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 「서시」

      김정환 ┃「서시」을 배달하며       서시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책에는 서시가 적혀 있습니다. 시집에서 머리말 역할을 하는 시를 우리는 서시라고 부르니까요. 물론 꼭 시집이 아니어도 짧게 쓰인 책의 서문은 종종 시처럼 읽히니까요. 시인이나 작가들이 합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으로 서시는 자기 반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반성인 동시에 다짐의 글이 되기도 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1957년 「서시」를 쓰며 “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尖端)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라며 반성했고 시인 민영은 역시 「서시」라는 시에서 “나 혼자 남으리라 남아서 깊은 산 산새처럼 노래를 부르리라 긴 밤을[…]

김정환, 「서시」
/ 2021-12-02
현택훈, 「캠프파이어」

      현택훈 ┃「캠프파이어」을 배달하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한번씩 번갈아가며 문장의 앞뒤 주어를 바꿔 말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야영지는 바닷가였지”라고 적은 뒤에 “바닷가는 우리의 야영지였지”라 적고, “파도 소리가 못다 한 이야기를 데리고 갔네”라는 문장 다음에는 “못다 한 이야기는 파도 소리가 데리고 갔네” 이렇게 다시 앞뒤를 바꿉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말과 글은 순서를 바꾼다고 해서 의미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간혹 도치법(倒置法)처럼 강조의 의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은연중 사용하는 말의 순서에는 미세한 마음의 결이 드러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이 춥다, 보고 싶어’라는 문장이 ‘보고 싶어, 날이[…]

현택훈, 「캠프파이어」
/ 2021-11-18
이창기, 「心境(심경)12- 허수아비」

    이창기 ┃ 「心境(심경)12- 허수아비」을 배달하며       그를 보았습니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스치듯 바라본 모습이지만 늘 입던 잠바와 자주 쓰던 색 바랜 모자, 그가 분명합니다. 몇 해 전 화투놀이 끝에 사이가 요원해진 친구.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은 이 서먹하고 먼 마음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버스를 멈춰 세웁니다. 서둘러 내립니다. 조금 전 지나온 길을 되돌아 밭고랑 사이를 건너 친구에게 향합니다. 이 순간 작품 속 인물에게는 무슨 생각들이 스쳐 지났을까요. 어떤 말들을 내려 앉혔다가 다시 날려보냈을까요.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냐고 운을 뗄까요? 오래 전 격조했던 일을 두고 사과를 할까요. 아니면 이[…]

이창기, 「心境(심경)12- 허수아비」
/ 2021-11-04
박은지, 「생존 수영」

      박은지 ┃「생존 수영」을 배달하며       자유형이나 평영 접영 배영 등 다른 수영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특정한 지점까지 최대한 빨리 도착하거나 더 멀리 헤치고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머무는 것. 다급함 없이 최소한의 힘을 쓰는 것. 숨을 쉬는 것. 그러다 여력이 닿으면 누구를 도울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생존 수영의 목표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눕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고는 숨을 뱉었다가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생존 수영은 “별일 아니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 수영법이 꼭 사는 법처럼 생각됩니다. 빠르게 헤치고 나아갈 힘도 남아 있지 않고, 내가 닿아야[…]

박은지, 「생존 수영」
/ 2021-10-21
신용목, 「밤」

      신용목 ┃「밤」을 배달하며       저녁의 시간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부터가 저녁이며, 또 언제까지를 저녁이라 할 것인가? 하는 조금 쓸데없는 물음에서 시작이 된 말들이었습니다. 제 친구는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 저녁의 시작이며, 더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을 때가 저녁의 끝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저녁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먹는다면 누구와 먹을지 고민을 하는 순간부터 저녁이 시작되며, 밥을 다 먹고서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두었을 때쯤 저녁이 끝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각자 내어놓은 답의 우열을 가를 필요는 없었지만, 재미삼아 사전에서 저녁이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녁;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사전적[…]

신용목, 「밤」
/ 2021-10-07
장석남, 「별의 감옥」

      장석남 ┃「별의 감옥」을 배달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부탁을 받았습니다. 2학기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소개하면 좋을 시를 한 편 추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저는 밝고 진취적인 의미를 담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다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이미 희망적인 감정의 자극에 지쳐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제가 학생이던 시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어떤 시를 소개해주시면 좋을까? 하고요. 시의 전문이 다 눈에 들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시의 전문이 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인[…]

장석남, 「별의 감옥」
/ 2021-09-23
최정례, 「가물가물 불빛」

      최정례 ┃「가물가물 불빛」을 배달하며       사랑은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관계의 죽음이든 육체의 죽음이든 별리(別利)는 그간 나눈 모든 것들을 땅속 깊이 묻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곳에서도 사랑의 시간은 다른 형태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당신과 이젠 끝이다 생각”한 이후에도 한동안 불빛이 펄럭이는 것처럼. 사위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것들로 가득한 와중에서도 썩지 않는 어금니 하나가 반짝 빛을 내는 것처럼.     이 작은 빛은 또 얼마나 유구한 시간을 혼자 헤매게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모든 것들 위로 “새풀”이 돋고 “삐죽삐죽 솟고 무성해”지는 때가 분명히 온다는 사실입니다.[…]

최정례, 「가물가물 불빛」
/ 2021-09-09
신대철,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

      신대철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를 배달하며       저는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싫어한다고 표현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무서워합니다. 납량(納涼)이라는 말도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후터분한 여름날에도 이런 서늘함과 떨림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덥고 늘어지는 게 낫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것들은 하나같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신(神)이나 영혼(靈魂)라는 것이 그렇고 믿음(信)이나 영원(永遠)도 그렇지요. 존재하는데 내가 못 보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혹은 너무 멀리 있어서 안 보이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는 인간의 습성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두운 바다가 보이지 않으니까[…]

신대철,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
/ 2021-08-26
김소월, 「왕십리」

      김소월 ┃「왕십리」를 배달하며       소월 이전의 현대시인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의 시집 『진달래꽃』이 세상에 나온 것이 1925년이니 사실상 현대시의 처음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소월은 제가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이렇게 시작되는 소월의 시는 오래 전 저를 재우던 자장가였다고 합니다.     소월은 1902년에 태어난 사람이고 김정식이라는 본명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1934년 스스로 삶을 내려둡니다. 그가 시를 통해 내보이는 정서를 우리 민족 특유의 한(恨)이라 배웠지만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소월은 스스로 가질 수 있을 만큼의 한으로[…]

김소월, 「왕십리」
/ 2021-08-12
김영승, 「반성 673」

      김영승 ┃「반성 673」을 배달하며       식구를 밖에서 만나는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지만 만났을 때 공연히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 서럽다는 말에는 애틋하다 애처롭다 가엽다 미안하다라는 마음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아울러 반가우면서도 난처하며 동시에 근원을 알 수 없는 화도 조금은 섞여드는 것일 테고요. 그렇게나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었는데 왜 택시는 안 타고 버스를 타고 온 것인지, 번번이 밥때를 놓치고 다니는 것인지, 이제 그 옷은 그만 입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아직도 그 외투를 입는 것인지. 이런 물음들도 치밀어오릅니다. 하지만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그냥 웃고[…]

김영승, 「반성 673」
/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