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욱, 「두번째 강물」

      이장욱 ┃「두번째 강물」을 배달하며       때로 나는 내가 강가에 사는 사람 같아. 가벼운 저녁 산책을 나왔다가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저토록 성실하게 강물은 흘러가는데 내 얇은 그림자는 흐르지 않지. 그럴 때면 전생이나 후생의 메아리마냥 “나는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있네” 라고 노래 부르게 되지. 어제 신문을 오늘 오후에 읽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듯이 내일 신문을 오늘 아침에 읽었어.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늦은 저녁상을 차릴 거야. 식탁 위에 물 글씨를 쓰는데, 이곳은 너무 깊어 아직도 바닥에 닿질 않는구나. 그래도 우리는[…]

이장욱, 「두번째 강물」
/ 2020-10-22
김경후, 「입술」

      김경후 ┃「입술」을 배달하며       나는 하지 않은 말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내가 한 말의 괴로움에 더 자주 시달린다. 정확하게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 놓이는 상황과 관계를 두루 헤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은 관계이므로, 말을 헤아리는 것은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면 말은 줄어든다. 제 내면의 동굴 속으로 아주 깊어진다면 면벽 수행(面壁修行) 중인 수도승의 것과 같은 마른 입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를 향해 깊어지고 깊어진다면, 그 “입술은 온몸의 피가 몰린 절벽”, “백만겹 주름진 절벽”과 같을 것이다. 아름다운 입술이다. 하지 못한 말의 괴로움이 극한에서 도달한 절경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다. 그러나[…]

김경후, 「입술」
/ 2020-10-08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을 배달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별할 수 없는 시간. 모든 것의 실루엣이 흐려지고 뭉개지는 시간. 그래서 개이기도 하고 늑대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그 모든 것이 되는 시간. 어두워지는 순간은 그런 시간이지. 그리고 저물녘 노을의 아름다운 회오리를 보고 있으면, 여기 한 시인과 같이 우리도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이 들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시간이 버무려지는 ‘순간’. ‘영원성’이 현현하는 ‘순간’. 그러므로 늑대처럼 오래 우는 저 한 마리 개는 “다른[…]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 2020-09-17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배달하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2003년 6월과 7월에 지구에서 발사되어 2004년 1월 3일, 2004년 1월 25일에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이 붙여진 붉은 행성에 착륙한 화성탐사 로봇의 애칭이었다. 각각 화성의 정반대편에 떨어진 이들 쌍둥이 로봇은 그 황량한 행성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지구에서 이들을 우주로 떠나보내면서 예상했던 수명은 단 90일이었지만, 스피릿은 2010년 화성의 혹독한 겨울에 동면에 들어갔다가 깨어나지 못했고, 오퍼튜니티는 2018년 5월 말 대기의 태양빛을 가렸던 엄청난 모래 폭풍 속에서 영원한 잠에 빠졌다. 그 길고 고독한 시간 동안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화성의 데이터들에서[…]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 2020-09-03
신용목, 「공동체」

      신용목 ┃「공동체」를 배달하며       이 시의 ‘나’는 공동묘지가 되려는 것 같습니다. 공동묘지가 ‘나’를 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슴에 묻어야 하는 죽은 자가 생기나니, 그리고 마침내는 저 자신의 죽음에 묻히나니, 인간 존재는 본래 묘지의 속성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죽음을 의식(意識)하고 의식(儀式)함으로써 인간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공동묘지를 가져서 공동체입니다. ‘나’는 공동묘지처럼 죽은 자들의 이름을 부르려고 합니다. 그 마음의 연결에서 죽은 자들의 이름이 또한 내 이름이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밤이 일찍 찾아오는 북구의 어느 도시에서 눈이 내리는 11월의 공원묘지를 하염없이[…]

신용목, 「공동체」
/ 2020-08-20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을 배달하며       오늘은 말(馬)과 말(言)이 같은 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말과 말은 다만 소리만 같은 걸까. 우리가 말과 말의 사용법으로 말을 때리는 것밖에 모른다면, 그리고 경쟁적으로 누가누가 더 세게 때리는지에만 온통 정신이 쏠려 있다면, 말과 말은 지치고 상하고 미치고 흉포해진다. 우리가 말과 말의 세기와 속도에 취해 말과 말의 비명소리에 둔감해지고 무감해진다면, 말과 말은 멈춤을 뺏기고 잠을 뺏기고 꿈을 다 잃어버린다. 인간은 말과 말의 영육(靈肉)을 착취하면서 저 자신의 몸을 소진하고 영혼을 고갈시킨다. 인간은 말과 말을 주인처럼 때리면서 말과 말의 원한을 생산하고 말과[…]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 2020-08-06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를 배달하며       한 그루 나무 그늘 밑에는 평상이 놓여 있고, 오가는 길에 뙤약볕을 피해 퍼질러 앉은 동네 사람들은 부채를 부치며 흐르는 시간을 잊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 불러 세우기도 했다. “집에 가니?” 집으로 가는 길을 빤히 아는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런 마을에서 살아본 적이 없지만, 전생처럼 그런 마을은 떠나온 고향의 풍경 같다. 그곳에서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집으로 갔지.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갔고,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소포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 문을 열고 들어간 날도 있었어. 그런 시간은[…]

허수경, 「한 그루와 자전거」
/ 2020-07-23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을 배달하며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을 꼭 쥐고서 “우리의 행운”과 “모든 운수”를 지키는 수호자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소년, 동네 슈퍼를 나와서 다시 한 번 손바닥을 열어보며 뿌듯해하는 이 소년의 기분을 아마 당신도 맛본 적 있을 거예요. 뭔가를 꼭 쥐면 소중해지고 간절해지는 마음까지 만져지잖아요. 지구 반대편에서 글을 썼던 보르헤스 씨의 문장을 소년과 함께 나눠 읽어도 좋겠어요. “아마도 나는 쉬지 않고 자히르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것이 닳아 없어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동전 뒤에서 하느님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보르헤스, 송병선 역, 「자히르」, 『알레프』, 민음사, 2012).[…]

김상혁, 「떨어지는 동전」
/ 2020-07-09
안희연, 「백색 공간」

      안희연 ┃「백색 공간」을 배달하며       흰 종이에 글을 쓴다. 이를테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고 쓴다. 그렇게 쓰면, “눈앞에서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글쓰기의 백색공간에서는 내게 말을 걸고, 항의를 하고, 가시권 밖으로, 이 세계의 극지로 떠나는 사람이 태어난다. 그 사람은 유리창 안쪽에 물러나 있는 나를 깨뜨려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내가 그를 썼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가 나를 쓴다. 나는 그를 더 많이 더 깊이 읽어야 하는데, 자칫 그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     시는 백색공간을 자기 말로 점령하지 않는다. 시의 언어는 백색공간에 내려앉으면서 또[…]

안희연, 「백색 공간」
/ 2020-06-25
심보선, 「‘나’라는 말」

      심보선 ┃「‘나’라는 말」을 배달하며       나르키소스가 사로잡힌 사랑은 저주받은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해서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년은 끝내 사랑이 아니라 거울에 빠져 죽고 맙니다. ‘나’라는 말은 당신이라는 타자에게 가기 위한 말입니다. ‘나’라는 말은 나의 지평선을 찢고 당신이라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꺼내놓는 말입니다. ‘나’라는 말이 어떻게 당신에게 가닿았을까요?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너’로 돌아오는 ‘나’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나’입니다. 그것은 거울에 비친 내가 아니라 당신이 보내는 선물처럼 배달된 ‘나’입니다. 이 세계에 당신이 있어서, 나는 ‘나’라는[…]

심보선, 「‘나’라는 말」
/ 20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