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곡곡] 경북 영주 샘터서점(3회)
- 작성일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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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경북 영주 샘터서점(제3회)
: 동시, 똑똑! - 김현숙 동시집 『아기 새를 품었으니』
- 모임 / 2021-08-09, 저녁 7시, 샘터 3층
사회/원고정리 : 권화빈
참여자 : 의상대사, 우옥영, 김미경, 우병훈

책읽기 모임 ‘영주시 100인 독서클럽 휴(休)’ : 책을 통해 삶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
권화빈 :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벌써 8월 입추가 지나 이제 선선한 바람이 창에 밀려드는 가을 문턱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8월 9일 오늘 모임의 책 이야기를 진행할 사회 권화빈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김현숙 동시인의 동시집 『아기 새를 품었으니』를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마지막 모임을 통해 이야기 나눌 이 동시집(2020, 3차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도서)은 어릴 적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보냈던 나의 과거의 기쁨과 행복, 추억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또 시골 길을 걸어가면서 맞는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시를 통해 어릴 적 순수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킬 수 있기에, 동시가 주는 행복은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동시집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듣고 싶어요.
의상대사 : 코로나 바이러스 급증으로 집콕 하는 이들이 늘어나 거의 모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근신(?) 중입니다. (일동 웃음)
우옥영 : 여름 휴가철이 코앞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아서, 여러 가지 걱정을 하면서 집콕 하고 있어요. 웬만한 큰 볼일 아니면 나다니는 걸 줄이고 있어요.
김미경 : 사랑의 교회 전광훈 목사가 8·15 광화문 집회를 선동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우울해져요. 사회 각계각층에서 협조가 잘 되어 하루빨리 코로나 정국에서 좀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의상대사 :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2차 접종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힘든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병훈 : 어서어서 우리들의 일상이 회복되어 웃는 모습을 양껏 보고 싶습니다.
권화빈 : 안동 SK 바이오사이언스 임상 3상 착수가 진행되고 있어서, 국내 백신이 조만간 우리 곁에 찾아올 듯합니다. 이번 여름휴가는 집에서 그냥 세숫대야에 얼음 넣어 발 담그고(세숫대야 피서법?) 조용히 시간을 요리하며 즐기시는 게 상책인 듯하네요! 물론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어야겠지요. (웃음) 그럼 오늘의 책 이야기 상자를 슬슬 열어 볼까요. 표지에서 따스함과 정겨움이 느껴지고, 아기 새와 어미 새의 품어 주고 품게 되는 생명의 신비로움이 가득 담겨 있는 동시집입니다. 책의 표지는 그 책의 얼굴과 같아요. 책의 첫인상이라 평생(?)을 좌우해요.

우옥영 : 책 표지를 보니까 가까운 숲에서 본 둥지 위의 새들을 상상하게 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기 새를 지키기 위한 어미 새의 모정, 우리네 어머니의 삶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일동 웃음)
김미경 : 내 집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조금 부끄럽네요. 바쁘다고 자주 품어 주지도 못하고. (에휴)
의상대사 : 괜히 머쓱해집니다. 저도 별다르지 않아서. (일동 웃음)
권화빈 : 그럼 각자 눈에 각인되었던 동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의 의미와 동시의 가치에 대해서 살짝 언급하고 지나갈게요.
의상대사 : 동시를 통해 내 마음에 힐링을, 삭막한 우리 삶에 따스한 빛을 느끼게 해주는 햇살 같은 기분이 동시에서 느껴집니다. 어릴 적 새들과 나비들과 함께 잠자리채를 들고 해 떨어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냈네요.
김미경 : 저도 사실 그랬어요. 산과 강, 그리고 학교보다 친구가 더 중요했던 때라서 가끔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우병훈 : 완전 까까머리 시절로 돌아간 듯해요, 때 묻지 않은!
권화빈 : 모두 좋은 말씀 해주셨습니다. 동시는 역시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묘약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동시만 읽었다 하면 모두 착한 어린이가 되어버리니! 동시는 시와 달리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어린이들의 삶을 가지고 쓰여야 어린이들이 관심을 가져요. 어린이의 삶을 떠난 공허한 말장난으론 좋은 점수를 받긴 힘들어요.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지렛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동시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미경 : 그럼 저부터 한 편 열겠습니다. 도토리 모습에서 떠올린 착상이 한순간 아주 재치 있고 재밌게 잘 표현되어 골랐어요. (낭독) 각자 동시 이야기를 나눠 보지요.
도토리
안전이라면
우리가 으뜸이에요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게
어릴 때부터
안전모 썼다니까요.
- 「도토리」 전문(24쪽)
의상대사 : 내용이 신선하고, 자연을 보고 느낀 관찰력이 대단한 것 같아요.
우옥영 : 우리는 안전모라 안 하고 화이바라 했지요. 내 몸을 지켜주는 안전모,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다치지 않고 함께할 수 있으니까요.
권화빈 : 도토리 머리 부분을 안전모에 적절히 잘 비유했어요. 시는 이렇게 비유를 잘해야 오래 기억에 남지요. 비유는 시 창작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밋밋하고 싱거운 시와 그렇지 않은 시의 분수령. 시의 승패를 좌우한다고나 할까!
김미경 : 맞아요. 적절한 비유를 통해서 시의 의미를 더 강화시키고 있어요. 세상의 모든 사물을 눈여겨봐야겠어요.
우병훈 : 시인의 눈이 엄청 날카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상법이 대단해요. 도토리 머리를 보고 어찌 그리 딱 맞는 비유를 했는지 감탄스럽습니다!
권화빈 : 좋은 안목으로 적절하게 언급하셨습니다. 그간 2권의 동시집 이야기를 나누다가 모두 시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일동 박장대소)
의상대사 : 저는 「옥수수」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지요. 지금 절기(여름)와 딱 맞는 시 같아요. 읽어 보겠습니다. (경쾌하게 낭독)
옥수수
수염을 뽑고
껍질 벗겨 보니
가지런한 이빨들
생글생글 웃으며
한 마디 한다
고마워
무지 갑갑했거든.
- 「옥수수」 전문(28쪽)
김미경 : 지금 옥수수가 나올 시기인가요. 서리가 내리고 겨울철 온돌 아랫목에서 옥수수 한 가득 베어 물었던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외숙모, 외삼촌 함께하면서 사촌들과 같이 베어 물었던 옥수수, 지금도 옥수수 철이 되면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권화빈 : 옥수수 이야기를 꺼내 보니 많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강원도 여행을 하다가 길가에 차를 세우고 베어 물던 강원도 찰옥수수는 아직도 내 입속에 맴돌아요. 옥수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캐나다와 중앙아메리카, 아르헨티나까지 분포되어 있는 대표적인 곡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한여름 대표 간식으로도 안성맞춤입니다. 또 옥수수 술로 차도 만드는데 시원하고 독특한 향기와 맛이 나지요.
의상대사 : (잠시 얼굴을 쓰다듬고 난 뒤) 시를 읽다가 갑자기 갑갑해졌어요. 자유로운 삶, 자유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옥수수에서 내 마음이 보입니다. 갑갑한 일상에서 어디로 훌쩍 물 맑고 공기 좋은 시원한 계곡으로 떠나고 싶은.
우옥영 : 이 동시에서도 비유가 발견돼요. 옥수수를 사람에 비유한 것 같아요. 이빨, 생글생글,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런 걸 알게 됐어요. 의인법을 써서 적절하고 쉽고 단순하게 잘 표현해 냈어요.
우병훈 :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어요. 어린이들이 엄청 쉽게 접근하겠네요. 의미나 리듬, 이미지도 아주 선명하다는 느낌입니다.
권화빈 : 다음엔 누가 소개해 보실까요?
우옥영 : 이번엔 제가 소개해 볼게요. 많은 비유가 눈에 확 띄어요! 읽어 보겠습니다. (천천히 낭독)
홍시
감나무 발전소는 느리다
감 이파리가 태양열 발전을 시작한 지
두 계절이 지나서야 불이 켜진다
감나무에 켜진 알전구들
가을이 환하다
- 「홍시」 전문(30쪽)
김미경 : 「홍시」를 읽으니, 동시 쓰는 게 한편으론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일상 속의 평범한 이야기로 동시를 쓰고 공감하는 것, 쉬운 언어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네요. 그래서 동시를 읽겠죠. 동시 속에 우리 이야기가 숨 쉬고 있으니 말입니다.
일동 : 그래요. 시인이 무언가를 발견해 내는 작업이 아주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발전소, 태양열 발전, 불, 알전구들!
우병훈 : 적재적소에 맞는 비유를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궁리해야 할 것 같아요.
의상대사 : 시인은 누구보다도 관찰력을 키우는 눈을 가져야 좋은 시가 탄생하겠지요.
권화빈 : 그런 말이 있어요. 한 편의 시를 쓰려면 똑같은 사물을 세 번 정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그래야 시가 내게 문을 열어 주겠지요. 시인의 생명은 ‘눈’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것도 현미경 같은 ‘퀭하고 밝은 눈’! (일동 크게 손뼉 친다) 다음 차례는 우병훈 님!
우병훈 : 아, 네. (시집을 넘겨 한 편을 낭독한다)
신입사원 모집
꽃밭에 광고가 붙었다
측량 기술자를 모집합니다.!
광고를 보고
자벌레 ,무당벌레, 풍뎅이, 나비가 찾아갔다.
꽃과 꽃 사이를 가장 잘 재는
나비가 뽑혔다.
- 「신입사원 모집」 전문(64쪽)
의상대사 : 동시 「아기 새를 품었으니」에서 가장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시인 것 같습니다. 동시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네요. 현대적인 느낌과 자연을 일치시키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됩니다. 공감이라는 것은 이런 거겠죠. 내 삶을 이해하고 나를 알게 되는 것, 그 안에서 소소한 느낌들을 찾아내는 것, 그래서 동시 「아기 새를 품었으니」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우병훈 : 신입사원과 자연의 동질감, 진짜 나비가 측량 기술자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꿀을 찾아다니는 나비가 가지는 예민한 오감이 풍부한 감성과 연결되어서 상당히 고무적으로 느껴집니다. 자벌레, 무당벌레, 풍뎅이에게도 무언가 역할을 부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지네요.
우옥영 : 우리 삶과 연계된 동시인 것 같아요. 이 동시도 아주 재밌게 비유를 시 쓰기에 활용한 것이 눈에 띄어요.
김미경 : 광고, 측량 기술자…… 꽃을 보고 이런 것까지 찾아내다니! 시인의 상상력이 대단해요.
우옥영 : 맞아요. 대단해요 대단해! 나도 언제 저런 동시 한번 써보나! (일동 웃음)
권화빈 : 시인은 창조주와 비견될 만한 사람이지요. - 하늘에는 조물주! 땅에는 창조주! (모두모두 맞다 맞아! 박수치며 크게 웃는다) 벌써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제가 동시 한 편을 소개하고 아쉽지만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 함께 낭독)
책
책도 취미생활을 하지
파리채, 고양이 베개, 탑 쌓기, 징검다리 놀이
으라차차! 책장을 넘기는 받침대가 되었어
가장 좋았던 건 클로버 품기
잘 품고 있다가 행복이든 행운이든 나눠주기
- 「책」 전문(76쪽)

우옥영 : 역시! 마무리는 책으로 끝내는군요. 우리 “휴”(영주시 100인 독서클럽)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게 피날레를 장식해서 기분이 좋아요. 집에 돌아가 누우면 엄청 맛있는 잠을 잘 것 같아요.
김미경 : 책의 가치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같아요. 책이 의미하는 바를 잘 표현해 내었어요.
우병훈 : 배경 그림도 썩 어울리게 잘 그렸네요. 그림도 동시의 내용과 일치해야 시가 더 입체감 있게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생생해요.
의상대사 : 맞아요. 저도 우병훈 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봄에 관한 동시에 배경 그림으로 수박을 그려 넣으면 안 되지요. 개발에 놋대가리(?)일까요! (일동 큰 웃음)
권화빈 : 우리가 책을 주제로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눈 시간들이 엄청 소중했단 말을 하고 싶어요.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내는 작업은 두고두고 우리 삶에 역동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봐요. 이 동시를 쓴 시인도 그런 말을 우리에게 넌지시 속삭여 주는 것 같아요.
김미경 : 네, 맞아요. 지금 내 두 귀가 쟁쟁거려요. (함께 웃음)
우병훈 : 그래요. 책은 우리에게 행복과 행운을 주는 징검다리라고 확신해요.
우옥영 : 내 삶이 힘들 때 큰 위로를 주는 피로회복제 같은 것!
의상대사 : 그 어떤 영양제보다 나은 영양제 같아요. 인생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주는 나침반이지요.

‘영주시 100인 독서클럽 휴(休)’ 회원들
권화빈 : 모두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모두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고 지금까지 일정에 마침표를 찍어야겠어요. 긴 시간 동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시의 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아쉬운 마음은 자리를 옮겨 차 한 잔 나누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 분씩 소감을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옥영 : 지금까지 동시집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제부터는 동시를 자주 접해 친구처럼 가까이하겠습니다. 다시금 동심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의상대사 : 따뜻한 마음을 나눈 친구 같은 동시를 오늘 이 시간부터 내 손 가까이 두어 읽고 싶을 때 언제든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동시는 분명 우리 삶에서 중요한 삶의 요소라고 마음깊이 새기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동시를 읽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겠습니다.
김미경 : 난생처음 동시 맛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시어 한 구절 한 구절이 깊은 메아리로 내 귀와 가슴 속으로 쏙쏙 들어와 아직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동시를 통해 세상을 읽고 나를 읽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도 멈춤 없이 독서운동과 시를 쓰시는 선생님과 함께한 그간의 시간 영원히 새겨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
우병훈 : 한 편의 동시가 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시의 깊은 맛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어 한 자 한 자가 주는 인상은 깊었습니다. 거리감 없이 앞으로 자주 동시를 접하는 시간을 만들겠습니다.
권화빈 : 그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동시, 똑똑’이라는 주제로 장장 3회에 걸쳐 동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권의 동시집을 통해 스스럼없이 동시의 문을 두드려 열고 마음껏 동시의 세계를 여행했습니다. 지금까지 170여 편의 동시를 감상하면서 동시의 또 다른 맛과 향을 깊이 톺아보았습니다. 한 편 한 편의 동시가 주는 웅숭깊은 울림은 우리들의 가슴에 두고두고 남아 기억될 것입니다. 끝까지 유종지미 해주셔서 마음깊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동시 향유층이 나날이 늘어나는 데 여러분도 한몫 해주시기를 기원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그간 함께해서 행복했고 함께해서 기뻤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냥 가기 아쉬워 아늑한 찻집에 들러 뒷이야기를 나누는 휴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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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을 바라볼 때보다
내가 읽었던 책을 바라볼 때 더 행복해진다”
- 독서운동가 권화빈
《문장웹진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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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01
문장웹진 기획
[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진행 : 윤재민 평론가 패널 :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 기획 : 윤재민 편집위원 윤재민 안녕하세요. 문장웹진 9월호 비평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문장웹진 편집위원이자 평론가 윤재민입니다. 그리고 오늘 패널로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 분을 모신 이유는 전적으로 저의 사심 때문인데요. 그간 제가 글이나 활동하는 것들을 인상 깊게 보았고, 궁금했던 분들 모신 겁니다. 참석자 분들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언제 데뷔했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평론가부터 먼저 하실까요? 현재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조현재라고 합니다. ‘현재’라고 성을 떼고서 필명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교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안희연론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원고에 넣을 약력을 요청받으면 이 정도로만 저를 소개하곤해서 어떤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미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5년에 김기태론으로 창비 신인 평론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미진이라고 합니다. 이제 1년이 된 것 같고, 조금씩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생활인으로서 돈을 벌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윤재민 오늘 이렇게 모신 세 분. 연차가 현재 평론가가 3년, 그리고 최선교 평론가가 4년 차 정도 됐죠? 2022년도니까 4년. 그다음에 이미진 평론가 같은 경우는 1년 되셨지요? 이미진 아마 발표 기준으로는 1년이 조금 안 된 것 같습니다. 윤재민 이제 1주년 돼 가시는군요. 세 분들 모두 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인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글 많이 쓰시고 계시거나, 그럴 거라는 믿음이 드는 분들과 대화 나눠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신인 비평가’로서 가지고 계시는 여러 가지 고민이나 문제나 목표나 욕심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요.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각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지평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일단, 비평가로 데뷔하게 된 각자의 계기가 있을 텐데요. 최선교 평론가 먼저 말씀해 주실까요? 최선교 평론가가 된 계기를 기계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국문과 대학원 수업 과제로 처음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왜 평론을 계속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제 성향 때문인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것에 심취하고 매료된 상태를 무척 즐겼어요.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매료되었는지 꼭 설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확하게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시나 소설을 쓰고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문장웹진 다시 읽기]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 ― 이민하, 「옛날 귀신」(2019년 2월호 수록) 김진선 귀신과 신의 차이를 아는가? 언젠가 시로 쓴 적 있지만, 돌아가신 나의 이모는 무속인이셨다. 어릴 적부터 자주 아팠던 이모는 신내림을 받으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듣고 다른 세계와 통로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셨다. 멀리서 보이는 서낭기와 현관에서부터 나는 향냄새, 방 안을 채운 촛불의 온기,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기 무서운 탱화가 이모의 직업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이모는 분명 신을 모신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모가 귀신을 본다고 했다. 이모에게 진짜 귀신을 보는지, 지금 여기에도 귀신이 있냐고 직접 물어보진 못했는데, 가끔 이모는 달라진 눈빛과 목소리로 다른 존재의 말을 전하셨다. 사실 나는 이모에게 깃든 것이 신이든 귀신이든 상관없었다. 이모가 예전보다 덜 아플 수 있다면,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가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갈 때 이모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법당 바닥을 몇 번이고 걸레질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과 귀신은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둘을 가르는 차이는 어떤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대개 신이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우주와 삶의 질서를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라면, 귀신은 생전의 삶과 죽음, 풀지 못한 미련, 한(恨)과 같은 정동에 매여 특정한 장소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한국의 무속에는 산신, 칠성신, 용왕신, 성주신 등 자연이나 공간을 관장하는 다양한 신이 있고, 원귀나 객귀, 잡귀와 같이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한번 귀신으로 떠돌기 시작했다고 해서 영원히 귀신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온전한 안위와 정성 들인 제사를 받고 숭배의 대상이 되면, 마침내 그 서러움을 털어내고 신격화되어 누군가를 수호하는 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을 통과하며 읽게 된 이민하의 「옛날 귀신」에서 귀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옛날 귀신’이라고 하면 소복을 차려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처녀 귀신이나 쪽머리를 진 할머니 귀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호러물의 예고편이 상영되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나로서는 어릴 때 가족들과 본 이 귀신의 전형이다. ‘현대’나 ‘최신’ 귀신이라면 다른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으려나. 시에서 귀신은 특정한 형상을 지닌 존재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 모여 사는 집에서 화자가 “커트 머리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오빠들이 납량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본다거나 “어른들이 마당에서 잔치를 하”는 상황에서 은연중 스산한 기운이 감지될 뿐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따로
- 김진선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그러니까 지금부터[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문장웹진 기획
기계적 도플갱어를 만나면[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기계적 도플갱어를 만나면 이서수 작년에 나는 영상 콘텐츠 제작자와 업무 미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특정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이었고, 각본 작업에 동참해줄 작가를 구하는 중이었다. 나는 예전에 각색 일을 했었기에 지인의 소개로 그 자리에 나갔다. 상대는 내 본업이 소설가라는 것을 알았으며, 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를 처음 만났던 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작가님 이름으로 챗GPT에 검색을 해 봤어요.” 그가 가방에서 파일 홀더를 꺼내더니 A4 용지를 넘기며 말했다. “약력과 작품관 같은 걸 정리해서 알려줬는데, 제가 재미있는 걸 해봤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서수 작가가 쓸 법한 시놉시스를 한 편 써달라고 했어요. 얼마 전에 작가님한테 제안했던 그 소재로요. 한번 읽어보실래요?” “예? 뭐라고요?” 나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각본 작업을 수락하기도 전인데 이서수라는 소설가가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이미 테스트해봤다니…… 나는 불시에 뺨을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해진 상태로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로 나처럼 썼겠느냐는 의구심이 무색하게 챗GPT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인물을 설정하고 사건을 조합해 이야기를 완성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랬다. 그건 정확히 내가 만들 법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 그들이 만나게 된 계기, 앞으로 펼쳐질 사건의 전개 방향이 모두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를 깨달았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말이다. “이걸 생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가요?” “1분도 안 걸렸죠, 뭐. 아시잖아요.”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정도의 짜임새로 시놉시스를 완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를 예측해보니 더더욱 웃을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의 1분과 인간의 1분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만 이해될 뿐 마음은 아니었다. 그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나보다 시대를 훨씬 앞서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앞으론 이런 일을 자주 겪을 수 있겠다는 예감도 밀려왔다. 스토리텔링 산업과 인공지능이 합쳐졌을 때 내가 쓴 소설은 AI에 생성을 위한 ‘데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글들과 책 리뷰, 인터뷰 기사 등을 모두 포함하여.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임에도 데이터만 구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 되었다.) 나는 그 상황을 특수하게 여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쨌든 그는 AI로부터 시놉시스를 얻는 데서 멈추었고, 이후의 작업은 인간 이서수와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당혹스러운 감정은 못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기획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
- 이서수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딸깍[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딸깍 양안다 나는 시 창작과 관련하여 AI를 활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창작자의 윤리라던가 신념 같은 건 아니고, 그저 AI의 시 취향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복적으로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프롬프트를 통해 자세한 방향을 지시하면 나아지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나의 취향과 AI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내가 다른 이와 취향이 맞지 않는 경우와 다름없습니다. AI는 창작 주체라기보다 창작 주체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깝고,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키보드나 사전, 아니면 노트와 펜의 역할과 같습니다. 다만 AI는 적극적인 도구입니다. 키보드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사전은 나에게 대체 단어를 먼저 제시하거나 묻지 않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모든 것과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독자나 스승, 동료 시인을 포함하여 타 장르 창작자와 철학자, 그리고 세상을 떠난 시인과도 영향 관계에 놓입니다. AI는 이러한 점에서 모든 타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AI는 때로 합평자가 되어줄 수 있고, 스승이 되어줄 수도 있으며, 시에서 벗어나 타 장르의 맥락을 끌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움직이므로, 사용자의 요구로 형성된 타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나 : 위의 텍스트는 ‘시인의 AI 활용’에 대한 텍스트입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ChatGPT-5.5 : 제가 조금 덧붙이고 싶은 것은, AI에게 “취향”이 있다고 말할 때 그 취향은 인간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AI의 취향은 어떤 미적 신념이나 삶의 이력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대체로 그럴듯함의 평균값에 가깝습니다. AI는 시를 쓸 때 자주 매끄럽게 만들고, 의미를 지나치게 정돈하고, 이미지들을 문학적으로 보이게 배열하고, 감정의 결론을 너무 빨리 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AI의 기본 취향은 “좋은 시”라기보다 좋은 시처럼 보이는 문장 쪽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에게는 그게 참을 수 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AI는 적극적인 도구다. 키보드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사전은 나에게 대체 단어를 먼저 제시하거나 묻지 않는다. AI는 도구인데, 기존 도구와 달리 도구인 척만 하는 게 아니라 타자인 척도 합니다. 키보드는 수동적이고, 사전은 정적인데, AI는 말을 걸고 반응하고 제안하고 반박하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도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능동적이고, 그렇다고 창작 주체라고 하기에는 책임과 욕망과 고유한 삶이 없습니다. 나는 AI가 주체적으로 시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며, 그 과정에서 ‘취향에 맞는 시’를 언젠가 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나의 영향 관계에 놓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AI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닙니다. 2020년에는 문득 이런 생
- 양안다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AI와 함께, 평론가는 어떻게 읽는가?[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AI와 함께, 평론가는 어떻게 읽는가?1) 노대원 AI 이후, 해석의 미래는? 평론가는 문학 텍스트와 평론뿐만 아니라 문학 이론을 비롯해서 여러 인문학 저서나 논문을 읽어야 할 일이 많다. 특별히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로 된 책과 논문도 읽어야 한다. 구글 번역이 나오고서 글과 책을 번역해 읽는 일에 큰 도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엉뚱한 번역 표현이 자주 발견되었다. 그러다 ChatGPT가 나오기 전, 지금으로부터 거의 십여 년 전에 구글 번역의 성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평론가로서 AI를 진지하게 걱정했다. 구글 번역이 혁신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특이점'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기계번역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해석자로서, 다만 번역의 미래만을 생각할 것은 아니다. 번역과 해석은, 1차 텍스트에서 2차 텍스트로의 작업이란 점에서 같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이후 해석의 미래는 어떨까? 해석은 예술이지만 번역 역시 예술이지 않았던가? 텍스트와 해석(비평)의 풍부한 '병렬 코퍼스'가 인공지능에게 주어진다면 해석의 자동화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번역가들은 번역의 미래를 고민한다. 해석자들은 해석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가? (2016년 11월 19일) 이 글을 쓰면서, 링크를 걸어 인용한 글은 번역가 노승영의 「알파고와 번역의 미래」였다. 그 글은 이렇게 끝난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광고를 보거나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웹 문서뿐 아니라 잡지, 단행본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 번역가의 번역은 인쇄술 등장 이전의 책이 그랬듯 소수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물론 이때가 되면 극소수의 번역가만 살아남을 것이다. 기계번역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는 번역가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저렴한 제품이 수공예로 소량 생산되는 고급 제품이 구별되듯 기계번역과 인간의 번역이 구별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번역가가 살아남을까?”2) 이 예상은 거의 정확하게 실현되었다. 그가 걱정했던 것처럼, 번역가가 생각보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고. 어쩌면 그 예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AI 번역은 점점 더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니까. 이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면서, 친구와 대화를 나눈 것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원고료는 너무 싸기 때문에 인간 작가를 상회하는 탁월한 AI를 개발하는 비용이 더 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내심, AI가 문학을 위협한다 해도, 나는, AI와 문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작업을 도전적으로 수행하는 쪽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얼마 뒤(ChatGPT 출시 몇 해 전에), 제주도에 AI 관련 서머 스쿨이 있어 방문한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김성훈 교수를 만나 점심 식사를
- 노대원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인공지능의 그 끝없는 지긋지긋함[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인공지능의 그 끝없는 지긋지긋함 곽재식 인터넷에 누가 “자동차 엔진오일이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엔진오일에 정말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다고 해 보자. 이런 덧글을 달면서 기대하는 것은 엔진오일에 대해서 잘 아는 자동차 수리 일을 하는 사람이나 엔진오일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담아 써 주는 대답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오래 자동차를 운전해 본 사람들이 각자의 엔진오일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경험담을 들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엔진오일 우습게 보다가 저는 큰코다친 적이 한번 있습니다.” 그 비슷한 답을 기대할 거라는 이야기다. 이런 기대는 무리를 지어 살면서 서로 경험과 기억을 언어로 공유하면서 발전해 온 사람이라는 종족이 원시 시대 때부터 갖고 있던 아주 오래된 습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동안 이런 덧글을 달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챗GPT에게 물어 봤더니, 이렇게 답변해 주더군요.”라고 자기가 인공지능에게 물어 본 내용을 복사해서 덧글로 붙여 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덧글에 엔진오일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줄 써 두어서 열심히 읽어 보았는데 다 읽어 갈 때쯤 보니까 맨 마지막에 “이상은 제미나이에게 물어본 결과입니다”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덧글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거의 모든 곳에서 많이도 나왔다. 도대체 이런 덧글은 왜 달리는 걸까? 질문을 했던 나는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물어 볼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덧글은 그야말로 순수한 의도로 달린 것이다. 질문을 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고, 자기도 그 문제에 대해 궁금하다 보니 대규모 언어모델, 즉 LLM 방식으로 운영되는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결과를 받아 본 뒤에 그 결과를 남들과 같이 공유해 보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심정에서 나온 동기는 조롱받을 이유도 없고 나쁜 마음이라고 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각계각층에서 LLM 방식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거기에 다른 마음이 결합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 것 같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최신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는 뿌듯함이다. 요즘 그렇게 유행이라고 하는 최신 첨단기술인 인공지능을 내가 이렇게나 잘 이용해서 남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을 느껴서 “나는 요즘 뭐든 인공지능에게 물어봐. 너무 편하고 좋거든!”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다 바꾸어서 완전히 다른 사회가 탄생할 거라는 이야기를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온갖 매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남보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는 거창한 환상마저 슬그머니 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앞서갈 거라는 환상이다. 지금 치열한 경쟁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문장웹진 다시 읽기] 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 조연정, (2017년 8월호 수록) 김진선 어느 강의 시간, 교수님께서는 신입생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면을 소개해 주셨다.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그날 이후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에는 《문장웹진》이 빠지지 않고 있다. 햇수로 17년, 매달 1일이면 새로 올라온 작품들을 접했다. 나름 놓치지 않고 따라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다시 보니 아닌 일이다. 맞다, 이것은 고해성사. 나의 죄를 고합니다. 나는 장르 편식이 있어서 시를 제외한 소설, 비평, 기획 등은 대체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문장웹진 다시 읽기’ 기획은 적어도 나에게 ‘다시 읽기’가 아닌 셈이다. 그러니까 이 기획은 적어도 나에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처음 마주한 글을 여러 번 살피고,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마침내 말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시작은 2017년 8월호에 수록된 조연정의 이라는 비평이다. 평소 어렵다고 생각한 비평만큼은 피하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간의 죗값을 달게 받는 거 같다. 이 글은 윤이형 소설가가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로서 고민하는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중심으로 문학적 재현,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논의의 과정에서 《문장웹진》 2017년 4월호에 수록된 조강석의 에 의문을 표하며,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이 미학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부정적 평가에 정면으로 맞선다. 먼저, 윤이형 소설가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앞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소설을 많이 ‘써야만’ 할까? - 앞으로 쓸 내 소설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순응하거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여성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일까? - 나는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에 대한 어떤 멸시나 비하도 ‘현실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꼭 필요해서 그런 식의 재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럴 경우, 반드시 거기에 내가 작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명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 이런 고민들을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혹은 각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내가 과잉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 혹은 나는 그저 여성 트위터리안-독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을 ‘타인’으로 여길 만큼 나는 그녀들에게서 먼가?1)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간 말(밑줄은 인용자 강조)이 유독 신경 쓰이는 것은 왜일까. 이 질문들은 의무(‘써야만’), 제약(‘안 되는’), 판단(‘비판적인’), 자기인식(
- 김진선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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