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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Glow*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5-06-18
  • 조회수 955

사탕의 겉면을 핥고 있으면

달콤하고

약간 씁쓸한 인공 오렌지 향


감미료가 찬 물풍선만한 세계

우리가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주황색으로 물들었지 별이라고 말해야만 별이 되는 별빛

하늘이 너무 밝아 열대야의 어둠에 뺨을 대고 잠들면 오렌지 별빛이 쏟아졌어 그건 마치

사탕을 오랫동안 녹여 먹으려는 것처럼

살면서 한 번도 어금니와 어금니 사이에 사탕을 두고 씹어본 적 없는 것처럼


왼쪽 눈은 꼭 감고 두 손은 동그랗게 쥐고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자 쏘세요!


그네를 타고 있으면 하늘이 영화 속 장면을 일시정지한 것처럼 다른 세계에 빠진 것처럼 또는 이대로 극장 밖으로 튕겨져 나갈 것처럼

사탕을 깨물면

이가 깨질 것 같아서...


미안해


아 그래도 우리가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까 다 현실 같았지

여름에는 인공위성에게도 별자리를 붙여줬어

이름표를 하나씩 대어주니 보기가 좋았어

구멍이 생긴 사탕이 입천장에 붙었어


손바닥에 뱉어 두니 투명하고 작은 설탕 덩어리가 왠지 안쓰러웠어

여름이 조금씩 작아질 때


별이라고 부르자 정말로 밝아지는 꿈을 꿨다




*인공 조명으로 인해 밤하늘이 밝아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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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앞에 놓인 카타르시스성 폭력-드라마 '참교육'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한국 고전 산문들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을 띄고 있다. 당장 ‘홍길동전’과 ‘장화홍련전’의 결말을 두고 비교해봐도 그렇다. 두 작품 모두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결말이다. 이러한 구성 방식과 결말은 한국 근대 이전의 소설들 속에서 주를 이뤘다. 그러나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는 한국 고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도 상업 소설인 웹소설, 상업 드라마, 상업 영화 등 대중적인 이야기 플롯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일종의 모티프다. 이런 모티프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중 인과응보, 권선징악이라는 모티프는 전 세대에 걸쳐 과거에서 현재까지 매체와 서술 방식을 변주하며 계속 나타난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상업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권선징악과 관련된 모티프가 자주 나타난다. 상업 드라마에서 권선징악, 인과응보를 보여주는 드라마 중 일부는 복수라는 장르를 내세우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 ‘펜트하우스’, sbs 시리즈 드라마 ‘모범택시’, ‘열혈사제’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복수극도 개인에 이야기만을 하는 드라마와 개인을 넘어 사회까지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이로 볼 때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복수로 그려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모범택시’ 시리즈, ‘열혈사제’ 시리즈는 개인과 개인을 넘어 현실 사회 문제도 건드리는 복수극이다. 따라서 ‘열혈사제’와 ‘모범택시’ 시리즈는 각종 사회 문제를 시리즈별로 이야기하여 그려낸다. 반면, ‘아내의 유혹’은 구은재와 신애리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복수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차이점은 각각 드라마의 결말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김순옥의 ‘아내의 유혹’은 악역인 신애리와 정교빈이 죽음으로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극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주인공인 구은재는 그들이 받은 벌을 보고도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구은재는 신애리에게 피해를 받은 피해자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신애리는 친구이자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복수의 성공이 결코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역으로 한때 악역이었던 애리를 용서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결말을 맺는다. 반면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 실현으로 복수를 진행하는 ‘모범택시’ 시리즈와 같은 드라마는 무지개 운수라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이 사회 문제를 대표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식으로 에피소드별 결말을 맺는다. 그 과정은 복수극과 복수 대행 서비스 안에 맞춰서 폭력적이고, 역지사지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해결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악인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벌하는 모습을 보며 고양된 감정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하지

  • 송희찬
  • 2026-06-29
수면 아래

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다. -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화> 육지에 터를 내리고 사는 인간으로서는 바다로 발을 내딛는 순간은 언제나 낯섦과 동시에 닿은 적 없는 세계를 향한 갈망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바다는 제 품에 안은 이들은 한없이 부드러이 끌어안아 주지만 그 밖의 이방인에겐 자비롭지 않다. 수면 아래서 아가미를 펄럭이며 유유히 살아가는 생물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약하게 부풀고 가라앉는 폐뿐이기에 그곳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거로운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선 제 몸의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딱 달라붙는 웻슈트를 걸치는 것은 복잡한 관문을 향한 첫 발걸음이다. 그 다음으로 애석한 몸이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가라앉기 위한 무게추를 몸에 매달아야만 한다. 현실에서도 바닷속에서도 떠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가라앉아야만 하는 것이다. 부력조절기를 등에 메다는 순간 휘청이는 몸을 가누는 것 또한 온전히 인간의 몫이며, 동시에 육지의 공기를 끌어 담은 공기통을 매달고 부들거리는 다리를 치켜세우는 것 또한 바다를 향한 처절한 인간의 몸부림 중 하나이다. 그 모든 관문을 뚫고선 인간은 마치 하나의 돌덩이가 된 듯한 기분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어쩌면 정말로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일 텐데도, 그들은 해맑은 웃음과 함께 레귤레이터를 입에 문다. 이내 서로의 버디를 향해 일종의 사인을 주고받은 그들은 기어코 바다를 향해 뛰어든다. 철썩이는 파도를 뒤로하고는, 단지 크게 부푼 심장과 어떠한 맹목적인 갈망만을 지닌 채로. 그러니 육지에 사는 생물들은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그 바닷물에 잠긴 순간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 바닷물에 잠기는 순간은 해선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다. 차디찬 물기가 제 몸에 한껏 달라붙는 감각이며 새파란 빛으로 가득한 아래를 바라보면 어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가 스쿠버 다이빙에 빠져든 것 또한 그 이유에 있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 그 괴리감에는 어딘가 모든 걸 잊게 해주는 마법이 담겨있는 듯했기에. 핀을 가볍게 흔든 해선은 제 앞에 선 버디를 향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에 고개를 끄덕인 준은 조금씩 아래를 향해 두 발을 걷어찼다. 그의 등 위를 커다란 만타 가오리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해선은 옅게 웃으며 그를 따라 아래로 가라앉았다. 닿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과 달리 바닥은 몇 번의 발짓만으로도 도달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산호초가 빛이 가려진 바닥을 화려하게 밝히는 그곳에는, 곳곳에 숨어든 작은 생물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청 푸른 빛에 은은한 어둠이 내리깔린 그곳, 그러니 즉 바다의 작은 심연인 그곳에 도달하고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다. 공중을 향해 가벼이 몸을 뉜 준은 그녀에게 검지를 들어 올려 손짓했다. 해선은 가벼이 몸을 돌려 새로운 바다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햇빛을 머금은 채 일렁이는

  • 서벽
  • 2026-06-15
일자로의 회귀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 23-26- 나는 본래 모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이미 교회를 다녔었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또한 모태 신앙이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뱃 속에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고, 친할아버지가 큰 병을 치유하신 이후로 개신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진실로 천국을 믿기도 했고, 성경이라는 이야기도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소설을 쓰거나 역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모든 흥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 속 이야기 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배웠던 부분이 겨우 출애굽기 정도였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그 서사는 나에게 정말 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진했고, 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신을 믿었다. 기도를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돕는 것이 신이었고, 만약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 믿었다. 사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신을 수단화했던 것이다. 학교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믿기만 한다면, 진실로 믿기만 한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모태 신앙이란게 참 무섭다. 왜냐하면 모태 신앙은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개신교적 사고관을 주입하면서 자라다 보니 천국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천국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목사를 그만두셨을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부목사를 그만두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역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신학대학, 대학원도 신학대학원 그 외의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직업은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경력도 아버지를 이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땡볕이 기다리는 그 넓고 넓은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계단을 여러 칸 올라가서 택배 상자를 내려놓으면 겨우 몇 백원을 번다. 그것을 몇 백개를 하루에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을 잘했다. 평

  • 노스텔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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