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 「법원」

      황인찬 ┃「법원」을 배달하며       할머니의 세월을 생각해본다. 아침마다 양동이에 쥐덫을 빠뜨리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할머니. 죄를 지으면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언덕 위의 법원을 가리키던 할머니. 일상의 잔혹에는 무감각하고 권력의 상징에는 공포심을 내면화한 영혼, 그것은 근대사와 현대사가 훈육하고 길들인 우리의 영혼이다. 그러나 쉿, 법원이라는 이름의 상징 권력에 포획되면, 물에 빠진 쥐처럼 버둥거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런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던 세월이 있었다. 근대사의 유령 같은 그 세월의 그늘 속에서 우리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의 정세 속에서 다시 베스트셀러로 회귀한 까뮈의[…]

황인찬 , 「법원」
/ 2020-12-17
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

      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를 배달하며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라는 말, 그 말이 참 좋다. 열두 살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말이다. 네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기꺼이 내 울타리를 치우고 네게로 활짝 열렸다. 그때 나는 네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너의 글씨체로 노트를 채우는 아이가 되었지. 너에게 나를 다 빌려줄 수 있어. 그렇게 너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빵빵한 시절이었는데, 너는 홀연히 이 풍경에 검은 구멍을 내고 사라져버렸어. 오늘은 보고 싶은 내 친구에게 너의 글씨체로 “안녕, 친구”라고 인사를 건네며 편지를 쓴다. 너의 글씨체처럼[…]

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
/ 2020-12-03
김사인 , 「달팽이」

      김사인 ┃「달팽이」을 배달하며       “귓속이 늘 궁금했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감을 수 없다. 잠이 찾아오면 눈은 스르르 감기지만,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귀는 활짝 열려 있다. 그러니까 내 의식에 닿지 않은 말과 온갖 소리들이 귀에는 닿았다. 잠든 사람 앞에서라면 어떤 고백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든 사람 앞에서라야 어떤 비밀은 꽁꽁 묶어두었던 보자기를 살며시 풀어볼 것이다. 잠든 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하는 말은 혼자 하는 말과 어떻게 다른가. 잠든 사람의 귓속에 공기분자의 파동을 일으키는 말은 혼잣말보다 덜 외로울까. 그것은 대화일까, 독백일까. 언젠가 잠든[…]

김사인 , 「달팽이」
/ 2020-11-19
김언희, 「트렁크」

      김언희 ┃「트렁크」를 배달하며       나는 이따금 은밀하게 이런 꿈을 꾼다. 거대한 가방이 필요한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다.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느라 나는 점점 지친다. 그러다가 나는 가방의 크기를 줄여나가게 된다. 차츰 몸피가 졸아 들어가던 가방이 마침내 한 점 빛처럼 사라지는 곳에서 나는 과거를 전생처럼 끊고 새로운 내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내가 살아가는 곳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깨면 언제나 거대한 가방은 남아 있다. 커다란 트렁크처럼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나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져” 있다. 버려도 버려도 버려지지[…]

김언희, 「트렁크」
/ 2020-11-05
이장욱, 「두번째 강물」

      이장욱 ┃「두번째 강물」을 배달하며       때로 나는 내가 강가에 사는 사람 같아. 가벼운 저녁 산책을 나왔다가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저토록 성실하게 강물은 흘러가는데 내 얇은 그림자는 흐르지 않지. 그럴 때면 전생이나 후생의 메아리마냥 “나는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있네” 라고 노래 부르게 되지. 어제 신문을 오늘 오후에 읽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듯이 내일 신문을 오늘 아침에 읽었어.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늦은 저녁상을 차릴 거야. 식탁 위에 물 글씨를 쓰는데, 이곳은 너무 깊어 아직도 바닥에 닿질 않는구나. 그래도 우리는[…]

이장욱, 「두번째 강물」
/ 2020-10-22
김경후, 「입술」

      김경후 ┃「입술」을 배달하며       나는 하지 않은 말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내가 한 말의 괴로움에 더 자주 시달린다. 정확하게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이 놓이는 상황과 관계를 두루 헤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말은 관계이므로, 말을 헤아리는 것은 관계를 헤아리는 것이다. 생각이 깊어지면 말은 줄어든다. 제 내면의 동굴 속으로 아주 깊어진다면 면벽 수행(面壁修行) 중인 수도승의 것과 같은 마른 입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를 향해 깊어지고 깊어진다면, 그 “입술은 온몸의 피가 몰린 절벽”, “백만겹 주름진 절벽”과 같을 것이다. 아름다운 입술이다. 하지 못한 말의 괴로움이 극한에서 도달한 절경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다. 그러나[…]

김경후, 「입술」
/ 2020-10-08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을 배달하며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분별할 수 없는 시간. 모든 것의 실루엣이 흐려지고 뭉개지는 시간. 그래서 개이기도 하고 늑대이기도 하고 나무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한, 그 모든 것이 되는 시간. 어두워지는 순간은 그런 시간이지. 그리고 저물녘 노을의 아름다운 회오리를 보고 있으면, 여기 한 시인과 같이 우리도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이 들지.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시간이 버무려지는 ‘순간’. ‘영원성’이 현현하는 ‘순간’. 그러므로 늑대처럼 오래 우는 저 한 마리 개는 “다른[…]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
/ 2020-09-17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배달하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2003년 6월과 7월에 지구에서 발사되어 2004년 1월 3일, 2004년 1월 25일에 전쟁의 신 마르스의 이름이 붙여진 붉은 행성에 착륙한 화성탐사 로봇의 애칭이었다. 각각 화성의 정반대편에 떨어진 이들 쌍둥이 로봇은 그 황량한 행성에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지구에서 이들을 우주로 떠나보내면서 예상했던 수명은 단 90일이었지만, 스피릿은 2010년 화성의 혹독한 겨울에 동면에 들어갔다가 깨어나지 못했고, 오퍼튜니티는 2018년 5월 말 대기의 태양빛을 가렸던 엄청난 모래 폭풍 속에서 영원한 잠에 빠졌다. 그 길고 고독한 시간 동안 두 로봇이 지구로 전송한 화성의 데이터들에서[…]

하재연, 「스피릿과 오퍼튜니티」
/ 2020-09-03
신용목, 「공동체」

      신용목 ┃「공동체」를 배달하며       이 시의 ‘나’는 공동묘지가 되려는 것 같습니다. 공동묘지가 ‘나’를 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슴에 묻어야 하는 죽은 자가 생기나니, 그리고 마침내는 저 자신의 죽음에 묻히나니, 인간 존재는 본래 묘지의 속성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죽음을 의식(意識)하고 의식(儀式)함으로써 인간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공동묘지를 가져서 공동체입니다. ‘나’는 공동묘지처럼 죽은 자들의 이름을 부르려고 합니다. 그 마음의 연결에서 죽은 자들의 이름이 또한 내 이름이어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밤이 일찍 찾아오는 북구의 어느 도시에서 눈이 내리는 11월의 공원묘지를 하염없이[…]

신용목, 「공동체」
/ 2020-08-20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을 배달하며       오늘은 말(馬)과 말(言)이 같은 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말과 말은 다만 소리만 같은 걸까. 우리가 말과 말의 사용법으로 말을 때리는 것밖에 모른다면, 그리고 경쟁적으로 누가누가 더 세게 때리는지에만 온통 정신이 쏠려 있다면, 말과 말은 지치고 상하고 미치고 흉포해진다. 우리가 말과 말의 세기와 속도에 취해 말과 말의 비명소리에 둔감해지고 무감해진다면, 말과 말은 멈춤을 뺏기고 잠을 뺏기고 꿈을 다 잃어버린다. 인간은 말과 말의 영육(靈肉)을 착취하면서 저 자신의 몸을 소진하고 영혼을 고갈시킨다. 인간은 말과 말을 주인처럼 때리면서 말과 말의 원한을 생산하고 말과[…]

강성은, 「말을 때리는 사람들」
/ 2020-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