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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즈

  • 작성일 2026-08-01

  하인즈


박우연


  도해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누운 채로 바라본 아킬레스건이다. 분리형 원룸의 미닫이문 너머, 도해는 냉장고 앞에 서 있다. 잠옷으로 입는 헐렁한 티셔츠 밑으로 뻗어 나온 맨다리. 그럴 때면 나는 잠시 내가 누운 곳이 어딘가에 대해 생각했고 곧 도해의 침실 바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먹어?”

  언젠가 도해의 등을 향해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도해는 냉장고 문을 닫은 뒤에야 돌아보며 대답했다.

  “유산균.”

  찬장에서 컵을 꺼내다 말고 도해는 바닥에 누워있는 나를 흘낏 보았다. 너도 먹을래? 아주 잠깐이었지만 명백한 사이를 둔 채 날아든 질문에 나는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섬유유연제 없이 빨아 방 안에서 말린 뻣뻣한 수건이 목 뒤쪽에서 까끌거렸다. 도해는 원룸에 옵션으로 딸린 싱글 침대에서 혼자 자고 싶어 했기 때문에 나는 늘 바닥에 얇은 요를 깔고 수건을 말아서 베고 잤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자 하인즈는 언제나처럼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고 도해가 유산균을 물과 함께 두 번에 나누어 삼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냉장 보관이 필수인, 한 박스에 육십 캡슐이 든 그 유산균은 하루에 한 번 두 캡슐을-되도록이면 공복에-먹어야 했다. 그 계산대로라면 도해는 한 달에 유산균 값으로만 월급의 십분의 일 가까이를 써버리는 거였다. 그때 나와 도해는 대학가에 있는 바에서 일하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여섯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 최저시급이 사천팔백육십 원이던 시절이었고, 열 시부터는 야간 수당이라는 명목하에 칠천이백구십 원을 받았다. 가끔 주말 근무자가 대타를 부탁할 때 생기는 수입과 주휴수당, 손님이 주는 팁까지 모두 긁어모아도 월급은 백이십만 원이 채 안 됐기 때문에, 십이만 원짜리 유산균은 실로 불가사의한 지출이었다. 전공 교과 성적이 뛰어나지 않은 경영학과 학생이 보기에도 그랬다. 장이 안 좋은 편이야? 내가 묻자 도해는 한쪽 입술만 움직여서 웃었다. 그리고 비밀이라도 알려주듯이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다. 이게, 힘이 되거든. 그러고는 몇 개의 단어를 입속에서 굴렸다. 힘이랄지, 배짱이랄지, 든든함이랄지…….

  “왜, 억울한 시비가 붙거나 말도 안 되게 나쁜 일이 생길 때 있잖아.”

  도해는 자신의 배꼽 언저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럴 때 내 뱃속에 십이만 원짜리 유산균이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 몇천억 마리나 되는 애들이 날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언저리에서 실존적인 힘이 솟는 느낌이야.”

  실존적, 이라는 단어를 도해는 좋아했다. 딱히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늘 그 표현을 썼다. 내가 도해처럼 쿨한 언니 같은 느낌으로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도해는 정색하며 말했다. 어떤 스타일인지, 좀 더 실존적으로 묘사해 봐.


  나는 도해를 비사이드(B-side)라는 이름의 바에서 만났다.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던 나는 어느 새벽 충동적으로 바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그때 나는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내고 돌아온 참이었는데, 성대한 실패로 끝난 몇 개월의 짧은 유학으로 인한 깊은 절망에 젖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때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실패였다. 미국의 대학교는 배려인지 차별인지 기숙사의 룸메이트를 모두 영어 실력이 고만고만한 동양인 유학생-중국인 한 명, 일본인 한 명-으로 배정해 주었고, 강의실에서 만난 학생들은 친절했지만 강의 시간 외에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 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을 떠날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영어 실력으로 귀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벼운 패닉 상태에 빠진 나는 시차 적응이 끝나기도 전에 영어를 사용하는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혀끝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본토 발음의 뉘앙스나마 잊지 않으려는 최후의 발버둥이었다. 자취방 근처의 수많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다하고 비사이드에 지원한 건 순전히 구직 게시글에 적혀 있던 한 문장, ‘주변에 미군 부대가 있어 평일에는 외국인 손님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보니 애초에 평일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대화라고 해 봐야 주문을 위한 몇 마디가 다였다. 메뉴판에서 제일 싼 카스 생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포켓볼을 치는 미군들과 매일 같은 자리로 출근하다시피 하는 하와이안 셔츠 아저씨를 제외하면 퇴근할 때까지 손님은 몇 팀 되지 않았다. 외국인 손님들과 프리 토킹하며 영어 실력을 키우겠다는 내 계획은 틀려먹은 것 같았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어느 세계에 소속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어서였다. 어두컴컴한 지하 일 층의 바에서는 모든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온 것들과는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바닥의 나초 조각들 사이로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조차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물담배 연기가 들어찬 실내에서 벽에 걸린 싸구려 네온사인 장식을 멍하니 바라볼 때나, 쓰레기와 취객들이 굴러다니는 새벽의 거리를 걸어 나와 심야버스를 탈 때 나는 불현듯 고등학교 때 외웠던 어센틱, 이라는 영단어를 떠올렸다. 어센틱. 진짜인, 진품인. 그리고 내가 아는 한 비사이드에서 가장 어센틱한 것은 도해였다.


  비사이드의 공기가 아직 낯설던 때 나와 도해를 가까워지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그날도 가게에는 하와이안 셔츠와 우리뿐이었다. 사장은 바 운영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자신이 초대한 손님이 오는 날이 아니면 평일에는 가게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하와이안 셔츠는 늘 그랬던 것처럼 산토리 위스키 한 잔을 시켜 입술만 축이듯 마시면서 기본 안주인 마카로니 뻥튀기를 세 번 리필한 뒤 화장실에 갔다. 나와 도해는 바 안쪽에 나란히 서 있었다. 나는 기다란 바에 일렬로 늘어선 등받이 없는 높은 의자와 홀에 놓인 일곱 개의 테이블, 당구대와 다트 머신을 괜히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기본적으로 화난 것처럼 보이는 인상의 도해가 나는 조금 무섭고 껄끄러웠다. 붙임성 있게 먼저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도해가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백 바에 삼 단으로 늘어선 양주병 쪽으로 거칠게 돌려세웠다.

  “야, 빨리 여기서 마셔보고 싶은 거 하나 골라 봐.”

  뺨과 뺨이 스칠 정도의 거리에서 도해는 말했다. 도해의 짧은 머리에서는 샴푸와 담배 냄새가 섞인 묘한 향기가 났다. 나는 기세에 눌린 채로, 겉보기에 가장 특이해 보이는 푸른빛의 둥글넓적한 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도해는 재빠른 동작으로 샷잔 네 개를 꺼낸 뒤 내가 가리킨 술병을 집어 들어 그 안에 든 것을 잔 두 개에 가득 따랐다. 그러고는 남은 두 개의 잔에 물을 채워 술병에 부은 뒤 병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모든 과정은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진행되었다. 멍청히 서 있는 나에게 도해는 샷잔 하나를 건넸다. 잔에 담긴 액체는 푸른색이 아니라 금빛이 도는 갈색이었다. 

  “빨리 마셔. 빨리.”

  우리는 건배할 틈도 없이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고, 생전 처음 마셔보는 독주가 식도의 위치를 알려주며 천천히 아래쪽으로 미끄러질 즈음에 하와이안 셔츠가 돌아왔다. 그의 빈 접시에 다시 뻥튀기를 채워주며 도해는 나를 향해 씩 웃었다.


  출근한 뒤 재고를 점검하고 비어 있는 몇 가지 재료들을 채워 넣으면 마감 직전까지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나와 도해는 이야기하는 것이 일이었다. 레이 찰스와 2NE1의 노래가 뒤섞여 흐르던, 바 테이블 안쪽의 어두운 공간에서 나는 양주나 칵테일보다 도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이름은 도혜-여이야 아이야, 평생 그 질문을 들었다고 했다-라는 것. 하지만 도혜라는 이름은 너무 예뻐서 도해라고 하고 다닌다는 것.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더 많다는 것.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술집에서만 일했는데 여기는 세 번째 가게라는 것. 메신저는 하지 않고 문자와 전화로만 연락한다는 것. 퇴근 후에는 가게 옆 맥도날드에 들른다는 것. 가족에 대한 화제는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그것을 피하는 티를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도해는 가끔 몇 안 되는 단골손님이 사주는 술을 먹고 완전히 취하곤 했다. 내가 도해의 집에 처음 간 날도 그랬다. 그날 내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내놓고 계산대의 시재를 맞추고 조명과 음악을 끄는 동안 도해는 당구대 옆에 놓인 의자에 눕듯이 앉아 있었다. 가게 밖으로 나와 문단속을 할 때는 옆에 비뚜름하게 서서 같이 맥도날드에 가자고 고집을 피웠다.

  “내가 밀크셰이크 사 줄게.”

  도해는 밀크셰이크를 먹으면 숙취로 속이 뒤집힐 때 훨씬 부드럽게 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고, 그러자 밀크셰이크를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렇지만 도해가 워낙 완강한 태도로 맥도날드에 가야만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맥도날드로 향했다.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통창 밖의 어두운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도해가 밀크셰이크 두 잔과 맥도날드 마크가 찍힌 종이봉투 하나를 쟁반에 받쳐 들고 다가왔다.

  “그건 뭐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도해에게 존댓말을 쓰던 내가 물었고, 도해는 빨대로 밀크셰이크를 마시며 풀린 눈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종이봉투를 흔들며 말했다. 이건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 비밀인데……

  “우리 집에 하인즈가 있어.”

  처음에 나는 도해가 우리 집에 환자가 있어, 라고 말하는 줄 알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에게 도해는 연거푸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하인즈. 하인즈가 있다고. 

  “하인즈가 뭔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도해는 몇 모금 마시지도 않은 밀크셰이크를 그대로 테이블 위에 두고 일어섰다.

  “따라오면 보여 줄게.”


  도해의 집은 비사이드와 맥도날드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주택가에 있었다. 주변 대학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세 들어 사는 원룸 건물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도해는 부축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비틀거리고 길가의 돌멩이를 하나하나 발로 차거나 해서 평소라면 십 분 안에 갔을 거리를 이십 분 넘게 걸려 도착했다. 나는 도해를 따라 엘리베이터가 없는 어느 건물의 삼 층까지 올라갔고, 도해는 302호 앞에서 갑자기 술이 깬 듯한 침착한 움직임으로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손에 든 것을 내던지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닫히다 만 화장실 문 사이로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거실을 보고 있었다. 어둡고 휑한 거실 한쪽에 놓인 안락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살아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고, 도해가 휴지로 입가를 문지르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안락의자 가까이 다가간 도해는 휴지를 내보이며 ‘없애 줘’라고 말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그때 처음으로 고개를 움직여 도해가 들고 있는 휴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휴지는 사라졌다.

  그 바로 다음 순간에 도해는 현관에 서 있는 나를 보았는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내가 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도해가 나와 거실의 사람을 번갈아 곁눈질하는 짧은 순간에, 나는 도해가 이 순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그중에서도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해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한숨을 쉬고는 나를 향해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뒤이어 바닥에서 맥도날드 종이봉투를 주워 들고 그 안에서 감자튀김과 케첩을 꺼내 들었다. 도해가 종이봉투를 찢어 펼치고 케첩을 짠 다음 그것을 감자튀김과 함께 안락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건네주자, 그는 한 손으로 종이봉투를 접시처럼 받쳐 든 뒤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들고 케첩에 찍어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 동작은 아주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졌고, 반복되는 움직임에는 알 수 없는 안정감이 있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명상이라도 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 얼굴은 어떤 형용사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답다거나 너무 추하다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특정한 형태를 가진 눈코입이 제자리에 달려 있었지만, 그 조합은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평화롭고도 기묘한 찰나는 도해가 나에게 내용물을 모두 짜낸 케첩을 건네주는 바람에 깨어졌다. 도해는 여전히 입으로 감자튀김을 옮기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많은 것을 체념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인즈야.”

  나는 도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사람을 바라보고 도해의 얼굴을 바라보고 마지막으로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일회용 케첩을 보았다. 케첩의 포장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HEINZ.


  하인즈가 도해의 집에, 더 정확히 말하면 거실의 안락의자 위에 나타난 건 지난 겨울의 일이었다고 했다. 거의 일 년 다 됐지. 도해는 덧붙였다. 그즈음의 도해는 무척이나 무기력해서, 당시에 아르바이트하던 프랜차이즈 술집도 그만두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자기 몸을 씻는 것도 마치 대형견을 씻기는 일처럼 까마득하게 생각되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 물칠만 겨우 했고, 빨래를 돌리고 널어 말리는 대신 새 속옷이며 수건을 주문하기도 했다. 밥은 하루에 한 끼, 배에 든 것이 없어서 속이 쓰리고 어지러울 정도가 되어서야 배달시켜 먹었다.

  “그날은 배달 기사가 음식을 건물 앞에 두고 가서 어쩔 수 없이 일 층까지 내려갔다가 왔어.”

  거의 몇 달 만의 외출이었을 거라고 했다. 도해가 비닐봉지에 담긴 음식을 들고 올라와 숨을 몰아쉬며 302호의 문을 열었을 때, 거실의 안락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도해는 놀라지도 무섭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금이라면 몰라도 그땐 그랬어. 도해는 말했다. 화장실 전등이 나가거나 냉장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을 때처럼, 한없이 귀찮았을 뿐이었다고. 저 사람을 처리하려면 경찰이든 집주인이든 연락을 해야 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이 집으로 찾아올 것이고, 그러면 집 안을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도해의 집은 어떤 과장도 없이 쓰레기장 그 자체였다. 먹다 남긴 배달 음식이며 택배 박스, 비닐봉지, 빈 생수병, 빨지 않고 던져둔 옷 같은 것들이 발목까지 가득 차 있어서 바닥이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밥을 먹고 싶지는 않았기에, 도해는 미닫이문으로 분리된 침실로 들어가 밥을 먹었다.

  “아니, 그게 말이 돼요? 모르는 사람이 집 안에 들어와 있는데?”

  도해는 어깨를 으쓱했다.

  “밤에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쓱 보기만 해도 구분할 수 있게 돼. 나한테 진짜 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도해와 그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지만, 도해가 이렇게 말했기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네가 상상할 수 없는 거라고 해서 실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도해는 최대한 가까운 시일 안에 의문의 사람을 어떻게든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깜깜한 화장실이나 한밤중에 굉음을 내는 냉장고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 존재에 익숙해져 버리고 말았다. 도해는 미닫이문을 닫지 않고 밥을 먹게 되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아무 움직임도, 체취도, 소리도 없이 그저 그곳에 존재할 뿐이었다.

  “근데 이름은 왜 하인즈예요?”

  가장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지만 그것부터 물었다. 도해는 라지 사이즈 감자튀김을 거의 다 먹어가는 하인즈를 흘낏 보았다.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하인즈 케첩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해서. 맥도날드나 감자튀김보다는 하인즈가 낫지 않아?”

  하인즈는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처음 몇 달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은 것 같았어. 도해는 말했다.

  “어느 날은 내가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먹는데 빤히 쳐다보더라고. 시험 삼아 감자튀김에 케첩을 찍어서 줘 봤는데 너무 잘 먹는 거야.”

  도해는 어쩐지 신나 보였다. 세상에서 혼자만 알고 있던 무언가를 처음 누군가와 나누는 흥분감이 비밀을 들켰다는 당혹감을 압도한 듯했다. 도해는 내 손에서 케첩 포장지를 가져가 하인즈에게 내밀었다.

  “하인즈, 없애 줘.”

  케첩은 아까의 휴지처럼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인즈는 뭐든 없앨 수 있어.”

  이 전자레인지에는 급속 해동 기능이 있어, 그런 말이라도 하는 듯한 말투였다. 도해는 어느 날 그 사실을 발견했다. 하인즈가 맥도날드 감자튀김과 하인즈 케첩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여전히 집안에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쓰레기가 가득하던 그때, 도해는 반려동물에게 설거지를 해 달라거나 빨래를 개 달라고 푸념하듯 아무런 기대 없이 하인즈에게 말했다. 쓰레기 좀 버려줄 수 있어? 그러자 하인즈는 쓰레기로 가득 찬 종량제 봉투를 건물 앞에 있는 전봇대 아래로 옮기는 대신 통째로 없애버렸다. 무기력증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도해는 쓰레기뿐만 아니라 자취를 처음 시작할 때 멋모르고 사 모았던 애매한 잡동사니들도 전부 없애버렸다. 하인즈가 앉아 있는 안락의자만 빼고. 집 안은 깨끗해졌고, 쾌적한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샤워며 빨래며 하는 일들이 훨씬 쉬워졌다. 하인즈에게 먹일 감자튀김을 사러 하루에 한 번은 외출했다. 도해가 비사이드에서 일하게 된 것도 맥도날드 근처에 붙은 구인 전단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말한 도해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칫솔을 물고 나왔다.

  “엄청 편리해. 특히 송장 처리할 때.”

  도해는 이를 닦으며 말했고, 순간 축 늘어진 사람을 질질 끌고 집 안으로 들어와 ‘없애 줘’라고 말하는 도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등줄기가 서늘했다. 굳은 얼굴로 현관문을 곁눈질하는 나를 의아하게 보던 도해는 칫솔을 들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바보야, 택배 송장 말이야. 내가 누굴 죽여?”


  하인즈의 존재는 사장 몰래 샷잔에 따라 마신 양주보다 훨씬 큰 비밀이었고, 나와 도해는 그 비밀의 크기만큼 더 가까워졌다. 나는 도해에게 반말을 하게 되었으며,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을 사서-라지 사이즈, 케첩 많이-도해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비사이드 근무가 끝난 뒤에도 자연스럽게 도해의 집으로 함께 퇴근해서 첫차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도 302호의 문을 두드렸고, 도해는 매번 문을 열어주기 귀찮다며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집에 있을 때 도해는 소파도 텔레비전도 없는 거실에서 벽에 기대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주방 후드를 켜고 담배를 피웠다. 그동안 나는 하인즈가 앉은 안락의자에 기대 책을 읽거나 토익 공부를 하곤 했다. 사실 책을 펴놓기만 하고 도해와 시답잖은 이야기로 몇 시간이고 떠든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우리 둘만의 놀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하루에 한 가지씩 서로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답이 정해져 있어서 아무 고민 없이 답할 수 있거나 무엇이든 단답으로 떨어지는 질문은 취급하지 않았다. 우리는 졸업한 중학교가 있었던 동네를 묻는 대신 그 학교에서 가장 이상했던 아이에 대해 물었고,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라고 묻지 않고 죽을 때까지 딱 한 가지 색깔만 볼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색을 고를지 물었다. 그럴 때면 교환학생을 마치고 짧은 배낭여행을 떠났을 적에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게스트하우스의 카우치에서 마주친 외국 여행객들과 맥주를 마시며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결국 도달하는 주제는 아주 근원적인 것들, 인간이라면 공유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해도 한국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기엔 조금 낯간지러운 주제들. 나는 도해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 매일 고민했고, 꽤 괜찮은 질문을 던진 것 같은 날에는 잠들기 직전까지 뿌듯해했다.


  우리는 이야기하다 지치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그러면서 매번 다음에는 장을 봐서 직접 해 먹자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또 배달 음식을 시키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주로 피자를 먹었는데, 도해와 나는 피자 취향이 달라서 늘 하프앤하프 피자-페퍼로니 반, 하와이안 반-를 주문했다. 도해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꺼낸 것도 언젠가 피자를 먹으면서였다. 내가 싱크대에 피클 국물을 버리고 돌아와 밥 먹을 때만 꺼내는 앉은뱅이 탁자 앞에 앉자마자 도해는 툭 내뱉었다.

  “부모가 나 중학교 때 이혼했거든.”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던져진 말에 나는 피클을 그대로 손에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도해의 엄마는 도해가 고등학교 이 학년일 때 재혼했는데, 엄마의 새 남편-도해는 새아빠라고 하지 않았다-은 도해 또래의 남자아이를 데려왔다. 도해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자신을 고용해 주겠다는 편의점 하나를 찾아내자마자 엄마의 등산 가방에 짐을 챙겨 집을 나왔다.

  “처음엔 고시원에서 살았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온 적도 있었는데 죽어도 그 집엔 안 간다 그랬더니 안 오더라고. 지금은 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를걸.”

  도해가 하와이안 피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는 그 정도의 가족사를 가진 사람이 없었다. 나는 힘들었겠다, 말고는 해야 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고 내 몫의 페퍼로니 피자를 거의 다 남겼다. 그날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소주를 사 와서 섞어 마셨다. 취기가 올라와 거실에 누워있던 나에게 도해가 물었다.

  “사장이 너 뽑을지 말지 나한테 결정하라고 했던 거 알아?”

  나는 낮은 해상도로 기억에 남아 있는 몇 장면을 떠올렸다. 비사이드의 면접을 보았던 날 도해는 바 테이블 너머에 서 있었다. 사장이 음료라도 하나 마시라고 해서 나는 도해에게 오렌지주스를 부탁했었다. 영어로 쓰인 메뉴판에는 내가 모르는 술이 너무 많았는데, 마침 도해 뒤쪽의 업소용 냉장고 안에서 익숙한 델몬트 오렌지주스를 발견했던 것이다.

  “네가 그때 나한테 델몬트를 달라고 했거든. 오렌지주스가 아니라.”

  “내가?”

  도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냥 오렌지주스를 달라고 하거나 아무거나 달라고 했으면 널 뽑자고 안 했을 거야. 도해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너 오고 나서부터 하인즈가 좀 달라진 것 같아.”

  좋은 쪽으로, 나쁜 쪽으로? 술에 취해 붕 뜬 것 같은 기분으로 이어질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 도해는 이렇게 말했다.

  “하인즈를 알게 된 사람이 너라서 다행이야.”

  손가락으로 눈을 감은 내 속눈썹을 쓸어올리면서였고, 나는 놀라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그 접촉을 받아들였다. 그 순간의 모든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서였다. 과거 짧게 사귀었던 몇몇 남자애들이 몸을 붙이고 손을 뻗어올 때 느꼈던 우스꽝스러움, 그저 무언가를 따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도해에게는 없었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도해가 내 얼굴을 향해 고개를 숙이던 순간에도 어쩐지 나는 어센틱, 이라는 영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도해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진자 운동을 하는 추처럼 도해의 집과 비사이드를 오갔다. 삼십 분 거리의 자취방에는 가끔 물건을 가지러만 갔을 뿐, 별일이 없으면 도해의 원룸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출근과 퇴근을 했다. 나는 쿨한 언니 같은 스타일로 머리를 잘랐고, 도해의 옷을 빌려 입기도 했다.

  그 집에 있다 보면 하인즈와 단둘이 있게 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나는 비로소 하인즈의 편리함에 대해 실감했다. 하인즈는 쓸모없는 물건을 없앨 수 있다는 것 외에도 큰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인즈는 한 공간에서 숨 쉬는 다른 인간이 주는 안정감을 제공하면서도, 살아 있는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성가신 점은 모두 거세된 존재였다. 나는 그 신비한 존재에 대해 아무에게도-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해서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302호 안쪽의 세계를 바깥의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가끔 나는 자취방에서 버릴 물건을 가져와 하인즈에게 없애게 했다. 아무리 씻어도 안쪽의 때가 가시지 않는 텀블러,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오래된 반찬통, 사용기한이 한참 지난 바디로션 같은 것들. 물건이 없어질 때마다 나는 마술의 트릭을 알아내려는 관객처럼 눈을 부릅뜨고 그 찰나의 순간을 아주 자세히 관찰했는데, 물건들은 어떤 중간 과정도 없이 말 그대로 뿅 하고 사라졌다. 반복해서 보다 보니 그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신기하거나 재미있지 않았다. 도해는 없애본 것 중 가장 큰 물건은 전신거울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하인즈가 얼마나 큰 물건을 없앨 수 있을지 호기심이 일 때도 있었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여 커다란 쓰레기를 운반해 올 만큼 궁금하지는 않았다.

  내가 하인즈에게 준 구형 노트북 역시 처음에는 없애버릴 생각으로 들고 왔던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해 사용했던 그 노트북은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서 전원 케이블을 분리하면 곧바로 꺼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하인즈가 노트북을 물끄러미 바라본 그 순간에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하인즈의 눈앞에서 먼지 쌓인 노트북에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고, 와이파이를 잡아 유튜브에 접속했다. 검색창 안쪽에서 깜빡거리는 커서를 잠시 바라보다가 ‘비틀즈’라고 입력했다. 어딘가에서 나사가 머나먼 우주에 있을 생명체를 향해 비틀즈의 노래를 쏘아 보냈다는 뉴스를 읽은 적 있었던 것이다. 인류를 대표할 만한 노래를 부른 가수라면 하인즈에게 들려주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수많은 썸네일 중에서 익숙한 앨범 재킷 하나를 클릭했다. 횡단보도를 넓은 보폭으로 가로지르는 네 명의 남자들. 그 횡단보도가 ‘애비 로드’라 불리는 도로에 있다는 사실도, 앨범 제목이 그 도로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는 사실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구형 노트북의 스피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곡이어서 나는 영상의 제목을 힐끗 보았다. 히어 컴즈 더 선.

  “눈을 감고 들어봐.”

  하인즈는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눈을 감았고, 재생 바가 끝까지 다 채워지고도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눈을 떴다.

  “어때?”

  내 질문에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 번 더 들려줄까?”

  하인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이 재생되고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 기타 반주가 흘러나오자 하인즈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손을 뻗어 손가락 끝으로 하인즈의 속눈썹을 쓸어보았다.

  그날부터 하인즈는 하루 종일 비틀즈의 노래를 들었고, 나와 도해는 하인즈에게 이어폰을 사 주었다.


  봄 학기가 개강했을 때 나는 평일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손님이 가장 많은 토요일 하루만 출근일하게 되었다. 도해와 비사이드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사라졌지만 그것이 우리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도해의 집에서 보냈다.

  그즈음 나는 대학 친구들과 중고 레코드숍을 겸하는 카페에 갔다가 계획에 없던 레코드판을 하나 샀다. 애비 로드. 단번에 눈에 들어온 그 앨범 재킷 때문이었다. 나는 그 레코드판을 하인즈에게 선물할 작정이었는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재생할 수 없는 레코드판을 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고민 끝에 인터넷으로 턴테이블을 하나 주문했다. 입문용 기기였지만 이십만 원이 넘는 물건이었다. 오만 원짜리 중고 스피커도 하나 샀다. 후회는 없었다. 턴테이블로 듣는 비틀즈의 노래는 분명 차원이 다를 것이었으니까. 나는 며칠 동안 하인즈가 보일 반응을 상상하며 배송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인즈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도해의 원룸이 아닌 내 자취방으로 물건을 배송받았다. 

  오후 수업이 끝난 뒤 자취방에 들렀다가 302호에 도착했을 때, 도해는 이미 비사이드로 출근하고 없었다.

  “하인즈, 안녕.”

  내가 인사하자 하인즈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감자튀김 말고 다른 선물을 가져왔어.”

  나는 바닥에 턴테이블과 스피커가 든 박스를 내려놓고 쇼핑백에서 비틀즈의 레코드판을 꺼내 하인즈에게 건넸다.

  “이거 봐. 비틀즈의 음반이야.”

  하인즈는 두 손으로 레코드판을 받아들었다. 앨범 재킷은 색이 조금 바래고 한쪽 귀퉁이가 살짝 찢어진 것을 빼면 아주 좋은 상태였다. 하인즈는 재킷에 인쇄된 이미지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 그 표면을 천천히 훑었다. 나는 하인즈의 긴 손가락이 비틀즈 멤버들의 발 위를 스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잠시 관찰했다. 그리고 하인즈가 레코드판을 마저 감상하는 동안 턴테이블을 조립했다. 동봉된 매뉴얼을 따라 몇 가지 부품을 끼워 넣고 스피커를 연결하면 끝이었다. 거실에는 하인즈가 앉은 안락의자 말고는 아무런 가구가 없어서 턴테이블을 바닥에 덩그러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인즈의 손에서 레코드판을 넘겨받아 안에 든 것을 꺼내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표시등에 빨간색 불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대로 앨범 재킷을 턴테이블의 덮개에 기대어 세워 놓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까맣고 둥근 원반 위로 끝에 바늘이 달린 톤암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바늘이 원반의 가장자리에 닿은 순간, 작게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노래의 전주가 울려 퍼졌다. 히어 컴즈 더 선. 하인즈는 당연하다는 듯이 눈을 감았다. 나도 따라서 눈을 감았다. 턴테이블로 듣는 비틀즈의 노래는 확실히 달랐다. 딱히 예민한 귀가 아닌데도 알 수 있었다. 음의 질감이랄지, 공기의 진동이랄지,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노래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눈을 떴다. 하인즈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어때, 유튜브로 듣는 거랑은 확실히 다르지?”

  하인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뿌듯해져서 빠른 말투로 되물었다.

  “그치? 훨씬 좋게 들리지? 한 번 더 들어볼래?”

  하인즈는 그 질문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다리 위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그 화면에는 유튜브 페이지가, 내가 방금 턴테이블로 재생한 그 앨범의 이미지가 떠올라 있었다. 하인즈의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지만 나는 순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인즈는 비틀즈를 늘 듣던 방식대로 듣고 싶어 했다. 내 선물은 거부당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함을 가장하며 다시 턴테이블을 조작해 <히어 컴즈 더 선>을 재생했다. 스피커에서 반주가 흘러나오고 조지 해리슨이 노래해도 하인즈는 눈을 감지 않았다. 나는 두 트랙이 더 재생될 때까지 안락의자 옆에 앉아 있다가, 하인즈에게 아무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미닫이문을 닫았다.


  도해가 나를 깨운 건 새벽 두 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비사이드에서 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듯했다.

  “저게 뭐야?”

  도해의 손가락은 거실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이 가시지 않아 잔뜩 찌푸린 눈으로 바라본 곳에는 턴테이블과 스피커가 있었다.

  “턴테이블. 내가……”

  목이 잠긴 탓에 내 목소리는 낯선 사람의 것처럼 들렸다. 

  “선물……로 가져왔는데. 턴테이블로 노래 들어본 적 없지?”

  도해는 굳은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 집에서 노래 별로 안 듣는데.”

  짧지 않은 침묵 끝에 도해가 내놓은 말이었다.

  “그럼……그냥 인테리어 소품이라고 생각해.”

  “나 거실에 뭐 안 두는 거 알잖아.”

  그런 사람이 쓰레기는 쌓아두고 살았어? 그때쯤엔 잠이 완전히 깨서 쏘아붙일 말이 곧바로 떠올랐지만 나는 참아냈다.

  “그럼 버리든지 팔든지 마음대로 해.”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각자 허공 어딘가를 응시했다. 나는 여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일 초 일 초를 견뎌냈다. 그 끝에 도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냐. 선물 고마워. 깨워서 미안. 자.”

  도해는 방을 나가며 미닫이문을 닫았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물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날 수업이 끝나고 도해의 집에 갔을 때, 도해는 화해의 제스처 비슷한 것으로 내가 올 시간에 맞추어 턴테이블을 재생하고 있었고, 나는 맥도날드 종이봉투에서 하인즈의 감자튀김과 도해가 먹을 소스를 뺀 빅맥을 꺼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우리는 또 한동안 나쁘지 않게 지냈다. 내가 다시 대학 생활에 적응해가던 그 시기에 도해는 종종 원룸의 미닫이문을 닫고 전화를 하곤 했다. 몇 번인가 엄마, 라는 단어가 헐거운 문틈으로 흘러나왔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루에 한 가지씩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두 가지 맛이 나는 피자를 나누어 먹었다.

  이상한 일은, 종잡을 수 없는 순간에, 하인즈에게 처음 턴테이블을 틀어줬던 그 순간이 불쑥불쑥 떠오른다는 거였다. 훨씬 좋지? 한 번 더 들어볼래? 내가 볼썽사나운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물으면, 하인즈는 아무 표정도 없이 유튜브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회상의 끝엔 언제나 그 새벽 도해가 내 앞에서 쉬었던 깊고 깊은 한숨이 이어서 재생되었다. 머릿속의 도해는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도해가 기억과는 다른 얼굴을-나를 진심으로 딱하게 여기는 얼굴을-하고 말했다. 네가 상상할 수 없는 거라고 해서 실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잠든 나 몰래 한 박스에 십이만 원짜리 유산균을 삼켰다. 실존적인 힘이 솟는 느낌이거든…… 실존, 그 지긋지긋한 실존. 언젠가부터 나는 도해가 눈앞에 있을 때도 머릿속의 도해 때문에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다. 수업이 끝나면 302호로 향했지만, 도해와 함께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가끔 전공 수업을 연속해서 듣고 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아무래도 자취방에서 자야 할 것 같다며 밤늦게 택시를 타고 돌아간 적도 있었다. 아침 수업이 너무 일찍 시작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도해와 있으면서 줄곧 느껴왔던 것,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이상적인 형태를 이뤄간다는 감각. 매번 놀라움과 함께 기꺼이 흐름에 나를 내맡기게 했던 그 감각이 잠시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그 시기에도 나는 비사이드에 도해가 먹을 간식을 숨겨두거나, 내 쪽에서 먼저 실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를테면 이런 메시지를. 오늘은 하와이안 셔츠 몇 시에 왔어? 하지만 도해에게서 답장이 오면 오랫동안 확인하지 않다가 뒤늦게 답장을 보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도해도 내 늦은 답 메시지에 답을 보내지 않았다. 대학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났고, 나는 수업이 없는 날에는 302호에 가지 않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도해의 침실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던 어느 밤에, 도해는 침대 위에서 나에게 물었다. 우리 오늘 질문 안 했지? 나는 어어, 하고 대답했다.

  “너희 집 가족은 어떤 사람들이야?”

  그 질문에 나는 도해의 가족을 떠올렸고, 뒤이어 내 엄마와 아빠와 동생을 떠올렸다.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함께 여행을 가고 그때마다 서로 감정이 상하곤 하는 그 사람들을.

  “하나도 재미없어, 우리 집 얘기는.”

  도해답지 않은 밋밋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시 침묵하던 도해가 입을 열었다. 너는 질문 안 해? 그때 나는 막 눈이 감기던 참이라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을 아무 여과 없이 던졌다.

  “하인즈로 살아있는 거 없애본 적 있어?”

  도해는 아주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잠들었나, 싶을 때가 되어서야 죽은 바퀴벌레를 없애본 적은 있지만 살아있는 걸 없애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침대 위의 도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했지만 바닥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도해는 집에 없었다. 내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늦은 아침을 먹으면서, 나와 도해 사이에 아주 자연스럽게 생겨나 존재하던 무언가가 영영 사라지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비사이드에서의 주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에게는 아르바이트로 푼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많았다. 화장실에서 거사를 치르려는 커플을 쫓아내는 것도, 손님과 편의점 샌드위치를 걸고 포켓볼 내기를 하는 것도 더는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던 참이었다.

  도해에게서 메시지가 온 건 어느 늦은 밤이었다. 메시지함의 위쪽에는 우리가 나눈 마지막 문자-너 비사이드 그만뒀어? 응-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나는 도해와 한 달도 넘게 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도해는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일주일 정도 집을 비울 예정인데 하인즈가 잘 있는지 가끔 들여다봐 달라는 거였다. 문자 메시지의 말미에 도해는 덧붙였다. 이렇게 오랫동안 혼자 둔 적이 없었거든. 너 말고는 부탁할 사람이 없어. 나는 일주일간의 부재가 도해의 가족과 관련된 것임을 단번에 짐작했지만 짧게 답했다. 오키. 나는 그 약속이 자연스럽게 소멸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도해는 집을 비우기 이틀 전 내게 다시 연락했다. 약속 잊은 건 아니지? 이번만 좀 부탁할게.


  나는 일주일 동안 딱 한 번 하인즈를 보러 갔다. 기말고사가 이 주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고, 그해는 오월까지도 날씨가 이상하게 추웠고,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나는 도해가 돌아오는 날 오후가 되어서야 감자튀김을 사 들고 미적미적 302호로 향했다. 그날 밤늦게 돌아오는 도해를 마주치기 전에 하인즈에게 감자튀김만 주고 나올 생각이었다. 손이 먼저 기억하는 일곱 자리 숫자를 키패드에 입력하자 단조로운 전자음과 함께 도어록의 잠금이 풀렸다. 나는 잠시 문고리를 잡고 서 있다가 도어록이 다시 잠기기 직전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질 무렵이라 거실에는 주황색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하인즈가 있었다. 늘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이어폰을 끼고 무릎 위에 놓인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일주일간 방치되었을 하인즈는 겉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유 모를 불안감과 죄책감에 서둘러 감자튀김이 담긴 종이봉투를 꺼내 들었다. 늘 하던 대로 종이봉투 안쪽에 케첩을 짜서 감자튀김과 함께 하인즈에게 건넸다.

  “하인즈, 자.”

  하인즈는 이어폰을 빼고 감자튀김을 받아들었다. 그는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서, 일정한 양의 케첩을 묻혀서, 필요한 만큼만 입을 벌려 집어넣고,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씹었다. 그러고는 더 이상 감자튀김을 먹지 않았다. 감자튀김을 한 손에 든 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하인즈에게 왜 먹지 않냐고 묻는 대신 내 손에 들려있던 것을 내려다보았다. 내용물을 모두 짜낸 일회용 케첩은 하인즈 상표를 달고 있지 않았다. 작은 글씨로 ‘오뚜기’라고 쓰인 빨갛고 쪼글쪼글한 직사각형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맥도날드는 언제부터 하인즈 케첩을 오뚜기 케첩으로 바꾸었을까?

  거실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노트북에서 새어 나오는 빛만이 하인즈의 얼굴에 희미한 얼룩을 그렸다. 노트북 화면에는 여전히 비틀즈의 앨범 재킷이 떠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무언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았다. 이 공간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 건 오랜만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선물했던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이 보이지 않았다. 원룸 안을 굳이 뒤져보지 않아도 그것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정확히 이 장소에서 있었던 한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도해와 함께 하인즈 옆에 있었고, 우리는 비틀즈의 앨범 재킷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젠가 같이 애비 로드에 가 보면 좋겠다고. 하인즈도 데려갈 수 있을까? 내가 물었고, 우리는 하루 종일 그 계획을 실현할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턴테이블이 존재했던 텅 빈 공간을 응시하는 동안 조용한 분노가 내 안에 일어났다. 나는 노트북의 전원 케이블을 뽑아버렸다. 그러고는 도해의 집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내 물건들-책 두 권과 옷가지 몇 개-을 모두 챙겨 현관으로 향했다. 그 집의 현관 센서등은 수명이 다 된 지 오래여서 내가 신발을 신고 문고리에 손을 올릴 때까지 불은 켜지지 않았다.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하인즈가 보였다. 노트북 화면에서 새어 나오던 빛마저 사라지자, 텅 빈 거실 한쪽에서 하인즈는 마치 안락의자의 일부 같았다. 푸른빛을 띤 어둠이 거실을 꽉 채우고 있었고 그 안에서 하인즈는 너무 작고 연약하게 보였다. 하인즈. 읊조리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인즈를 불렀다. 하인즈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하인즈, 하고 발음했던 마지막 입술 모양을 지우지 못한 채 한동안 그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건물 밖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경적을 울리고 멀어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뒤 신발을 벗고 거실로 걸어갔다. 노트북에 케이블을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유튜브에 접속하고 노트북을 다시 하인즈의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그 모든 것을 하인즈는 그저 조용히 보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하인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하인즈를 만날 때마다 매번 그러했듯이, 이제 다시는 오지 못할 이국의 관광지에 간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그의 생김새에서 어떤 느낌이라도 포착해 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서는 순간 그의 얼굴은 다시 흐려지고 필사적이었던 나의 기분만이 선명하게 남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인즈, 하고 싶은 대로 해.”

  뭐든 보고 싶은 걸 보고 있어.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다른 말이었다.


  도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하인즈를 보러 갔던 바로 그다음 날 새벽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이었던 내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에서는 바람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러다 도해가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는데,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도해는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인즈가 없어졌어.”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원룸 건물 앞에서 도해를 발견했다. 도해는 길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얇은 옷차림과 슬리퍼를 신은 맨발이 눈에 띄었다. 도해는 고개를 숙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인즈가 없어졌어. 나는 일단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도해를 302호로 데려갔다. 도해는 집 안으로 들어와서도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나는 마치 집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뜨거운 물을 끓여 도해에게 건네주었다.

  “아까 밤 열 시 조금 지나서, 집에 왔을 때는 분명히 있었거든.”

  도해는 그 말을 하면서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거실의 안락의자를 바라보았다. 안락의자 위에는 익숙한 노트북이 열린 채 어두운 화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하인즈의 마지막 목격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조금 안도하고 말았는데, 그것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있는 것만 확인하고…… 바로 방에 들어가서 잤어. 근데 새벽에 깨 보니까, 하인즈가 없어진 거야.”

  도해는 도저히 하인즈가 없는 집 안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라고 했다. 웅얼거리는 말이 도해의 입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불도 안 켜고 스치듯 본 거긴 한데…… 분명히, 분명히 있었거든……”

  나는 기묘하게 굳은 도해의 표정과 조금도 줄지 않은 컵 속의 물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일단 양말 신어. 주변에 있을지도 몰라. 나가서 찾아보자.”

  도해는 양말을 신으라는 내 말이 하인즈를 찾게 해줄 유일한 신탁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하인즈를 찾았다. 찾았다고는 하지만 돌아다니며 하인즈를 외친 것뿐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잃어버렸냐며 다가왔지만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하인즈의 이름을 부르며 다음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원룸 골목에서 욕-좆같은 년들아, 조용히 좀 해!-을 들어먹은 후에야 우리는 도해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쯤엔 하늘이 저쪽 끝부터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고, 우리 둘 다 목이 쉬어서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도해의 집 안에 남아 있던 유일한 식량인 유통기한 지난 컵라면 하나에 뜨거운 물을 붓고 접이식 탁자 앞에 앉았다. 삼 분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지나고 라면이 다 불어 터질 때까지 도해도 나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나와 도해는 그날 싱글 침대에서 함께 딱 붙어 잤다. 내가 도해의 침대에서 잔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늦봄의 추위가 뼛속에 박힌 것만 같아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둘 다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세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침대에서 혼자 눈을 떴다. 거실로 나갔을 때 아침의 빛은 텅 빈 안락의자를 노골적으로 비추어 보이고 있었다. 도해는 안락의자 옆쪽의 벽에 기대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내가 다가가자 도해는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있던 거야.”

  도해가 쉬어버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필사적으로 주어를 생략한 문장이 부자연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트북 화면을 보았다. 하인즈가 좋아하던 비틀즈의 노래 영상이었다. 나는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고 유튜브 페이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많은 추천을 받아 상단에 떠 있는 영어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주의하십시오. 이것은 진짜 비틀즈의 노래가 아닙니다. 공식 채널에 올라오지 않은 비틀즈의 노래는 대부분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 냈을 뿐인 가짜입니다. 그 댓글을 읽고서야 나는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 재생했다. 나와 도해가 말없이 마주 앉은 거실에서, 조지 해리슨과 아주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이름 모를 남자가 노래했다. 여기 해가 뜨고, 모두 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노래가 끝나갈 때쯤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하인즈가 마지막으로 없앤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도해도 그때 나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꼭 그때가 아니었더라도, 언젠가는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을 그 질문을.


  나는 도해와 함께 한나절 더 동네를 수색했다. 이번에는 하인즈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지 않았다. 처음 온 동네를 산책하는 사람들처럼 두리번거리며 도해의 집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을 뿐이었다. 몇 번인가 같은 길을 왕복한 뒤 다시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학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도해는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도해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도 도해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시간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흘렀다. 나는 졸업 기념으로 동기 몇과 떠난 해외여행에서 휴대폰을 도둑맞았다. 도둑이 휴대폰에 연동된 계정까지 탈취해버린 덕분에 저장된 모든 연락처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도해에게 연락할 방법이 사라졌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비사이드에 문의해 볼 생각을 한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지도 앱에서 검색한 비사이드 바의 이름 옆에는 ‘폐업함’이라는 빨간 글자가 떠 있었다. 도해의 집 주소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시간이 더 흘러 취업 후에 런던으로 출장을 갔을 때도, 나는 마지막 날 충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음에도 애비 로드에 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고 있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애비 로드에 다녀올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 그것이 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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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해 주나영 우기 막바지인 3월 아침, 조식당에 안까지 빗소리가 크게 들렸다. 직원은 사다리에 올라 창에 붙은 검은 시트지를 문질렀다. 들뜬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눌렀지만 쉽게 붙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서 창을 가려야 하나 싶었다. 어젯밤 체크인할 때 받은 안내문 상단에는 영어로 ‘침묵의 날(녜삐 데이)’이라는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동안 발리의 불빛과 소음을 줄이며, 투숙객의 호텔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건네던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새해 첫날을 아주 조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거든요.”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호텔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손님들도 주변을 살피며 말을 줄이는 듯했다. 사다리 위의 직원은 테이프를 한 조각 더 잘라 시트지 가장자리에 붙였다. 그래도 한쪽이 다시 들뜨자 시트지 한 장을 떼어 사다리 아래로 내려보냈다. 창의 절반쯤이 드러났고, 유리 바깥 면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케이지-프리 에그 화이트 오믈렛을 주문했다. 쉰을 넘긴 뒤부터 식단과 운동에 부쩍 엄격해졌다. 디종 머스터드 병을 열어 숟가락으로 접시 귀퉁이에 덜어 놓은 뒤, 오믈렛을 잘라 찍어 먹었다. 면도를 공들여 한 듯 턱끝이 말끔했다. 맞은편에 앉은 혜리는 빵 바구니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집어 들더니 박혀 있는 올리브만 손끝으로 빼 먹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이 어깨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물기가 묻었다. 나는 냅킨 상자를 혜리 쪽으로 밀었다가 멈추었다. 혜리는 이미 옆에 놓인 냅킨으로 손끝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혜리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딸이다. 남편은 나보다 열다섯 살 많고, 혜리는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리다. 혜리가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호주로 건너간 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 혜리를 만났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 남편이 서재에서 혜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 날이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주방에 갔다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물병만 꺼내 돌아왔다. 통화가 길어지는 날에는 먼저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통화를 마친 뒤 혜리의 학교생활과 새로 키우기 시작한 동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는 그가 보여 준 사진을 몇 장 넘겨본 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혜리는 빵에서 올리브를 하나 더 빼 입에 넣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은 혜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뤄 왔다. 결혼식은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흘 정도 쉬고 오자고 한 것도, 한국과 호주의 중간쯤인 발리에서 혜리를 만나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출발 전날 밤, 남편은 서재에서 청첩장이 든 봉투를 가져왔다. 구겨지지 않도록 얇은 파일 사이에 끼워 여행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혜리는 아보카도 스프레드를 빵 위에 고르게 펴 발랐다. 한입 베어 물자 빵 껍질이 바스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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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론니플래닛
    감동했어요

    너무 재미있다.. 하고 봤는데 강 건너 얼간이들 쓰신 분이네요! 개성 있으신 듯..! 잘 읽었습니다.

    • 2026-08-04 05:35:06
    론니플래닛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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