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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

  • 작성일 2026-03-01

   [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


아를



   최초의 기억은 들렸던 것이다.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 할머니는 늘 자기 전에 적혀 있는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를 때,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른 생경한 목소리와 리듬으로 그것들은 발화되었고 그 목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거기에 분명히 있었지만 어느 영겁 너머 다른 차원에서 내려오는 작은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기에 그 소리의 흐름 속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나 또한 내가 무엇인지, 내가 있는 곳을 잊어버렸다. 그 뜻 모를 말들을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거의 기도처럼, 주문처럼, 노래처럼 들렸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전해지고 또 쓰인 것들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로 전해졌고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어설프게나마 소리 내어 보기도 했다. 그 유년의 밤 동안 할머니는 나의 유일한 이야기꾼이었으며, 어린 나의 두 귀가 되어 주는 밤의 훌륭한 안내자였다.

   구전. 우화. 신화. 전설. 민담. 시대를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야기들. 되풀이되는 노래 같은 것들. 요정. 고블린. 거인. 요괴. 도깨비. 기사와 문지기. 바드와 리라. 검과 용사. 광장의 하프 소리. 그것들은 때때로 꿈속을 수호하며 때론 일상의 그림자들이 되어 호출하면 응답할 것만 같았다. 

   들려지는 것들이 쓰여질 때, 쓰여진 것들이 들릴 때. 적혀 있는 것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귀로 전해지는 것. 반복해서 전해지고 지금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것. 어느 날 들렸던 하나의 목소리가, 어느 한 구절이 누군가를 살렸다면, 그로 인해 살아갈 수도 있다면 그것은 신앙과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빌어 준 것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계속 갈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로부터 지금도 계속되는 어떤 순간들이 지속될 수 있었을 뿐이고 그다음이 있기를 그 순간들로부터 감히 바랄 수 있었던 것이다. 늘 목숨처럼 붙들고 있지만 동시에 늘 너무 아득하기만 한 것에 대해 대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 고민의 끝에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며칠 동안 정신이 몇 번이나 나갈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셀 수 없을 정도로 꿈을 정말 많이 꿨는데 잠깐의 꿈에서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의 소리였겠지만 귓가에서 목소리는 오래 머물렀다. 병실의 침대가 아니라 이제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나는 온 건가? 눈을 뜨면 나의 옆에 누워 그것을 읽어 주는 할머니는 없었지만 나는 들었다. 이곳을 넘어서, 시간을 넘어서, 세월을 넘어서. 그 밤 이전의 무수한 밤들로부터, 그 밤의 영겁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던 목소리를. 초연해지고자 열망하는 마음을 이미 초월해 있는 곳으로부터 목소리는 들린다는 것이. 나의 뼈의 일부는 부러졌고 언제까지 누워 있어야 할지 그때는 몰랐다. 부서진 건 뼈뿐만이 아니라 또다시 산산조각 나 버린 내 자신이었다. 왜 이런 시간이 올 때마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어 버렸으면 아닌 다른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는 않는 걸까.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믿음이 부서진다는 건 믿음이 있다고 또다시 믿었던 내가 있었다는 거겠지. 그게 뭐 알 바, 라는 듯이, 소리는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지속된다. 병실에 누워 있는 나는 그 불경 소리를 듣는 어린 내가 되어 누워 있는다.

   누워 있는 동안 다시 병원의 일상 속에서 들리는 소리.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귓가에서 맴도는 소리. 음악. 음악이 아닌 것. 그 전부이며 아무것도 아니며 그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정말 최악인 건 이어폰도 이어플러그도 낄 힘조차 없을 때. 하지만 들려온다. 물방울 맺히는. 맺혀 흐르는. 물소리. 물결이 물결로 굽이치는. 끝도 없이 퍼져 나가는. 이름에 물이 있어서 그런가. 물처럼 살아라, 할머니의 목소리. 들린다. 그들의 목소리. 눈을 감으면 들려온다. 꿈속을 타고 귓가에. 결코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계속되는 슬픔이 있다. 그리고 아껴 듣는 음악들. 부적과도 같은. 거꾸로 솟는 음계들을 상상한다. 더는 없어도 없다는 것과도 상관없이 계속되는 목소리들. 살고 싶게 하고, 살고 싶게 하는 것들이 정말 살게 하듯이. 어느 날은 곤두박질쳐 죽고 싶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살아라, 하는 것들, 흘러, 흘러가라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언제고 되돌아오고 들려오는 것인가. 어째서 계속되는 것인가. 살고 싶지 않을 때도 그 소리들은 들려온다. 살고 싶지 않은 마음과도 상관없이. 삶보다 어쩌면 더 질긴 것 같은 그것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살 수도 있는 것인지. 공중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그저 공중이 있다고 믿고 싶은 건지. 바닥까지 떨어지고 거꾸로 솟아오르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공기 중에 떠돌며 귓가를 맴도는. 너와는 상관없이, 너의 상태와도 상관없이. 그들과도 상관없이. 무수히 너를 다독이는. 너를 따라오는 소리들.


   어떤 친구들은 가끔 알 수 없는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가끔은 그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묻고 싶지만 어떤 결계라도 있는 것처럼, 나는 입을 뗄 수가 없다. 그들은 거기에 있으면서 동시에 거기에 없다. 그 허밍이 빛의 테두리처럼 그들의 곁을 두르고 있을 때, 나는 잠시 그 곁에 있었기에 그것을 들을 수 있었을 뿐. 그 순간은 우연도 필연도 운명도 아닌 것 같다. 살아 있게 하는 것과 살아 있다는 건 너무 다른 것이라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생경함 속에 너는 어떻게 전부를 걸 수 있니. 하지만 늘 너는 전부를 건다. 그 생경함만이 너의 전부인 것처럼. 아껴 읽었던 것들. 아껴 들었던 것들. 기대어 울었던 성전과도 같았던 것들. 그 시간들 속에 내가 살았다는 것보다도 더 사실인 것 같았던 종잇장 사이의 숨 쉬고 있는 세계. 견뎌야 하는 소리들보다 더 실제와 같았던 음률들. 울림들. 나는 그걸 뭐라 불러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른다. 그것들 때문에 네가 살았으며, 그때를 살게 한 감각들의 일부가 죽은 것만 같아도 여전히 맴돌아 어느 날의 너를, 나를 또 다시 살게 한다는 것만을. 전부 다 부질없구나 때로 그런 생각이 들어도 그 소리와 구절들을 쫓아 여전히 가는구나. 너는 가고 있구나. 그 궤적을 따라 숨을 쉬는 것처럼 너는 부르고 있구나. 살아가는구나. 꿈꾸는 것을 들으며, 그 들리는 것들을 따라 한없이 가고 있구나.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는 죽을 때까지 내 귓전을 맴돌 것이다. 할머니의 할머니가 죽은 이후에도,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죽고 난 이후에도 그랬듯이. 할머니로부터 나에게 들려왔던 것처럼. 그들의 입과 나의 입을 통해 전해질 것이며. 그리고 내가 죽은 이후에도. 소리는 이어지고 전해질 것이다. 물론 나는 내가 죽은 이후를 알지 못한다. 다만 시대를 거쳐 어느 날 내게 들린 것들에 기대어, 어느 날의 내가 살아가듯이. 어떤 경로를 통해 지구 정반대 편의 음악이 내게 와닿기도 하는 순간들처럼. 그리고 그 소리들을 따라 어느 기원을 향해 가기도 하는 것처럼. 상상할 수 없는 곳의 상상할 수 없는 이의 무엇보다 절박했을 소리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지금 이 순간 너머의 먼 미래까지도. 죽음 이후 들릴 무언가를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있게 하는 것이다.


   작은 교실 모퉁이에 앉아 문장을 따라가다 앉은 곳을 잊는 시간. 도서관 책장에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무언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시간. 난간에 기대어 앉아 붙든 것을 소리 내어 읽으며 견디는 시간. 내가 듣는 것은 나의 목소리였지만 문장들을 따라가는 나의 목소리는 이미 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구절들은 자연스럽게 암송하게 되었고 그 어떤 구절로 인해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음을 믿으며, 그 불가능 너머를 더듬어가며. 볼 수는 없어도 그것이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시간들 때문인지 혼자 있을 때면 여전히, 무언가를 읽을 때면 종종 소리 내어 읽어 본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좀 신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분명 텍스트를 읽고 있지만 그것이 음악처럼 들리는 순간이. 그리고 문자 너머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순간이. 마치 들리는 것처럼 읽히는 순간이. 그들을 통해 쓰여진 것들을 나는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가 아닌 불러 본다, 에 더 가까운 순간이. 이렇게 불러야지 하고 그것들을 부르는 것은 아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선율이 되어 흘러나왔을 뿐. 그들도 언젠가 이것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들리지 않지만, 어떤 순간이 겹쳐진다. 어느 시간대의 목소리가 또 다른 시간대의 목소리와 포개어진다. 비록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기에 실제로 겹쳐질 수는 없었다 해도 어느 시간대의 목소리가 또 다른 시간대의 목소리와 공명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분명한 사건이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울림으로. 잠시, 조우했다는 것. 이것은 읽기 너머의,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읽기의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이다. 그의 호흡을 통해 나의 호흡을 얹어 보고 그 운율을 따라 그 속으로 가만히 걸어가 보는 일, 사라져 보는 일, 상상해 보는 일. 때로는 음악처럼 들리는 순간의 목격자, 청자가 되는 것 같은 비밀스러운 순간들이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마주할 수 있게 된, 상상만 해 보았던 그들의 목소리와 그 호흡은 대부분 일치했고, 호흡은 일치해도 목소리는 상상과 전혀 다를 때 또한 있었다. 나는 이 일치와 비-일치의 순간을 마주할 때의 무언가 해방되는 것 같은 짜릿함이 좋았다. 한 음악을 아주 오랜 시간 반복해서 들으면, 그다음이 저절로 예측되는 순간이 있다. 여기서 이 음계로 전환되지, 이다음 구간에는 이 구간이, 하고 다가올 그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의 짜릿함처럼. 



   ❄

   2025년의 연말, 나는 k와 h와 함께 작은 낭독극을 준비했다. k의 시를 읽는 날들이 있었기에 h와 나는 만나게 되었을까? 그럼 k와 나는? h와 k는? 그럼 k와 h와 나는? 우리 셋의 공통점이라면 아마도 거의 유령과 같은 기분으로 각자의 어떤 시간들을 지나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엉뚱한 면이 있다는 것? (물론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h가 k의 시들로 이루어진 낭독극을 구성했고 나는 그 낭독극을 위한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다. 행사 당일, 나는 미리 준비한 음악들을 극의 구성에 맞게 재생시키고 k와 h와 나는 여러 막으로 나뉘어 배치된 시들을 번갈아 가며 낭독했다. 

   오늘과 같은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늘 2016년의 어느 날로 돌아간다. 2016년 나는 애정하는 친구들과 함께 파크사운드라는 밴드를 만들었는데, 그들의 시와 목소리를 정말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었다. 처음 그들의 목소리에 나의 목소리를 얹어 보고 서로의 목소리 위에 서로의 목소리를 얹으며 어떤 소리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서로가 합을 이루며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가 참 좋았다. 혼자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오르고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던 그 순간에는 또 다른 두근거림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셋이기에 셋이 모였기에 할 수 있는 무언가였으니까. 파크사운드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썼고 그것을 셋이 함께 만든 소책자에 담았고 곡으로 만들어 낭독하고 불렀다. 

   어떤 날의 목소리가 어떤 날에 겹쳐지며 어떤 날로 이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여전히 홀로, 때로는 둘이서, 셋이서 그 순간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무언가를 계속하고 있다. 목소리는 겹쳐지고 겹쳐진 목소리 위에 또 다른 목소리가 겹쳐지고, 다른 시간대 위에서 여전히 생동하고 있다. 그 목소리들을 따라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가 볼 생각이다.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3월호의 기획 콘텐츠 ‘문학, 음악, 장면들’에서는 세 분의 필자가 음악과 문학을 둘러싼 고유한 에세이와 선율 들을 들려드립니다. 한번은 가장 먼 곳에서, 몇 번은 내 안에서 뒤섞이고야 말았던 장면들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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