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고도 찐득한
- 작성일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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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작고도 찐득한
전예진
나는 작년 가을에 태어났다. 세진이 막 취업 준비를 시작한, 피딱지의 말처럼 영 좋지 않은 시기였다. 오른쪽 코 안쪽에 몸을 늘어트린 피딱지는 세진이 한동안 코 파기를 멈춘 시절을 전설처럼 이야기했다. 피딱지의 말에 따르면 세진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코 파는 습관을 고쳤다. 고등학생 때 밤샘 공부를 하다 가끔,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코를 후비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자주는 아니었다. 코 파는 습관은 세진의 대학 졸업과 함께 다시 찾아왔다. 학창 시절보다 3밀리미터 더 기른 무자비한 새끼손톱과 함께.
우리 중 누구도 피딱지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알지 못했다. 피딱지는 세진의 손길에 조금씩 뜯어졌지만, 남은 손으로 피와 이물질을 그러안아 매번 되살아났다. 피딱지는 말하기를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촐싹거리며 점막을 두들겨댔다. 우리는 점막을 타고 울리는 피딱지의 말을 들었다. 피할 길이 없으니 듣는 수밖에 없었다.
무릇 코딱지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 실린 먼지와 세균을 거르며 생겨나는 존재다, 이 말이야. 이 한몸 바쳐 비강을 지키는 역할이라는 거지. 그러려면 세진의 몸과 마음에 들어오는 이물질을 걸러 줘야 해. 공기에 바이러스가 있다? 그럼 잡아야지. 세진이 악몽을 꾼다? 그것 또한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일이야.
피딱지는 사람의 목소리도 낼 수 있었다. 비강 안쪽을 향해 소리치면 세진은 잘못 들은 소리나 이명 정도로 생각하고 애꿎은 귀를 후볐다. 기껏해야 늦었으니 일어나라, 자전거 조심해라, 같은 짧은 말에 불과했지만, 어쨌거나 코딱지가 말을 한다니 얼마나 놀랄 일인가. 적어도 막 태어난 나에게는 코 아래 입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엔 혀가 돌아다닌다는 말만큼이나 놀라웠다. 피딱지는 심지어 아주 희미하지만 냄새도 맡는다고 했다. 콧속에 오래 살면 그럴 수 있다고,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듯이 오래 버텨낸 코딱지는 냄새를 맡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피딱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또 들었다. 피딱지가 하는 모든 말이 흥미로웠다. 그러다 몇 번의 대학살을 겪었다. 친하게 지내던 코딱지들이 몇 초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즈음 나는 더 이상 아주 작은 코딱지가 아니었고 피딱지의 말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노인의 잔소리로 들렸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피딱지는 말했다. 삶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작고 그럼에도 또 중요한 존재인지.
그날 오후 피딱지는 새끼손톱에 뜯겨 나갔고 그 말은 피딱지의 유언이 되었다.
세상을 떠난 많은 코딱지들처럼 나도 몇 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다른 이들이 쫓겨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콧구멍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코털에 맺힌 먼지와 이물질을 싸잡아 몸집도 불렸다. 마침내 콧구멍과 비갑개 사이, 그러니까 콧구멍 가장 안쪽 천장에 자리 잡았을 때쯤 내 몸은 우리의 숙적 새끼손톱보다 두 배는 컸다. 어느새 나는 오른쪽 콧구멍에서 가장 크고 오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코끝에 붙은 조그만 햇병아리들이나 코털에 매달려 흐늘거리는 녀석들이 초롱 같은 눈으로 비결을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둠에 매달려 입을 다물었다. 그게 내가 살아남은 방법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며 세진에 대해서도 아는 것들이 생겼다. 세진은 청소도, 환기도 잘하지 않았다. 원룸 바닥에는 먼지와 머리카락, 과자 부스러기가 뒹굴었고 좁은 부엌에 널브러진 라면 봉지, 빈 참치 캔, 색색의 빵 봉지도 잘 버리지 않았다. 옛날 애니메이션, 특히 빵과 개가 나오는 만화 영화를 좋아했고 한번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지 못했으며 나지막한 혼잣말을 자주 했다.
코끝에 사는 코딱지들은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반기를 덧없이 보낸 세진이 작년에 이어 두 번째 하반기 취업을 준비할 즈음에는 코 밖을 내다보며 세진의 일상을 중계하는 코딱지도 생겼다. 코끝 구석에 붙은 쌀알만 한 코딱지는 정중하고도 열정적으로 점막을 두드렸다.
지난주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서류 전형 발표가 있겠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기업인데요. 연봉도 높고 복지도 좋은 S기업입니다.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세진이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S기업 채용 사이트를 눌렀고요, 결과 보기를 누릅니다! 아아,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다들 코털을 꽉 붙잡으셔야겠습니다. 몇 초 뒤 콧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은 K기업 면접날입니다. 세진이 서류를 합격한 두 기업 중 한 곳이죠. 기업 문화는 조금 경직되어 있지만, 연봉 인상 속도와 고용 안정성이 높다고 합니다. 세진이 정장을 입었습니다. 일교차가 커서 코 풀 확률이 높겠는데요. 과연 이번에도 합격할 수 있을지. 행운을 빌어 봅니다.
어제 다들 괜찮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왼쪽 콧구멍에 계신 여러분도 들리시지요? 들리면 모두 점막을 두드려 주세요. 함성에 감사드립니다. 엇, 지금 막 세진이 L기업 채용 사이트에 들어갔습니다. K기업 면접에서 떨어지면서 이제 남은 기업은 L기업 하나인데요. 과연 1차 면접에 합격했을지. 아, 여러분, 합격, 합격입니다! 보름 뒤 2차 면접이 있다고 하네요.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L기업은 연봉이 높지도, 안정적이거나 사내 복지가 좋지도 않았지만, 합격 문구를 본 세진은 크게 환호했다. 손꼽아 가고 싶던 기업은 아니었지만, 이제 갈 수 있는 곳은 L기업뿐이었다. 세진은 뒤늦게 L기업 취업 스터디를 나갔다. 지원할 때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정독하고 L기업의 주력 제품인 양산 빵에 대해 공부하며 면접을 준비했다.
콧속은 난리가 났다. 세진의 합격 소식은 대-코파기 시대가 끝나리라는 희망과 다를 바 없었다. 신이 난 코딱지들은 코털에서 뛰어내려 방방 뛰는가 하면 몸을 코 벽에 문지르며 자축하기도 했다. 웅크린 채 구석에 틀어박힌 코딱지는 나뿐이었다. 오랜 경험으로 나는 들뜨기엔 아직 이르다는 걸 알았다.
최종 면접까지 십여 일이 남은 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세진의 코에 바이러스가 들어왔다. 비갑개로 넘어가는 바이러스를 느낀 나는 고개를 들고 들뜬 코딱지들을 쳐다봤다. 잠긴 목을 고르고 코딱지의 본분에 대해 한마디 해주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바이러스야 가끔 콧구멍을 넘어가기도 하고 대부분은 면역 세포에게 잡아먹히기 마련이었다.
이틀 뒤 세진의 몸에 열이 오르고 콧구멍으로 맑은 콧물이 흘러내렸다. 하비갑개가 부풀어 비강 너머로 들어가는 공기가 막혔고 콧물의 양이 점점 늘어났다. 코를 훌쩍이던 세진이 재채기하자 코끝에 고인 콧물이 인중으로 늘어졌다. 세진은 휴지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코를 풀고 또 풀었다. 콧물과 함께 많은 코딱지가 밖으로 밀려 나갔다.
지금······ 세진이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검색하고 있습니다. 용케 살아남은 쌀알만 한 코딱지가 중얼거렸다. 코딱지의 목소리는 한풀 꺾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약을 받았네요. 인스턴트 죽을 전자레인지에 돌립니다. 아아, 다시 휴지를 집어 드네요. 다들 꽉 잡으셔야겠습니다. 휴지를 뜯어 맙니다. 콧구멍에 꽂으려나 봐요. 보도를 하던 코딱지가 콧방울 안쪽에 몸을 붙여 코로 들어오는 휴지를 피했다. 기둥처럼 말린 휴지가 내 아래까지 들어왔다. 콧속에 들어찬 콧물이 서서히 휴지를 적셨고 바삭거리던 휴지가 흐물흐물해졌다.
콧물 미쳤네. 이 정도면 코에 뭐 있는 거 아니야? 세진이 코맹맹이 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다가 손을 모았다. 뭐든 간에, 제발 콧물만 멈춰 주세요. 콧구멍에 휴지를 꽂은 채로 면접을 보러 갈 순 없잖아.
세진의 콧물은 점점 누렇고 찐득해졌다. 세진은 코를 풀고 휴지를 감싼 새끼손가락으로 콧구멍을 긁었다. 며칠이 지나자 세진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콧물은 다시 투명하게 돌아왔고 양도 적당해졌다.
문제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더 이상 코가 흐르지 않는데도 세진은 자꾸만 공기를 들이켰다. 빨래를 널다가도, 밥을 푸거나 달걀 프라이를 만들다가도 코를 킁킁거렸다. 두 콧구멍 사이가 오그라들며 공기가 비강 안쪽으로 확 빨려 올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 들어오는 바람은 점점 거세졌다. 점막에 달라붙은 내 몸이 돌풍에 마구 흔들릴 정도였다.
쌀알에서 보리알 정도로 몸집이 커진 코끝 구석의 코딱지는 몸을 파르르 떨며 말을 아꼈다. 축제는 진작 끝났고 살아남은 코딱지들은 눈알을 뒤룩 굴리며 서로 눈치만 봤다.
콧구멍으로 들어오던 빛이 마스크에 가려 사라지고 곧 병원 공기가 코로 들어왔다.
냄새가 안 나요. 세진이 다리를 떨며 말했다.
잠깐 코 좀 볼게요. 의사의 말과 함께 콧속으로 모두를 녹일 듯한 빛과 차가운 기구가 들어왔다.
감기 후유증으로 일시적인 후각 장애가 발생하기도 해요. 의사가 말했다. 보통은 하루에서 사흘 사이에 저절로 돌아오니까 우선 푹 쉬고 만약에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냄새가 안 난다, 그러면 다시 오세요.
사흘이나 걸려요? 저 다음 주에 면접 보는데.
면접? 취업 면접이요? 에이, 냄새 못 맡는다고 면접 망치지 않아요. 의사가 여유롭게 말했다.
아니, 냄새를 못 맡으면 면접을 망칠 수도 있었다. 콧속의 모든 존재와 세진은 그 사실을 알았다. 코끝 구석의 코딱지가 몇 번이고 떠들던 대로, L기업의 2차 면접에는 관능검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검사는 L기업 제품의 맛과 향을 재현한 샘플을 주고 지원자가 그를 구분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지원자의 미각과 후각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관심을 측정하는 테스트였다.
세진은 면접 준비를 멈추고 온종일 후각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콧대와 콧방울을 문지르며 후각에 좋다는 혈을 지압했고 집에 있는 음식과 샴푸, 치약을 동원하여 후각 훈련도 했다. 마침내 인터넷에 뜨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본 세진이 새끼손가락을 들었다.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로 다리를 떨며 코 벽과 바닥을 긁었고 손가락에 묻은 코딱지를 휴지로 닦았다.
아아, 여러분. 지금 세진이 잡은 휴지에 코딱지가 한가득입니다. 너무나 슬픈 장면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손가락이 다시 들어오고 있는데요. 모쪼록 모두 몸을 납작 숙이고 저 무자비한 손톱을 피해······.
코끝 구석에 붙은 코딱지는 결국 마지막 말을 다 뱉지 못하고 코를 떠났다.
세진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좀처럼 들어오지 않던 코 깊숙한 곳까지 손톱을 뻗었다. 뾰족한 손톱이 내 몸에 닿더니 몸과 점막 사이로 쑥 들어왔다. 점막에 붙어 있던 내 몸의 반이 떨어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점막에 몸을 맞댔다. 손톱이 사라지더니 잠시 뒤 멀끔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안 돼.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 생을 마감할 수 없었다. 점막 위에서 방방 뛰거나 벽에 몸을 문질러 마사지한 적도 없고 콧물 후룸라이드도 타보지 못했는데. 눈을 감기에는 해보지 못한 게 너무 많았다.
잠, 잠깐만요.
세진의 새끼손톱이 뜯어진 내 몸과 점막 사이를 파고들었다.
제발 후비지 마세요!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비강 안쪽과 그 너머의 유스타키오관, 고막을 향해. 절 떼지 않으면 뭐든 도와드릴게요.
세진의 손가락이 멈췄다. 손톱이 콧속을 빠져나갔다.
뭐야? 세진이 중얼거리며 귀구슬을 눌렀다가 뗐고 귓구멍을 문질렀다. 귀에서 이는 진동에 비강이 조금씩 흔들렸다. 세진의 손가락이 다시 콧구멍으로 들어왔다.
저예요. 세진 님 코에 남은 유일한 코딱지. 제가 말한 거예요. 내가 말했다. 곧 면접을 보셔야 하잖아요. 제가 도울 수 있어요.
세진이 손가락을 빼고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콧구멍에 갖다 댔다. 세진이 콧구멍을 한껏 넓히는 바람에 구멍 밖 거울이 보였다.
아잇, 눈부셔.
내 목소리에 세진이 멍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놨다. 세진이 내 존재를 받아들이려 애쓰는 동안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태어나 지금까지 들은 말, 사소하거나 허무맹랑한 모든 이야기를 긁어모았다.
내가 미쳤나. 세진이 중얼거렸다.
미치다니요. 기억 안 나세요? 전에 제발 콧물만 멈춰 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때 제가 감기도 낫게 해드렸는데.
세진의 감기는 세진이 낫기를 빌어 치료된 게 아니었고 당연히 내 덕도 아니었지만, 살고자 하면 못 할 말이 없었다.
코딱지가······ 감기를? 세진이 혼잣말처럼 물었다.
그럼요. 저는 세진 님 콧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여러 능력이 있답니다. 마치 어, 요정처럼요.
세진이 입을 다물고 콧대와 콧방울을 눌렀다. 좁아진 코 벽이 내 몸을 짓눌렀다.
아니, 세진 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나는 다급히 벽을 밀어내며 말했다. 콧속에 대대로 전해 오는 이야기 중에 한 코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코딱지는 냄새를 맡게 된다는 말이 있어요. 제가 세진 님을 도와드릴게요.
하다 하다 냄새까지 맡는다고. 세진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나보다 낫네. 코딱지가 나보다 나아.
에이, 이번 면접만 어떻게 넘기면 되는 거죠. 세진 님 후각은 곧 돌아올 거예요. 저를 믿어 보세요.
세진이 무심코 내가 있는 오른쪽 콧구멍을 후비려다 손가락을 왼쪽으로 옮겼다. 속수무책으로 뜯겨 나가 휴지에 떨어지는 왼쪽 코딱지들을 보며 나는 황급히 다음 말을 고민했다. 우선 세진이 코를 파는 걸 막아야 했다.
간단한 의식만 하면 돼요. 가슴에 손을 얹고 코를 후비거나 풀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의식이에요. 코딱지의 신에게 노여움을 살 수도 있거든요. 당연히 저도 떼면 안 되고요.
코딱지의 신?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콧김에 몸을 움츠렸지만, 마음을 다잡고 말을 이었다.
저희 코딱지가 말을 하고 살아 있는 건 다 코딱지의 신 덕분이거든요.
내 평생 코딱지의 신이라고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진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라 중얼거리다가 탄식을 뱉고는 다시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나는 하늘로 떠난 피딱지에게 감사하며 그가 후각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덧붙이던 말을 되새겼다.
코딱지가 냄새를 맡으려면 말이야, 최대한 비강을 파고 들어가야 해. 가늘게 몸을 뻗어서 아주 일부분이라도 안쪽 천장에 대고 비비는 거지. 그러고는 잽싸게 빠져나와. 콧구멍으로 돌아오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자칫하다 잘못 디디면 목구멍으로 떨어지는 거야. 식도에 녹아서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고.
피딱지는 피가 덕지덕지 낀 생김새만큼이나 살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했다. 나는 잠시 피딱지에 대한 그리움에 잠겼다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세진이 모르게 비갑개 쪽으로 들어갔다 나올 시간을 벌어야 했다. 내가 비강 안쪽에 들어가리란 사실을 알면 세진은 반사적으로 코나 목구멍에 힘을 줄 테니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다. 나는 쌀알, 아니 보리알만 하던 코끝 코딱지가 전해 주던 정보를 하나둘 떠올려 후각을 부르는 의식을 지어냈다.
세진은 내 말을 듣고 한참 다리를 떨다가 이내 커튼을 치고 불을 껐다. 먼지가 쌓인 상자에서 언젠가 선물 받은 향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분홍색 마카롱 모양 향초로, 세진의 원룸에 있는 유일한 초였다. 세진이 손바람을 부쳐 향초에서 피어오르는 공기를 코로 보냈다.
나 최세진은 2차 면접이 끝나기 전까지 코를 후비거나 풀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코딱지의 신이시여 제 오른쪽 콧구멍에 있는 유일한 코딱지가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냥 제 후각을 돌려주시면 더 좋고요.
세진이 엉터리 의식을 하는 동안 나는 서둘러 비갑개로 움직였다. 몸을 구부리고 비틀며 점막을 기었고 후비갑개와 중비갑개를 스쳐 상비갑개 위로 손을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손끝에 점액이 닿았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있는 힘껏 몸을 펴고 미친 듯이 점액을 문질렀다. 코딱지에게 신이란 없겠지만, 그래도 그 비슷한 것이 있다면 제발 나에게 힘을 주세요.
세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입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비갑개에 이는 진동과 입에서 올라오는 소리로 보아 보통 재채기가 아니었다. 서둘러 콧구멍으로 기어 나갔다. 내 짧은 생애에 그렇게 빨리 움직인 건 처음이었지만, 코털이나 점막을 움켜쥐기도 전에 거센 콧바람이 불어왔다. 콧속의 모든 존재를 쓸어버릴 듯한 바람이었다. 바람에 휘감긴 몸이 속절없이 나부꼈다. 이렇게 끝이구나. 눈을 감고 온몸에 힘을 뺐다. 피딱지와 쌀알, 아니 보리알만 하던 코딱지처럼 나도 코에서 쫓겨나 말라 갈 터였다.
몸에 굵직한 기둥이 닿았다. 코털이었다. 웅대하고 사랑스러운 코털. 나는 털을 꽉 안고 몸을 단단히 붙였다. 코딱지는 코로 들어오는 공기에 실린 먼지와 세균을 거르며 생겨나는 존재다, 이 말이야. 이 한몸 바쳐 비강을 지키는 역할이라는 거지. 피딱지가 입만 열면 하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니까 냄새만 맡게 해주면 내가 세진을 도와주겠다고요. 휘몰아치는 바람을 피해 텅 빈 콧구멍에 대고 중얼거렸다.
콧물과 코털 한 가닥이 밖으로 튕겨 나가고 바람이 잦아들었다. 콧구멍 앞으로 다가온 세진의 손가락이 빛을 가렸다.
어어, 내가 소리쳤다. 안 파기로 약속했는데.
아, 미안. 세진이 코끝을 문질렀다. 재채기가 나와서.
바로 그때 나는 코딱지 생 처음으로 냄새를 느꼈다. 피딱지가 그렇게 말해도 와 닿지 않던 감각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알던 세계처럼 나를 사로잡았다. 냄새는 어렵거나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공기에 실린 입자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되는 현상이었다. 달고 향긋한 냄새가 내게 밀려들었다. 작고 붉은 과일이 떠오르다가 뭔가 타들어가는 형체가 과일을 덮었다.
단 냄새가 나요. 내가 말했다.
단 냄새? 세진이 물었다.
세진에게 내가 맡은 냄새를 설명하자 세진이 마카롱 모양 향초가 담겨 있던 상자를 찾아 제품 설명을 확인했다.
라즈베리, 크랜베리에 라벤더 향. 뭐야? 너 이거 본 거 아니야?
세진의 의심에도 나는 밀려드는 온갖 냄새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는 물론이고 점막과 코털에서도 냄새가 났다.
냄새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후각을 얻는 과정에서 냄새에 얽힌 세진의 기억과 감정, 단어까지 내게 전해진 것 같았다. 되찾은 기억처럼 익숙하고도 낯선 세계가 내 안에 있었다.
세진의 안내를 따라 집 곳곳의 냄새를 익혔다. 단번에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맡아도 모르겠는 것도 있었다. 세진에게 냄새를 묘사하며 무엇이냐고 물으면 세진은 대체로 냄새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지 못했다. 이건 침대야, 머리빗이야, 세탁기야, 옷 널어 둔 거야, 빨래에서 냄새나? 싱크대에 물때가 있긴 한데, 그냥 청소기야,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껴서 그런가.
집에 고인 냄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바람에 집중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가을 냄새는 다음과 같았다. 건조한 공기에 코끝이 아프고 마른 낙엽 냄새와 시원한 바람이 높은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세진이 창문을 닫았다.
그럼 이제 면접 준비를 해보자.
감기에 걸리는 불상사를 피하고자 마스크를 쓴 채로 세진은 동네 슈퍼와 마트를 돌며 L기업에서 나온 양산 빵을 샀다. 주로 슈퍼에서 판매되어 일명 슈퍼 빵이라고 불리는 빵들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콧구멍을 가린 마스크가 벗겨지고 겉면이 울퉁불퉁한 빵이 불쑥 나타났다.
단내에 섞여 은은한 땅콩 향이 났다.
이건 소보로빵이야. 세진이 내게 말하고 소보로빵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나는 코로 들어오는 향과 목구멍에서 비강으로 올라오는 빵 냄새를 음미했다. 냄새만 맡아도 맛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빵 겉면에 붙은 소보로는 무척 달고 그 아래 씹히는 빵은 심심해 함께 먹으면 맛이 좋았다. 소보로를 씹을 때마다 세진의 입에서 설탕을 씹는 듯한 소리가 났다.
편입하고 한동안 많이 먹었는데. 세진이 입안에 남은 소보로빵을 처리하며 말했다. 지금은 아무 맛도 안 나네.
서양 복식사에 대한 막연한 흥미로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했던 세진은 대학교 2학년 때 S대 국제학과로 편입했다. 낯선 전공과목과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세진은 대학 생활을 누릴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돈은 물론이고 새로운 학과 수업을 따라가느라 시간도 늘 부족했다. 공강이 생기면 도서관에 갔다. 과제를 하고 쪽잠도 자다가 배가 고프면 도서관 꼭대기 층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에서 파는 빵 중 가장 저렴한 소보로빵을 사서 같은 층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때로는 잠이 든 학생이나 미화 직원 사이에서 빵을 먹어야 했다. 세진은 휴게실 구석 소파에 앉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비닐 포장을 뜯고 빵을 베어 먹었다.
소보로빵은 퍽퍽하고 어두운 맛, 가느다란 숨소리와 소파 가죽이 쓸리는 소리 속에서 조심스럽게 바스락거리고 씹어 삼키는 냄새.
세진이 물로 입을 헹구고 코에 손부채를 부쳤다.
다음에 나타난 빵은 작고 네모난 형태에 노란 테두리가 있었다. 짭조름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소보로빵만큼은 아니지만, 단 냄새도 났다. 치즈가 들어간 빵에 시럽을 뿌린 것 같은 향이었다.
체다치즈빵이야. 세진이 코앞에서 빵을 한 바퀴 돌리고는 먹지 않고 내려놓았다. 사실 난 치즈 들어간 빵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비슷한 가격에 양이 많아서 곧잘 사 먹었어. 학원 아르바이트할 때 시간이 애매해서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대충 끼니를 때웠거든. 이거면 배가 부르니까 왠지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기분이 들어서 자주 골랐지.
눈앞에 아이 셋이 뛰노는 작은 놀이터가 스쳐 갔다. 옆 벤치에서 들려오는 아이 부모들의 말소리. 세진은 놀이터 한쪽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빵을 씹었다.
체다치즈빵은 짭짤하고 조금 서글픈 맛,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 아이들이 깔깔대고, 우레탄 바닥으로 굴러 들어온 흙과 낙엽이 밟혀 버석거리는 소리, 아이가 엄마에게 달려가다 엎지른 보라색 주스의 달큰한 냄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진 님은 슈퍼 빵을 참 좋아하시나 봐요.
아무래도? 가성비 생각하면 슈퍼 빵만 한 게 없잖아. 먹기도 편한데 맛도 고만고만하니까 실패할 확률도 낮고.
우리는 몇 가지 빵을 더 뜯어 살펴보았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냄새와 맛이 내 안에 들어왔다.
사실 싸고 만만하니까 먹는 거지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 세진이 불쑥 말했다. 지원서 넣으려고 보니까 슈퍼 빵 얘기는 할 수 있겠더라고. 자주 먹고 잘 아니까.
여러 가지 빵 냄새를 맡으며 내 후각은 빠른 속도로 깊고 섬세해졌다. 나는 양산 빵이 아닌 음식을, 갇혀 있지 않은 공기를 갈구하며 아쉬운 대로 세진의 집에서 나는 온갖 냄새를 빨아들였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운 세진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봤을 때요. 세진 님이 냄새를 못 맡는 이유는 몸보다는 마음에 있는 것 같아요. 후각은 기억과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거든요.
아, 예. 그러세요. 세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성적으로 접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뭐랄까 감정적인, 세진 님 마음에 닿는 해결책이 있을 거예요.
코딱지 주제에, 쫑알거리지 말고 그만 좀 잘래?
에이, 코딱지가 왜요. 저희는 공기에 실린 이물질을 거르는 과정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존재, 온 힘을 다해 세진 님을 지킨다고요.
세진이 크게 하품하자 콧속이 넓어지고 점액이 조금 불어났다.
네가 내 코에서 얼마나 살았는지는 몰라도 세상에 그렇게 낭만적으로 이루어지는 소원은 없어. 집도 밥도 이력서 내용도 다 돈이야. 일단 돈을 많이 벌어야 해.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세진은 입속말을 웅얼거리다 이내 잠들었다. 나는 새근거리는 세진의 코 구석구석을 탐험했다. 점액에 몸을 비비고 콧구멍을 누비며 방방 뛰기도 했다. 코털을 밧줄처럼 타고 코 안쪽으로 올라갔다가 콧물에 미끄러져 내려왔다. 세진의 코와 침실에 퍼진 입자를 느끼며 밤새 달라지는 냄새를 학습했다. 단어와 감정, 기억과 장면들이 나를 감싸고 온몸으로 가지를 뻗어 나갔다.
세진이 양산 빵을 가장 많이 먹은 시기는 고등학생 때였다. 세진은 공부에 대한 보상처럼 빵을 뜯어 먹었고 그 안에 든 설탕의 맛을 즐겼다.
고등학생 때 내가 먹은 매점 빵만 계산해도 직장인 한 달 월급 나올걸. 세진이 초코롤의 포장지를 뜯으며 말했다.
콧구멍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포장지만 봐도 매점 입구와 동그란 테이블이 떠올랐다. 학생들에게 밴 카레와 김치 냄새, 햄버거를 데우는 전자레인지 소리.
원래 먹던 건 다른 회사 제품이긴 한데 그건 단종됐더라. 세진이 초코롤을 한 입 베어 물었다. L사 초코롤은 크림이 좀 느끼해.
세진이 얇은 케이크시트와 초코칩을 씹는 동안 나는 그녀의 기억 속 초코롤의 맛을 돌이켰다. 생각보다 적은 크림에 아쉽다가도 우유를 머금으면 입안에 달라붙은 시트가 녹아 진한 단맛을 냈다.
고등학교 때 매번 슈크림 빵만 먹는 애 있었는데. 세진이 말했다. 학교 매점에서 파는 슈크림 빵 진짜 맛없었는데 걔는 그걸 먹어야 배가 든든하다고 하더라. 야자 시간만 되면 걔랑 몰래 옥상에 올라가서 빵을 먹었는데 안 들키려고 빵 봉지를 미리 주머니에 넣고 소리 안 나게 잡고 있었어. 올라가서는 조금이라도 야자 더 째려고 새 모이만큼씩 뜯어 먹고. 왜 그랬나 몰라. 그러고 뭐 했더라? 그냥 밤하늘 보면서 우리 나중에는 되게 잘나가고 있겠지, 그랬던 것 같아. 수능 보고 대학 가면, 살도 빠지고 애인도 생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거야, 그러면서.
초코롤과 슈크림 빵은 조금 헛갈렸다. 동네에 슈크림 빵을 파는 곳이 없어 세진의 말과 기억으로만 그 향을 돌이켜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반팔 체육복, 밤공기, 옥상으로 들어가는 문손잡이의 냄새가 한 장면처럼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문제집이 든 사물함, 교실 창문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 여름의 운동장, 나무 그늘의 냄새도 그랬다. 초코와 슈크림은 구분이 되어야 하는 향 같은데. 나는 세진에게 내일은 슈크림 빵을 꼭 구해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당연하지. 며칠 계속해야 돼. 세진이 초조하게 말했다. 못 구한 빵이 많아.
허겁지겁 찢은 포장에서 종이로 받친 피자빵이 나왔다. 냉동된 빵에서는 거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세진이 코를 바싹 갖다 대니 그제야 빵에 배어든 소스 향이 났다. 희미한 냄새에도 젖은 골판지 같은 식감이 느껴졌다.
세진이 피자빵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이 빵은 원래 다른 이름으로 나오던 빵이었는데 최근에 이름을 바꿔서 다시 나왔어. 나 고등학교 때만 해도 보기 힘들었고 우리 동네에서는 구립도서관 매점에만 있었어. 거기 매점 아저씨가 되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삶에 찌든 어른인데 그 당시엔 좀 재수 없었지.
덥힌 피자빵의 말라붙은 치즈에서 은은한 단내가 올라왔다. 뭉그러진 빵에는 치즈와 소스 외에 다른 토핑은 없었다. 세진이 피자빵을 한가득 입에 넣었다.
치즈와 빵에서 나오는 기름과 소스의 매운 향이 섞여 혀끝이 아리면서도 달고 고소한 맛이 돌았다. 나는 어느새 세진과 한몸이 되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충분히 좋은 맛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새로운 맛이었다.
하루는 나랑 친구가 도서관 매점에서 피자빵을 데우면서 아, 공부하기 싫다, 그랬거든. 근데 매점 아저씨가 되게 안쓰러워하는 얼굴로, 힘들지? 물어 보는 거야. 그래서 네, 그랬지. 그랬더니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대학 가면 안 힘들 것 같지?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
나는 당시 세진이 맡았던 냄새뿐만 아니라 도서관 지하의 풍경, 분위기, 식당에서 매점까지 흐르고 나뉘는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식판이 긁히고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 쓰레기통 속 샌드위치 포장지에서 나는 딸기잼과 으깬 달걀 냄새, 사면이 막힌 채 작은 구멍 하나가 뚫린 매점과 그 앞에 진열된 낱개 과자들.
참, 웃기는 아저씨였어. 만날 테이블에 반쯤 엎드려 가지고. 웃기고 지친 아저씨였지.
세진과 나는 며칠에 걸쳐 빵을 사고 냄새를 맡고 먹었다. 내 후각은 하루가 다르게 예민하고 촘촘해졌다. 양산 빵은 더 이상 내게 새로움을 안겨 주지 못했다. 내 목표는 세진의 면접 합격이 아니었다. 그저 양산 빵말고 다른 빵의 냄새를 맡아 보는 것, 막 구워진 빵 껍질의 고소한 냄새와 촉촉한 속살의 깊은 풍미로 내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줄 그런 빵을 만나는 일이었다.
L기업에서 나오는 양산 빵 대부분을 학습한 뒤 세진은 인터넷 후기를 참고해 모의 관능검사를 준비했다. 물론 실제와 똑같지는 않았다. 면접 때 쓰는 시료를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었으니까. 세진은 마스크로 코를 가린 채 L기업의 양산 빵 몇 종을 잘라 접시에 놓고 구멍 뚫린 종이컵을 씌웠다. 후각 검사를 위한 시료 외에도 미각 검사를 위해 설탕과 소금의 농도를 다르게 탄 물도 여러 잔 준비했다.
나는 별생각이 없었다. 익숙한 냄새에 둘러싸여 또 다른 익숙한 냄새를 맡아야 한다니. 만약 내게 코와 손가락이 있다면 심드렁한 얼굴로 누워 코를 후비고 코딱지를 튕겨냈을 터였다. 코딱지 입장에서는 조금 잔인한 풍경이지만, 나는 더 이상 보통 코딱지가 아니었으니까.
단 냄새가 나요. 달고, 초코인가? 아니다 슈크림? 단내가 나는 빵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버터 향도 조금 나네요.
세진은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내게 질문을 이어 갔다. 나를 다그치며 냄새는 물론 맛도 나지 않는 시료를 헤아려 보다가 이내 풀이 죽었다. 시료를 받고 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뿐더러 이대로라면 콧구멍에 대고 혼잣말하는 이상한 지원자가 될 게 분명했다.
면접날까지 더 연습하면 될 거예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아니면 세진 님의 후각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도 있고요.
세진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드렸잖아요.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나는 갓 나온 빵의 온기와 풍미를 상상했다. 비록 내게 넘어온 세진의 기억을 헤집고 쥐어짜야 겨우 흐릿한 감각이 떠오를 뿐이었지만.
감정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냥 면접 잘 봐서 빨리 취업하고 싶어. 세진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돈 벌어서 집에 생활비도 보태고 주변에 밥도 사고, 여유 생기면 괜찮은 카페나 식당도 좀 가고······.
그거네요! 나는 점잖은 말투를 유지하는 것도 잊고 코 바닥을 방방 뛰었다. 세진의 1차 합격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던 작은 코딱지들이 생각났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 짜릿한 쾌감이 몸을 감쌌다.
그동안 세진 님은 면접을 준비하느라고 슈퍼 빵만 먹었잖아요. 그전에는 라면이랑 간계밥이 주식이었고. 퍽퍽한 인생에 퍽퍽한 음식만 먹다 보니까 후각도 메마른 걸지 몰라요. 이참에 유명한 베이커리에 가볼까요? 어차피 빵이니까 면접에서 써먹을 수도 있잖아요.
베이커리?
마가린이나 합성향료 넣은 빵말고 가게에서 직접 만든 빵을 먹는 거죠. 얼마나 좋아요.
세진은 오랜만에 신경 써서 외출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 슈퍼나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닌, 넓고 분위기 있는 베이커리 카페에 가는 일은 내가 태어난 뒤로 처음이었다.
카페로 들어가자 세진이 마스크를 벗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커피와 차, 빵 내음을 정신없이 흡입했다. 사방에서 새로운 냄새가 달려들어 온몸을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전시된 빵 앞에 섰을 때는 제각기 다른 맛을 상상하느라 모서리가 곤두섰고 접시에 담긴 소금빵과 아메리카노가 나온 뒤에는 없는 침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소금빵. 이게 소금빵이구나. 머리가 팽팽 돌았다. 소금 알갱이로 녹인 버터가 빵에 스며든 듯한 냄새가 났다.
세진이 소금빵의 양끝을 잡고 찢자 가느다란 김이 올라왔다.
부드러운 향이 나를 채웠다. 녹은 버터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바위만 한 소금 알갱이를 발견해 막 그러안은 기분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세진이 좋아하는 만화 영화에서처럼 탁 트인 초원과 풀을 뜯는 소가 보이고 모자 쓴 소년이 마차를 끌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내게 눈물이 있다면 눈가에 맺힌 그것을 닦았으리라.
아무 맛도 안 나.
세진의 비강 안쪽에서 콧물이 내려왔다.
8,800원이나 썼는데.
어어, 울지 마세요. 나는 비강 안쪽에 대고 소리쳤다. 코 풀지 않기로 약속하셨잖아요.
세진이 코를 가볍게 훌쩍거리며 콧구멍 밖으로 나온 콧물을 닦았다.
남들 다 가는 카페에 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모르겠다. 이제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운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세진이 콧물을 조금 더 세게 들이마셨다.
너 말투가 좀 달라진 것 같다.
그럴 리가요. 나는 세진을 달래기 위해 코 벽을 가만가만 토닥였다.
카페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집으로 가는 골목을 걸었다. 세진은 말이 없었다. 웬일인지 혼잣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왜 하필 슈퍼 빵이에요? 내가 물었다. 가성비 좋고 적당히 맛있는 걸로 치면 다른 것도 많잖아요. 삼각김밥도 있고 컵라면도 있고.
몰라. 그냥 어렸을 때부터 슈퍼 빵을 자주 먹었어.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꼭 먹어 보고 애들한테 후기 알려주고. 애들도 뭐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 봤거든. 사기도 편하고 종류도 많고······.
세진이 마스크를 벗고 코를 긁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빵이 애 혼자 먹기 좋잖아. 학교 갔다 와서 간식으로 먹었던 것 같아. 맞아, 집에 오면 아무도 없었거든. 안방에 작은 티브이가 있었는데 평소에는 못 보게 하니까 혼자 있을 때 몰래 들어가서 봤어. 슈퍼 빵이랑 우유를 챙겨서 침대 끄트머리에 앉은 다음 티브이를 켰지. 꼭 그 시간대에는 옛날 만화가 나왔다. 강아지랑 빵이 나오는 둥글둥글한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어. 티브이에서 주인공이 빵이랑 수프를 먹을 때 나도 빵이랑 우유를 먹으면 진짜 티브이에 나오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았거든. 주인공이 풀밭이나 담요에 드러누우면 나도 침대에 눕고, 그러다 잠이 들 때도 많았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코털을 움켜쥐었다.
저녁에는 다들 집에 올 테고 그대로 잠이 든다고 크게 혼나지도 않았으니까, 마음 놓고 누워 있었어.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 침대는 늘 시원하고 포근했던 것 같아.
콧물이 줄줄 흘렀다. 세진을 멈춰야 했지만, 밀려드는 감각에 정신을 바로 차릴 수 없었다. 콧물에도 냄새가 있구나. 나는 피딱지를 떠올렸다. 이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면 피딱지조차 놀라워하겠지. 그러고는 말했을 것이다. 무릇 코딱지라 하면······.
세진 님, 때로는 지금의 나를 위해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거예요. 가족, 친구, 미래의 내가 아니라 지금 이 골목을 걷는 세진 님을 위해서요.
콧물이 불어났다.
기죽지 말아요. 제가 도와줄게요. 말했잖아요? 저는 그냥 코딱지가 아니라고.
세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고마워, 코딱지야.
콧속에 세진의 말이 울렸다. 목소리를 따라 비강 안쪽을 돌아봤다. 들려오는 말을 오롯이 담으려 눈을 감았다. 범람하는 콧물과 흔들리는 코털, 그 속에 나, 제 역할을 하고 만 코딱지.
콧물이 세진의 인중으로 흘러내렸다. 세진이 검은 맨투맨 소매로 코를 훔쳤다. 콧물이 묻지 않은 곳이 드러나게끔 소매를 접은 뒤 말릴 새도 없이 왼쪽 콧구멍을 누르고 오른쪽 코를 풀었다.
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 겪는 건조한 촉감이 몸을 옭아맸다. 맨투맨 소매는 거칠고 메마른 대지였다. 나는 주변에 묻은 콧물을 움켜쥐고 세진의 얼굴과 하늘을 올려다봤다.
세진이 나를 굽어봤다. 커다란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구멍 끝에 맺힌 콧물이 반들댔다. 킁킁. 세진이 코로 숨을 들이쉬고 이내 다시 킁킁거렸다.
몸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정신없이 움직이는 세진의 눈동자와 힘을 준 미간을 바라봤다.
냄새를 맡고 있구나.
세균이 크게 번식하지 않은 축축한 옷 냄새는 기억에 남을 만큼 새롭거나 특별하지 않았다. 눈물과 콧물에 젖은 소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세진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다.
처음 느끼는 슬픔과 경이가 나를 휘감았다.
어쩌면 냄새는 이런 순간에 비로소 생겨나는지도 몰라요. 고막과 멀리 떨어져 외치는 말이 세진에게 닿을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말했다.
세진이 코를 훌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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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2026-02-01
도래의 얼굴 최정나 한 남자가 길을 걷는다. 남자의 이름은 웅현이다. 웅현은 은행나무길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노랗게 물든 황금 터널 안에서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본다. 바람이 일자 은행잎들이 햇살을 따라 휘돌다가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웅현은 꽃잎처럼 흩날리는 노란 잎사귀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포착된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 위로도 햇살이 부서진다. 바람을 받은 잎사귀들이 다시 허공으로 번져 오르다가 방향을 살짝 틀어 다른 데로 이동한다. 웅현은 눈에 비친 풍경을 화면에 담아보려고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웅현은 얼마 전 도래와 이별했다. 그래서 길에서 스치는 사람이 모두 도래로 보인다. 도래가 홀로 걷고, 도래가 누군가와 함께 걷고,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보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내려다보고···. 도래는 출몰하듯 나타나 웅현 곁을 스쳐 지난다. 옆에 있는데도 먼 얼굴, 도래가 자신을 불러내는 건지 자신이 도래를 불러내는 건지 웅현은 알 수 없다. 이윽고 수많은 도래가 다른 사람들의 얼굴로 변한다. 도래와 함께 떠난 얼굴들, 이름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웅현은 하늘을 본다. 사랑을 놓쳤니? 황금빛 사이로 겹쳐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 있다. 왜 웃는 거지? 웅현은 누군가 보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놀림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웅현은 그들이 남겨진 자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렇더라도 역시 함께 있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을 바꾸고, 곧이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어 먹먹해진다. 나를 이해해 줘···, 도래의 마지막 말은 웅현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변형되다가 서서히 형태를 찾는다. 빛은 따뜻하고 세상은 노랗게 물들었지. 황금빛 계절이거든. 웅현이 말을 건넨다. 빛의 터널을 나오는 웅현의 눈에 그들이 비쳐 든다. 도래가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웅현의 발걸음은 더디다. 노란빛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거리는 붉은빛에 휩싸인다. 사랑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커다란 목소리가 웅현의 귓가에 닿는다. 여자는 붉게 물든 나무 아래 붉은 낙엽을 밟고 서 있다. 이어 들려오는 맞은편 남자의 웃음소리, 여자가 낙엽을 그러모아 허공에 뿌린다. 그러고는 다시 외친다. 사랑한다고! 붉은색이 그들 주위로 날아올라 빛처럼 흩어진다. 여자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소리칠 기세지만 남자는 계속 웃기만 한다. 웅현은 그들이 붉은 구체 안에 있는 듯하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나도 사랑해!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번져온다. 연인이 낯선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웅현도 소리 나는 데로 시선을 돌리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고 조금 전까지 머물러 있던 은행나무길이 보일 뿐이다. 웅현은 가벼운 듯 장난스러운 남자의 목소리를 아는 듯하다. 웅현은 도래와 함께 걷던 길을 홀로 걸으며 그녀와 함께였던 어느 날을 떠올린다. 그러자
- 관리자
- 2026-02-01
아직 이른 마음 박하신 섬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성했다. 초여름을 맞는 버드나무 녹음이 무성했고, 고속도로에 바닷가 갯강구들처럼 달라붙은 자동차 정체 행렬이 무성했고, 하늘에 모둠 지은 뭉게구름 떼가 켜켜이 무성했다. 구름으로 말하자면 경부 고속도로 운전자들의 한숨이 한데 모인 것 같은 풍성함이었고 눅진함이었다. 사이사이 파고드는 여름 볕은 쨍쨍하기만 해서 자동차 갯강구들이 아지랑이 같은 김을 뿜어내며 느릿느릿 익어 가고 있었다. 올여름 재해에 가까운 폭염이 찾아온다고 했다. 창문을 내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담배를 끊어야 할 텐데. 지난 건강검진에서 의사는 금연을 강한 어조로 권고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라디오에선 올해 메탄가스와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다시 한번 고점을 돌파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고속도로 솥단지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을 보니 이해가 안 갈 바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차도 노후 경유차라며 폐차를 권고하던데··· 때마침 창밖에서 도로변 축사 냄새가 매연에 엉킨 채 훅 끼쳤다. 과연 오존을 뚫어 버릴 것 같은 유독함이다. 이게 다 나 때문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앞차 배기의 색깔도 심상치 않다. 그래, 어차피 다 같이 찜 쪄지는 마당에 잘잘못은 논하지 말기로 하자. 이미 벌어진 일과 잃어버린 것. 재해에는 고민한들 거스를 수 없는 면이 있고 그렇기에 말 그대로 재해인 게 아닐까. 그러니까, 이건 암 같은 거다. 분명한 업보지만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건 받아들이는 편이 낫지. 그래, 평일 오전부터 고속도로에 갇혀 소들 방귀나 맡고 있게 된 것도 말하자면 재해 같은, 암 같은 소식 때문이었다. 그건 폭발에 대한 것이었다. 동선의 묘지가 폭발할 거라는 소식을 들은 건 이른 열대야에 허덕이던 어제저녁이었다. 낯선 번호로 수차례 전화가 걸려 온 것인데 상대방은 대뜸, 동선 씨 친구분 되십니까?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자 그는 자신을 매봉도 수호행동위원장이라고 간략히 소개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틀림없이 폭발합니다··· 땅속에 매설된 니트로글리세린과 질산암모늄 수천 킬로그램이··· 당신 친구의 묘지를 박살 내 버릴 거라구요···. 상대방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했다. 거대한 세력이 묘지를 파괴하기 일보 직전이라며 호소했다. 그것도 폭약을 심고 아주 섬을 통째로 날려 버린다고 했다. 그는 동선의 묘소를 지키고 싶다면 나더러 당장 매봉도로 달려오라고 촉구했다. 여기··· 당신처럼 무언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가능하면 내일까지 와 주십시오···. 불가능해도 내일까지 오십시오. 체념하지 않는다면··· 지킬 수 있습니다. 모
- 관리자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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