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서, 「실뜨기놀이」 중에서

    박형서 「실뜨기놀이」를 배달하며       가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소설을 있습니다. 제겐 박형서의 많은 소설이 그런 경우인데요, 이번엔 국내 최초로 달라이라마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의정부 가능동에 살고 있던 어린 아들 성범수가 만약 환생한 16대 달라이라마라면? 그래서 그 아이를 티베트로 보내야 한다면? 부모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또 그렇게 아들을 보내고 나면 부모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언젠가 박형서 작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야 하고, 말이 되어야 하고, 의미심장해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환생한 달라이라마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렇게 믿을 만하게, 또 마지막엔 이다지도 가슴 먹먹하게 쓴 것을 보니 자신의 말에 책임을[…]

박형서, 「실뜨기놀이」 중에서
/ 2020-12-24
황인찬 , 「법원」

      황인찬 ┃「법원」을 배달하며       할머니의 세월을 생각해본다. 아침마다 양동이에 쥐덫을 빠뜨리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할머니. 죄를 지으면 저곳으로 가야 한다고, 언덕 위의 법원을 가리키던 할머니. 일상의 잔혹에는 무감각하고 권력의 상징에는 공포심을 내면화한 영혼, 그것은 근대사와 현대사가 훈육하고 길들인 우리의 영혼이다. 그러나 쉿, 법원이라는 이름의 상징 권력에 포획되면, 물에 빠진 쥐처럼 버둥거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런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던 세월이 있었다. 근대사의 유령 같은 그 세월의 그늘 속에서 우리는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의 정세 속에서 다시 베스트셀러로 회귀한 까뮈의[…]

황인찬 , 「법원」
/ 2020-12-17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중에서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를 배달하며       전염병과 함께 한해가 다 지나갔습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고 변했지만, 계층에 따라 자리에 따라 그 체감이 다르게 다가온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 2020년 2월, 처음으로 ‘새경프라자 304호’에 월세 계약을 하고 자영업을 시작한 한 여성이 있습니다. ‘나리공방’ 천연 비누와 캔들을 직접 만들고 제작하는 공방이지요. 마음 단단히 먹고 공방을 시작했는데, 바로 그 무렵 감염병 위기 경보가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된 것이죠. 그렇다고 이 소설이 단순히 자영업의 어려움이나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소설의 결을 쭉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어려움과 위기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최은미, 「여기 우리 마주」 중에서
/ 2020-12-10
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

      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를 배달하며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난 네가 좋다”라는 말, 그 말이 참 좋다. 열두 살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말이다. 네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우르르 넘어지는 볼링핀처럼” 기꺼이 내 울타리를 치우고 네게로 활짝 열렸다. 그때 나는 네가 좋아서 나도 모르게 너의 글씨체로 노트를 채우는 아이가 되었지. 너에게 나를 다 빌려줄 수 있어. 그렇게 너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빵빵한 시절이었는데, 너는 홀연히 이 풍경에 검은 구멍을 내고 사라져버렸어. 오늘은 보고 싶은 내 친구에게 너의 글씨체로 “안녕, 친구”라고 인사를 건네며 편지를 쓴다. 너의 글씨체처럼[…]

신해욱, 「보고 싶은 친구에게」
/ 2020-12-03
한정현,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한정현 「오늘의 일기예보」를 배달하며       소설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요? 종종 혼자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당장 소설이 사라진다고 해도 별 문제는 없지 않을까? 소설이 사라진다고 해서 모두의 소득이나 건강, 명예나 기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그래도 소설이 잘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기억’이죠. 특히 보잘 것 없어서 잊혀지고, 잊어버리고 싶어 잊어버린, 작고 연약하고 이름 없는 것들을 떠올리는데 선수입니다. 소설가 한정현의 첫 소설집은 그런 기억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모두 대문자 역사에서 누락된 소수자들의 이야기죠. 애도되지 못한 존재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 생각이 오갈[…]

한정현, 「오늘의 일기예보」 중에서
/ 2020-11-26
김사인 , 「달팽이」

      김사인 ┃「달팽이」을 배달하며       “귓속이 늘 궁금했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감을 수 없다. 잠이 찾아오면 눈은 스르르 감기지만,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귀는 활짝 열려 있다. 그러니까 내 의식에 닿지 않은 말과 온갖 소리들이 귀에는 닿았다. 잠든 사람 앞에서라면 어떤 고백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잠든 사람 앞에서라야 어떤 비밀은 꽁꽁 묶어두었던 보자기를 살며시 풀어볼 것이다. 잠든 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하는 말은 혼자 하는 말과 어떻게 다른가. 잠든 사람의 귓속에 공기분자의 파동을 일으키는 말은 혼잣말보다 덜 외로울까. 그것은 대화일까, 독백일까. 언젠가 잠든[…]

김사인 , 「달팽이」
/ 2020-11-19
기준영, 『들소』 중에서

    기준영 「들소」를 배달하며       때론 문장만으로도 탄복하게 되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에겐 기준영의 소설들이 그러한데,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문장이 작가의 손을 떠난 것’만 같은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이 단편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소설의 화자는 초등학생인 ‘고푸름’. 현재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녀죠. 그들 모녀가 거의 공짜로 세들어 살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는 오래전 둘째딸을 잃어버린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무용을 했던 이에스더. 열여섯 살에 스위스에서 실종된, 할머니의 둘째딸 이름이 이에스더입니다. 고푸름은 할머니 앞에서 딱 한 번 이에스더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길우도 되어봅니다. 내가[…]

기준영, 『들소』 중에서
/ 2020-11-12
김언희, 「트렁크」

      김언희 ┃「트렁크」를 배달하며       나는 이따금 은밀하게 이런 꿈을 꾼다. 거대한 가방이 필요한 긴 여행을 떠난다.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다. 커다랗고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느라 나는 점점 지친다. 그러다가 나는 가방의 크기를 줄여나가게 된다. 차츰 몸피가 졸아 들어가던 가방이 마침내 한 점 빛처럼 사라지는 곳에서 나는 과거를 전생처럼 끊고 새로운 내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내가 살아가는 곳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깨면 언제나 거대한 가방은 남아 있다. 커다란 트렁크처럼 “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렇게 무거운” 나는 “수취거부로 반송되어져” 있다. 버려도 버려도 버려지지[…]

김언희, 「트렁크」
/ 2020-11-05
김홍, 『스모킹 오레오』 중에서

    김홍 『스모킹 오레오』 를 배달하며       한 가지 스포일러를 미리 말하자면, 저 위 문장에 등장하는 정아는 죽습니다. 그것도 누군가가 발사한 총알에 맞아 죽고 말죠. 정아는 늘 걱정을 안고 살던 친구입니다. 골든레트리버가 자신을 물을까 걱정하고, 화재가 일어날까 걱정하고, 자신의 아이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질까 봐, 교통사고를 당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리고 그 전전긍긍에서 벗어나고자 매주 30만 원을 내고 의사와 상담합니다. 30만 원어치의 안심을 얻는 것이죠. 한데, 저 의사의 말이 좀 이상하진 않나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안심을 주는 말이라곤 하지만, 어쩐지 자꾸 그런 일을 예감하게 만드는 말[…]

김홍, 『스모킹 오레오』 중에서
/ 2020-10-29
이장욱, 「두번째 강물」

      이장욱 ┃「두번째 강물」을 배달하며       때로 나는 내가 강가에 사는 사람 같아. 가벼운 저녁 산책을 나왔다가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저토록 성실하게 강물은 흘러가는데 내 얇은 그림자는 흐르지 않지. 그럴 때면 전생이나 후생의 메아리마냥 “나는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있네” 라고 노래 부르게 되지. 어제 신문을 오늘 오후에 읽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듯이 내일 신문을 오늘 아침에 읽었어.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늦은 저녁상을 차릴 거야. 식탁 위에 물 글씨를 쓰는데, 이곳은 너무 깊어 아직도 바닥에 닿질 않는구나. 그래도 우리는[…]

이장욱, 「두번째 강물」
/ 202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