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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주

  • 작성일 2018-04-01

마리아주

조동범


당신의 반지는 모든 약속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불현듯 사랑이 시작되는 것처럼, 잊을 수 없을 미래는 어느덧 펼쳐집니까. 예언서에 당신의 음성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신성의 모든 날들은 오늘을 예비하고자 당신을 기원합니다.


나는 당신의 음성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전의 기억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문을 열면 나와 당신의 배후는 보다 선명해지려 합니다. 당신의 배후로부터 상류는 비롯되고,


나의 배후는 어느새 바다를 예비하려고 합니다. 기착지마다 폭풍은 몰려오고 사라지고, 종착지를 향하는 길목마다 짝을 이룬 기쁨과 슬픔, 평화와 갈등은 그러나 하나의 영토 안에서


세계의 모든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기차역의 지붕으로부터 당신의 어깨는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려 합니다. 그리하여 한 잔의 포도주와 식사는 이제


예정된 길을 따라 둥지로 날아가는 한 쌍의 새가 되기 시작합니다. 결혼식의 당신들이 서로의 손을 잡을 때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아침 해는 이윽고 밝아 오기 시작합니까. 아니면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과거는 완성됩니까. 어느덧 비가 오면 우산은 펼쳐지고, 눈이 내리는 곳에서 지평선은 이제 공중과 하나의 몸이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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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므두셀라

므두셀라 조동범 공포가 들려오면 당신은 어느 곳으로 사라지려 합니까. 당신의 음성이 나의 심장을 파고들 때. 세계의 모든 종말과 신파는 그러나 아름답습니까. 신성은 무너지고, 당신의 주치의는 믿을 수 없는 모든 맹세를 책망하려 합니다. 쥐덫에 묶여 있는 것은 절망입니까.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어느 날의 치명입니까. 모든 것은 잊힐 거라는 나의 음성은 당신을 위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춘천의 안개입니까. 안개는 어느새 사라집니까. 안개의 너머에서 박하의 향은 어느덧 당신을 흐느끼려 합니다. 당신은 신성의 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리하여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것은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사랑의 파국입니까. 당신은 이제 세상의 모든 추모와 이별을 흐느끼려 합니다. 당신의 심장을 어루만지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원죄의 밤을 추모하려 합니다. 그것은 죄책의 밤입니까.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완성입니까. 세계의 모든 신성이 무너지고, 당신은 이제 씻을 수 없는 상처입니다. 그리하여 토요일과 일요일의 연인들은 이별을 예감하고, 그것은 이제 그 어떤 아름다움을 흐느끼려 합니까.

  • 조동범
  • 2018-04-01

문장웹진

刑 外

刑 조동범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환하게 타오르는 석양 아래의 교수(絞首)를 천천히 어루만진다. 산은 깊고, 봄은 무심했다. 선명한 직선에 매달린 한 줌 삶이, 허공이 되어버린 바닥을 내려 보며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불고, 허방을 디딘 다리가 가만히 흔들린다. 적막한 바람을 따라, 다리는 비로소 몸통의 무게로부터 놓인다. 모든 것은 고요했고, 다만 한 모금 갈증이 아쉬웠다. 죽음은 그저, 오래도록 지루했다. 팽팽하게 매달린 죽음을 위해 세상의 모든 하늘과, 바람과, 별의 이야기가 섬뜩했다. 신발은 단정하고, 석양을 향해 모든 절망은 평화로웠다. 바람이 불고, 죽은 자를 위한 기도가 성스럽게 울려 퍼졌다. 바람을 따라 햇살이 잠시, 아름다웠다. 허방을 사이에 두고 그림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눈물을 흘렸다. 그림자의 눈물이 아득한 바닥을 향해 절실했으나 허방을 딛고 다리는, 비로소 외로웠다. 바람이 불고, 죽음은 허방을 향해 한없이 단정했다. 선명한 직선에 매달린 두려움이 잠시 눈물을 흘렸지만, 그저 한 모금의 갈증이 아쉬웠다. 바람이 분다. 깊은 산의 텅 빈 허공을 향해, 유령처럼 선명한 바람이 분다.

  • 조동범
  • 2010-04-30

문장웹진

평일의 제복

평일의 제복 조동범 그녀는 제복에 담겨 눈이 내린 길의 끝을 가늠해본다. 길의 끝에는 굴뚝새 한 마리가 작고 환한 얼음 속으로 날아가고 있을까. 그녀는 눈을 감고 눈 속을 헤치는 굴뚝새의 먹먹한 구멍을 생각한다. 구멍의 내부는 온통 단단한 얼음뿐이다. 그녀는 손을 뻗어 구멍의 입구를 어루만진다. 허름하게, 눈이 내린다. 제복에 담긴 그녀는 엄숙해보였지만 엄숙한 일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검은 제복의 그녀는 아름답고 매끄러운 손가락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손가락처럼 가지런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보잘 것 없는 날들을 위해 바쳐진 평일의 제복이 그녀의 손을 따라 팽팽하게 당겨졌다. 제복의 날 선 모서리가 폭설을 향해 창백하게 빛났다. 평일의 제복 위로 눈이, 내린다. 눈은 하얗게 쌓이며 성큼성큼 그녀의 흔적을 지운다. 눈 내리는 허름한 하늘 속으로 그녀의 검은 눈망울이 들어선다. 그녀의 발자국 위로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그녀의 저녁이 평화로운 폭설 속으로 사라지고, 그녀는 창가에 도사린 서늘한 경계를 바라본다. 바람이 유리창에 가늘고 긴 흔적을 남긴다. 상투적인 일상에 걸터앉아 그녀는, 평화로운 유리 너머의 폭설을 바라보고 있다. 순백의 눈이 선명한 궤적을 그으며 무심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폭설에 담긴 굴뚝새 한 마리가 힘겹게 순백의 눈 너머로 사라진다. 그녀는 단단한 침엽의 팔을 뻗어 굴뚝새의 구멍을 더듬는다. 제복에 담긴 날카로운 침엽의 끝이 서글프게 얼어붙는다. 눈이 내린다. 침엽의 끝을 지나쳐 눈이 내린다. 그녀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허름하게, 눈이 내린다.

  • 조동범
  • 2008-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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