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 작성일 2026-05-01
- 댓글수 3
[편집위원 기획 – Game & Writer]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이태형
1. 게임 준비(Rule Book)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완구점의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전소된 창고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은 온전한 장난감을 몇 개씩이나 집어 왔다고 합니다. 당신도 친구와 함께 화재 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잔해 위로 중년의 여성이 울면서 욕설과 함께 타다만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집니다. 쥐 떼 같은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눈에 불을 켜고 온전한 물건을 찾습니다. 당신과 함께 온 친구는 망설임 없이 쥐 떼 무리에 합류합니다. 당신은 친구의 눈에서 평소와 다른 광기를 느낍니다. 광기가 당신에게 친구처럼 무리에 합류하라 명하며 그로 인해 당신이 얻을 혼돈의 기쁨에 대해 속삭입니다. 당신이 그 무리에 합류하기로 했다면 민첩(2)을 테스트합니다.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면 의지(1)를 테스트합니다.
➜ 합류하기로 하고 민첩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당신은 곰 인형 1개와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당신에게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있다면 추가로 지식(1)을 테스트합니다. 성공했다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핑계를 떠올립니다. 실패했다면 당신은 잠시 죄책감을 느낍니다. 정신력 1을 잃습니다. 무법자 또는 생존자 특성이 없다면 정신력 2를 잃습니다. 민첩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당신은 여성이 던진 물건에 맞아 잔해에 미끄러져 넘어집니다. 오른손으로 잔불을 짚어 손에 화상을 입습니다. 체력 1을 잃고 화상 카드를 얻습니다. 힘(2)을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기로 해서 성공했다면 무작위 일반 물품 1개를 얻습니다. 이 정도 화상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패했다면 손 골절 카드를 추가로 얻습니다. 무모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손 골절이 있는 동안 당신은 한 손 보조도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테스트하지 않기로 했다면 화상 카드를 뒤집고 즉시 지시를 따릅니다. 물품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에서 물건을 훔쳤다’고 기록합니다.
➜ 합류하지 않기로 하고 정신력 테스트에 성공했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납니다. 친구는 당신과 그 자리에 함께 갔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신력 테스트에 실패했다면 광기가 여전히 당신도 합류하라고 귀에 계속 속삭입니다. 정신력의 최대치 1이 줄어듭니다. 당신은 가만히 서서 이 장면을 눈에 담습니다. 이 풍경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시나리오 시트에 ‘불탄 창고를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기록합니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1890~1937)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인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를 기반으로 하는 보드게임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장소 조우’로 재구성한 글이다. 결과로만 본다면 물품을 2개나 훔치고 자기합리화를 통해 불이익을 피하는 첫 번째 선택이 가장 좋은 판단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당장 눈앞의 이득은 이후에 이어질 삶에서도 과연 옳은 선택이 될까. 아마 그날 화재 현장에는 위에 제시된 것 이외에도 여러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도덕성은 각자가 인지하는 정도로만 작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선택의 아이들은 화재 사고의 발생 여부조차 곧 잊어버릴 것이다. 손에 화상을 입은 아이들은 자신의 손에 남은 상처가 언제 생긴 것인지도 기억해 내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때의 화재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은 마지막의 경우처럼 정신력과 바꿔 그 장면을 눈에 담은 부류다. 그들의 마음속 새겨진 ‘불탄 창고에서 약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글귀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못한다. 마치 35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 행동 단계: 태초에 카탄이 있었다
게임이라고 하면 처음에는 사실상 보드게임을 칭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난수 생성기인 ‘주사위’ 중 가장 오래전에 발견된 것1)이 빙하기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또 다른 형태의 난수 생성기를 사용하는 보드게임인 <윷놀이> 역시 고조선부터 있었을 거란 설도 있다. 기원전 언제부터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는 <바둑>이나, 서기 5세기에 시작되어 <체스>와 <장기>로 발전했다는 <차투랑가>와 같은 추상전략게임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너무 넓게 가져가는 결과를 낳는다. 이후 스포츠게임, 비디오게임으로 게임의 종류가 여러 분야로 세분되며 게임이라는 단어는 더욱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현재에는 부가 설명 없이 그냥 게임이라 하면 비디오게임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보드게임 내에서도 정의는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TRPG2), 카드 게임3), 미니어처 게임4) 그리고 도미노처럼 블록이나 미플을 사용하는 게임을 모두 포함한다면 보드게임의 범위는 그야말로 그냥 스포츠와 비디오게임을 뺀 모두를 포함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넓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앱을 연동하여 진행하는 보드게임도 늘어남에 따라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 부분도 있다. 조금 비약하자면 딱지나 비석치기 역시 보드게임이라고 우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범위를 좁히기 위해 문학에서 보르헤스가 20세기의 패러다임을 다시 연 것처럼, 현대적 보드게임에 있어 20세기의 패러다임을 다시 열었다고 볼 수 있는 <카탄(1995)>6)을 현대 보드게임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 생각한다.
보드게임을 큰 틀로 분류하자면,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파티게임, 유로게임(Eurogame)7), 테마게임으로 나눌 수 있다. 파티게임은 이름 그대로 대다수가 보드게임카페에서 접하는 친목을 위해 웃고 떠들기 위한 게임이라 볼 수 있다. 유로게임은 앞서 말한 추상전략에 가장 가까우며 운보다 전략으로 승부를 가리는 형태의 게임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중점으로 다룰 게임은 테마게임에 속해 있는데 말 그대로 세계관이나 스토리를 중요하게 다룬다. 경쟁보다는 협력 게임이 많으며 여기에서 극복해야 할 대상은 다른 플레이어가 아닌 다양한 환경이 된다. 그로 인해 유로게임과는 반대로 주사위나 카드 뽑기 등을 통한 운이라는 요소가 게임 진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로빈슨 크루소: 저주받은 섬의 모험(2012)>에서는 매일 나빠지는 기후와 맹수 등의 재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며, <글룸헤이븐(2017)>에서는 100개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담긴 책을 이용해 장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박스 무게만 10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는 이 게임은 스토리와 플롯을 참여자가 선택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예전에 유행했던 게임북처럼 선택과 임무 성공 여부에 따라 읽어야 할 페이지가 다르며 그에 따라 스토리가 변하는 것 또한 특징이다.
<카탄>을 처음 접한 것은 2000년대 초반 보드게임방에서 일하면서였다. 당시 내가 아르바이트생이었는지, 손님인데 다른 손님에게 게임을 설명해 주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확신할 수 있는 기억은 거짓말뿐이니깐. 하지만 확실한 것은 보드게임방 주인과 <카탄>을 했다는 기억이다. 월급을 받은 기억은 없으나 이용료를 낸 기억도 없으니, 직원과 고객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존재였을 것이다. <카탄>은 운과 전략적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유로게임과 테마게임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1920년대 유행한 ‘위어드 픽션(Weird Fiction)’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다루며 다양한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대 소설의 장르는 너무나 정교하게 나누어졌고 그 정의에 포함되지 못하고 틈새에 남은 상상력은 대부분 휘발되어 사라져갔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한 자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어떨까. 흥미롭게도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서사구조는 결말이 열려있는 보드게임의 스토리에서 잘 표현할 수 있었다.
3. 괴물 단계: 러브크래프트처럼(Lovecraft-Like)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생전에는 변변한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죽고 나서 현대 서브컬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기예르모 델토로 같은 영화감독은 물론이고, 만화가인 이토 준지, 문학에서도 스티븐 킹과 같은 작가가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위어드 픽션의 선구자라 볼 수 있는 아서 매켄은 빛의 J. R. R. 톨킨과 어둠의 P. H. 러브크래프트를 낳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문학이 장르화된 이후 장르적 정의에 따라 받은 평가라 볼 수도 있다. 아서 C. 클라크의 ‘충분히 발전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는 유명한 말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처럼 장르화되기 이전의 문학은 좀 더 자유로운 것이었다. 최초로 안드로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한 빌리에 드 릴아당의 『미래의 이브(1886)』 역시 평소 작가의 상징주의적 성향을 생각해 본다면 SF소설을 쓴다는 자각이 있었을까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파생된 크툴루 신화 또한 당시의 위어드 픽션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장르의 경계에서 공포소설뿐 아니라 환상소설과 SF 모두에 적을 두고 있다.
우주적 공포(Cosmic Horror)라고도 부르는 그의 세계는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는 부분에서 출발했다. 인간이 대적할 수 없고 이해조차 할 수 없는 대상에게서 느끼는 공포로 우주뿐 아니라 자연재해 및 이해할 수 없는 환경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타인은 종종 괴물로 표현되며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며 운이 좋으면 미치는 데 그친다. 배트맨에 나오는 아컴 정신병원(Arkham Asylum)의 아컴이 러브크래프트 소설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 이름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테마게임으로 예를 들자면 톨킨의 『반지의 제왕(1954)』을 테마로 한 동명의 게임 <반지의 제왕: 가운데 땅 여정(2019)>과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1936)」의 제목을 오마주한 <광기의 저택(2011)>이라는 유사한 메커니즘을 사용하는 두 게임이 있다. 컴퓨터 앱이 TRPG의 게임 마스터를 대신해 준다는 점 이외에도 거의 동일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전개 양상은 정반대이다. <반지의 제왕>이 모험을 통해 장비를 갖추고 강해지며 모험을 경험한다면, <광기의 저택>은 최초 소지품조차 유지하기 힘들며 갈수록 주위를 둘러싼 상황이 악화하기만 할 뿐이다. 전자는 덱 빌딩8)과 유사한 방식을 선택하여 운명을 설계하고 최악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면, 후자는 주사위 신에게 모든 운명을 맡긴다. 이러한 방식들이 나비효과로 작동하여 <반지의 제왕>에도 고난이 있지만 성장물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광기의 저택>은 ‘마법과 기적은 있지만, 꿈과 희망은 없어’라는 입장을 여일하게 취한다. 이렇듯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을 차용한 게임들은 희망보다 절망을 이야기하며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Unspeakable)’ 피로를 느끼게 한다.
4. 조우 단계: 역할극(Role Playing)
TRPG의 개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 《던전 앤 드래곤》9)을 알게 되면서였다. 하지만 개념만 있을 뿐, 정확한 정보를 찾기 힘들었으며 어느 정도 시도를 하려고 해도 함께 할 친구를 구할 수 없었다. 취미를 공유하고 진행하기에 90년대의 탄광촌은 모든 면에서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선택한 방법은 나중에 작가가 되는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여러 인물을 상상하며 혼자만의 규칙을 만들어 역할극을 하는 것이었다.
TRPG에 대한 관심을 잊고 살 즈음 2010년에 한글판으로 번역된 <아컴 호러(2판, 2005)>를 2014년 무렵 접하게 됐다. TRPG에 관심을 두고도 해보지 못한 채 거의 20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대학로에 있던 ‘다이브다이스’라는 보드게임 매장에서 박스 아트워크를 보는 순간 홀린 듯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TRPG였던 《크툴루의 부름(1981)》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으로 TRPG를 간소화했다곤 하지만 규칙이 복잡하고 규칙서마저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다는 점은 사고서야 알게 되었다. 전체를 관통하는 규칙은 느슨하고 대부분의 사건에 대한 처리는 상황에 따라 다르며, 보드게임에서 말하는 잔룰(세부 규칙)이 너무나 많아 에러플(Error Play)을 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규칙서와 참조서를 읽고 혼자 테스트 플레이를 진행하며 간신히 게임이 가능해졌을 무렵 무모한 시도를 했다.
바로 보드게임이라고는 <할리갈리(1990)>나 <딕싯(2008)> 같은 파티게임만 해보았을 작가들을 연희문학창작촌에 모았다. 그때 모였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간단하게 보드게임하고 맛있는 거나 먹는 친목을 생각하고 왔을 사람들은 그날 피 말리는 경험을 했다. 마치 러브크래프트 소설 속 인물처럼 우리의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고, 게임 시간은 계속 길어지며, 승리할 기미도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모두가 미치거나 죽는 것이 이 게임을 끝내는 가장 빠른 길일지 몰랐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일부러 죽거나 미치는 선택조차 할 수 없었고 우리는 마치 절망에 말라가듯 게임 속에서 버티고 부유했다. 결국 플레이타임이 예닐곱 시간이 넘어갈 때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만할까?’라는 눈빛을 공유했고, 아쉬움을 표시하는 사람 없이 주섬주섬 게임을 정리했다. 그날 우리가 함께 저녁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한잔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모두 지쳐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게임의 배경인 1920년대에 금주법이 발효된 것처럼 말이다.
우주적 공포란 인간이 이해하거나 대적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에게서 받는 무력함을 기반으로 한다. 우리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형식과 내용 양쪽 측면에서 그 기분을 정확하게 느꼈다. 한 끗 차이로 매번 실패하는 주사위와 상황을 나쁘게 만드는 뉴스, 나날이 악화하는 소문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전에 더 나쁜 일이 발생했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달려가면서 우리를 서서히 말려 죽이듯 구석으로 계속 몰아넣기만 했다. 보드게임은 다수의 인원이 할수록 즐거운 것으로 생각했기에, 혼자 2~4개의 캐릭터를 움직일 때보다 7~8명이 하는 쪽이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게임 밸런스가 4인이 할 때 가장 적합하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4인을 모으는 것보다 혼자서 네 캐릭터를 움직이는 쪽이 더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개인이 넷을 연기해도 결국 하나의 인물이며 하나의 목표를 공유한다. 후회나 주저하지 않는 희생은 결국 자신을 위한 희생뿐일지 모른다.
5. 신화 단계: 잘 만든 게임과 좋은 게임
가끔 생각한다. 잘 쓴 소설과 좋은 소설은 과연 동일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잘 만든 게임과 좋은 게임이 과연 같을까? 라는 질문을 한 후이다. 물론 여기에서 잘 만들었다는 뜻에 한 가지 명확한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고민의 출발점은 어떤 지점에서는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한 <아컴 호러(2판)>는 이후에 아컴이라는 도시가 아닌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엘드리치 호러(2013)>로 발전했다. <엘드리치 호러> 역시 룰이 여전히 복잡하지만 <아컴 호러(2판)>에 비해 상당히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나하나의 판정 실패가 전작에 비해 덜 치명적이며 실패를 하더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이후 <아컴 호러: 카드 게임(2016)>이 나왔고 이 게임은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카드가 게임판이 되고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물품이 됐다. 시나리오를 실패해도 이야기는 진행되고 앞선 시나리오의 성취도 또는 선택에 따라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카드만으로 진행하다 보니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준비 시간이 길었고, 계속 추가 구입해야 하는 스토리와 플레이어 카드 등으로 인한 진입장벽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후 앞서 언급한 게임들을 보완한 <아컴 호러 3판(2018)>이 나왔다. <아컴 호러 3판>은 모든 면에서 깔끔하게 잘 만든 게임이었다. 적어도 매커니즘 측면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이전의 게임들에 비해 인기를 얻진 못했다. 잘 만든 게임이었고 나쁜 게임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좋은 게임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 부족함은 언제나 그렇듯 논리로 설명될 것은 아니었다.
마치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처럼, 투박하여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또한 하나의 기법이라 볼 수 있을까. 완벽하게 투박함을 연기하는 사람을 우리는 구분해 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취향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다. 결국 그럴 때 우리는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두서없는 글을 줄인다.
단지, 주사위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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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 Writer> |
1) 어디까지나 발견된 것 중이며 앞뒤를 표시하는 동전 형태의 2면체까지 고려한다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서 ‘주사위 신(DICE GOD)’이라 불리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2) Tabletop role-playing game: 오프라인상에서 테이블에 모여 대화를 통해 각자가 분담된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에서 주인공 일행들이 《Dungeons & Dragons(던전 앤 드래곤, 1974)》을 하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3) 트럼프 카드를 사용하는 게임은 물론이며, 카드로 된 기물을 사용하는 게임뿐 아니라, 마작이나 루미큐브와 같은 형태의 칩을 사용하는 게임 역시 카드 게임의 일부로 여겨지기도 한다.
4) 병사 및 병기의 모형을 사용하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원조라 볼 수 있다.
5) Meeple: ‘My People’의 혼성어로 보드게임에서 사용하는 사람 모양(또는 사람을 연상시키는)의 기물을 뜻한다.
6) Catan: 플레이어 간 상호작용, 카드 관리, 주사위, 조립식 게임판 등 여러 요소가 적절하게 조합된 게임으로 보드게임의 메커니즘을 크게 발전시켰다. 2003년에는 보드게임을 배경으로 소설 『카탄의 개척자』가 출간되기도 했다.
7) <카탄>의 영향을 받아 유럽(독일)에서 유행한 전략게임을 뜻한다.
8) Deck-building: 카드뭉치(Deck)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카드를 넣거나 뺄 수 있어 독자적으로 뭉치를 구성할 수 있는 게임 또는 그러한 방식을 말한다.
9) 최초의 TRPG라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판타지가 그러하듯 『반지의 제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공식 한글화가 2020년경 5판에 와서야 처음 이루어졌으니 지역적 문제뿐 아니라 문화적·언어적 장벽도 크게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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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문장웹진 다시 읽기]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 ― 이민하, 「옛날 귀신」(2019년 2월호 수록) 김진선 귀신과 신의 차이를 아는가? 언젠가 시로 쓴 적 있지만, 돌아가신 나의 이모는 무속인이셨다. 어릴 적부터 자주 아팠던 이모는 신내림을 받으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듣고 다른 세계와 통로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셨다. 멀리서 보이는 서낭기와 현관에서부터 나는 향냄새, 방 안을 채운 촛불의 온기,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기 무서운 탱화가 이모의 직업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이모는 분명 신을 모신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모가 귀신을 본다고 했다. 이모에게 진짜 귀신을 보는지, 지금 여기에도 귀신이 있냐고 직접 물어보진 못했는데, 가끔 이모는 달라진 눈빛과 목소리로 다른 존재의 말을 전하셨다. 사실 나는 이모에게 깃든 것이 신이든 귀신이든 상관없었다. 이모가 예전보다 덜 아플 수 있다면,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가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갈 때 이모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법당 바닥을 몇 번이고 걸레질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과 귀신은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둘을 가르는 차이는 어떤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대개 신이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우주와 삶의 질서를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라면, 귀신은 생전의 삶과 죽음, 풀지 못한 미련, 한(恨)과 같은 정동에 매여 특정한 장소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한국의 무속에는 산신, 칠성신, 용왕신, 성주신 등 자연이나 공간을 관장하는 다양한 신이 있고, 원귀나 객귀, 잡귀와 같이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한번 귀신으로 떠돌기 시작했다고 해서 영원히 귀신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온전한 안위와 정성 들인 제사를 받고 숭배의 대상이 되면, 마침내 그 서러움을 털어내고 신격화되어 누군가를 수호하는 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을 통과하며 읽게 된 이민하의 「옛날 귀신」에서 귀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옛날 귀신’이라고 하면 소복을 차려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처녀 귀신이나 쪽머리를 진 할머니 귀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호러물의 예고편이 상영되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나로서는 어릴 때 가족들과 본 이 귀신의 전형이다. ‘현대’나 ‘최신’ 귀신이라면 다른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으려나. 시에서 귀신은 특정한 형상을 지닌 존재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 모여 사는 집에서 화자가 “커트 머리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오빠들이 납량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본다거나 “어른들이 마당에서 잔치를 하”는 상황에서 은연중 스산한 기운이 감지될 뿐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따로
- 김진선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그러니까 지금부터[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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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이태형 소설가 님의 문장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색다르네요. 이태형 소설가 님께도 주사위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TRPG 게임과 공포를 함께 다루신 점이 인상깊습니다
잘 만든 게임과 좋은 게임은 같은가라는 물음은 처음의 화재 현장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규칙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 정말 좋은 선택인가? 혹은 기억을 떠안는 선택이 실패인가? 이 글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사실은 주사위를 굴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직감. 그래서 이 글은 읽고 나면 설명할 수 있는 내용보다 설명되지 않는 잔여감이 더 크게 남는다. 마치 한 번 본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듯이. 불탄 창고 앞에 서 있던 아이들처럼 나 역시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 서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