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고 자빠졌네
- 작성일 2010-07-15
- 좋아요 1
- 댓글수 0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다. 그리고 병세가 깊어지고 나서도 이렇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시집을 내리라 장담하지 못했다. 그동안 시는 재기 어린 애인이 깜짝 이벤트를 하듯 이런저런 선물을 해 줬다. 혹은 강퍅한 애인이 변덕을 부리듯 짜증을 부렸고, 밥상을 엎는 아버지처럼 광포하게 굴었다. 그러나 녀석은 애인이 아니고 시이기 때문에 나는 떠나지도, 보내지도 못한다. 사랑은 얄미운 나비, 사랑은 차가운 유혹.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
그러니까 내게 남은 일은 숱하게 자빠지는 일뿐이다. 그러니까 ‘소년 파르티잔 행동지침’은 넘어지고 고꾸라지며 다시 일어서는 것. 무릎이 까지고 그곳에 딱지가 얹히고 새살이 돋는 일이다.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보았고 시로 썼다. 그것이 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가 대체 무엇인지 자체가 알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시편에서 호명한 사람들의 생애에 대해, 늘 미안하다. 이토록 미안한 마음을 자랑하고 싶다. 꼴에 시라고 말이다.
자빠뜨리며 자빠지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아름다운지 분간할 방법을 몰랐다. 다만 무엇이 가장 나은지는 분명해 보였다. 지방보다는 서울이, 공부보다는 공무원이, 시보다는 시가 아닌 모든 것이 더 나았다. 체제 속에서 더 나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조절할수록 남들보다 행여나 낫지 않기 위해서 마스크를 꾹 눌러 써야만 했다. 마스크의 눈 사이로 보이는 세상이 자꾸만 일그러진다. 일그러진 세상에서 못나고 잘난 사람들이 살과 마음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죽지 않도록 하고 싶다. 더없이 못난 자가 되어 불가능을 향해 슬랩스틱 코미디를 펼치며 정성스레 자빠질 것이다. 그것이 소년 파르티잔의 ‘진짜’ 행동지침.
자빠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턱없이 부족했다. 죽을 때까지 시에 대해 일하고 힘쓸 것이다. 더 아름다운 곡선으로 더 환상적인 자태로 자빠지기 위해 그들의 시를 읽었다. 죽을 때까지 읽을 것이다. 그들을 사랑했다.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나는 늘 한국어로 된 시가 가장 첨단이며, 전위이며, 미문이라고 믿고 있다. 그들의 유려한 자빠짐에 미칠 방법이 아직까지 내겐 없다. 그렇지만 이미 책은 나왔고, 나는 오늘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가 된다. 이리 와, 같이 침이나 뱉자. 팡팡 터져나갈, 우리의 말, 그리고 시……. 《문장웹진 8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 진행 : 박인성 평론가 패널 : 이미상 소설가, 위수정 소설가 기획 : 이주란 편집위원, 박인성 평론가 박인성 문장웹진 기획좌담 10월호에 게재될 소설 파트 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 겸 토론 참여자로 이번 좌담회에 참여하게 된 문학평론가 박인성입니다. 좌담의 주제는 ‘안다무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입니다. 위수정, 이미상 두 분 소설가를 모시고 함께 이야기 나눠볼 텐데요.두 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고 최근 근황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수정 안녕하세요. 2017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고 쓰고 있는 위수정이라고 합니다.개인적으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최근에는 소설을 잘 못 쓰고 있는데 이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성 최근에 이상문학상 수상이라는 경사도 있었기 때문에. (웃음) 위수정 그 상 덕분에 제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제안들을 받아서 즐겁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확실히 소설 쓰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어요.제가 사소한 일에도 에너지를 많이 쓰고, 또 멀티가 잘 되는 사람은 아니라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상 저는 소설을 쓰는 이미상입니다. 근황은 소설은 열심히 쓰지만 쓴 것을 내보내기는 싫은 상태입니다. (웃음) 그냥 집에 계속 쌓아놓고만 싶습니다. 박인성 그것은 개인적인 만족도의 문제일까요? 이미상 만족도도 그렇고 그냥 헤매는 거죠. 늘 그렇듯 엄청 헤매고 있습니다. 박인성 알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분 모두 열심히 쓰고 있으나 뜻처럼 원활하지는 않다는 말씀이네요. 이미상 그렇죠. (웃음) 셋 다 마찬가지죠. 박인성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분을 이렇게 모시게 된 건 두 분이 이번 주제에 잘 어울리는 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찾아보니까 두 분이 《문학과사회》 2022년 여름호에 실린 기획에 나란히 산문을 발표하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이미상 작가는 실험을 "스스로 자극을 고안해 주입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효과를 관찰하고, 창작물에 적용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해 "사적이고 만만한 것"으로 끌어내리셨고, 위수정 작가는 "그때도 지금도 '전위적'이라는 수식을 동일하게 붙이는 것은 전혀 전위적이지 않다."()고 쓰셨습니다.두 글 모두 이제 새로움이라는 요구 자체에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글이었다고 읽었는데요.그 글이 쓰인 후 다소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각자에게 갱신이나 새로움이라는 말의 무게가 어떻게 남아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또 두 분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문학 장이나 문학의 풍경은 좀 어떻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상 저때 정의를 잘해놨군요. 지금의 저보다 낫네요. (웃음) 새로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기보다는 어떻게 새로움을 소설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저대로 쓰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 2026-10-01
문장웹진 기획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문장웹진 다시 읽기]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 ― 최가은, 「과잉 남성 사회―장류진 소설의 남성-청년」 (2020년 7월호 수록) 정의정 패션 산업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 발레코어, 고프코어, 놈코어… 아직 이것들도 다 알지 못하는데 또 포엣코어로 유행이 바뀌었다고 한다. 유행의 빠른 전환은 상품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 전략이다. 그런데 무언가 사고팔지 않는, 시장의 대척점에 있을 법한 문학장에도 유행은 있다. 2025년 넷플릭스 시리즈 1)이 인셀2)의 정동을 다루면서 화제가 된 후, 그해 가을 계간지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젠더-플레이’ 특집을 기획하며 청년 남성의 극우화 양상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성 논의를 본격화했다.3) 올해 『문학동네』 또한 ‘남성성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기획된 여러 편의 비평·에세이를 발행했다.4) 대다수의 필진들은 이러한 특집호가 구성된 배경으로 12·3 계엄과 탄핵 이후 정국을 통과하며 테러, 집회에서 포착된 한국사회의 극우-인셀 정동과 그에 감응하는 근래의 문학 텍스트들을 짚는다.5) 지금 문학/비평장의 트렌드는 ‘남성성-코어’라고나 할까…?6) 그런데 동시대 지식장의 담론적 화두를 유행이라고 말해도 될까. ‘남성성’에 ‘-코어(core)’라는 말을 붙이니 진지하게 논의되는 남성성 담론을 가볍게 치부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우려스럽다. 그러나 내게 이 명명은 단순히 현상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동시대 현안을 발 빠르게 조사·수집하고 관련 서적과 글을 남독(濫讀)하고 그것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서둘러 표명해야만 하는 현장비평(가)의 생리와 한계를 통찰하는 언어로서 적실해 보인다. 물론 지금 한창 논의되는 ‘남성성’이란 이성애자-청년-남성 젠더의 극우적 멘탈리티에 주로 한한다. 이는 식민지 남성성이나 가부장 권력 비판에 비하면 지극히 동시대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베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백래시 국면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남성성은 언제나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그때의 연속선에 위치하기보다 지금-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과열되는 양상을 띤다. 이러한 담론적 단절은 이전의 남성성 논의가 정치성을 담지하지 못할 만큼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지금’을 가장 위태로운 시기로 지목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극대화하고 독자의 주목을 요청하는 현장비평의 관습으로 읽힌다. 이런 식의 비평이 반복되면 결국 담론은 축적되지도 사태의 근원지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한때의 유행으로 떠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이전 시기의 글을 지금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작업은 중요하다. 이는 후속 연구로서 선행 연구를 참조하는
- 정의정
- 2026-10-01
문장웹진 기획
[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진행 : 윤재민 평론가 패널 :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 기획 : 윤재민 편집위원 윤재민 안녕하세요. 문장웹진 9월호 비평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문장웹진 편집위원이자 평론가 윤재민입니다. 그리고 오늘 패널로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 분을 모신 이유는 전적으로 저의 사심 때문인데요. 그간 제가 글이나 활동하는 것들을 인상 깊게 보았고, 궁금했던 분들 모신 겁니다. 참석자 분들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언제 데뷔했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평론가부터 먼저 하실까요? 현재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조현재라고 합니다. ‘현재’라고 성을 떼고서 필명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교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안희연론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원고에 넣을 약력을 요청받으면 이 정도로만 저를 소개하곤해서 어떤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미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5년에 김기태론으로 창비 신인 평론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미진이라고 합니다. 이제 1년이 된 것 같고, 조금씩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생활인으로서 돈을 벌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윤재민 오늘 이렇게 모신 세 분. 연차가 현재 평론가가 3년, 그리고 최선교 평론가가 4년 차 정도 됐죠? 2022년도니까 4년. 그다음에 이미진 평론가 같은 경우는 1년 되셨지요? 이미진 아마 발표 기준으로는 1년이 조금 안 된 것 같습니다. 윤재민 이제 1주년 돼 가시는군요. 세 분들 모두 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인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글 많이 쓰시고 계시거나, 그럴 거라는 믿음이 드는 분들과 대화 나눠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신인 비평가’로서 가지고 계시는 여러 가지 고민이나 문제나 목표나 욕심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요.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각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지평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일단, 비평가로 데뷔하게 된 각자의 계기가 있을 텐데요. 최선교 평론가 먼저 말씀해 주실까요? 최선교 평론가가 된 계기를 기계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국문과 대학원 수업 과제로 처음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왜 평론을 계속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제 성향 때문인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것에 심취하고 매료된 상태를 무척 즐겼어요.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매료되었는지 꼭 설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확하게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시나 소설을 쓰고
- 2026-09-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