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원, 「불펜의 시간」 중에서

    김유원 ┃「불펜의 시간」을 배달하며       야구를 잘 모르지만 친구를 따라 야구장에 가본 적 있습니다. 응원하는 무리에 섞여 타자가 친 공이 떠오르는 걸 지켜보노라니, 야구는 공이 그리는 아름다운 포물선을 보기 위한 경기가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파울볼이나 뜬공을 보는 것도 좋더라고요. 아무래도 야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딱히 응원하는 팀이 없어서 해본 생각이겠지요. 프로 스포츠니까 당연히 야구는 승부를 내야만 합니다. 이긴 팀이 있으면 지는 팀이 있고, 동점이 되면 연장전에 돌입해서라도 승패를 결정 짓습니다. 당황스럽게도 주인공 혁오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피하고자 일부러 볼넷을 던져왔습니다. 남들은 선발투수가 되고 싶어하지만 혁오는[…]

김유원, 「불펜의 시간」 중에서
/ 2021-10-14
박은지, 「생존 수영」

      박은지 ┃「생존 수영」을 배달하며       자유형이나 평영 접영 배영 등 다른 수영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특정한 지점까지 최대한 빨리 도착하거나 더 멀리 헤치고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머무는 것. 다급함 없이 최소한의 힘을 쓰는 것. 숨을 쉬는 것. 그러다 여력이 닿으면 누구를 도울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생존 수영의 목표입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눕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고는 숨을 뱉었다가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생존 수영은 “별일 아니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 수영법이 꼭 사는 법처럼 생각됩니다. 빠르게 헤치고 나아갈 힘도 남아 있지 않고, 내가 닿아야[…]

박은지, 「생존 수영」
/ 2021-10-21
신용목, 「밤」

      신용목 ┃「밤」을 배달하며       저녁의 시간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언제부터가 저녁이며, 또 언제까지를 저녁이라 할 것인가? 하는 조금 쓸데없는 물음에서 시작이 된 말들이었습니다. 제 친구는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 저녁의 시작이며, 더는 어두워질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을 때가 저녁의 끝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저녁밥으로 무엇을 먹을지, 먹는다면 누구와 먹을지 고민을 하는 순간부터 저녁이 시작되며, 밥을 다 먹고서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두었을 때쯤 저녁이 끝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각자 내어놓은 답의 우열을 가를 필요는 없었지만, 재미삼아 사전에서 저녁이라는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저녁; 해가 질 무렵부터 밤이 되기까지의 사이.’ 사전적[…]

신용목, 「밤」
/ 2021-10-07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중에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를 배달하며       이 작품은 원제인 'Time and again'을 ‘번번이’라고 번역해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번번이’는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될 때 사용하는 부사입니다. 빈도를 나타내는 말이면 ‘여러 번’도 있고 ‘매번’이나 '몇 번이고'도 있는데, 어째서 ‘번번이’를 제목으로 삼았을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를 참고하면 이 말에는 '약속을 번번이 어기다'나 '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다'와 같이 어떤 일의 실패가 되풀이된다는 뉘앙스가 담긴 듯 합니다. 여러 부사 중에서 어째서 ‘번번이'를 제목으로 삼았을지 작품을 읽으면서 짐작해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좋은 소설은 여러 말의 뉘앙스 차이를 발견하게 해주니까요.     이 소설에는 연쇄살인범이 나옵니다.[…]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번번이」 중에서
/ 2021-09-30
장석남, 「별의 감옥」

      장석남 ┃「별의 감옥」을 배달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전 부탁을 받았습니다. 2학기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소개하면 좋을 시를 한 편 추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저는 밝고 진취적인 의미를 담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다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이미 희망적인 감정의 자극에 지쳐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제가 학생이던 시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첫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어떤 시를 소개해주시면 좋을까? 하고요. 시의 전문이 다 눈에 들어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시의 전문이 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전체적인[…]

장석남, 「별의 감옥」
/ 2021-09-23
최유안, 「보통 맛」 중에서

      최유안 「보통 맛」을 배달하며       누군가의 후배일 때, 우리는 자주 ‘그런 선배’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치졸하게 굴고 쉽게 잔소리하고 싫은 말을 참지 않는 사람이 대개는 ‘그런 선배’가 되지요. 하지만 일단 선배가 되고 나면 속 좁게 굴기는 너무 쉽습니다. 어느새 후배의 못마땅한 점이 눈에 많이 띄고, 내가 저 나이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자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 매사 지적하고 싶은 것이 많아집니다. 그런 마음을 힘겹게 눌러 참거나, 참지 못하고 화를 낸 후에는 한없이 씁쓸해지기 마련입니다. 나 역시 어느새 그저 ‘그런 선배’가 되어버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

최유안, 「보통 맛」 중에서
/ 2021-09-16
최정례, 「가물가물 불빛」

      최정례 ┃「가물가물 불빛」을 배달하며       사랑은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관계의 죽음이든 육체의 죽음이든 별리(別利)는 그간 나눈 모든 것들을 땅속 깊이 묻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이곳에서도 사랑의 시간은 다른 형태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당신과 이젠 끝이다 생각”한 이후에도 한동안 불빛이 펄럭이는 것처럼. 사위고 쓰러지고 무너지는 것들로 가득한 와중에서도 썩지 않는 어금니 하나가 반짝 빛을 내는 것처럼.     이 작은 빛은 또 얼마나 유구한 시간을 혼자 헤매게 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모든 것들 위로 “새풀”이 돋고 “삐죽삐죽 솟고 무성해”지는 때가 분명히 온다는 사실입니다.[…]

최정례, 「가물가물 불빛」
/ 2021-09-09
강태식, 「영원히 빌리의 것」 중에서

      강태식 「영원히 빌리의 것」을 배달하며       어렸을 때 이런 상상을 해보신 적 있을 겁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먼 친척이 세상을 떠나면서 막대한 유산을 남기는 상상이요. 만화나 동화에서 익숙하게 봐온 설정이지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망상에 가깝지만, 인생이 따분하게 여겨지거나 지금의 삶 너머를 꿈꿀 때면 흔히 빠져드는 몽상이기도 합니다.     만약 유산으로 물려받는 게 행성이라면 어떨까요. 어두컴컴한 밤하늘 사진을 한참 들여다봐야만 겨우 존재를 드러내는 행성이 바로 내 것이라면요. 사실 그건 유산이 전혀 없다는 말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리로 갈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고 현금으로 바꿔 빵을[…]

강태식, 「영원히 빌리의 것」 중에서
/ 2021-09-02
신대철,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

      신대철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를 배달하며       저는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합니다. 싫어한다고 표현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무서워합니다. 납량(納涼)이라는 말도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후터분한 여름날에도 이런 서늘함과 떨림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덥고 늘어지는 게 낫습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것들은 하나같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신(神)이나 영혼(靈魂)라는 것이 그렇고 믿음(信)이나 영원(永遠)도 그렇지요. 존재하는데 내가 못 보는 것인지 존재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혹은 너무 멀리 있어서 안 보이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만을 신뢰하는 인간의 습성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두운 바다가 보이지 않으니까[…]

신대철, 「반딧불 하나 내려보낼까요?」
/ 2021-08-26
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 중에서

      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를 배달하며       다른 사람의 직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종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얘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그것이 ‘먹고 사는’ 일과 관련된 분투이기 때문이겠지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노가다’라고 부르는 건설업 종사자가 쓴 건설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루 일당이 얼마인지 하는 것부터 인력 사무소 소장에게 떼어주는 수수료, 건설 현장의 각종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까지, 실제로 해당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들 기술을 배우라고 하는 건설 현장에서, 그 중에서도 돈[…]

송주홍, 「노가다 칸타빌레」 중에서
/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