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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부분

  • 작성일 2024-09-01
  • 조회수 746

   아주 작은 부분

 

구현우

 

   선반에는 한 바구니 귤이 있고 그러나 이는 단지 정물이다. 지금은 겨울이 아니므로. 무감하게 본다.

 

   보리차를 마신다 목을 축이는 정도로. 한 모금만 혀 밑에 머금고 가만있으면 어쩐지 오늘은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사인용 식탁에 일인분이 되지 않는 샐러드를 둔다. 나는 네가 있을 적에도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했고 혼자 남아서도 하나밖에 안 되는 마음을 소분하곤 한다.

 

   점심을 거른 이유는 그저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동안 네가 나눠준 것에 대해 곱씹었다. 정오의 나른함 같은 것을. 나는 그것을 여태 아껴 먹고 있다.

 

   아몬드 세 알을 입에 넣고 이후에 할일을 생각했다. 열두 시가 되면 오늘이 끝난다는 것을 나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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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연차 김용희 늦게 잤더니 아침 일찍 변덕이 깨었다 변명을 궁리 감기 두통 몸살 엄살을 보태 반장에게 전화를 한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변명 아닌 병명을 읊는다 나약한 몸이라 다행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부품이라서 조연이라 어렵지 않게 시간을 벌었다 늦잠을 자고 브런치를 먹고 오늘은 종일 흐리다 했는데 하늘은 맑고 빗나간 예보처럼 사람의 미래도 빗나갈 수 있을까? 공원을 산책하며 비타민 D 챙기기 시간 소비하기 행복한 강아지 훔쳐보기 공장의 소음 대신 새소리가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허기는 금방 찾아오고 갈증을 느낀 적은 오래인데 싫증을 느낀 적은 너무 많은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온갖 고난을 겪다 웃으며 주인공이 죽는 영화를 보고 영화의 분위기를 옮겨 놓은 어둠 깔린 거리를 걸으며 오늘 하루의 평점을 매겨 본다 가로등과 가로수의 호의를 받으며 앞으로 걷는 사람들과 앞으로 나아가는 중 일은 연차가 쌓여 수월해졌는데 사는 건 연차가 쌓여도 여유 없는 건 무슨 연유일까? 포장해 온 저녁을 먹고 넘치는 포장 용기를 분리하고 포장되지 않은 나를 보는 건 너무 불편하단 생각 잃어버린 용기를 찾는 방법은 어디서 알 수 있을까? 감기 두통 몸살 오늘의 변명에 창의력 하나 없는 게 씁쓸한 아픔 설 연휴까지 연차 없이 열심히 일해야지 다짐은 늘 갱신되지만 의무는 아니다 오늘은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생각은 방과 거실을 오가며 허밍을 하고 불면이란 증상은 왜 아직도 변명처럼 들리는지 늘 성실한 밤과 아침에 물어볼 수 없어 뒤척이며 이불을 찼다 덮었다 하며

  • 관리자
  • 2025-05-01
호수

호수 김용희 너는 투명한 피부를 지녔다. 맑고 투명한. 호수 옆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났다. 집이 아닌 숙소를 안식처라 불렀다. 우리는. 늦은 아침을 만들어 먹고 이른 저녁을 챙겼다. 음식보다 이야기가 풍성한 식탁에서. 왼손으로 든 젓가락은 실패를 거듭하며 엑스를 그렸다. 웃으며 실패의 맛을 알아 갔다. 시간이 나면(시간은 늘 우릴 바라보지만) 호수를 돌았다. 그럴 때면 시간은 시골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고. 호수엔 오리가 있어 단조로운 풍경은 흩어졌다. 흐물흐물한 수초 사이 물속으로 들어간 오리가 오래 나오지 않아 걸음을 멈춘 적이 있었다. 중심으로부터 퍼지던 원호가 사라질 때까지. 오리는 어떻게 된 걸까? 혼자 있던 오리였다. 물속으로 사라지던 오리발의 가는 떨림.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니 평온한 오후의 한때처럼 보였다. 아직 찬바람이 불고 창백한 낮달이 자릴 지키던. 번성한 뭉게구름이 북쪽으로 그늘을 옮기고 있었다. 덩굴식물이 한 벽면을 집어삼킨 안식처로 돌아오고. 측광이 부드럽게 네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바라봤다. 입을 꾹 다문 채 잠이 든. 금빛이었다. 책장의 사전에서 창백함과 투명함을 찾아보고. 고요한 정물의 방식으로 회복기를 가졌다. 풍요로운 적요가 낮을 흐르고 풀벌레의 울음이 수놓는 밤을 지났다. 여러 날. 장을 보러 언덕을 찾았다. 천천히 오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 오래 기억하려 했다. 포장이 화려한 와인을 사 들고 와 느슨한 분위기를 깨웠다. 사용하지 않는 벽난로에 양초 여러 개를 놓아두고 불을 붙였다. 발화하는 향내가 실내를 맴돌았다.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명랑한 소리가 실내로 쏟아지고 있었다. 호수는 범람하지 않았다. 우산살이 부러진 우산이 현관을 지켰다. 인공눈물을 넣으며 코믹 영화를 봤다. 경화되는 영혼을 위해. 끝난 후부터 새로 시작되는 영화가 있지. 문이 닫히지 않은 채. 신발만 가지런히 놓인. 호수 옆에 우두커니 머문 적이 있었다. 아침이면 젖은 안개가 찾아오는.

  • 관리자
  • 2025-05-01
밤의 경비병

밤의 경비병 여성민 나는 한두 사람의 시인입니다 독자가 많지는 않아요 그래도 밤에는 책상에 앉아 이모저모 씁니다 계속 써 쓰면 물질이 돼 밤의 경비병이라는 말은 당신이 해 준 말입니다 당신은 나를 속였습니다 그 이후로 나는 높은 곳에 올라 죽음에 이르러야 내려오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은 공기에 가깝군요 나는 밤의 북 속에 앉아 있군요 북소리는 들리지 않아요 손이 북에 닿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밤하늘에는 인간의 손이 닿았던 자리도 있습니다 북이 닳은 곳 인류가 손으로 두드린 은하수라는 말 농담이지만 빛을 따라 인류가 이동했다는 설과 인류를 따라 빛이 이동한다는 믿음 중 하나는 진실입니다 그것을 인류의 시간이라 부릅니다 빛무리로 몰려다니는 마음 그 마음을 써요 죽으면 어느 날의 저녁이 되겠다고 씁니다 하루만 인간의 저녁으로 머물며 당신을 보겠다고 쓴 후 인간의 저녁은 물질이 됩니다 동방박사처럼 북 속을 걸었습니다 거대한 북 속에서 북을 향해 걸었습니다

  • 관리자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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