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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영향 아래

  • 작성일 2026-03-01

   우주의 영향 아래


임수지


   언젠가 우주에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함께 가 보자고 말한 적 있다. 거기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방을 보게 될 거야. 팅커벨은 환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화장실에 다녀오면 문 앞에서 두꺼비가 널 지키고 있을 거야. 두꺼비들은 착하다. 두꺼비들은 두껍두껍 울지 않아. 걔들이 울면 동그란 구슬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정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우주는 그곳은 꿈과 환상의 나라네, 하며 웃기도 했었는데.


*


   기사는 나를 미림슈퍼 앞에 내려 주었다.

   멀어지는 택시의 후미등을 잠시 바라보다 미림슈퍼 옆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갔다. 좁은 골목을 두 번 꺾어 집 앞에 서서는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바다 냄새가 몸속 깊이 들어왔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분명 전화를 했는데도 할머니는 정말 내가 곧장 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문을 열어 준 할머니의 짧은 파마머리가 멋대로 눌려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짜증을 조금 부리다가 곧 이불을 내어주었다. 날 밝을 때 오지, 뭐 하러 이 늦은 시간에 와.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 것 같았다. 

   보일러를 안 틀었나? 얼굴과 손발을 대충 씻고 작은방에 깔아 둔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이불이 너무 차가워서 깜짝 놀랐다. 안방에서 자는 할머니를 깨워 물어볼까 고민하는 동안 내 체온에 맞춰 이불이 천천히 데워졌다. 이불을 코까지 덮은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내가 데운 이불이 다시 나를 데우며 조금씩 따뜻해졌다. 머리맡에 놓아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눈을 감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오늘은 우주의 기일. 오늘 나는 우주의 흔적이 없는 곳에서 잠들 것이다. 


*


   우주가 내 방에 머물 때 입던 품이 큰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는 잘 개켜 종이 가방에 넣고 옷장의 가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나는 그걸 다시 꺼내 본 적 없다. 우주가 쓰던 면도기나 낡은 양말 같은 것들도 진작 정리했다. 이제 내 방에 우주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사용 기한이 지난 음식점 할인 쿠폰 같은, 우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쓸고 닦아도 계속 생겨나는 먼지처럼 어딘가에서 자꾸만 하나씩 발견되었다. 청소를 하다 그런 것들을 찾아낸 날이면 나는 자꾸만 골똘해졌다.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있다니. 

   그런데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인가? 2년이라는 시간은 하루이틀 사이에 지나가 버린 것 같기도, 사실은 하루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2년이 흘렀다고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매트리스와 벽 사이에서 영화 티켓을 발견했다. 어쩌다 여기에 티켓이. 영화 제목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다. 그날 관객은 다섯 명뿐이었다. 재미가 없는 영화인가. 영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으므로 나는 조금 민망해져서 옆에 앉은 우주에게 작게 말했다. 전세 낸 것 같고 좋은데 뭐. 우리만 있는 건 아니니 완전 전세는 아닌가. 실없는 소리를 하던 우주는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들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우주가 잠든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내가 지겨워 잠들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문화가 있는 날에 티켓값을 할인받아 보는 영화.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우주의 지갑은 항상 두툼했다. 현금이 많아서가 아니라 오래된 영수증이나 음식점 할인 쿠폰을 정리하지 않은 탓이었다. 반지갑은 언제나 입을 반쯤 벌린 상태였다. 이건 이제 못 쓰는 쿠폰이잖아. 언젠가 내가 우주의 지갑에서 사용 기한이 두 달이나 지난 할인 쿠폰을 꺼내며 말했을 때, 그거 쓰려고 한 날에 네가 속이 안 좋으니 죽을 포장해서 집으로 가자고 했었다고 우주가 답했다. 그랬나? 내가 속이 안 좋았나? 내가 어느 날을 떠올리느라 눈을 굴리고 있으니 우주가 정확히 짚어 주었다. 전날 회식 때 날것을 너무 많이 먹었다고 했어. 너 차가운 음식 잘 못 먹잖아. 

   정말이지 모든 것이 평범했다.

   함께 누워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나중에 같이 가고 싶은 외국의 여행지들을 끝말잇기 하듯 이어 말했다. 앙코르와트 사원에 가 보고 싶다. 우리 그때 봤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 남자 주인공처럼 무언가를 속삭이고 돌아와야지. 너 그때 내내 자지 않았어? 내가 묻자 우주는 아니라고, 영화 끝 무렵엔 깨어 있었다고 했다. 뭘 속삭일 건데? 우주는 누운 채로 팔짱을 꼭 끼고는 비밀이라고 했다. 나는 몸을 틀어 우주의 팔을 흔들었다. 뭔데, 뭐가 비밀인데. 우주는 푸흐흐 웃으면서도 끝내 말해 주지 않았고 나는 어쩐지 심통이 나서 너와 함께 간 여행지에서 멋있는 사람과 바람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밤 내가 숙소로 돌아오지 않는 거지. 왜냐하면 나는 진짜 멋있는 사람과 끝장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해 놓고는 정말 그럴 수 있나? 그런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의문에 빠졌던 밤. 끝장나는 시간이라는 건 무엇일까? 나는 우주의 배 위에 팔 한쪽을 걸치고 눈을 감았다. 우주는 잠결에 그러지 마······라고 했던 것 같은데. 


*


   일어났을 때 할머니는 없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려다가 안방에 들어가 할머니의 양말 한 켤레를 찾아 신었다.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날이 찼다. 

   코트를 여미고 잎맥처럼 뻗은 골목을 걸었다. 코트가 아니라 패딩을 입고 왔어야 했는데. 그런 걸 챙기는 건 언제나 우주의 몫이었다. 이렇게 덤벙거려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래. 우주가 지금 내 꼴을 보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떻게 살긴, 이렇게 살지. 고요한 시골 마을을 걸으면서. 코트 안으로 스며들어 오는 한기를 느끼면서. 나는 오늘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몇 개의 집을 지나니 곧 창고로 쓰이는 컨테이너 건물 몇 채와 정자가 보였다. 그 앞으로 펼쳐진 갯벌과 바다, 작고 동그란 섬들. 어쩌면 함께 볼 수도 있었을 풍경을 나 혼자 바라봤다. 콧물이 주룩 났다. 방에 보일러가 안 들어온 게 분명했다. 가스 요금을 아끼려고 작은방으로 연결된 밸브를 잠가 뒀겠지. 마른세수를 한 차례하고 힘을 내서 동네를 걸었다. 단층 주택들의 생김새는 모두 엇비슷했고 가끔 대문을 새로 칠한 집만 눈에 띄었다. 어떤 대문은 어제 페인트칠을 한 듯 유난히 반짝거렸다. 100년이 지나도 이대로일 것만 같은 이곳. 명절에만 도시에서 온 차로 북적거리는 이곳. 나는 명절을 피해 할머니를 보러 혼자 오곤 했다. 친척들을 만나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잘도 혼자 다닌다고 할머니는 말했었다. 나는 밥을 먹고 깨끗하고 깊은 잠을 자며 하루이틀을 보내다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 걸 우주와 함께 느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시간을 느슨한 몸으로 받아들이는 하루 같은 것.


   산책을 마치고선 부엌에서 찐 감자와 고구마가 쌓인 나무 쟁반을 보았고 그제야 허기가 느껴졌다. 쟁반째 들고나와 마루에서 고구마를 느릿느릿 씹어 먹었다. 비어 있던 속이 천천히 차올랐다.

   고구마를 세 개째 먹고 있을 때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침부터 어딜 다녀왔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저기, 라고 답하며 손가락으로 담 밖을 가리켰다. 이것 때문에. 할머니가 끌고 온 손수레에 검은 줄기 같은 게 담긴 투명한 김장 봉투가 실려 있었다. 

   이게 뭔데? 

   고사리. 

   고사리?

   고사리 때문에 갔다 왔다고.

   고사리 때문에 남의 집에 갔다 왔다고?

   내 것은 이제 없으니까. 할머니는 마루 구석에 있던 은박 돗자리를 펼쳐 말린 고사리를 그 위에 들이붓고는 비닐봉지에 세 줌씩 옮겨 담았다.

   먹었냐?

   나는 스무고개를 하는 기분으로 할머니가 묻는 것을 짐작해야만 했다.

   고구마 먹었어.

   다 식었나?

   아주 차갑던데.

   할머니는 말린 고사리를 넣은 비닐봉지를 큰 쇼핑백에 차곡차곡 담아 손수레에 다시 실었다. 

   나도 좀 먹고 가자. 

   할머니는 감자를 껍질째 베어 물었다. 이 차가운 걸 어떻게 먹었대, 하면서도 꼭꼭 씹었다. 고구마보다는 감자가 좋아. 할머니가 말했다. 고구마는 달아. 달고 성가셔. 나는 왜 고구마가 할머니에게 성가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버스 시간 됐다. 가자.

   감자 두 알을 먹은 할머니가 안방에서 무언가를 들고나왔다. 연말에 다녀간 고모가 준 것인데 한 번도 쓰지 않은, 완전히 새것이라며 목도리 하나를 내게 주었다. 나는 먼지 냄새가 나는 회색 울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고 할머니의 손수레를 끌었다. 할머니는 나보다 서너 걸음 앞에서 걸었다. 

   할머니, 어디 가는데.

   이거 보내러.

   고사리?

   그래, 고사리.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봤다. 오늘의 상품은 고사리로군. 할머니는 말린 고추며 밭미나리며 더덕 같은, 여기서 나고 자란 것들을 택배로 부쳐 친척들에게 팔곤 했다. 유통업에 재능도 있고 적성에도 맞는지 그 일을 사는 내내 쉬지 않았다. 할머니, 나 손 시려. 그제야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았다. 입고 있는 누빔 패딩의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내 내게 주었다. 

   할머니와 나는 미림슈퍼 맞은편 정류장에서 한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마을의 유일한 상점인 미림슈퍼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부탄가스와 커피믹스, 몇 종류의 라면과 과자 정도라 그 밖의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다. 시내까지는 버스로 20분 정도 걸렸다. 버스 안에는 할머니와 나뿐이었다. 나는 할머니 옆에 붙어 앉았다. 왼쪽 창으로는 바다가 멀리 희미하게 보였고 오른쪽 창으로는 비닐하우스 몇 채와 아무것도 심기지 않은 밭, 그 뒤로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도로 옆으로는 무슨 나무인지 모를 가로수가 있었고 그것들은 모두 작고 야위어 있었다. 단지 겨울이라 야윈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언젠가 봄에 왔을 때도 이 나무들을 보았었는지 잠시 궁금해하다 말았다.


   할머니와 나는 우체국 앞에서 내렸다. 할머니가 맞은편의 추위 대피소를 가리키며 내게 저기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직육면체 형태로 세운 철골에 투명 비닐을 씌워 만든 추위 대피소는 작은 온실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우체국 문까지 이어지는 경사로가 있는데도 굳이 손수레를 번쩍 들어 계단을 올랐다. 

   추위 대피소 안에는 장의자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는데 한 의자에 분홍 털모자를 쓴 할머니와 검정 털모자를 쓴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할머니들 맞은편에 앉았다. 할머니들은 보온병에 담긴 것을 나눠 마시며 나를 물끄러미 봤다.

   그런데 누구야?

   그러게, 누구야?

   저기 저 할머니 손녀예요. 나는 우체국을 가리켰다. 유리문으로 할머니의 형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과연 할머니들이 알아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두 할머니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네 손녀구만? 그 집 애기가 벌써 이렇게 컸나······. 검정 할머니가 오물거리다가 낡은 손가방에서 플라스틱 컵 하나를 꺼내 보온병에 담긴 것을 따랐다. 

   이것 좀 마셔 봐.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컵을 받았다. 컵에 담긴 것은 색이 뽀얬는데 후후 불어 마셔 보니 입안이 끈적거리고 맛이 묘했다. 

   마야, 마.

   검정 할머니가 킥킥 웃었다. 다 컸는데 마를 모르나. 나는 할머니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씩 마차를 마셨다. 

   막내는 참 강골이지? 

   분홍 할머니가 말했다. 

   자네도 강골이고 나도 강골이지. 우리 동네는 강골이 아닌 사람이 없지.

   그렇지. 공기가 좋으니까.

   공기가 좋고 땅이 비옥하니 사람이 강골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이야.

   두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말없이 마차를 마셨다. 추위 대피소 안은 공기가 전혀 통하지 않는지 숨 쉬는 게 조금 답답했다. 이곳에서 강골이 아닌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목도리를 풀어 무릎 위에 두고 마차를 홀짝였다. 마실수록 갈증이 났다. 

   그 집 장녀가 자궁암을 다 고쳤는데 폐로 전이가 돼서 죽었다네.

   검정 할머니가 말하자 분홍 할머니가 아이고 어쩌나, 하며 작게 탄식했다. 

   그게 다 고쳤다고 해도 고쳐지는 게 아니라니까. 

   장녀가 죽어서 어쩌나? 

   정신을, 응? 단단히 차리고 살아야 해. 나를 봐. 나는 담배를 평생 피워도 암에 안 걸리잖아.

   죽으면 죽지, 암에 걸리겠어? 

   분홍 할머니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나는 치매도 안 오잖아. 안 그래, 응?

   마를 먹으니까 이렇게 피부도 좋고, 응? 

   검정 할머니가 고개를 쑥 내밀어 나의 동의를 구했다. 옛날이랑 아주 똑같지? 나는 검정 할머니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뭐해? 

   추위 대피소 문을 빼꼼 연 할머니가 얼굴만 쑥 내밀었다.

   막내 맞구나! 

   분홍 할머니가 손뼉을 쳤다. 검정 할머니가 뭘 팔았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옆집 고사리를 대신 팔아 주었다고 말했다. 같은 걸 따도 그 집에서 말린 건 별로라며 검정 할머니는 혀를 찼다. 

   그런데 다들 왜 여기 계셔? 

   할머니가 할머니들에게 물었다. 시장에 갔다 왔는데, 하며 검정 할머니가 분홍 할머니를 가리켰다. 

   여기 있더라고. 

   그러게, 여기 왜 계셨어? 

   그냥 있었지, 그냥. 

   분홍 할머니가 해사하게 웃었다.

   이제 가? 

   검정 할머니가 물었다. 

   가야지. 저기 버스 오네.

   할머니가 답하자 검정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같이 가자고. 

   가장 먼저 추위 대피소의 문을 열고 나간 검정 할머니가 대피소 뒤쪽으로 가더니 손수레 하나를 끌고 왔다. 할머니의 것과 똑같이 생긴 손수레에는 샌드백 절반만 한 크기의 망 두 개가 가로로 뉘어 있었다. 

   굴을 샀어?

   굴을 샀지. 지금이 제일 맛있는데.

   뭐 한다고 이렇게나 많이 사?

   저기 내일, 새끼들이 온다잖아. 

   그렇다고 두 망이나 사는 사람이 어딨어? 장사해?

   장사는 개뿔······ 우리 집에 들렀다가 가. 나눠 줄 테니. 

   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다. 뒤돌아보니 각자 떨어져 앉은 할머니들은 입을 꾹 다물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오후의 볕이 할머니들의 얼굴을 노랗게 비췄고, 나는 그 얼굴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우리는 다 같이 미림슈퍼 앞에서 내렸다. 나는 검정 할머니의 손수레를 끌었고 할머니는 빈 손수레를 끌었다.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뛰어와 우리 옆에서 같이 걸었다. 때가 묻어 거의 회색에 가까운 흰 개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와 보폭을 맞췄다. 어쩐지 억울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어딜 따라와? 

   검정 할머니가 발을 굴렀다.

   빨리 집에 가라, 워리야. 

   분홍 할머니가 손을 휘휘 젓자 개가 뒤돌아 뛰어갔다. 

   분홍 할머니는 검정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헤어졌다. 아이고 잠이 오네. 분홍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길로 들어섰다. 요새 들어 맨날 졸린다고 하네.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분홍 할머니가 가는 길을 지켜봤다.

   검정 할머니의 집은 갯벌 앞에 있었다. 열린 대문 밖으로 멀리 정자가 보였다.

   그 집 장녀가 자궁암을 다 고쳤는데 폐로 전이가 돼서 죽었다네. 검정 할머니가 할머니 옆에 서서 다시금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마당 구석에 있는 수돗가에서 망 하나를 풀어 빈 쇼핑백에 굴을 옮겨 담았다. 얼마만큼 가져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쪼그려 앉은 채로 자주 고개를 들어 검정 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게 다 때가 있는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때야, 때. 

   에잇! 검정 할머니가 고개를 홱 돌렸다. 뭘 알아? 우리 중에 제일 막내가.

   할머니가 그만 담으라고 해서 무릎을 겨우 폈다.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는데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손가락 뼈마디가 얼얼했다.

   바로 가지 말고 막걸리 먹고 가.

   검정 할머니는 어느새 막걸리 한 병을 부엌에서 가지고 나왔다. 

   막걸리 먹으면 추워서 안 돼.

   뭐가 추워. 막걸리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지. 

   몸 식으면 얼마나 추운데!

   못된 것들······. 검정 할머니가 내 동의를 구하려는 듯 나를 끈질기게 봤다. 겸연쩍은 얼굴을 하고 멀뚱히 선 나를 할머니가 떼밀었다. 

   봐라, 나 이렇게 막걸리 먹어도 어디 하나 아픈 데 있나. 

   검정 할머니의 목소리는 대문 밖에서도 잘 들렸다.

   그런데 할머니가 막내야? 내가 묻자 할머니는 나를 잠깐 째려봤다. 이 나이에 막내로 사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네가 아느냐고 했다.


   저녁에는 들통에 굴을 쪘다. 안방에 펴둔 상 옆으로 들통을 내려 놓고 할머니와 나는 마주 앉았다. 할머니는 나로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굴을 깠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집어먹기만 했다. 찐 굴에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할머니, 유럽 같은 먼 곳에서는 굴이 엄청 비싸대. 열 개에 몇만 원씩 한다고 하던데, 나는 굴 못 먹어서 서럽진 않겠다. 할머니는 과도를 내려놓고 굴을 초장에 찍어 먹었다. 

   원래 못 먹고 살면 서러운 거야.

   할머니는 며칠 전에 부엌에서 할아버지를 봤다고 했다. 평생 부엌에는 드나들지 않던 양반이 개수대 앞에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고. 헛것을 본다 싶어 눈을 비볐더니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고 했다. 그 양반이 저승에서 배가 고파서 내려온 건지, 나 데려가려고 내려온 건지. 플라스틱 바구니에 내가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굴 껍데기를 할머니가 다시 정리했다. 나보고 아껴 먹지 말고 팍팍 먹으라며 할머니는 다시금 굴을 까는 데 열중했다.

   나도 그런 것이 보이면 좋겠다고 밤의 골목을 걸으며 생각했다. 굴만 먹었더니 영 소화가 되지 않았다. 아닌가. 보이면 싫으려나. 아무래도 헛것이니까. 금방 사라질 테니까. 두꺼비들은 모두 겨울잠을 자러 갔는지 골목은 고요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 한 마리가 내 앞에서 걷고 있었는데 낮에 본 개와는 달리 털이 누렜다. 누렁이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집이 없는 개인가, 누가 잃어버렸나 싶었는데 누렁이는 붉은 대문의 열린 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이 동네 개들은 말도 잘 듣고 집도 잘 찾아가는구나. 나는 차라리 길을 잃고 싶은 마음으로 골목을 오래 걸었다. 익숙한 길이라 쉽게 잃을 수는 없었고 그저 잃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몸에서 열이 날 때까지 걸었다.

   그날 납골당에서 우주 아버지의 곁으로 가 입을 열었다면. 장례식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우주의 옛친구라고 했지만, 사실 저는 우주의 애인이었다고 말했다면. 퇴근하고 잠깐 들러도 될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게 우주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이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우주를 기다리는 느낌이라고. 아직도 우주와 헤어진 것 같지 않다고. 제조 공장서 20대 노동자 프레스기에 끼어 사망. 단 한 줄로 쉽게 요약되어 버린 그 죽음을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면. 나는 걸으면서 내가 하지 않은 말들만 생각했다. 그건 누렁이가 집을 찾아가는 것만큼이나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납골당에 갔던 작년 우주의 기일, 나는 우주의 유골함 앞에 선 우주 아버지를 보았다. 우주 아버지는 낡은 양복을 입고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체구보다 큰 양복이 헐렁해 보였다. 나는 출입구 근처 벤치에서 우주 아버지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손을 녹이려고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는 빠르게 식어 갔다. 잠시 한눈판 사이에 이미 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닐까. 해 질 무렵 다시 납골당으로 들어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우주 아버지가 출입구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우주 아버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기만 했다.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우주 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을 때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서 아직도 우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원룸으로 돌아왔다. 바닥에 누워 오늘 본 것은 머릿속에서 지우자고 다짐했다. 

   이제 우주의 기일에는 찾아가지 않으리라. 그 뒷모습을 보지 않으리라. 우주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되면 나는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묻게 될 것이다. 그 질문들 속에서 우주 아버지와 나는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다른 것은 변하지 않고 둘만, 오로지 둘만 무너지겠지.


*


   2차 협력사에서 1차 협력사로 옮기면서 우주는 꽤 안도했다. 2차와 1차의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몰랐지만 우주가 잘 된 거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일했던 곳의 대표는 경기가 안 좋아서 나도 네가 받는 돈의 두 배도 못 챙기게 생겼다고 우주에게 말했다. 내가 받는 돈의 두 배 이상은 무조건 챙겨야만 하는 대표를 위해 일해야 한다니. 그때 우주는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주가 옮긴 곳은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여기는 당장 망할 위기가 오지도 않고, 특근수당과 잔업수당도 확실하게 챙겨 준다고 했다. 내 시간과 노동력을 내놓으면 그만큼의 돈을 정직하게 받는다는 사실이 우주를 안심시켰으나 나는 언제나 우주가 훨씬 많은 것을 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 늦게 돌아온 우주의 목덜미에서는 땀 냄새와 함께 어떤 금속의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가끔은 그게 병원의 소독약 냄새로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냄새가 난다고? 나 깨끗하게 씻었는데. 진짠데······. 우주는 목덜미를 손으로 쓸다가도 금세 잠들었다.

   우주는 일주일의 절반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서 묵고 절반은 내 자취방에서 묵었다. 우주가 아침에 일을 마친 날이면 나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집에 들어온 우주의 얼굴을 잠깐 보기도 했다. 다크서클이 더 진해졌어, 밥은? 내가 물으면 우주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했다. 찌개 있는데. 밥솥에 밥도 있고. 로퍼에 발을 꿰는데 우주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우주가 앉은 자리에서 대충 몸만 뉜 채로 반쯤 뜬 눈을 하고 있었다. 스타킹 올 나갔어. 발뒤꿈치.

   직장을 옮긴 지 두 계절이 지났을 무렵 우주는 내 옆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다 그만둘까, 하고 작게 말했다. 그날 우리는 모처럼 둘 다 통째로 쉬는 날이었지만 함께 어딜 가진 못하고 내내 잠만 자다 해가 진 후에야 일어났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고 더부룩한 배를 어찌할 줄 몰랐으나 동네를 걸을 의욕도 생기질 않아 다시 누운 상태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일하고 살 수 있을까. 돈을 버는 건 좋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평생이라는 건 도대체 언제까지일까. 이제는 일할 수 없는 몸인 아버지는 집에서 텔레비전만 본다고 했다. 그 소리가 엄청나게 커. 진짜 커서 머리가 아플 정도야. 그냥 꺼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그걸 끄면 아버지가 뭘 하겠어. 뭘 할 수 있겠어.

   도망갈까.

   모두 버리고 도망가 버릴까. 

   우주가 얕게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나도 마찬가지라고. 나야말로 도망가고 싶었다. 이 작은 방을 벗어나고 싶었고, 지금이 아닌 다른 삶을 상상하고 싶었다. 그러곤 의문에 빠졌다. 우리가 같이 도망갈 수 있나? 미래에도 우리가 함께할 수 있나? 우리가······ 그 정도인가? 이 질문에서 멈췄다. 정도라니. 미래를 함께할 수 있는 관계의 척도가 있다면, 그런 것이 실제로 있다면 우리는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 나는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가늠해 보다 먼 미래까지 함께할 수는 없을 거라고 쉽게 판단 내렸다. 우리는 이렇게 피곤한 몸으로 서로를 조금 위로하다 그것마저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면 결국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서로에게 마음을 쓰지 못한 순간들은 빚처럼 남게 되겠지만 그런 것들도 결국은 서랍 속의 묵은 알사탕 같은 것이 되어선 가끔 들여다보며 그때 참 귀여웠네 안쓰러웠네, 회상할 정도, 딱 그 정도의 무게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나는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예감했다. 그 이후로는 매일 같은 생각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밤, 내게 등을 보인 채 웅크려 앉아 발톱을 깎는 우주에게 말했다. 나 혼자 있고 싶어. 그때 우주는 발톱을 깎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나? 

   우주의 장례 이후에도 나는 평소와 같이 일했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밥을 차려 먹었다. 휴일에는 묵묵히 집안일을 했다. 그러다가도 돌연 하던 일을 멈췄다. 자꾸만 우주에게 사로잡혔고 그럴 때마다 내 몸의 어느 모서리가 녹아내렸다가 단단히 굳는 기분이었다. 짐작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거야.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할 거야. 계속 맞닥뜨리고 매번 흐를 거야. 쉬지 않고 그렇게 되겠지. 쉬지도 않고. 창틀을 닦으며, 가스레인지에 눌어붙은 기름때를 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며 생각했다. 어떤 것들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


   지옥에서 깬 줄 알았다. 방바닥이 절절 끓고 있었다. 이렇게 익숙한 곳이 지옥일 리가 없다고 이마에 밴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하지만 지옥이야말로 익숙한 곳일지도 몰라. 문을 열고 마루로 나오니 할머니가 시간이 몇 시인데 지금까지 자느냐고 타박했다. 

   할머니, 이 방은 중간이 없네.

   뭐가.

   할머니는 과도로 더덕을 다듬으면서 나를 흘깃 봤다.

   어찌나 덥던지. 등 뜨거워서 혼났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춥다고 지랄······ 덥다고 지랄······. 할머니가 구시렁거렸다. 내 이마 위로 더덕 껍질이 떨어졌지만 향이 좋아서 피하지 않았다.

   점심으로 굴국을 끓여 먹고 오후에는 내내 할머니가 시킨 일을 했다. 휴대폰 글자가 너무 작아 안 보인다고 해서 글자를 더 키워 주었고, 무슨 일인지 최근에는 텔레비전에서 공영방송만 나온다고 해서 통신사에 전화도 대신 했다. 셋톱박스에 연결된 선을 모두 뽑은 후에 다시 연결해 보셨나요? 나는 전화를 끊고 셋톱박스에 연결된 선을 모두 뽑았다. 잠시 기다렸다가 연결하니 채널이 999번까지 깔끔하게 나왔다. 

   영화 채널을 틀어 두고 그 앞에서 마늘을 깠다. 코미디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언젠가 우주와 극장에서 봤던 영화였다. 남자 주인공이 바지를 벗다 바짓단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장면을 보며 나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깐 마늘을 면기에 수북이 쌓으니 할머니는 작은 절구를 내게 주며 이제 다 빻으라고 했다. 마늘을 빻을 때는 눈물이 줄줄 났다. 하필 영화는 클라이맥스였다.

   할머니는 냉동실에서 탁구채만 한 생선을 꺼내 은행 로고가 인쇄된 부직포 가방에 넣었다. 할머니가 다듬었던 더덕과 내가 빻은 마늘도 모두 거기에 담겼다. 할머니는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가자고 했다. 어디를? 할머니 집에. 할머니 집에? 내가 되묻자 할머니는 갑갑하다는 듯이 저, 저, 저······ 어제 봤던 그 할머니 집에 가자고 했다. 

   검정 모자 할머니? 분홍 모자 할머니?

   그게 뭐냐. 이름을 말해야지. 

   내가 이름을 어떻게 알아.

   술 좋아하는 할머니는 이판례. 다른 할머니는 박순옥.

   매주 한 번씩 할머니와 판례 할머니가 순옥 할머니 집에 가서 저녁을 차려 먹는데 판례 할머니는 오늘 제 가족들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낼 테니 이번엔 나를 데리고 가는 거라고 했다. 순옥 할머니가 워낙 가족 없이 혼자 산 지도 오래되었고 기력도 없어 판례 할머니와 자신이 매번 챙겨 준다는 것이었다. 뉴스에 나오지 않냐, 고독사라는 것이. 우리 마을에 그런 건 없다. 

   순옥 할머니의 집 구조는 할머니 집과 비슷했다. 직사각형 형태의 단층집은 부엌, 안방, 작은방, 화장실이 앞마당을 향해 나 있었고 부엌을 면한 곳에는 슬레이트 지붕을 친 작은 창고가 있었다. 할머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동안 나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담 근처에 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었다. 그중에 가장 키가 큰 나무를 가리키며 이건 무슨 나무냐고 순옥 할머니에게 물었다. 마루 끝에 무릎을 모아 앉은 순옥 할머니가 그건 감나무고 그 옆에 있는 나무는 홍매화나무라고 말했다. 봄이 되면 홍매화나무에 붉은 꽃이 가득 피는데 그것이 참 예뻐서 겨울에는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가을에는 까치들이 감을 쪼아 먹으려고 마당 안에 들어와 내내 시간을 보내는데 그것이 꼭 자식들 같아서 마음이 참 좋다고 했다. 그래서 가을도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어느 계절에나 마루에서 무릎을 모으고 앉아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순옥 할머니를 상상했다. 순옥 할머니 곁으로 가 같은 자세로 앉으니 잠시 순옥 할머니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무엇을 기다릴 수 있는가.

   할머니는 새우젓을 넣고 볶은 호박나물과 고추장에 버무린 더덕무침을 상에 올렸고 순옥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어 그릇에 덜었다. 맑은 동치미는 우묵한 유리그릇에 담겼고 무엇으로 담갔는지 모를 김치들은 길쭉한 접시에 종류별로 조금씩 나누어 담겼다.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내내 끓였던 전골냄비를 상 가운데에 놓았다. 고사리와 호박을 넣은 병어조림에서는 매콤하고 달큰한 냄새가 났다. 

   순옥 할머니는 병어 몸통을 숟가락으로 떠서 밥 위에 얹어 두고 느리게 가시를 골라냈다. 이것 좀 먹어 보라고, 할머니는 더덕무침을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순옥 할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내내 가시만 발랐다. 나는 더덕을 하나 집어 씹었다. 처음엔 더덕 껍질을 벗길 때 맡았던 깨끗한 흙냄새가 나더니 더 오래 씹자 단맛이 배어 나왔다. 먹기 좋게 식은 호박도 한입에 넣었다. 호박은 씹을 필요도 없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졌다. 봐라, 나는 이렇게 더덕이며 고사리며 호박이며 가리는 것도 없이 잘 먹는다. 어떤 더부룩함도 없이 모조리 소화하고 맑은 정신을 마음껏 흩뜨리며 잠들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퍼서 입에 넣었다. 동치미 무를 꼭꼭 씹었다. 

   이거 먹어. 순옥 할머니가 내내 가시를 발랐던 살 한 토막을 내 밥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예쁘다, 예뻐. 이거 먹어. 순옥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었다.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한입 가득 넣었다. 

   우리 할매가 이렇게 맘을 쓰시네. 그러면 나도, 하며 할머니가 순옥 할머니의 밥그릇에 생선 살을 올렸다. 순옥 할머니는 그제야 밥 한술을 뜨며 맛있다고,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나 했다. 

   우리 젊었을 때는 이렇게 맛있는 거 못 먹었지. 

   요리할 여력이 있었나. 콩이며 시래기며 월동 준비한다고 다 쌓아 두고 겨우내 아껴 먹기만 했지.

   할머니는 조림 국물에 밥을 비비며 순옥 할머니의 말에 보태어 말했다. 할머니의 입에서 밥알 하나가 툭 튀어나와 밥상에 떨어졌다.

   겨울에는 버티고 버티면서 하루하루 살았지.

   버티고 버텼어. 겨우 살았어. 나는 순옥 할머니의 말에 끝도 없이 긴 겨울을 떠올렸다. 풀벌레 소리마저 없는 고요한 겨울밤, 그 긴 밤을 버텨 다음 날로 나아간 사람들. 나는 지금 그들과 밥을 먹고 있다.

   내가 밥을 반 공기 더 먹고도 아쉬운 마음에 반찬을 조금씩 집어 먹고 있을 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가 내게 나가보라고 해서 물 한 잔을 겨우 마시고 몸을 일으켰다. 

   누구세요?

   저······ 저······.

   앳된 목소리가 들려 대문을 열어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될 법한 남자아이 둘이 쭈뼛거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내가 다시 묻자 한 아이가 자기보다 반 뼘 정도 키가 큰 아이 뒤로 물러났다. 어쩌다 보니 떠밀리게 된 키 큰 아이가 들고 있던 쇼핑백을 내게 들이밀었다. 할머니가 가져다주라고 했어요. 내가 그것을 받자 아이들은 꾸벅 인사를 하더니 빠르게 골목을 뛰어 사라졌다. 쇼핑백 안에는 롤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할매가 단 거 좋아하니까 부러 챙겨 줬네. 

   오늘 온다던 판례 할머니네 손자들일 거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갓 끓인 결명자차에 롤케이크까지 나눠 먹고 나니 설거지라도 내가 해야겠다 싶어 고무장갑을 꼈다. 순옥 할머니는 잠이 온다면서도 방에 들어가지 않고 내 뒤에 서 있었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내게 예쁘다고, 참 예쁜 것이라고 했다. 순옥 할머니가 내 팔을 손으로 쓸어내렸을 때는 순간 눈가가 시큰해졌다. 설거지를 할 뿐인데 마늘이라도 까는 것처럼 그랬다. 나는 숨을 꾹 참고 씻은 그릇들을 건조대에 쌓았다.

   헤어지기 전에 순옥 할머니에게 다음에 올 때는 달고 맛있는 것들을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는 나에게나 그런 약속도 좀 하고 다정히 굴어 보라고 구시렁거렸다. 나는 괜히 할머니의 팔짱을 꼈다. 할머니는 성가시게 하지 말라면서도 내 팔을 빼내지 않았다. 


   잠들기엔 이른 시간이라 이부자리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안방에서 여럿이 떠드는 소리가 나서 조심히 방문을 열어 보니 잠든 할머니의 얼굴 위로 텔레비전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까치발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끄고 나와 코트를 챙겨 입었다. 할머니가 준 목도리를 목에 단단히 둘렀다. 집을 빠져나와 정자가 있는 갯벌 쪽으로 갔다. 정자 끄트머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구별되지 않는 까만 어둠을 바라봤다. 머리 위로 별들이 희게 빛나고 있었다. 별 하나를 오래 보고 있으면 그 옆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도 곧 눈에 들어왔다. 

   기억해. 우주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걸 기억해. 어떤 것들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만 아는 우주의 세부. 그리고 내가 모르는, 영원히 모르게 되어 버린 우주의 세부. 나는 내가 영원히 모르게 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 것이다. 목도리를 풀어 베개 삼고 바로 누웠다. 후, 하고 숨을 내쉬자 흰 입김이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보였다. 자꾸만 내게서 사라지고 자꾸만 내게서 생겨나는 것. 나는 계속해서 입김을 내며 순옥 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버티고 버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그것을 반복하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려 누우니 열린 판례 할머니네 대문 앞에 작고 노란 점 두 개가 보였다. 저녁에 보았던 판례 할머니의 손자들이 불붙인 철사 폭죽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아이들이 팔을 멋대로 휘두르며 정자 쪽으로 달려왔다. 이제껏 내가 보이지 않았었는지 정자 가까이 온 아이들이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손에 들린 폭죽이 타닥타닥 타들어 갔다. 키 작은 아이가 고개 숙여 내게 인사했다. 나는 모로 누운 채로 한 손을 흔들다가 아이를 따라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이들은 주춤주춤 정자를 지나 갯벌 가장자리로 난 길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이들의 손에 들린 폭죽이 곧 꺼졌다. 형, 나 할머니 거 가지고 왔어. 키 작은 아이가 멈춰 서서는 패딩 주머니에서 라이터와 새 철사 폭죽을 꺼냈다. 키 큰 아이가 라이터를 넘겨받아 폭죽에 불을 붙여주었다. 우와아아아아아. 키 작은 아이가 앞질러 달려가자 키 큰 아이가 야 뛰지 마, 하며 그 뒤를 따랐다. 폭죽이 만들어 내는 길고 노란 선이 멀어지는 걸 눈으로 좇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구겨진 목도리를 탈탈 털어 목에 두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하루 만에, 목도리에는 바다 냄새가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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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모래 유원지

모래 유원지 김소라 할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나는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매일 오후의 풍경이 그렇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소리가 신호가 되었다. 저벅이는 소리가 가까워지면 할아버지는 낚시 조끼 주머니에서 투명한 아스피린 병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동그란 알약 두 개를 손바닥에 덜어내 입안에 톡 털어 넣고는 물도 없이 삼켜버렸다. 아주 보란 듯. 때때로 입이 말라 단번에 삼키지 못하면 얇은 입술에 힘을 주고 한참을 우물거려 침을 모았다.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닿았다. 그다음엔 어김없이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닮은 이야기가 시작됐다. 귀담아들을 정도로 대단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에 대한 것. 그러니까 대부분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어 나는 모르는 사람들. 영영 소식이 끊긴 아들이라든가 단골손님이라든가. 또는 이 동네에 관한 것, 그리고 저 동네에 관한 것. 전파사 문 앞에 놓인 접이식 철제 의자가 할아버지의 자리였다. 앙상한 다리를 꼬고 구부정하게 앉아 주절주절, 내가 탈 마을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중얼거렸다. 말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내 눈을 마주치는 법이 없었다. 이 대화가 아주 일방적이라는 것을 본인도 아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할아버지에게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 나는 늘 내버려두었다. 할아버지는 ‘결국’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그 사실까지는 의식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 줄 알아? 그러다가 결국엔 말이야. 결국 이렇게 된다구. 그 말버릇 때문에 할아버지는 마지막을 다 아는 듯도 했고, 모르는 듯도 했다. 기대하는 듯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가 입을 뗄 때마다 나는 마지막을 기다리게 된다. 결국 어떻게 될까. 그 질문을 길잡이 삼아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를 기꺼이 따라가곤 했다. 천변을 따라 마을버스가 느리게 다가왔다. 이 버려진 동네는 물이 바짝 말라버린 개천을 사이에 두고 알파벳 U자를 길게 늘여 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나와 할아버지는 가장 끝, 휘어진 부분의 막다른 곳에 살았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올망졸망한 단층 건물들을 굽어보는 유일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3층엔 내가 세 들어 있었다. 혼자 사는 남자에게 딱 알맞은,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다. 2층엔 건물의 주인인 할아버지가 살았고, 1층엔 오래전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전파사가 문을 닫은 채 남아 있었다. 이 깊숙한 곳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승객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다. 푸쉬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리고 내가 올라타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오게 되어 있거든, 결국. 버스 유리창 너머로 할아버지가 뻐끔거렸다. 여전히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 U자 모양의 천변길을 벗어나 두 정거장을 더 가면 지하철역이 나왔다. 단 두 정거장을 지나왔을 뿐인데 그 사이 풍경은 TV 채널을 돌린 것처럼 완벽히 바뀌었다. 고르게 망해버린 천변과 달리 지하철역 주변에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럴싸한 카페와 서점, 은행, 최신 휴대폰을 파

  • 김소라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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