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부분
- 작성일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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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부분
구현우
선반에는 한 바구니 귤이 있고 그러나 이는 단지 정물이다. 지금은 겨울이 아니므로. 무감하게 본다.
보리차를 마신다 목을 축이는 정도로. 한 모금만 혀 밑에 머금고 가만있으면 어쩐지 오늘은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사인용 식탁에 일인분이 되지 않는 샐러드를 둔다. 나는 네가 있을 적에도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했고 혼자 남아서도 하나밖에 안 되는 마음을 소분하곤 한다.
점심을 거른 이유는 그저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는 동안 네가 나눠준 것에 대해 곱씹었다. 정오의 나른함 같은 것을. 나는 그것을 여태 아껴 먹고 있다.
아몬드 세 알을 입에 넣고 이후에 할일을 생각했다. 열두 시가 되면 오늘이 끝난다는 것을 나는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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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비문증 신혜정 눈, 코, 입을 지우고 얼굴을 떠올립니다 막대기를 넘어뜨리지 않기 위해 주변을 없애는 모래놀이 바다를 하얗게 떠 놓은 달 국자 한가운데가 텅 비었습니다 빈 곳을 그리기 위해 가장자리를 떠올립니다 그것은 일테면 사건의 지평선 배경을 그리면 부재가 완성되는 복숭아가 있던 정물 달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 시간을 하얗게 떠올려보는 것입니다
- 관리자
- 2024-11-01
편지 - 에필로그 신혜정 서쪽으로만 뜨는 해가 있습니다 서쪽으로 져서 서쪽으로만 뜨는 당신의 반대 방향으로만 눕고 반대 방향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이 지고 뜬눈으로 당신이 떠오르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이드미러의 붉은 신호등처럼 지나치는 의미 없는 시그널들을 놓지 못하였습니다 그림자가 해 쪽으로 조금 기울었고 나는 눈이 조금 멀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도는 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 관리자
- 2024-11-01
불쑥 맹재범 냉장고 깊숙이 마음이 있다면 남은 반찬을 다 먹고 나서야 꺼낼 수 있을까 오늘은 그냥 봄쑥을 캐러 간다 문밖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척하는 계절이 봄쑥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너무 좋으면 울어버리는 버릇이 있고 내가 사랑한 것들은 울음 앞에서 돌아서는 버릇이 있다 냉장고 안에는 먹다 남은 것들로 가득하지만 가끔 봄처럼 금방 녹아버리는 4월의 눈처럼 더 깊숙이 넣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잘 버무려서 쪄낸 쑥 한 줌을 접시에 담아두고 너에겐 돌아섰다가 다시 돌아오는 버릇이 있었지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할 저녁을 차리며 냉장고를 열면 완전히 익어버린 마음 하나가 쑤욱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 관리자
- 2024-11-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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