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작성일 2026-08-01
- 댓글수 1
[레지던시 일기]
Die Schildkröte und der Tiger
거북이와 호랑이
― 한국에서 ‘레지던스 작가’로 보낸 4주의 시간
하인츠 야니쉬
(번역 김서정)
I.
존중받는 느낌.
한국에서 보낸 4주간(2026년 3월 28일부터 4월 24일까지)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이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이 받은 대접, 우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정성, 나의 책과 문학 작업에 대한 존중.
내 책들(원서와 한국어 번역본)은 남이섬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이나 서울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건물 진열장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모두 내 책을 잘 알고 있더군요. 희한하게도, 내 책의 글과 그림에 대한 명확하고도 박학한 질문이 주어졌습니다. 희한하게도, 그림책의 언어와 그림의 어울림에 대해 아주 꼼꼼하게 인지하고 언급하는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나는 내 책을 한국에서 낸 출판인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책의 어떤 부분은 원본을 살짝 벗어나 새로운 포맷을 입기도 했는데, 그 섬세한 만듦새에 완전히 납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볼프 에를브루흐가 그림을 그린 <왕과 바다>(한국어본 제목 : <우리 모두 왕>)의 한국어본은 원본과 달리 세로가 더 긴 포맷으로 나왔습니다. 책 속의 작은 왕에게 갑자기 더 큰 공간이 주어졌는데, 그게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4주 동안 나는 출판인, 번역자들과(글자 그대로 모두 여성이었지요)(* 역주 : 독일어의 명사에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있습니다. 작가는 보통의 경우 남성형 명사와 여성형 명사를 모두 씁니다. ‘대화 상대(남성형)과 대화 상대(여성형)’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출판인과 번역자의 여성형만 쓰고 이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모두 여성인 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성) 그림책 작가들과 (남성) 그림책 작가들, (여성) 글 작가들과 (남성) 글 작가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책을 보여주고, 의견을 주고받고, 책도 주고받았습니다. 친절한 통역의 도움을 받아 이 ‘책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책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실히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II.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그쳤던가?
짧은 되돌아봄.
모든 것은 트리에스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4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바닷가 도시에서 나는 내 문학 작업에 주어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습니다.
경사스러운 시상식은 말 그대로 경사스러운 잔치가 되었습니다. 16살 난 우리 딸은 “내 생애 최고의 파티”였다고 하더군요. 70개국에서 온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IBBY 총회에 모였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대한 사랑 하나로 뭉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었지요. IBBY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의 약자입니다. 어린이‧청소년문학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국제적 단체이지요. 현재 80개 이상의 회원국이 있습니다. IBBY는 2년에 한 번씩 각국을 돌아가며 총회를 여는데, ‘어린이문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시상식도 이때 열립니다. 이 멋진 상을 2024년 트리에스테 총회에서 받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일러스트 부문의 수상자는 캐나다 그림책 작가인 시드니 스미스였습니다.
재즈 밴드가 연주를 했고, 모두들 어울려 춤을 추었습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었습니다.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의 남이섬에 있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홀’이라는 특별한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은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을 기리고, 전 세계의 수상자들을 기념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남이섬으로 초대하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뒤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여행이 결정되었지요.
2026년 3월 28일부터 모험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작가 레지던스’로 4주를 보내는 모험이요.
III.
첫 주는 ‘가족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와 딸이 함께 와서 한 주 동안 서울에 머물게 되었지요. 우리는 번화가에 있는 한 호텔에 들어가 일주일 동안 여행객으로 살았습니다. 전통 의복들로 넘쳐나는 아주 인상적인 궁전, 경복궁을 방문했습니다. 경복궁은 ‘빛나는 행운의 궁전’이라는 뜻이라는군요. 1994년 세워진 군대의 역사에 관한 박물관, ‘전쟁 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낸 뒤에는 이 나라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움―삼성 예술 박물관’에서는 어떤 퍼포먼스에 참석했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지요. 인간 조각상들이(* 역주 : 조각상처럼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 소장품인 돌 조각품들과 대화를 나누더군요. 우리 딸도 두 무용수의 지극히 섬세한 몸짓에 이끌린 채 공간을 가로질러 한 조각품 앞으로 갔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도시의 여러 다양한 구역들을 돌아다녔습니다. 인사동에서는 골동품을 구경했고, 강남 구역에서는 구름을 찌르는 현대적 초고층 건물들을 보았습니다. 동대문 시장을 어슬렁거렸고, 붐비는 골목길의 수많은 가판대에서 방금 요리한 음식들을 맛보았습니다.
“나 꼭 서울에 다시 와야 해.” 우리 딸은 서울에서 며칠을 지낸 뒤 선언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수많은 K팝 가게들에 열광한 건 물론이고요.
우리는 작은 찻집에서 달콤한 떡을 먹으며 앉아 있기도 했고, 길거리의 바글거리는 음식점에서 다양한 내용물의 만두를 먹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지하 쇼핑몰인 코엑스 스타필드에도 갔고, 555미터 높이의 롯데월드타워에도 갔습니다. 이태원의 조그맣고 귀여운 빈티지 선물 가게에도 들렀고요.
우리는 부지런히 다니며 예스러운 서울과 새로운 서울을 보았습니다. 천백만의 인구가 ‘빨리빨리, 신속하게’를 외치며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우리는 느릿느릿 신중하게 다니는 거북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Go! Go! Go!” 보행자 신호등의 숫자가 30에서 카운트다운될 때 옆에 있는 경찰이 외치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느렸던 거죠.
서울은 매혹적인 모순의 도시이고, 창의성과 원칙이 동시에 요구되는 도시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도시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요구하는 도시였지요. 일주일에 52시간 일하는 건 보통이고, 고층 건물 안의 많은 주거지 크기가 고작 5~6평방미터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 역주 :
고시원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 쓸 돈도 공간도 시간도 부족하기야 하겠지요. 가족이 살 집은 오죽할까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엄두도 못 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보살피고, 지원해주고, 교육을 시키겠지요.
한국에서 어린이문학이 소중히 여겨지는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사람들은 아이들 앞길에 좋은 책과 이야기를 놓아주고 싶은 것입니다.
IV.
서울에서 닷새를 지낸 뒤 우리는 일정표에 따라 서울 북동쪽으로 60km쯤 떨어진 작은 섬으로 갔습니다. 나는 남이섬에 첫눈에 반했습니다.
아내와 딸은 이틀을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두 주 동안 머물게 될 곳을 보고 싶어 했거든요. 남이섬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한 가문이 꾸려가는, 강원도 강 한가운데의 작은 섬은, 하나의 공화국이었습니다. 나미나라공화국. 거기 들어가려면 ‘비자’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TV 시리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는군요.
신선한 공기를 가득 들이쉬고 싶은 사람에게 남이섬은 천국입니다. 나무가 천 그루쯤 서 있고, 수많은 작은 정원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백 개가 목표라는데, 현재 70개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섬에 벚꽃이 필 무렵이면 꿈같이 아름다운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오솔길 어디에든 꽃이 가득한 나무들이 서 있습니다.
남이섬은 우리가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섬 곳곳을 돌아다니는 작은 기차, 노 저을 수 있는 작은 배, 놀이터와 휴게소… 그리고 곳곳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각품, 전시물, 콘서트, 도예원, 전 세계의 어린이책을 모은 유네스코 도서관, 그리고 아주 특별한 박물관이 있습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그림책 홀입니다. 이 덴마크 작가를 기릴 뿐만 아니라 (안데르센의 사진과 책이 전시되어 있지요), 세계 각국의 안데르센상 수상자들을 기념하는 전시물들도 있습니다.
나는 나와 시드니 스미스의 커다란 사진 앞에 벅찬 마음으로 섰습니다. 우리 책도 있었지요. 두 개의 유리 진열장 안에 원서와 번역서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내게는 커다란 영예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남이섬에 대한 내 시 하나가 돌에 새겨져서 박물관 입구에 영구 전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존중받는 느낌은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가에 있는 예쁜 별장에서 셋이 하룻밤을 보낸 뒤 나는 안데르센 박물관 뒤쪽에 있는 방으로 옮겨 갔습니다.
말레이시아 출신 예술가 유소프 가자(202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가 꾸민 그 방은, 온갖 크기와 모양의 사랑스러운 코끼리 그림과 작품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생기 가득한 방에서 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두 주 동안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다정한 코끼리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지켜주는 동안에요.
아내와 딸은 하루 뒤 서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집으로 가야 했지요. 부활절 방학이 끝났으니까요. 둘은 나를 너무나 부러워했습니다. 두 주 동안 더 머물 수 있었으니까요.
섬에서의 나날은 정말 매혹적이었습니다. 조그만 배들이 아침마다 방문객을 실어 날랐습니다. 대부분 가족이었는데, 그들은 섬의 자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작들이 으스대며 거닐었고, 토끼들은 자유롭게 뛰어다녔고, 호기심에 찬 다람쥐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팔짝거리며 옮겨 다녔습니다.
저녁이면 배가 대부분의 방문객을 다시 뭍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호텔이나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도 몇 있었고요.
저녁이면 섬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날마다 주머니에 노트를 넣은 채 섬을 산책했고, 가끔은 새벽이나 늦은 밤 별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도 걸었습니다. 보고, 걷고, 쓰고, 고개를 들고, 온전히 나로 존재한 시간들. 붙임성 있는 토끼, 꽃이 만발한 나무, 온 세계에서 온 조각품, 찻집과 음식점의 다정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황홀한 시간들.
나는 섬에 있으면서,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던 모차르트에 관한 책, <모차르트의 불안>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건 어린이를 위한 탐정 시리즈 <야로미를 위한 사건>의 제11권입니다. 사라진 값비싼 악기에 관한 이야기지요. 모차르트는 실제로 어린 시절, 트럼펫의 우렁찬 소리를 불안해했다고 합니다. 그 새된 소리는 모차르트의 섬세한 귀에 “총소리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소리였다고 한 편지에 쓰여 있지요.
나는 모차르트에 대한 원고를 다 쓰면 열심히 읽으려고 했던 책 하나를 한국으로 가져왔습니다. <한국 메르헨과 이야기들>인데, P. 안드레아스 에크아르트가 엮고 상트 오틸리엔 선교출판사가 1928년에 펴낸 책입니다.
남이섬에 있는 동안 나는 한국 메르헨을 다시 쓰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일고여덟 편이 완성이 됐고, 아직 몇 편이 좀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공동으로 그림책을 내면 좋겠다는 꿈을 꾸고 있지요. 성공을 빌어주세요!
V.
섬에서 근사하게 두 주를 보낸 뒤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프린스호텔로 가니 나를 친절하게 반겨주며 ‘작가의 방’으로 알려진 객실로 안내하더군요. 그 호텔은 정기적으로 작가들에게 방을 내주어 조용히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129번째 작가이자, 최초의 외국 작가였지요. 거기 묵으면서 쓴 글 덕분에 나온 책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꼭 그 책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다른 저작물들도 있었고요. 내 책들도 일주일 동안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전시되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존중. 그것도 아침 먹는 자리에서부터! 유럽에도 이런 호텔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한국 체류 마지막 주에는 서울에 머물렀습니다. 대체로 아르코(ARKO, Arts Council Korea,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손님 자격이었지요. 아르코는 IBBY, 남이섬, 프린스호텔과 함께 나의 한국 체류를 가능하게 해준 기관입니다.
나는 아르코의 한 공간에서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그 부모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빈에서 공부했다는 뛰어난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서요.
나는 남이섬의 풀밭에서 발견한 나뭇가지를 워크숍에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있던 평범한 돌멩이 하나도요. 그걸로 뭘 알려주고 싶었냐고요? 이런 것입니다.
문학에는 작은 것이라고는 없다. 모든 것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나뭇가지는 역사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나는 눈이 동그래져 있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뭇가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우산도, 칼도, 망원경도, 현미경도, 깃발도, 돛도, 마술지팡이도, 국경도, 다리도, 이정표도, 모래에 글을 쓸 붓도, 지팡이도 된다. 모든 이야기가 다 가능하다.
돌멩이?
이건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 있는 값진 보물일 수 있다. 그런데 진열장 안내판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이 돌멩이는 왜 그렇게 값진 걸까? 이건 어떤 이유로 소중한 걸까?
아이들의 상상력은 곧 사방으로 뻗어 나갔습니다. 돌은 바닷속 깊은 곳, 어쩌면 아틀란티스에서 나오기도 하고, 먼 우주 어쩌면 화성에서 온 것이기도 합니다. 범죄 현장의 범행 도구일 수도 있습니다. 마법이 있는 사랑의 돌일 수도 있습니다. 건드리기만 하면 사랑에 빠지는 거지요. 언어 마법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손에 들고 있으면 전 세계 어떤 언어든 알아들을 수 있는 거죠.
나는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는 판타지를 품고 있습니다. 가끔가다 깨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아르코에서는 또 며칠 동안 북적북적한 북 토크도 가졌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나의 책 <다리>와 <할아버지의 붉은 뺨> 낭독도 있었습니다.
번역가, 평론가와의 대담도 있었습니다.
저널리스트와 인터뷰도 많았고, 일러스트레이터들과의 만남도 가졌습니다. 멋진 만남과 흥미로운 대화 덕분에 신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서울을 돌아다녔습니다.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는 전시물이 가득한 국립박물관에서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시품 중 청동 조각 하나는 한국의 첫 번째 거울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읽은 한국 메르헨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걸 새로 써보았습니다. 위험한 거울.
박물관의 특정 장소에 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호랑이를 쓰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모니터 앞에 서 있어야 보이는 호랑이였지요. 모니터에는 자기 모습도 떠오르는데, 조심스럽게 그 디지털 호랑이를 쓰다듬으려고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너무 천천히 움직이니까 호랑이는 위엄 넘치는 걸음을 옮겨, 나를 지나쳐서 모니터 밖으로 나가버렸답니다.
거북이와 호랑이…
이게 아마 나의 한국 체류에 대한 상징일 것입니다. 호랑이는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잡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처럼요.
한국 신화에서 호랑이는 용기와 힘의 상징입니다. 한국 창조 설화에서도 호랑이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설화와 전래동화에도 호랑이는 자주 등장합니다. 어떤 때는 수호자로, 어떤 때는 악당으로요. 한국의 유명한 호랑이 그림 중 하나가 지금 우리 침실에 걸려 있지요.
서울에서의 날들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 도시의 큰길, 작은 길들의 분위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몇 시간이고 걸어 다녔습니다. 내 사진이 몇몇 신문에 실린 덕분에 사람들이 자주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나를 환영해주면서, 서울에서 즐겁게 보내라고 격려해주더군요. 존중받는 느낌.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존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머무는 동안에 나는 가져온 책들을 모두 아르코에 기증하고, 만났던 번역가들에게도 선물했습니다.
나는 가방을 꼭 비워야 했습니다. 서울과 남이섬에서 받은 멋진 선물들을 집으로 가져가야 했으니까요.
2026년 4월 26일, 한국에서의 4주 체류를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습니다. 흠뻑 맛본, 존중받는 느낌에 감사하면서 말이에요.
꼭 덧붙일 말
감사할 사람들 이름을 늘 잊어버리는 바람에 모두 적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꼭 이름을 들어야겠습니다. 생각하면 언제나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할 이름입니다.
IBBY의 카롤리나 발레스터. 이 일들을 연결시켜주어 감사합니다.
나를 초청해주고, 행사를 완벽하게 진행하고, 극진하게 돌보아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든 진행자들에게 감사합니다.
전 문화부장관이자 현 아르코 위원장인 정병국 님, 감사합니다. 내게 특별한 커피를 끓여주었어요!
아르코의 김나영 님과 박성훈 님. 행사를 완벽하게 기획하고 진행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세종사이버대학의 김수영 님. 내 책을 열심히 읽고 낭독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다리>의 번역자 김서정 님. 내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영어로 된 한국 메르헨 책 세 권을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남이섬의 케니와 프레드 민. 멋진 두 주를 선물해주어서 감사합니다. 그 진심과 넉넉함에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제이크, 섬에서 나를 친절하게 돌봐줘서 고마워요.
‘애프터눈’ 에이전트의 에이미 김이 내 한국방문을 기획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전트의 지민 님. 늘 세심하고 친절하게 모든 일정을 챙기고 다정하게 동행해주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가족과는 정이 담뿍 들었어요.
프린스호텔에서 나를 진심으로 환영해주고 돌봐준 프린스호텔 매니저 YG 장에게도 감사합니다.
나를 안전하게 이곳저곳 데려다준, 인내심 많은 방 기사님, 고맙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내 책이 한국에서 읽힐 수 있도록 해준 모든 관계 출판인들과 번역자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처럼 판타지의 힘을 믿으면서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커다란 감사를 드립니다.
GAMSAHAE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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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시 일기〉는 문학 레지던시에 머문 작가들의 에세이입니다. 입주 기간 동안의 하루와 작업 과정, 새로운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각과 생각들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작품 너머 창작의 현장과 작가의 내면을 함께 전합니다. 레지던시에서 보낸 시간의 의미를 독자와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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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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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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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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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