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작성일 2026-08-01
- 댓글수 1
[레지던시 일기]
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한국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보낸 4주의 시간
하인츠 야니쉬
(번역 김서정)
I.
존중받는 느낌.
한국에서 보낸 4주간(2026년 3월 28일부터 4월 24일까지)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이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받은 대접,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정성, 나의 책과 문학 작업에 대한 존중.
내 책들(원서와 한국어 번역본)은 남이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이나 서울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 진열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모두 내 책을 잘 알고 있더군요. 희한하게도, 내 책의 글과 그림에 대한 명확하고도 박학한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희한하게도, 그림책의 언어와 그림의 어울림에 대해 아주 꼼꼼하게 인지하고 언급하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 책을 한국에서 낸 출판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어떤 부분은 원본을 살짝 벗어나 새로운 포맷을 입기도 했는데, 그 섬세한 만듦새에 완전히 납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림을 그린 <왕과 바다>(한국어본 제목 : <우리 모두 왕>)의 한국어본은 원본과 달리 세로가 더 긴 포맷으로 나왔습니다. 책 속의 작은 왕에게 갑자기 더 큰 공간이 주어졌는데, 그게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4주 동안 나는 출판인, 번역자들과(글자 그대로 모두 여성이었지요)(* 역주 : 독일어의 명사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있습니다. 작가는 보통의 경우 남성형 명사와 여성형 명사를 모두 씁니다. ‘대화 상대(남성형)과 대화 상대(여성형)’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출판인과 번역자의 여성형만 쓰고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모두 여성인 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성) 그림책 작가들과 (남성) 그림책 작가들, (여성) 글 작가들과 (남성) 글 작가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책을 보여주고, 의견을 주고받고, 책도 주고받았습니다. 친절한 통역의 도움을 받아 이 ‘책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책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실히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II.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그쳤던가?
짧은 되돌아봄.
모든 것은 트리에스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에서 나는 내 문학 작업에 주어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습니다.
경사스러운 시상식은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잔치가 되었습니다. 16살 난 우리 딸은 “내 생애 최고의 파티”였다고 하더군요. 70개국에서 온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IBBY 총회에 모였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대한 사랑 하나로 뭉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었지요. IBBY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의 약자입니다. 어린이‧청소년문학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적 단체이지요. 현재 80개 이상의 회원국이 있습니다. IBBY는 2년에 한 번씩 각국을 돌아가며 총회를 여는데,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시상식도 이때 열립니다. 이 멋진 상을 2024년 트리에스테 총회에서 받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일러스트 부문의 수상자는 캐나다 그림책 작가인 시드니 스미스였습니다.
재즈 밴드가 연주를 했고, 모두들 어울려 춤을 추었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었습니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의 남이섬에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홀’이라는 특별한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은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을 기리고, 전 세계의 수상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남이섬으로 초대하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뒤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여행이 결정되었지요.
2026년 3월 28일부터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작가 레지던스’로 4주를 보내는 모험이요.
III.
첫 주는 ‘가족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와 딸이 함께 와서 한 주 동안 서울에 머물게 되었지요. 우리는 번화가에 있는 한 호텔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여행객으로 살았습니다. 전통 의복들로 넘쳐나는 아주 인상적인 궁전, 경복궁을 방문했습니다. 경복궁은 ‘빛나는 행운의 궁전’이라는 뜻이라는군요. 1994년 세워진 군대의 역사에 관한 박물관, ‘전쟁 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낸 뒤에는 이 나라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움―삼성 예술 박물관’에서는 어떤 퍼포먼스에 참석했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지요. 인간 조각상들이(* 역주 : 조각상처럼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 소장품인 돌 조각품들과 대화를 나누더군요. 우리 딸도 두 무용수의 지극히 섬세한 몸짓에 이끌린 채 공간을 가로질러 한 조각품 앞으로 갔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도시의 여러 다양한 구역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인사동에서는 골동품을 구경했고, 강남 구역에서는 구름을 찌르는 현대적 초고층 건물들을 보았습니다. 동대문 시장을 어슬렁거렸고, 붐비는 골목길의 수많은 가판대에서 방금 요리한 음식들을 맛보았습니다.
“나 꼭 서울에 다시 와야 해.” 우리 딸은 서울에서 며칠을 지낸 뒤 선언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수많은 K팝 가게들에 열광한 건 물론이고요.
우리는 작은 찻집에서 달콤한 떡을 먹으며 앉아 있기도 했고, 길거리의 바글거리는 음식점에서 다양한 내용물의 만두를 먹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지하 쇼핑몰인 코엑스 스타필드에도 갔고, 555미터 높이의 롯데월드타워에도 갔습니다. 이태원의 조그맣고 귀여운 빈티지 선물 가게에도 들렀고요.
우리는 부지런히 다니며 예스러운 서울과 새로운 서울을 보았습니다. 천백만의 인구가 ‘빨리빨리, 신속하게’를 외치며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느릿느릿 신중하게 다니는 거북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Go! Go! Go!” 보행자 신호등의 숫자가 30에서 카운트다운될 때 옆에 있는 경찰이 외치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느렸던 거죠.
서울은 매혹적인 모순의 도시이고, 창의성과 원칙이 동시에 요구되는 도시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요구하는 도시였지요. 일주일에 52시간 일하는 건 보통이고, 고층 건물 안의 많은 주거지 크기가 고작 5~6평방미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 역주 :
고시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 쓸 돈도 공간도 시간도 부족하기야 하겠지요. 가족이 살 집은 오죽할까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보살피고, 지원해주고, 교육을 시키겠지요.
한국에서 어린이문학이 소중히 여겨지는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사람들은 아이들 앞길에 좋은 책과 이야기를 놓아주고 싶은 것입니다.
IV.
서울에서 닷새를 지낸 뒤 우리는 일정표에 따라 서울 북동쪽으로 60km쯤 떨어진 작은 섬으로 갔습니다. 나는 남이섬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아내와 딸은 이틀을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두 주 동안 머물게 될 곳을 보고 싶어 했거든요. 남이섬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한 가문이 꾸려가는, 강원도 강 한가운데의 작은 섬은, 하나의 공화국이었습니다. 나미나라공화국. 거기 들어가려면 ‘비자’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TV 시리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는군요.
신선한 공기를 가득 들이쉬고 싶은 사람에게 남이섬은 천국입니다. 나무가 천 그루쯤 서 있고, 수많은 작은 정원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백 개가 목표라는데, 현재 70개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섬에 벚꽃이 필 무렵이면 꿈같이 아름다운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오솔길 어디에든 꽃이 가득한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남이섬은 우리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은 기차, 노 저을 수 있는 작은 배, 놀이터와 휴게소… 그리고 곳곳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각품, 전시물, 콘서트, 도예원, 전 세계의 어린이책을 모은 유네스코 도서관, 그리고 아주 특별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입니다. 이 덴마크 작가를 기릴 뿐만 아니라 (안데르센의 사진과 책이 전시되어 있지요), 세계 각국의 안데르센상 수상자들을 기념하는 전시물들도 있습니다.
나는 나와 시드니 스미스의 커다란 사진 앞에 벅찬 마음으로 섰습니다. 우리 책도 있었지요. 두 개의 유리 진열장 안에 원서와 번역서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게는 커다란 영예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남이섬에 대한 내 시 하나가 돌에 새겨져서 박물관 입구에 영구 전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존중받는 느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가에 있는 예쁜 별장에서 셋이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안데르센 박물관 뒤쪽에 있는 방으로 옮겨 갔습니다.
말레이시아 출신 예술가 유소프 가자(202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가 꾸민 그 방은, 온갖 크기와 모양의 사랑스러운 코끼리 그림과 작품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생기 가득한 방에서 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두 주 동안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다정한 코끼리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지켜주는 동안에요.
아내와 딸은 하루 뒤 서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집으로 가야 했지요. 부활절 방학이 끝났으니까요. 둘은 나를 너무나 부러워했습니다. 두 주 동안 더 머물 수 있었으니까요.
섬에서의 나날은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조그만 배들이 아침마다 방문객을 실어 날랐습니다. 대부분 가족이었는데, 그들은 섬의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작들이 으스대며 거닐었고, 토끼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녔고, 호기심에 찬 다람쥐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팔짝거리며 옮겨 다녔습니다.
저녁이면 배가 대부분의 방문객을 다시 뭍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호텔이나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도 몇 있었고요.
저녁이면 섬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날마다 주머니에 노트를 넣은 채 섬을 산책했고, 가끔은 새벽이나 늦은 밤 별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도 걸었습니다. 보고, 걷고, 쓰고, 고개를 들고, 온전히 나로 존재한 시간들. 붙임성 있는 토끼, 꽃이 만발한 나무, 온 세계에서 온 조각품, 찻집과 음식점의 다정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황홀한 시간들.
나는 섬에 있으면서,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던 모차르트에 관한 책, <모차르트의 불안>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어린이를 위한 탐정 시리즈 <야로미를 위한 사건>의 제11권입니다. 사라진 값비싼 악기에 관한 이야기지요. 모차르트는 실제로 어린 시절, 트럼펫의 우렁찬 소리를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그 새된 소리는 모차르트의 섬세한 귀에 “총소리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소리였다고 한 편지에 쓰여 있지요.
나는 모차르트에 대한 원고를 다 쓰면 열심히 읽으려고 했던 책 하나를 한국으로 가져왔습니다. <한국 메르헨과 이야기들>인데, P. 안드레아스 에크아르트가 엮고 상트 오틸리엔 선교출판사가 1928년에 펴낸 책입니다.
남이섬에 있는 동안 나는 한국 메르헨을 다시 쓰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일고여덟 편이 완성이 됐고, 아직 몇 편이 좀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공동으로 그림책을 내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지요. 성공을 빌어주세요!
V.
섬에서 근사하게 두 주를 보낸 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프린스호텔로 가니 나를 친절하게 반겨주며 ‘작가의 방’으로 알려진 객실로 안내하더군요. 그 호텔은 정기적으로 작가들에게 방을 내주어 조용히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129번째 작가이자, 최초의 외국 작가였지요. 거기 묵으면서 쓴 글 덕분에 나온 책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꼭 그 책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다른 저작물들도 있었고요. 내 책들도 일주일 동안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전시되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존중. 그것도 아침 먹는 자리에서부터! 유럽에도 이런 호텔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한국 체류 마지막 주에는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대체로 아르코(ARKO, Arts Council Korea,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손님 자격이었지요. 아르코는 IBBY, 남이섬, 프린스호텔과 함께 나의 한국 체류를 가능하게 해준 기관입니다.
나는 아르코의 한 공간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그 부모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빈에서 공부했다는 뛰어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서요.
나는 남이섬의 풀밭에서 발견한 나뭇가지를 워크숍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평범한 돌멩이 하나도요. 그걸로 뭘 알려주고 싶었냐고요? 이런 것입니다.
문학에는 작은 것이라고는 없다. 모든 것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나뭇가지는 역사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나는 눈이 동그래져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뭇가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우산도, 칼도, 망원경도, 현미경도, 깃발도, 돛도, 마술지팡이도, 국경도, 다리도, 이정표도, 모래에 글을 쓸 붓도, 지팡이도 된다. 모든 이야기가 다 가능하다.
돌멩이?
이건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값진 보물일 수 있다. 그런데 진열장 안내판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이 돌멩이는 왜 그렇게 값진 걸까? 이건 어떤 이유로 소중한 걸까?
아이들의 상상력은 곧 사방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돌은 바닷속 깊은 곳, 어쩌면 아틀란티스에서 나오기도 하고, 먼 우주 어쩌면 화성에서 온 것이기도 합니다. 범죄 현장의 범행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마법이 있는 사랑의 돌일 수도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는 거지요. 언어 마법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으면 전 세계 어떤 언어든 알아들을 수 있는 거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는 판타지를 품고 있습니다. 가끔가다 깨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르코에서는 또 며칠 동안 북적북적한 북 토크도 가졌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나의 책 <다리>와 <할아버지의 붉은 뺨> 낭독도 있었습니다.
번역가, 평론가와의 대담도 있었습니다.
저널리스트와 인터뷰도 많았고, 일러스트레이터들과의 만남도 가졌습니다. 멋진 만남과 흥미로운 대화 덕분에 신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는 전시물이 가득한 국립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시품 중 청동 조각 하나는 한국의 첫 번째 거울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읽은 한국 메르헨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걸 새로 써보았습니다. 위험한 거울.
박물관의 특정 장소에 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호랑이를 쓰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서 있어야 보이는 호랑이였지요. 모니터에는 자기 모습도 떠오르는데, 조심스럽게 그 디지털 호랑이를 쓰다듬으려고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천천히 움직이니까 호랑이는 위엄 넘치는 걸음을 옮겨, 나를 지나쳐서 모니터 밖으로 나가버렸답니다.
거북이와 호랑이…
이게 아마 나의 한국 체류에 대한 상징일 것입니다. 호랑이는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잡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처럼요.
한국 신화에서 호랑이는 용기와 힘의 상징입니다. 한국 창조 설화에서도 호랑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설화와 전래동화에도 호랑이는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때는 수호자로, 어떤 때는 악당으로요. 한국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 중 하나가 지금 우리 침실에 걸려 있지요.
서울에서의 날들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 도시의 큰길, 작은 길들의 분위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몇 시간이고 걸어 다녔습니다. 내 사진이 몇몇 신문에 실린 덕분에 사람들이 자주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를 환영해주면서, 서울에서 즐겁게 보내라고 격려해주더군요. 존중받는 느낌.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존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동안에 나는 가져온 책들을 모두 아르코에 기증하고, 만났던 번역가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꼭 비워야 했습니다. 서울과 남이섬에서 받은 멋진 선물들을 집으로 가져가야 했으니까요.
2026년 4월 26일, 한국에서의 4주 체류를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습니다. 흠뻑 맛본, 존중받는 느낌에 감사하면서 말이에요.
꼭 덧붙일 말
감사할 사람들 이름을 늘 잊어버리는 바람에 모두 적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꼭 이름을 들어야겠습니다. 생각하면 언제나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할 이름입니다.
IBBY의 카롤리나 발레스터. 이 일들을 연결시켜주어 감사합니다.
나를 초청해주고, 행사를 완벽하게 진행하고, 극진하게 돌보아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든 진행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전 문화부장관이자 현 아르코 위원장인 정병국 님, 감사합니다. 내게 특별한 커피를 끓여주었어요!
아르코의 김나영 님과 박성훈 님. 행사를 완벽하게 기획하고 진행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세종사이버대학의 김수영 님. 내 책을 열심히 읽고 낭독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다리>의 번역자 김서정 님. 내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영어로 된 한국 메르헨 책 세 권을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남이섬의 케니와 프레드 민. 멋진 두 주를 선물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 진심과 넉넉함에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제이크, 섬에서 나를 친절하게 돌봐줘서 고마워요.
‘애프터눈’ 에이전트의 에이미 김이 내 한국방문을 기획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전트의 지민 님. 늘 세심하고 친절하게 모든 일정을 챙기고 다정하게 동행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가족과는 정이 담뿍 들었어요.
프린스호텔에서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돌봐준 프린스호텔 매니저 YG 장에게도 감사합니다.
나를 안전하게 이곳저곳 데려다준, 인내심 많은 방 기사님, 고맙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내 책이 한국에서 읽힐 수 있도록 해준 모든 관계 출판인들과 번역자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처럼 판타지의 힘을 믿으면서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사를 드립니다.
GAMSAHAE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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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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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산책[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 도재경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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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호에서 기다린 것들[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권희진 호텔 앞에서 어떤 외국인을 보았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옷을 차려입었다. 옆에는 커다란 트렁크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려는 걸까. 연인? 친구? 아니면 오래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만났던 누군가? 나는 여러 상황을 상상했다. 산책하기 위해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여전히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군, 하면서 그 사람 곁을 지나쳤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도, 밤 산책을 위해 나왔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부터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에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숙소를 잡지 못한 걸까.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다. 호텔 앞에서 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새벽에 조금 쌀쌀했는지 트렁크에서 얇은 겉옷 하나를 꺼내 입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선 채로 졸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점심쯤에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메모지에 연필로 슥슥 소리를 내면서. 모종의 이유로 그 그림은 공개할 수 없다. 절대 못 그려서는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글로 그 사람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호텔을 나온 후에도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났다. 왜일까. 프린스호텔에서 내가 주로 한 일도 기다리기였다. 무언가 생각나기를 기다리고, 좋은 문장을 기다리고, 흔히 말하는 영감이라는 걸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지루해지면 나는 썼다. 결국 다 지울 문장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문장이 오길 기다리면서도 계속 썼으니까. 내가 머문 506호는 트윈룸이었다. 침대 두 개를 하루씩 번갈아 썼다. 하나만 쓰면 괜히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두 개를 다 사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 얘길 왜 하느냐고? 침대만큼 뭔가를 기다리기에 적합한 곳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침대에서는 생각도, 사랑도, 꿈꾸는 일도 전부 가능하다. 다만 나는 침대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시트를 더럽히면 다음 일이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냥 잠만 잤다는 얘기는 아니다. 침대에 앉아서 소설도 쓰고 책도 읽었다. 정말이다. 잠깐 빨래 얘기를 해보자. 호텔에 머물면서 총 여섯 번의 세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로비 구석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세탁과 건조가 진행되는 약 80분 동안 나는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뭐라도 떠오르길 기다렸다. 로비는 기다림에 어울리는 곳이니까. 프런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직원들, 택시를 기다리는 관광객, 내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는 투숙객, 그리고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많은 트렁크들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도 빨래는 80분이면 끝이 났다. 그러면 나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 권희진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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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 하림
- 2026-10-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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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