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기 산책
- 작성일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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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기 산책
남수우
해진 천막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그곳은 막 잠에서 깬 눈꺼풀 같을 거야
일어나 보니 모두 끝이 나 있는
빈집들이 이어진 비탈을 따라 걷다가
네가 도착하면 그곳엔
정오의 빛과 갈색 얼룩 고양이
고무 대야 뚜껑 위에 멈춰 있어
네가 뒤집어쓴 입술이 말을 그치고야
발견된 낮잠이었지
깨진 유리 조각들이
네 발아래 흩어져 있을 거야
소리 죽여 고양이를 바라보면
갈빛 옆구리가 느리게 오르내리고
이상하지, 호흡처럼 끝이 없고
영원 같은 잠시
문득 너는 입구를 찾아 두리번거릴 거야
아무도 아니기 위한 뒷걸음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해
네가 빠져나가는 그늘
네가 빠져나가는 정오의 빛
네가 빠져나가는 갈빛 옆구리
다시 돌아간다 해도
만져 볼 수 없는 잠으로부터 너는
*
어느 날 찬비를 맞으며 고양이는 깨어나고
우산이란 낱말은
그곳에선 아무도 모르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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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수우
- 202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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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수우
- 202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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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수우
- 2021-07-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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