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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

  • 작성일 2017-05-01

[글틴 스페셜_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필 부문 수상작]



개와 남자와 달리는 사람



서윤호



내가 하루 일과 중 제일 좋아하는 일을 꼽으라면 달리기와 글쓰기이다. 둘은 꽤 상반되어 보이지만, 나에겐 비슷하다. 언제나 나에게 그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내가 어김없이 달리기 위해 근처 학교 운동장에 갈 무렵이었다.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잠그고 가로등은 빈자리만 비추었다. 이미 어둑해진 운동장 어귀로 들어서니 귀퉁이의 철봉 가까이에 남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얼마 전에도 운동장에서 운동하던 이들이 많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달랐다. 운동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뛰기는 싫고 운동은 해야 하기에 느릿느릿 걷는 중년들이었다. 그런데 남자는 철봉 근처에서 운동하고 있었다.
나는 밤공기를 마시며 뛰었다. 고맙게도 운동장엔 원 모양으로 인조잔디가 심겨 있어 그 길로 곧장 달리면 한 바퀴이다. 학교를 슬쩍 보면 조회대는 흰 조명이 비추었고 다른 쪽을 가스 가로등이 밝혔다. 내가 다시 남자를 바라본 것은 운동장을 다섯 바퀴 정도 돌았을 즈음이었다. 보통 운동장을 다섯 바퀴 정도 돌면 조금씩 숨이 가빠지고 처음의 긴장이 풀려 집중이 흐트러진다. 그런 가운데 남자가 보였다. 그는 분명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철봉은 높이가 조금씩 높아지는 세 개가 솟아 있는데, 남자는 이 중 중간 높이 철봉에 매달렸다. 그 사람은 독특한 기구를 사용했다. 각각 목과 철봉에 연결하는 긴 고무 고리 같은 것이었다. 턱걸이하다 보면 목에 힘이 풀려 뻐근해진다. 그것을 막는 도구로 보였다. 그런데 기구를 착용한 모습은 마치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 같았다. 낮이었다면 기구와 옷과 몸이 제각기 색을 띠었을 것이다. 그러나 밤은 그를 어스름한 그림자로만 보이게 했다. 어둠 속에서 목에 무언가를 건 이가 턱걸이를 하는 모습은 조금 우스웠고 기괴했다.
내가 운동장을 달리는 동안 그도 기구를 착용했다 벗었다 하며 턱걸이를 했다. 나는 쉼 없이 달렸지만 남자는 틈틈이 숨을 고르고 반복했다. 나와 그는 아무 말 없이 운동만 묵묵히 했다. 그때 학교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도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본 몸집은 작아 보였고 움직임은 재빨랐다. 나는 속도를 늦추고 학교 쪽을 계속 살폈다. 어둠이 일렁였다. 마침내 조회대 불빛 사이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였다. 도둑은커녕 개였다. 중간 크기의 개가 학교를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나는 다시 달렸지만, 개가 운동장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정작 개는 내려올 마음이 없어 보였다. 열 바퀴를 뛸 즈음까지는. 조회대 양옆에는 단이 높은 세 개짜리 계단이 차례로 있는데, 개는 조금씩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달리는 나를 살피곤 했다. 문득 눈길이 신경 쓰여 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 개는 사라졌었다. 남자는 아직도 목을 맨 채였다.
처음에는 사십 바퀴를 뛰리라 마음먹었다. 평소대로라면 오십 바퀴를 뛰어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쉬다 며칠 전 다시 시작한 운동이었기에 스무 바퀴부터 조금씩 횟수를 늘리는 중이었다. 분명 밥을 먹은 지 1시간이 넘었음에도 위가 저려 왔다. 30바퀴를 돌면서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몰려왔다. 뒤에서 낮고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개가 짖는 소리이다. 뒤를 돌아보니 개는 짖으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뛰어오는 개를 끔찍이 무서워한다. 이미 호흡이 가팔라졌지만, 속도를 올렸다. 짖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진원지가 가까워졌다. 내가 속력을 올릴수록 개는 더 빠르게 나를 쫓아왔다. 이대로 간다면 개가 나를 따라잡을 것이 뻔했다. 너머에 턱걸이하는 남자가 보였다. 스치는 기억에, 조회대 불빛에 비친 개는 털이 정돈되어 있었다. 키우는 주인이 있는 개였다. 나는 턱걸이하는 남자가 개를 풀어 놓고 운동을 하는 것이리라 추측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철봉으로 내달렸다. 철봉 바로 앞에 오기 직전까지. 머릿속은 개에게 엉덩이가 물리는 상상만 되새겼다. 남자는 멀리서부터 나를 지켜보았던 것 같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도 잊은 채 물었다. 저 개가 그쪽 개냐고. 남자는 아니라고 했다. 내 가정은 틀린 셈이었다. 마음이 다시 착잡해졌다. 내 표정을 본 남자가 덧붙였다. 자신도 개를 키운다며, 내가 달리지 않으면 개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나는 감사하다 말한 뒤 돌아섰다. 개는 멀찍이서 나를 노려보더니 등 돌려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개가 운동장을 나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개가 학교를 나간 뒤에야 천천히 걸었다. 달리기하고픈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자도 가방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개는 학교 앞 떡 공장에서 키우는 듯했다. 공장에서 사람이 나오자마자 개가 반기는 것을 보았다. 학교 입구를 돌아 나오며 웃음 지었다. 개는 학교를 활보하고, 나는 달리고, 남자는 목매듯 턱걸이를 했다. 한 공간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이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작가소개 / 서윤호(글틴 필명 : 서윤호)

2001년생. 2016년도 제12회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필 부문 수상자. 대아고등학교 재학. 글을 씁니다.
(위 작품은 2016년도 사이버문학광장 글틴 수필 게시판 12월 월장원 선정작으로 문장청소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문장웹진 201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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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람

[글틴 스페셜_에세이] 어린 사람 서윤호 학교에 들어갈 즈음이 되었을 때, 나는 장차 시인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계기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집에는 시집이 몇 권 있었다. 초등학교 학년별로 읽어야 할 동시를 정리한 시집부터 유명한 시들을 묶어 놓은 선집도 있었다. 나는 학교가 일찍 파할 때면 그 책들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즈음 천상병 시인의 을 처음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경이로움이 반가웠다. 몇 번을 되새겨 읽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 정도 시는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이 자라났던 것 같다. 가끔 학교에서는 동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긴밀하게 행동했다. 하얀 에이포 종이를 먼저 꺼냈다. 연필을 쥔 뒤, 읽었던 시를 몇 개 떠올리고, 멋있는 말을 쓴다고 생각하며 나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을 적어 갔다. ‘작업’이 끝나면 종이 양 끝을 잡고 멀찍이 둔 채 글자 더미를 감상했다. 나 혼자 써서 나 혼자 만족했다면 재미는 빠르게 사그라졌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를 부풀게 했다. 나는 스스로 시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또래와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적어도 그렇기를 소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는 마음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한두 해가 흘러 열 살 무렵이었다. 나는 진주청소년수련관으로 갔다. 그곳 작은 방에서는 북아트 행사가 열렸다. 나누어주는 재료로 얇은 책을 만들고, 색연필 따위로 꾸며 완성한 책을 가져가는 행사였다. 아마 방학숙제를 하나 더 추가할 심산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실상 책이랄 것도 없었다. 뻣뻣한 골판지 십여 장을 노끈으로 묶어 고정한 더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과정이 퍽 지루했다. 기실 미숙한 가위질만 계속하는 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몇 번을 자르고 붙이자 책이 허우대를 갖추기 시작했다. 속을 채워야 했다. 나는 그 안에 시를 쓰고 주제에 맞는 그림을 그려 꾸미기로 했다. 그때부터 좀 신났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내가 도맡아 하려 했다. 그림을 그렸다. 시를 새겨 넣었다.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튀어나왔다. 가령 라디오를 그렸지만 곤충 겹눈처럼 보이는 식이었다. 결국 나는 색칠만 거들어야 했다. 시를 쓸 차례였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시를 여러 개 생각해 냈고 머지않아 분량을 채울 수 있었다. 기억에, 시들은 다 비슷했다. 대부분 영탄조로 시작했고(왜 첫 문장은 물음표로 시작하는지 모르겠다), 의미 없는 수식이 가득했고(‘빠알간’ 따위는 너무 유명하다), 그다지 깊은 사유를 담지도 않았다. 애당초 평범한 열 살의 능력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싶다. 시 개수는 합쳐 봐야 열 개 남짓이었다. 나는 한두 개 정도를 제외하고는 만족해했다. 선집에서 읽었던 시들과 나의 시가 거의 대등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내가 만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부족했다. 한두 개 작품이 탐탁찮았던 이유도 끝에 강렬함이 부족하거나 따위의 사소한 이유였다. 글을 고칠

  •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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