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민, 「기념」

      이종민 ┃「기념」을 배달하며       작품 속 주인공은 기념일을 맞은 듯합니다. 어젯밤 우르르 끓여두었던 미역국을 먹는 것을 보니 아마도 생일이 되겠지요. 다만 누가 생일을 맞이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주인공일 수도 있고 혹은 “잘 지내고 있나요. 숟가락을 들면 묻고 싶습니다.”라는 생각이 가닿는 이의 생일일 수도 있지요. 어쩐지 이 기념일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늦은 오전 눈을 떴고요. 집 앞으로 유치원생들이 지나가고 새벽에 내린 비는 마르고 있습니다. 미역국 국물에 말은 밥을 한 톨까지 잘 긁어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빨래를 해서 탁탁 털어 널면 벌써 정오를 지납니다. 야외활동을 마친 유치원 아이들이 옆 친구의[…]

이종민, 「기념」
/ 2022-05-12
도종환, 「통영」

      도종환 ┃「통영」을 배달하며       통영의 풍경을 넓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는 통영을 사랑한 윤이상과 이중섭이 등장하는데요. 통영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입니다. 백석 시인과 박경리 소설가도 떠오르고요. 아울러 통영에는 제가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공예가들이 살았습니다. 갓장이가 만드는 갓, 나전장의 자개장롱, 두석장의 문갑, 소목장의 소반 등등. 통영에서 나고 자란 박경리 선생은 통영의 수공업이 발달한 까닭을 이렇게 설명해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도종환, 「통영」
/ 2022-04-21
곽재구, 「와온(臥溫) 가는 길」

      곽재구 ┃「와온(臥溫) 가는 길」을 배달하며       시에 등장하는 와온은 전남 순천에 있습니다. 해질녘에 이곳에 가면 말 그대로 이 세상 따뜻한 것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작품에서는 이곳을 “비단으로 가리어진 호수”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바다입니다. 육지 깊숙하게 바다가 들어와 있는 잔잔한 ‘만’이어서 호수라 했겠지요. 그렇다면 시에 등장하는 궁항은 어디일까요. 궁항은 전남 여수에 있습니다. 궁항에서 와온까지 이어지는 길을 두고 요즘 사람들은 남파랑길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이것이 꼭 도착에만 방점이 찍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시에 등장하는 궁항에서 와온바다까지의 거리는 약 15km, 자동차를 타면[…]

곽재구, 「와온(臥溫) 가는 길」
/ 2022-04-07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을 배달하며       이틀에 한 번 정도 밥을 합니다. 압력솥을 쓸 때도 있고 조금 수월하게 전기밥솥으로 밥을 지을 때도 있습니다. 언제 한번은 쌀을 씻다가 조금 먼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뜨물을 버릴 때마다 얼마간의 쌀알이 함께 쓸려나가는 것인데, 그러니 알이 작지 않고 커다란 쌀 품종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쌀알 한 톨이 참외만 하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밥 한 공기에 쌀 한 톨만 담으면 되니 참 편하겠다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잘한 밥알을 씹을 때 입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감각은 사라지겠지요. 밥을 한 주걱 푸고 다시[…]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2022-03-24
안상학, 「밤기차」

      안상학 ┃「밤기차」을 배달하며       종종 기차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승강장에 조금 이르게 나가 기차를 기다립니다. 물론 제가 탈 기차는 정시에 도착하거나 몇 분 정도 지연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기차는 단 한번도 약속된 시간보다 이르게 온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알면서도 미리 나가 기차를 기다립니다. 승강장에는 제가 좋아하는 풍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타는 사람만 이곳에 머무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누군가를 배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짐을 들어주고 올라타는 모습을 지켜보고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는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잘 들리지도 않는 당부의 말을 건네는 사람들, 저는 그들이 기차가 떠나고[…]

안상학, 「밤기차」
/ 2022-03-10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을 배달하며       알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 사람은 곧잘 눈을 감습니다.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내어다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어느 문화권이든 바닷가 마을에는 전해지는 미신이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다고 해도 될 테고 믿음이 많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 마음처럼 생각처럼 바다의 일이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인 듯 배를 띄워야 하니까. 이런 점에서 바다와 사랑은 닮았습니다. 나를 띄워보내야 하는 숱한 처음들.   시인 박준   작가 : 이현호 출전 : 『아름다웠던[…]

이현호, 「첫사랑에 대한 소고」
/ 2022-02-24
김참, 「아득한 거리」

      김참 ┃「아득한 거리」을 배달하며       어느 강변입니다. 둔치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요. 시의 주인공은 쏟아지는 햇살을 피해 소나무 그늘로 갑니다. 그런데 이 소나무 아래 누가 풍금을 버리고 갔습니다. 누가 이 풍금을 버리고 갔을까 궁금해하면서 물끄러미 서 있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강의 건너편을 바라봅니다. 강 건너편에는 느티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그 나무 그늘 아래에는 어느 한 사람이 내가 있는 이 쪽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건너편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강 건너편의 나를 누구라고 생각할까요. 혹 저 사람은 왜 저기서 나를 바라보는가? 왜 풍금을 버리고 가는가? 하고 의아해하지는 않을까요. 새로운 한[…]

김참, 「아득한 거리」
/ 2022-02-10
이혜미, 「빛멍」

      이혜미 ┃「빛멍」을 배달하며       빛에 멍이 든다는 것. “환한 것에도 상처”를 입는다는 것. 곰곰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오래 전 선물 받은 그림 한 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이 그림은 네모난 액자에 고이 들은 것은 아니었고 캔버스도 아니었습니다. 그해 우리는 카페에 앉아 있었지요. 유리창 너머에는 맑게 개인 하늘이 있었고 그 아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는 노트를 펴고 가방에서 펜을 꺼내 눈 앞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풍경을 담은 환한 그림. 이내 그는 노트의 페이지를 주욱 찢어 제게 건냈습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그날의 날짜를 함께 적어주었습니다. 저는[…]

이혜미, 「빛멍」
/ 2022-01-27
유혜빈, 「미주의 노래」

      유혜빈 ┃「미주의 노래」을 배달하며       마음의 소리는 어떤 것일까요. 말이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요. 말 없는 순간에도 우리는 마음을 전하거나 읽을 수 있으니까요. 모국어로 삼아 구사할 수 있는 말이 서로 달라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알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 끝에 도달한 결론, 아마 마음의 소리는 웃음이나 울음 혹은 노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일까요. 왜 마음먹기도 전에 들어차 있을까요. 이렇게나 가깝고도 먼 것일까요.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이길래 누구는 볼 수 있고[…]

유혜빈, 「미주의 노래」
/ 2022-01-13
박철, 「김포행 막차」

      박철 ┃「김포행 막차」을 배달하며       늦은 밤, 마지막 배차 순서의 버스가 달리는 풍경이 선연하게 그려집니다. 버스 안에 혼자 남아 있던 손님까지 목적지에 잘 도착한 것이고요. 그 손님은 이내 골목 끝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손님이라는 존재를 시간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이 작품의 의미는 한결 넓어집니다. 그동안 기쁘지 않은 시간만큼 울었고요. 슬프지 않은 시간만큼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막차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손님이 없지만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 버스를 운전하는 한 사람이 핸들을 꼭 쥐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힘든 일도 많고 사랑도 많았던 지난 시간들을[…]

박철, 「김포행 막차」
/ 2021-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