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현, 「스노볼」

      주민현 ┃「스노볼」을 배달하며       우리는 "겨울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겨울, 을 하나씩 갖게 되고", 봄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봄을, 여름이 지나갈 때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하나씩 갖게 되지. 사람의 마음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고이는 곳이야. 시간의 깊이가 그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 스노볼을 흔들면 그 겨울의 눈송이들처럼 "한낱 조각난 종이"들이 떠올라 반짝이고, 우리는 그걸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지"(「블루스의 리듬」). 그러면 마음 어딘가가 환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해.[…]

주민현, 「스노볼」
/ 2020-05-14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를 배달하며       "네가 황급히 떨어뜨린 슬리퍼 한 짝"을 주웠네. 네가 흘린 신발을 가슴에 껴안고, 나는 네가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그리 급히 달려가는지 떠올려본다네. 너의 낡은 신발 한 짝에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붉은 흙덩이처럼 달라붙어 있어. 그래도 신발은 늘 말없이 신비롭고 낯선 지도를 품고 있었다네. 나는 무한히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신발장수, "원인을 찾으러 오지 않고 원인을 만들러 온 자". 내가 모으는 것은 신발만이 아니야. 나는 재미난 샛길들과 새로운 시간들을 모으고 있지. 나는 매일 똑같은 노래만 들려주는 시계탑에 폭탄을 던지고 새로운 시간의 리듬을 발명할[…]

진은영, 「신발장수의 노래」
/ 2020-04-30
송찬호, 「눈사람」

      송찬호 ┃ 「눈사람」을 배달하며       한여름 밤, 열차는 자정을 향해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내 옆자리 창가에는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겨울 눈사람이 앉아 있었다. 찌는 듯한 여름이었는데, 눈사람은 엄혹한 겨울의 감옥에 갇힌 채 어느 계절로도 흘러가지 않았다. 겨울전쟁에서 패하고 그는 생의 그 어떤 변전(變轉) 가능성도 몽땅 몰수당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는 겨울의 얼얼한 마비상태에서 도무지 깰 수가 없다. 그는 겨우 견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겨울의 악몽을 깨워 한여름 밤의 현재로 그를 옮겨놓으면, 간신히 붙들고 있는 존재의 형상마저 세계의 커다란 입에 삼켜져 용해되어버릴 것만 같다. 우리는[…]

송찬호, 「눈사람」
/ 2020-04-16
김혜순, 「찬란했음 해」

      김혜순 ┃ 「찬란했음 해」를 배달하며       전염병의 시절, 공기는 자유의 원소가 아니라 의심과 공포의 물질로 감지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더 단단하게 새장을 껴입은 듯 하구요. 어쩌면 그래서 당신 안의 새들이 더 크게 아우성치고 있을지도 몰라요. 새의 꿈을 밟지 마세요. 새를 죽이기 쉬운 무지막지한 나날이지만, "새가 더 더 더 달아오르는 나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의 새들을 지켜야 해요. 시를 한 번 소리 내어 읽어보아요. 시의 사운드에 심장을 맡겨 보아요. "새들이 울퉁불퉁 만져"질 거예요. 당신의, 당신의 뛰는 심장이며 타오르는 새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어요. 살아 있어서 꿈을 꾸고, 꿈을[…]

김혜순, 「찬란했음 해」
/ 2020-04-02
새로운 문학집배원(시배달)을 소개합니다.

  시배달 – 시인 김행숙       안녕하세요. 새로운 문학집배원으로 시를 배달하게 된 김행숙입니다.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새장을 껴입은 것 같은 시절이에요. 그러나 작금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잠시멈춤은 나와 당신 사이의 소외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이웃하기 위해 겪어내야 하는 시간이겠지요. 이 황량한 시절을 부디 잘 건너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말, 운동선수, 새"의 동적인 몸짓에서 행복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로베르 브레송의 문장을 시와 함께 읽었어요. 여기에 우편배달부의 몸짓을 추가하며, 새장에서 새를 꺼내는 두근거림으로 배달하겠습니다.     * 김행숙: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산문집으로 『마주침의 발명』 『에로스와[…]

새로운 문학집배원(시배달)을 소개합니다.
/ 2020-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