 전생처럼 그런 마을은 떠나온 고향의 풍경 같다. 그곳에서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갔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갔고,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소포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간 날도 있었어. 그런 시간은[…]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 2020-07-23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을 배달하며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을 꼭 쥐고서 “우리의 행운”과 “모든 운수”를 지키는 수호자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소년, 동네 슈퍼를 나와서 다시 한 번 손바닥을 열어보며 뿌듯해하는 이 소년의 기분을 아마 당신도 맛본 적 있을 거예요. 뭔가를 꼭 쥐면 소중해지고 간절해지는 마음까지 만져지잖아요. 지구 반대편에서 글을 썼던 보르헤스 씨의 문장을 소년과 함께 나눠 읽어도 좋겠어요. “아마도 나는 쉬지 않고 자히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것이 닳아 없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동전 뒤에서 하느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보르헤스, 송병선 역, 「자히르」, 『알레프』, 민음사, 2012).[…]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
/ 2020-07-09
안희연, 「백색 공간」

      안희연 ┃「백색 공간」을 배달하며       흰 종이에 글을 쓴다. 이를테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쓴다. 그렇게 쓰면, “눈앞에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글쓰기의 백색공간에서는 내게 말을 걸고, 항의를 하고, 가시권 밖으로, 이 세계의 극지로 떠나는 사람이 태어난다. 그 사람은 유리창 안쪽에 물러나 있는 나를 깨뜨려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내가 그를 썼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나를 쓴다. 나는 그를 더 많이 더 깊이 읽어야 하는데, 자칫 그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     시는 백색공간을 자기 말로 점령하지 않는다. 시의 언어는 백색공간에 내려앉으면서 또[…]

안희연, 「백색 공간」
/ 2020-06-25
심보선, 「‘나’라는 말」

      심보선 ┃「‘나’라는 말」을 배달하며       나르키소스가 사로잡힌 사랑은 저주받은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해서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년은 끝내 사랑이 아니라 거울에 빠져 죽고 맙니다. ‘나’라는 말은 당신이라는 타자에게 가기 위한 말입니다. ‘나’라는 말은 나의 지평선을 찢고 당신이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꺼내놓는 말입니다. ‘나’라는 말이 어떻게 당신에게 가닿았을까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너’로 돌아오는 ‘나’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나’입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니라 당신이 보내는 선물처럼 배달된 ‘나’입니다. 이 세계에 당신이 있어서, 나는 ‘나’라는[…]

심보선, 「‘나’라는 말」
/ 2020-06-11
이원, 「서울의 밤 그리고 주유소」

      이원 ┃「서울의 밤 그리고 주유소」를 배달하며       그래, 이 시였다. 그로테스크하고 황량한 사막 같은 세계를 가로질러 "우리는 언제나 조금 더 길을 가야 한다"라는 문장이 내게 도착했다. 내가 절망과 무기력에 빠져있을 때, 이 문장이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와 일으켜주었다. 이 시가 발음하는 "우리"라는 말, "언제나"라는 말, "조금 더"라는 말은 어둠 바깥에서 내미는 부드러운 손 같은 환영이 아니었다. 세계의 악몽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어떤 전망도 내비치지 않았다. 희망 없이 가자고 했다. 다만 걸을 힘이 남아 있으니 순수하게 근육을 써서 조금 더 걸어가자는 것이었다. 이 문장을 중얼거리면 뭔가가[…]

이원, 「서울의 밤 그리고 주유소」
/ 2020-05-28
주민현, 「스노볼」

      주민현 ┃「스노볼」을 배달하며       우리는 "겨울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겨울, 을 하나씩 갖게 되고", 봄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봄을, 여름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하나씩 갖게 되지. 사람의 마음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고이는 곳이야. 시간의 깊이가 그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 스노볼을 흔들면 그 겨울의 눈송이들처럼 "한낱 조각난 종이"들이 떠올라 반짝이고, 우리는 그걸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지"(「블루스의 리듬」). 그러면 마음 어딘가가 환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해.[…]

주민현, 「스노볼」
/ 2020-05-14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를 배달하며       "네가 황급히 떨어뜨린 슬리퍼 한 짝"을 주웠네. 네가 흘린 신발을 가슴에 껴안고, 나는 네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그리 급히 달려가는지 떠올려본다네. 너의 낡은 신발 한 짝에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붉은 흙덩이처럼 달라붙어 있어. 그래도 신발은 늘 말없이 신비롭고 낯선 지도를 품고 있었다네. 나는 무한히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신발장수, "원인을 찾으러 오지 않고 원인을 만들러 온 자". 내가 모으는 것은 신발만이 아니야. 나는 재미난 샛길들과 새로운 시간들을 모으고 있지. 나는 매일 똑같은 노래만 들려주는 시계탑에 폭탄을 던지고 새로운 시간의 리듬을 발명할[…]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
/ 2020-04-30
송찬호, 「눈사람」

      송찬호 ┃ 「눈사람」을 배달하며       한여름 밤, 열차는 자정을 향해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내 옆자리 창가에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겨울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여름이었는데, 눈사람은 엄혹한 겨울의 감옥에 갇힌 채 어느 계절로도 흘러가지 않았다. 겨울전쟁에서 패하고 그는 생의 그 어떤 변전(變轉) 가능성도 몽땅 몰수당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겨울의 얼얼한 마비상태에서 도무지 깰 수가 없다. 그는 겨우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겨울의 악몽을 깨워 한여름 밤의 현재로 그를 옮겨놓으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존재의 형상마저 세계의 커다란 입에 삼켜져 용해되어버릴 것만 같다. 우리는[…]

송찬호, 「눈사람」
/ 2020-04-16
김혜순, 「찬란했음 해」

      김혜순 ┃ 「찬란했음 해」를 배달하며       전염병의 시절, 공기는 자유의 원소가 아니라 의심과 공포의 물질로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단단하게 새장을 껴입은 듯 하구요. 어쩌면 그래서 당신 안의 새들이 더 크게 아우성치고 있을지도 몰라요. 새의 꿈을 밟지 마세요. 새를 죽이기 쉬운 무지막지한 나날이지만,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새들을 지켜야 해요. 시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아요. 시의 사운드에 심장을 맡겨 보아요.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질 거예요. 당신의, 당신의 뛰는 심장이며 타오르는 새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서 꿈을 꾸고, 꿈을[…]

김혜순, 「찬란했음 해」
/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