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시작을 위한 커튼콜

  • 작성일 2026-01-01

   [편집위원 기획 – 반성, 소망, 시작]


   시작을 위한 커튼콜


송희지


❋


   2025년은 내게 변화와 도전의 해였다. 짧지 않은 학부 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두 번째 시집을 펴내면서 지난 이삼 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작업물과 사유들을 털어 냈다. 문화센터 등에서 시 창작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만났고, 창작촌에 입주하며 잠깐의 서울살이를 해 보기도 했다. 또 그 변화와 도전의 한 축에는 극(劇)이 있었다. 새해 첫날, 신문을 통해 첫 희곡 「탐조기」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직전까지도 연극에 대한 지식이라곤 소나기 오는 날 도로변에 생기는 웅덩이만큼이나 얕았던 내겐 그 일이 어떤 사건처럼, 무척 고되고 생경한 모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희곡이 무엇인지, 연극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 해 동안 고군분투했었다. 많은 희곡을 읽었고 많은 연극을 보았다. 한 명의 독자이자 관객으로서, 손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좋은 작품들을 만났다. 특히 와즈디 무아와드의 작품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음이 틀림없다(나는 『화염』을 각기 다른 극단의 낭독 공연과 무대 공연으로 한 번씩 봤고, 희곡을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또 한 차례의 무대 공연과 한 번의 낭독 공연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이 가진 힘과 가치를 몸소 익혔다. 시나 소설은 작가의 머리에서 태어나, 그의 손으로 옮겨지고, 그의 품 안에서 완결된다. 희곡은 그와 다르다. 희곡의 완성은 실연(實演)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며, 그것은 연출과 배우, 드라마터그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조력을 바탕으로 비로소 몸과 숨을 얻는다. 두 번의 공연 연습에 참여하면서, 나는 배우들의 호흡과 몸짓이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 연출의 창의적인 시선이 어떻게 무대를 빛나게 하는지, 드라마터그의 예리한 질문이 어떻게 희곡의 골간을 드러내도록 이끌어주는지를 보고 배웠다. 공연으로 다시 만난 나의 희곡은 내가 생각지 못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나를 작가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동하고 환호하게끔 만드는, 기분 좋은 낯섦의 생기였다.       

   처음 신년 에세이 청탁을 받고,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주제를 접하고 나서 자연히 지난 2025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나간 일상에 관해 떠올리기보다는, 내 ‘씀’이 한 해 동안 어떻게 몸을 바꾸어 왔는지를 주로 되짚은 듯하다. 이를테면 이전까지는 거의 시만 쓰고 발표해 왔던 내가, 희곡이라는 장르를 접하고 익히게 되면서 겪은 생각·언어·감각의 변화에 대해서, 또 그것이 내 시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해서.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키워드 아래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초점도 분명 그곳을 향해 있을 것이다. 이 에세이는 지난 1년간 내 변화한 내 ‘씀’에 관한 내밀한 살핌, 일종의 고백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기억 하나를 먼저 꺼내 본다. 지난가을 나는 연희동의 단란하고 아름다운 창작촌 작업실 안에서, 세 번째 시집의 초고를 다 쓴 바 있다. 초고는 막 원고를 묶기 시작할 적 기획했던 대로 고대의 극과 서사시, 신화의 영향이 곳곳에 반영된 장시집이 되었는데, 원고를 한 데 묶는 축으로서 가장 큰 구심력을 발휘해 준 것이 바로 희곡의 장르적 특징과 형식이었다. 초고의 마지막 장을 다 써낸 순간, 불현듯 사위가 훅, 하고 깜깜해지던 것을 나는 느꼈다. 그건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극의 마침표를 찍는 형식으로서의 암전이었다. 하나의 극이 살아 움직이기를 그만두고 어둠의 널따란 관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나는 방 안에서 홀로, 시를 쓰며 실감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감사했다. 뜻밖의 기회로 극과 가까워지게 된 것이, 또 지난 한 해 동안 창작진들 바로 곁에서 (나 역시 한 명의 창작진이 되어)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 실로 대단한 행운 같았다. 


❋


   1월 1일 자 신문, 그 특별한 지면에 내 희곡이 실린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12월의 불법 계엄 사태 이후로 내 쓰기는 멈춘 상태였다. 어떤 것이 시가 될 수 있는지, 시를 향할 수 있는지, 어떤 시가 현실의 압도적인 불합리함에 대응하는 목소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라고 부를 만한 텍스트라곤 단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씀’의 길이 열린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길이었다. 내 희곡 등단작 「탐조기」는 24년 봄, 대학에서 희곡 창작 수업을 들을 때 썼던 것으로, 「탐조기」를 쓰고 투고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살면서 본 연극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입센이나 체호프를 비롯해 유명한 작가의 희곡 몇 편을 읽긴 했고 <오레스테이아> 같은 비극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실제로 공연되는 동시대 연극에 관한 정보라곤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국연출가협회의 주관으로 「탐조기」의 공연화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동료 작가들과 연출들을 비롯해 연극계에 몸담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위축되는 한편, 그 어떤 배움이라도 얻기 위해서 그들 곁에서 끊임없이 귀를 쫑긋 세웠던 듯하다. 어쩌면 시를 쓸 수 없는 상태, 거의 증상에 가깝게 느껴지는 그 반강제적인 함묵의 입장이 나를 극에 더더욱 골몰하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때 함께 작업에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탐조기」를 공연화 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작품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는데, 대사와 지문 하나하나의 의도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그 낯선 작업을 통해 나는 내 텍스트를 더욱 면밀하게 재독할 수 있었다.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 조가 뱉는 대사(“아저씨 저요, 정말로 언젠가는 떠날 수 있겠죠?”)가 왜 낙관적인 뉘앙스를 가져서는 안 되는지, 훤이 읊는 하이쿠(“안착 못 하는 / 나그네 심경이여 / 고타쓰 화로”1))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작가로서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연출가와 배우분들의 빛나는 의견은 희곡을 다듬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공연화된 탐조기에 두드러지는 것은 배경음악을 포함한 음향적 요소들이었는데, 희곡을 쓸 당시에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이 극에 큰 정서적 울림을 덧입혀 주는 핵심 요소가 되어주었다는 점에 즐거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진행한 리허설을 지켜보다가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탐조기」를 쓸 땐 한 번도 울적한 기분에 젖어 들지 않았었는데. 낯선 얼굴을 갖고 내 앞에 나타난 그 「탐조기」가 좋았다. 변방으로 쫓겨나다시피 떠나야 했던 이들의 연약한 목소리들이 섬세한 음악과 배우들의 몸을 만나 발화되고 있었다. 그를 통해 나는 내가 왜 이 극을 쓰기 시작했는지,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시 실감했다.

   「탐조기」의 공연화를 지켜보는 동안 나는 희곡을, 연극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 관해 아는 것이 여전히 협소함에도 그렇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희곡이 극의 실연을 위해 쓰이는 텍스트라는 점이 좋았다. 희곡이 희곡의 형식에서 멈춰야만 했다면, 고정되었더라면, 하여 희곡을 쓰는 나 역시 시 쓰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단독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가졌다면 나는 결코 극작을 통해 ‘쓰는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곡과 시는 모두 완성되지 않은 텍스트, 하나의 가능태이지만 그 빈칸이 성립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일상의 언어들, 지시적 기표를 재료로 시적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의미의 부딪힘, 깨짐, 산란(散亂)하는 이미지, 하나의 메시지로 완결되지 않는 리듬을 빚어내는 것이 시의 존재 방식이라면, 희곡의 대사와 지문들은 하나같이 실연의 가능성을 품에 안고 잠들어 있다. 많은 경우, 희곡의 의미는 단지 텍스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희곡 텍스트와 무대화 가능성 사이의 빈틈을, 희곡의 문학적 발화와 (아직 실연되지 않은/실연될) 실제의 발화 사이의 낙차를 떠돌고 있는 부유체에 가깝다. 바로 그 점이, 비슷하지만 다른 두 문학 장르의 비완결성이 나는 사랑스러웠다. 

   늦은 봄 「탐조기」 공연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시를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할 수 없었음에도 그랬다. 나는 그때 내가 품었던 것이 단순한 낙관이라기보다는, 내가 사랑하게 된 두 문학 장르와 닮아 있는,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유동적인 가능태에 가까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순간의 인상이되, 손에 잡힐 듯 선연한 예감이었다.   


❋

                   

   나의 첫 장막 희곡 「리암 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봄 작가 겨울 무대>에 참여하면서 쓰게 된 것이다. 1월에 의뢰받고 5월 말 초고를 제출했으며, 8월에 같은 해 등단한 동료 작가들과 함께 낭독 공연을 올렸다. 9월경 출판사에 수정 원고를 넘겨 11월쯤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으니, 거의 한 해를 통으로 그 작품과 함께한 셈이다. 이 때문에 그 작품에 내가 갖는 애정도는 동 시기에 출판한 시집 『잉걸 설탕』이나, 공연 이후 쓰게 된 세 번째 시집 원고에 갖는 것과 정도가 거의 같다. 

   「리암 빌」 서사의 골자는 학부 때 쓴 중편소설에서 가져온 것인데, 원래부터 그 중편을 확장해 장편소설을 쓸 용의가 있었던 내게 그 작업은 단순한 개작 이상으로, 요컨대 어떤 한 시절 끝마치지 못했던 문학적 여정을 완수해 내는 일로서 의미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남아 자신들의 방공호를 이룬 두 남자와 한 침입자에 관한 이야기’로 요약되는 「리암 빌」은, 처음에는 ‘증언’이라는 특정 형식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극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200매 분량을 썼을 즈음, 기획 초기부터 도움을 주었던 드라마터그 선생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전면 수정했다(썼던 원고들은 몇 개의 문장을 제외하고 전부 폐기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입을 빌려 너무 작위적으로, 또 설명적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장막극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인물들의 전사를 비롯해, 극을 이루고 있는 여러 설정들을 어떻게 읽는 이/보는 이들에게 ‘연극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희곡에서 어디까지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떤 것은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지 파악해야 했다. 무엇을 발설하고 무엇에 침묵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리암 빌」은 대폭 수정되었다. 본래 2막에 해당하는 내용을 1막으로 옮겼으며, 인물들의 ‘증언’이 반복되는 형식을 버리고 서스펜스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극의 방향을 틀었다.     

   이 과정은 초고를 완성한 이후, 연출과 배우들을 만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들의 조언과 아이디어, 질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예컨대 나는 리암과 빌, 두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며 애정 어린 대화를 길게 나누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보다, “나는 믿어.”라는 대사 하나로 그들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연극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인물의 전사는 그 전부를 제시하기보다 드러내지 않는 쪽이─그러는 한편 그의 대사, 눈빛과 몸짓을 포함한 비언어적 표현 등으로 암시하는 쪽이 낫다는 것을 상기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쓰는 이로서의 권위, 서사를 틀어쥔 손의 아귀힘에 갇혀서, 관객의 상상력이 연극에 참여할 여지를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여백의 모호함이 주는 즐거움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쓰던 장르─시부터가 여백의 문학, 비약의 난장(亂場)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리암 빌」 낭독 공연 준비를 진행하던 중에 다시 시가 써지기 시작했던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희곡의 가능성을 배우고 동시에 그 가능성이 시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 그 일련의 과정 끝에, 나의 시는 또다시 작동한 것이다. 그때 나는 단지 희곡을 쓰는 데에 그치지 않고, 희곡의 형식이 어떻게 시에 접목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과거의 나는 대사와 지문으로 대표되는 희곡의 가시적인 형식만을 빌려 와 시를 썼다. 그 이상을 희구하고 싶었다. 더욱 본질적인 희곡의 성질, 혹은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시에 옮겨 오고 싶었고 동시에 그 지난한 작업에 실패하고 싶었다(나는 예정된 실패에 뛰어드는 그 모든 작업, 삶의 궤적을 모방하는 그 움직임들이 문학적 운동에 다름 아님을 열렬히 믿는다). 

   그 뒤로 쓰인 나의 시란, 수많은 ‘나’들을 무대 위에 올리는 작업과 다르지 않았다. 희곡-텍스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는 가능의 공간, 무대 위에서 발화하고 변태하는 ‘나’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쩌면 내가 이전에 천착해 왔던 시적 사유로부터 한 발짝 나아갔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마침내 세 번째 시집의 초고를 다 썼을 무렵, 나는 24년 가을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썼던 학업 계획서의 문장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중학교에 다닐 때 장래 희망 설문지에 내내 ‘시인’이라고 적었다가 삼 학년 때쯤 ‘문학가’라고 고쳐 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시인이 되는 것을 넘어 소설이나 희곡 등을 함께 쓰고 공부하며, 종국에는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작품을 만드는 이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욕심은 지금도 저를 추동합니다. 다른 장르의 문학을 쓰게 만들고, 여러 장르와 형식을 경유하는 복합적 텍스트의 성립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 욕망이 나를 움직이고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 욕망의 충실한 개로서 한 해 동안 이 낯선 길들을 달려왔어.  

   극은 욕망의 지도다. 인물들은 욕망에 추동되어 행동하며, 그 행동이 관계를 낳고 사건을 발생시킨다. 플롯의 씨실과 날실을, 수많은 갈림길과 지형을 창조한다. 어떤 욕망은 완전한 암전 이후에도 지속되고, 어떤 욕망은 잠시간의 ‘사이’에도 스르륵 휘발되어 버린다. 세 번째 시집 초고를 다 쓰고 내 몸 안에 암전을 들였던 그 순간, 나는 사라지지 않는 욕망을 느꼈다.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 밖으로 하나둘 퇴장하는 데도 그치지 않는 박수 소리처럼, 경쾌한 타격음이 내 뼈 안쪽을 둥둥 찧었다. 쓰는 것이 기뻐. 쓸 수 있어서 기쁘다.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이 질긴 함묵의 천을 벗길 수 있어.    


❋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중순으로 돌아오자면, 

   「탐조기」와 「리암 빌」, 두 개의 공연을 마무리한 일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 나는 세 번째 시집의 구성을 한창 수정하는 중이다. 또 장막극을 하나 쓰는 중인데, 여러 지원을 받았던 전작과 달리 오롯이 혼자 써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희곡은 여전히 내게 아주 넓고 생경한 황무지처럼 느껴진다. 자연을 손쉽게 쥐거나 휘두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협소한 인간주의적 관점일 따름일 터다. 나는 아주 냉정한 태도로 내 한계를 판단하며, 또 내 발아래에 파묻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그 땅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그 땅을, 그 땅의 안팎을, 나아가 그 땅 너머와 그 땅 아닌 곳까지, 영원히 궁금해했으면. 내 안쪽의 안쪽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이 호기심의 성화가 좀처럼 꺼지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소망은 그뿐이다. 다른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1) 마츠오 바쇼, 『바쇼의 하이쿠』, 유옥희 역, 민음사, 2020.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1월호에서는 2026년 새해를 맞아 시인과 소설가 등 총 4인의 작가가 참여한 신년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4인 4색의 소회가 ‘반성, 소망, 시작’이라는 주제로 펼쳐집니다. 네 명의 작가가 연말연시에 펼쳐놓는 소회와 바람을 지켜보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은 <문장웹진>이 독자분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자 새해 응원입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

[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 진행 : 박인성 평론가 패널 : 이미상 소설가, 위수정 소설가 기획 : 이주란 편집위원, 박인성 평론가 박인성 문장웹진 기획좌담 10월호에 게재될 소설 파트 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 겸 토론 참여자로 이번 좌담회에 참여하게 된 문학평론가 박인성입니다. 좌담의 주제는 ‘안다무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입니다. 위수정, 이미상 두 분 소설가를 모시고 함께 이야기 나눠볼 텐데요.두 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고 최근 근황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수정 안녕하세요. 2017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고 쓰고 있는 위수정이라고 합니다.개인적으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최근에는 소설을 잘 못 쓰고 있는데 이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성 최근에 이상문학상 수상이라는 경사도 있었기 때문에. (웃음) 위수정 그 상 덕분에 제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제안들을 받아서 즐겁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확실히 소설 쓰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어요.제가 사소한 일에도 에너지를 많이 쓰고, 또 멀티가 잘 되는 사람은 아니라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상 저는 소설을 쓰는 이미상입니다. 근황은 소설은 열심히 쓰지만 쓴 것을 내보내기는 싫은 상태입니다. (웃음) 그냥 집에 계속 쌓아놓고만 싶습니다. 박인성 그것은 개인적인 만족도의 문제일까요? 이미상 만족도도 그렇고 그냥 헤매는 거죠. 늘 그렇듯 엄청 헤매고 있습니다. 박인성 알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분 모두 열심히 쓰고 있으나 뜻처럼 원활하지는 않다는 말씀이네요. 이미상 그렇죠. (웃음) 셋 다 마찬가지죠. 박인성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분을 이렇게 모시게 된 건 두 분이 이번 주제에 잘 어울리는 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찾아보니까 두 분이 《문학과사회》 2022년 여름호에 실린 기획에 나란히 산문을 발표하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이미상 작가는 실험을 "스스로 자극을 고안해 주입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효과를 관찰하고, 창작물에 적용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해 "사적이고 만만한 것"으로 끌어내리셨고, 위수정 작가는 "그때도 지금도 '전위적'이라는 수식을 동일하게 붙이는 것은 전혀 전위적이지 않다."()고 쓰셨습니다.두 글 모두 이제 새로움이라는 요구 자체에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글이었다고 읽었는데요.그 글이 쓰인 후 다소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각자에게 갱신이나 새로움이라는 말의 무게가 어떻게 남아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또 두 분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문학 장이나 문학의 풍경은 좀 어떻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상 저때 정의를 잘해놨군요. 지금의 저보다 낫네요. (웃음) 새로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기보다는 어떻게 새로움을 소설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저대로 쓰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 2026-10-01

문장웹진 기획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

[문장웹진 다시 읽기]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 ― 최가은, 「과잉 남성 사회―장류진 소설의 남성-청년」 (2020년 7월호 수록) 정의정 패션 산업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 발레코어, 고프코어, 놈코어… 아직 이것들도 다 알지 못하는데 또 포엣코어로 유행이 바뀌었다고 한다. 유행의 빠른 전환은 상품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 전략이다. 그런데 무언가 사고팔지 않는, 시장의 대척점에 있을 법한 문학장에도 유행은 있다. 2025년 넷플릭스 시리즈 1)이 인셀2)의 정동을 다루면서 화제가 된 후, 그해 가을 계간지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젠더-플레이’ 특집을 기획하며 청년 남성의 극우화 양상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성 논의를 본격화했다.3) 올해 『문학동네』 또한 ‘남성성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기획된 여러 편의 비평·에세이를 발행했다.4) 대다수의 필진들은 이러한 특집호가 구성된 배경으로 12·3 계엄과 탄핵 이후 정국을 통과하며 테러, 집회에서 포착된 한국사회의 극우-인셀 정동과 그에 감응하는 근래의 문학 텍스트들을 짚는다.5) 지금 문학/비평장의 트렌드는 ‘남성성-코어’라고나 할까…?6) 그런데 동시대 지식장의 담론적 화두를 유행이라고 말해도 될까. ‘남성성’에 ‘-코어(core)’라는 말을 붙이니 진지하게 논의되는 남성성 담론을 가볍게 치부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우려스럽다. 그러나 내게 이 명명은 단순히 현상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동시대 현안을 발 빠르게 조사·수집하고 관련 서적과 글을 남독(濫讀)하고 그것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서둘러 표명해야만 하는 현장비평(가)의 생리와 한계를 통찰하는 언어로서 적실해 보인다. 물론 지금 한창 논의되는 ‘남성성’이란 이성애자-청년-남성 젠더의 극우적 멘탈리티에 주로 한한다. 이는 식민지 남성성이나 가부장 권력 비판에 비하면 지극히 동시대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베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백래시 국면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남성성은 언제나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그때의 연속선에 위치하기보다 지금-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과열되는 양상을 띤다. 이러한 담론적 단절은 이전의 남성성 논의가 정치성을 담지하지 못할 만큼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지금’을 가장 위태로운 시기로 지목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극대화하고 독자의 주목을 요청하는 현장비평의 관습으로 읽힌다. 이런 식의 비평이 반복되면 결국 담론은 축적되지도 사태의 근원지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한때의 유행으로 떠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이전 시기의 글을 지금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작업은 중요하다. 이는 후속 연구로서 선행 연구를 참조하는

  • 정의정
  • 2026-10-01

문장웹진 기획

[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진행 : 윤재민 평론가 패널 :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 기획 : 윤재민 편집위원 윤재민 안녕하세요. 문장웹진 9월호 비평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문장웹진 편집위원이자 평론가 윤재민입니다. 그리고 오늘 패널로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 분을 모신 이유는 전적으로 저의 사심 때문인데요. 그간 제가 글이나 활동하는 것들을 인상 깊게 보았고, 궁금했던 분들 모신 겁니다. 참석자 분들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언제 데뷔했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평론가부터 먼저 하실까요? 현재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조현재라고 합니다. ‘현재’라고 성을 떼고서 필명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교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안희연론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원고에 넣을 약력을 요청받으면 이 정도로만 저를 소개하곤해서 어떤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미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5년에 김기태론으로 창비 신인 평론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미진이라고 합니다. 이제 1년이 된 것 같고, 조금씩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생활인으로서 돈을 벌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윤재민 오늘 이렇게 모신 세 분. 연차가 현재 평론가가 3년, 그리고 최선교 평론가가 4년 차 정도 됐죠? 2022년도니까 4년. 그다음에 이미진 평론가 같은 경우는 1년 되셨지요? 이미진 아마 발표 기준으로는 1년이 조금 안 된 것 같습니다. 윤재민 이제 1주년 돼 가시는군요. 세 분들 모두 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인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글 많이 쓰시고 계시거나, 그럴 거라는 믿음이 드는 분들과 대화 나눠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신인 비평가’로서 가지고 계시는 여러 가지 고민이나 문제나 목표나 욕심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요.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각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지평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일단, 비평가로 데뷔하게 된 각자의 계기가 있을 텐데요. 최선교 평론가 먼저 말씀해 주실까요? 최선교 평론가가 된 계기를 기계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국문과 대학원 수업 과제로 처음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왜 평론을 계속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제 성향 때문인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것에 심취하고 매료된 상태를 무척 즐겼어요.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매료되었는지 꼭 설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확하게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시나 소설을 쓰고

  • 2026-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