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디바비디부
- 작성일 2026-03-01
- 댓글수 12
[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비비디바비디부
홍순인
이거 제가 쓴 건데 들어 보세요.
나는 ‘네튤농’이라는 포크 밴드에 소속된 ‘작가’다. 밴드에 작가가 웬 말이냐고 따진다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네이버에서도 네튤농을 등록할 때 밴드에 작가라는 포지션은 있을 수 없다며 결국 나를 퍼커션으로 소개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작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인간 유형을 분류하는 건 신봉하면서 전 세계 보편적인 밴드 구성에 반기를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뭐, 고분고분 인정하면서도 서운하긴 했다. 참고로 나는 INFP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시를 써 가면 죄다 디테일한 묘사뿐이라 시인이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던(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평가도 있었다.), 화성학의 기초도 떼지 못했지만 밴드의 일원으로서 약 100회가량의 공연을 해낸 돌팔이 음악가이자,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는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런, 정말 그런 내가 포크 밴드에서 ‘작가’로 살아가게 된 어떤 우연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축제 위원장을 맡으며 학교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였다. 당시 학교 축제 기획에 도움을 주었던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진짜 시에 대해 공부하고자 했지만 너처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상에 앉아 있겠냐는 주변의 만류로 기분 좋게 기획사에 입사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특히 ‘이규범’을 만났다. 나와 같이 하루하루 일을 쳐내 가며 밤이 되면 야근을 하다가 술을 마시고 좁은 방에 여럿이 구겨져 자고 다음 날에는 이걸 또 반복했다. 대학원에 가면 불행해진다지만 기획사에 가도 불쌍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그런 의미 없는 날들 속에서 이규범이 나와 달랐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규범에게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싱어송라이터가 된단 말인가. 이규범은 노래도 못 했고 가사도 못 썼다. 나는 회사의 기획서와 제안서 내의 글과 카피를 대부분 담당하고 있었고, 평소 인디 밴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규범은 가사와 관련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나는 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을 제안해 줬고 종종 밤늦게까지 회의실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기보다 나도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보면 어떨까 막연한 상상을 해 보던 밤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규범은 회사를 떠났다. 정이 많이 들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규범이 첫 앨범을 낸다며 찾아왔다. 나는 그 앨범의 소개 글을 써 주었다. 솔직히 좋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안티팬의 입장에서 소개를 하는 글을 써 주었다. 나는 진심을 담은 글로 편하게 족발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이규범은 두 장의 앨범을 더 냈고, 나는 두 번 더 거하게 족발을 얻어먹었다. 이번 달에는 안 오려나 하고 사무실 입구를 바라보는 일이 늘었던 때였다.
그리고 나도 회사를 떠났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일을 바로 시작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쉬었다. 이상하게 늦잠을 잘 수는 없는 몸이어서 아침부터 일어나 하루 종일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싶었지만 보통은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어느 날은 이규범을 만나 술을 마셨고, 1인 밴드에서 4인 밴드로의 체제 변화를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명은 천재 베이시스트이고 한 명은 천재 기타리스트이며 이 둘은 이미 섭외가 완료됐다고 했다. 나머지 한 명은 그냥 홍순인을 생각 중인데 밴드에 작가가 있는 게 너무 멋있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어 왔다. 나는 존나 멋있다고 대답하고 이규범의 밴드에 가입해 버렸다. 살면서 이규범에게 들었던 말 중에 제일 달콤했으며 지난날 회의실에서 했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서 또 달콤했던 날이었다.
졸리신 분들은 이거 들어 보세요. 짧아요.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늘 시를 쓰고 싶었다. 남들보다 5년 늦게 1학년으로 입학했고 그래서 누구보다 낭만적으로 학교생활을 해야지 다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낭만은 시였다. 구구절절한 마음과 상황을 한 문장에 욱여넣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몇 페이지에 걸쳐 하기도 하는 시가 좋았다. 내 이름이 시였어도,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저 물러 터진 놈이라고 놀렸어도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시 수업에 늘 진지하게 참여했고 교수님 말씀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필기했다. 존 적도 없다. 그러나 시는 매번 나를 틀린 놈으로 만들었고, 오독하는 놈으로 만들었으며, 저 비슷한 정도로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성적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닿을 수 없는 것들은 나를 미치게 한다.
뭣보다도 시라는 놈은 끝내 내가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었지만, 정작 이제는 시를 쓰는 내가 뭐 하는 놈인지도 규정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나는 문학을 좋아했지만 사람 만나서 노는 걸 더 좋아했고, 술 마시는 걸 더 좋아했다. 학교에서 시 쓰는 인간으로 유명했다기보다는 잘 노는 형으로 유명했고, 동생들은 주로 나에게 시를 써 달라고 하기보다는 같이 술을 마셔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대학 생활을 야무지게 보냈다면 이렇게 야무지게 보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나는 열심히 살았다. 아니, 놀았다. 아마도 술이 시와 동의어였다면, 나는 대문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처절하게 노력하는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흉내만 냈다. 생각나는 대로 적고 이어 붙이고 지우곤 했다. 매번 낙서와 문장들로 가득한 내 노트를 보던 동기가 싸이월드에라도 올려 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럴까. 또 게시판에 쓰면 멋없다고 생각해서 꼭 다이어리에다가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수께끼나 외계어들의 향연이었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쉬지 않고 써 댔다. 많은 일촌들이 나의 다이어리를 좋아해 주었다. 댓글로 끊임없이 소통하고(물론 문학적인 이야기는 전혀 없었지만), 나의 글에 대한 말들로 또 새로운 주제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했다. 시인 같아요 라는 댓글에 나는 제법 우쭐해졌다. 시라고 부를 수는 없었지만 나는 시라고 믿는 것들로 시 수업과는 상관없이 전혀 다르게 내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내 안에서는 나도 내가 보는 이규범처럼 보이는 거 아닐까 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이규범이 되어 있었다. 제기랄. 그 후로 싸이월드 서비스가 종료되는 전날까지도 나는 다이어리에 글을 썼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뒤 이규범이 만든 밴드에 가입한 나는 작가라는 포지션에 맞게 바로 가사를 쓰며 작사에 참여할 줄 알았건만, 두 명의 착한 천재들과 한 명의 악마에 의해 박자와 리듬과 느낌에 대해 혹독하게 세뇌당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가라고 해도 실제 공연이 있는 경우 뭔가 무대에서 해야 되지 않겠냐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나는 치욕스럽게도 안티팬으로서 참여했던 앨범의 곡을 연주하게 되었고, 멜로디언을 불고 셰이커를 흔들며 가끔은 탬버린도 치고 카바사도 흔드는 불행한 퍼커션이 되어 갔다. 무엇보다 불행했던 건 그 후로는 앨범 소개 글을 아무리 써 대도 더 이상 족발은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인생은 내가 규정한 대로가 아니라, 내가 규정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쉬는 시간에 기타 코드의 종류도 배우고 기초적인 코드 진행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코드 진행 위에 어떻게 멜로디를 만드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쓴 가사를 노래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가 아니라 가사라면, 듣는 사람에게 직관적으로 가닿아서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내용이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적어도 누구보다는. 그러나 그 누구의 곡만으로도 나올 앨범은 줄을 지어 있었고, 그럼에도 영심이를 향하는 왕경태처럼 언뜻언뜻 어필을 해 봤지만 멜로디언이나 똑바로 불라며 혼쭐이 났다. 나쁜 기지배. 아, 이건 하니구나.
아직 잠 안 깨신 분들 계시면 거미 이야기도 들어 보세요.
KQED 방송국: 자신이 기본적으로 가수라 생각합니까, 시인이라 생각합니까?
밥 딜런: 아 나는 자신을 노래하고 춤추는 남자라고 생각해요.
― 샌프란시스코 KQED 방송국, 1965년 12월 3일 인터뷰 중에서.
2016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밥 딜런은 사람들이 자신을 포크 가수라고, 저항 가수라고, 혹은 시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평생 부정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자신을 그저 노래하고 춤추는 남자라고 규정한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에서 다른 희망을 본 것 같다. 뭔가 빛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시인이 될 수도 없었고 작사가가 될 수도 없었던 어떤 슬픈 사나이의 기구한 운명에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어쩐지 나는 해도 될 수 있고 달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아니 우리도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며 무언가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학과 음악을 접목시키는 방법에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가사는 아직 쓸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영화 OST를 떠올렸다. 영화 〈뷰티인사이드〉의 경우는 OST를 들으면 무슨 장면인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보고 들었다. 장면에 맞는 분위기의 음악, 그걸 설명하는 글을 쓰면 되겠다 싶었다. 나는 함축보다 구구절절 묘사에 강하니까. (이 글이 왜 이토록 구구절절 길어지는지 여러분도 이쯤에서는 눈치챘을 것이다) 밴드 멤버들과 회의 끝에 앨범에 타이틀곡과 관련한 연주곡을 한 곡 더 만들고 그 가사 칸에 내가 에세이를 써 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문학과 음악의 컨버전스, ‘튤립 에세이’다. 앨범 소개 글과 밴드 SNS 홍보 글을 전전하던 내가 진정한 ‘작가’로의 위대한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여담이지만 우리 밴드명이 ‘네덜란드 튤립 농장’에서 네튤농이 된 건 방탄소년단이 BTS가 된 것과 결을 같이 한다. 이만큼 우리는 혼란한 정체성 속에서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규정한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을 따르며 살아간다.
그렇게 나온 4인 밴드 체제로 나온 첫 앨범이 〈좋아하면 알게돼요〉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의 사소한 생각이나 행동까지 알게 된다는 내용의 곡이다. 밝고 경쾌한 곡이지만 튤립 에세이에는 조금 더 서정적인 느낌의 기타 연주곡을 넣기로 했다. 나는 마침 그 당시에 좋아하던 친구의 이름으로 3행시를 지어 에세이에 넣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을 생각하며 적었는데 지금 보면 처음으로 앨범에 에세이 작업을 한 거라 바짝 긴장하고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모두에게 3행시에 관한 것을 비밀로 하고 그 여자 친구에게만 이거 사실 네 이름이다 하고 알려 주었고, 그때 그녀는 무척 좋아했지만 나중엔 나와 똑같이 생긴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INFP인 나는 굳이 이런 말을 덧붙이게 된다. 그래도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니까 너도 내 행복 빌어라.
그 뒤로 네튤농 앨범이 여덟 개 나오는 동안 나는 일곱 개의 튤립 에세이를 완성했다. 나는 내 사랑 이야기를 에세이에 담기도 했지만 각 앨범의 타이틀곡에 담긴 화자에 따라 내 에세이의 화자도 다양해졌다. 이규범의 플러팅을 듣는 여성의 입장도 되어 보고 중고차 전시장에 나온 렌터카 입장에서도 에세이를 썼다. 타이틀곡의 독자이자 독자를 넘어 2차 창작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타자가 되는 경험까지 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가장 의미 있는 지점은 타자가 되는 경험, 즉 간접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시야가 확장되고 그 확장된 세계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 나갈 수 있다. 나는 에세이를 쓰는 과정에서 타이틀곡의 독자로는 이규범의 가사를 통한 간접경험을 하고, 작가로는 그 간접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상상의 인물 혹은 다른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또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간접경험으로 새로운 영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사가 정말로 문학일 수 있냐고 물으면 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고 말겠지만 적어도 내가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문학의 기능이 가사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몇몇 포털 사이트나 음원 사이트에서는 발화되지 않는 노랫말을 가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읽히기만 위해 쓰인 에세이는 가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색칠 공부하는 스케치북도 사람마다 다 다른 색 칠하는데 그냥 듣는 사람이 각자 마음대로 읽는 거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되겠냐고 벅벅 우겨서 작사 저작권도 한 달에 400원 남짓 받고 있는 어엿한 작사가도 되었지만. 아직 가사 칸에 에세이를 실어 주지 않은 곳들도 있다. 예, 제가 졌습니다.
잠깐만, 창 닫기 전에 이거까지만 들어 보세요. 이건 재밌어요.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시를 쓰고 싶었지만 누가 하지 말라고 해서 그만두고, 누가 회사에서 일하자고 해서 회사에서 일하다가, 누가 밴드하자고 해서 밴드에 들어가서 뚱땅거리다가, 누가 상 받는 거 보면서 부러워하다가, 나라고 못 할까 싶어 누가 하지 말라고 한 거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대학교 때부터 써 오던 것이 적어도 통속 시나 대중 시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튤립 에세이의 흥행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이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다행히 이 밴드와는 내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안심되기도 하고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치열하게 썼다. 쉽게 포기하는 성격 때문에 밴드 멤버들이 나를 잡아 놓고 생라면에 맥주도 먹여 가면서 어르고 달래서 쓴 적도 있다. 정말로 덕분에 썼다. 내 호박과 누더기를 마차와 드레스로 만들어 준 많은 요정 할머니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또 한 번 전하고 싶다.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껄였다면, 음악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고 그걸 통해 여러 타인이 되어 타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도 좋을 팬 중에 한 명은 〈좋아하면 알게돼요〉의 튤립 에세이로 태교를 했고, 아이가 나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전한 적이 있다. 아직 나를 다 모르니까, 그거 내가 타인의 목소리로 쓴 거니까. 그렇지만 역시 낭만을 향유하고 때론 사랑에 모든 것을 내거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는 뜻일 거다. 아니면 잘생긴 사람으로 큰다든가.
여전히 내가 쓴 가사를 문학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사로도 다른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할 수 있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어 주기도 한다. 여전히 네이버에서는 나를 작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아무튼 나는 포크 밴드에서 여전히, 덕분에 ‘작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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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3월호의 기획 콘텐츠 ‘문학, 음악, 장면들’에서는 세 분의 필자가 음악과 문학을 둘러싼 고유한 에세이와 선율 들을 들려드립니다. 한번은 가장 먼 곳에서, 몇 번은 내 안에서 뒤섞이고야 말았던 장면들에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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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서련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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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2건
작가 홍순인과 바리스타 홍순인의 삶 모두 멋있어요! 늘 응원합니다
또 읽고 싶어요 계속 계속 연재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