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일자로의 회귀

  • 작성자 노스텔지아
  • 작성일 2026-06-07
  • 조회수 640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시편 44: 23-26-



나는 본래 모태 신앙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 뱃 속에서부터 이미 교회를 다녔었고,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교회를 빠진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또한 모태 신앙이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나처럼 뱃 속에서부터 모태 신앙이었던 것은 아니고, 친할아버지가 큰 병을 치유하신 이후로 개신교를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믿었던 초등학생이었다. 진실로 천국을 믿기도 했고, 성경이라는 이야기도 재밌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소설을 쓰거나 역사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라는 것에서부터 모든 흥미가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성경 속 이야기 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때는 배웠던 부분이 겨우 출애굽기 정도였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그 서사는 나에게 정말 큰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모든 것이 순진했고, 신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신을 믿었다. 기도를 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주도록 돕는 것이 신이었고, 만약 내가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그것은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라 믿었다. 사실 신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고 있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는 신을 수단화했던 것이다. 학교 아이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신을 믿기만 한다면, 진실로 믿기만 한다면 죽어서도 천국에 간다는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이렇게 단순히 생각했다. 모태 신앙이란게 참 무섭다. 왜냐하면 모태 신앙은 워낙 태어날 때부터 개신교적 사고관을 주입하면서 자라다 보니 천국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천국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신의 음성을 들은 적도, 모습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신앙심이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던 것은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부목사를 그만두셨을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서 부목사를 그만두셨다. 당시 집안 분위기는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역했던 사람이었다. 대학도 신학대학, 대학원도 신학대학원 그 외의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또 다른 직업은 구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나이도, 경력도 아버지를 이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일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땡볕이 기다리는 그 넓고 넓은 사막으로 가야만 했다. 계단을 여러 칸 올라가서 택배 상자를 내려놓으면 겨우 몇 백원을 번다. 그것을 몇 백개를 하루에 반복하면서 아버지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에 적응을 잘했다. 평생 부목사로 사역하면서 설교나 전도만 했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버지의 그 내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버텼을 것이다. 그 일이 쉬웠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했다. 신은 왜 이런 시련을 주는가? 아버지는 믿음이 부족하다고 하기에는 평생동안 사역만 한 사람이었다. 택배 기사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허름한 빌라에 들어서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이 도시에 떨어진 우리 가족은 이방인이 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나 신자들은 수 없이 많은 고난을 겪는다. 아버지 또한 그 고난의 일부인 것인가? 하지만 내가 배웠던 하나님은 분명 악한 것에는 형벌을 내리고 선한 것에는 복을 줘야만 하는 존재였다. 이집트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이스라엘인들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가? 서울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나는 이미 세상이 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을 헤치면서까지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현실에서는 더 인정 받는다. 나의 이런 단순한 생각은 점점 거대한 국가간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했는가? 그 수많은 유대인들은 무슨 이유로 학살을 당해야만 했는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니체를 접했다. '신은 죽었다.' 그렇다. 그 순간 내가 믿었던 지금까지의 하나님은 죽었다. 나에겐 이제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았다. 나의 본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카뮈와 사르트르를 접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인간은 실존한다. 그러나 본질은 주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 본질을 채워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나 자신이 직접 삶의 의미를 창조해나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주체성에 반했다. 시지프스가 산에 오르며 열정의 땀을 흘린다. 석양이 지고 있음에도 그는 돌을 올린다. 마침내 정상에 도달한 시지프스는 돌을 올리는데 성공하지만 돌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나 시지프스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그 돌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돌을 산의 정상에 올린다. 그 일을 평생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시지프스의 그 열정과 자유의지에 나는 감탄했다. 지금까지 신이 내려준 삶의 의미만을 지키며 살아왔던 나에게 그 의미를 없애버리는 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시작을 알렸다. 신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공허한 공간이 나에게는 가득찬 것처럼 보였다. 그릇이 비워졌다는 것은 그 그릇에 모든지 넣을 수 있다는 것. 불교의 공사상과 실존주의는 나에게 큰 영감과 동기를 주었다. 


아버지의 일도 점점 안정되어 가면서 나는 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신이 없어도 불행한 일은 벌어졌고, 행운도 가끔씩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모든 것을 신에 대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그저 나의 자유의지에 따른 책임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책임이라는 큰 짐을 얹었지만 그럼에도 그 길은 오직 나의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2025년 어느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접하면서 새로운 실존주의 사상가를 접하게 되었다.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이미 중학교 때 많이 보았던 사상가인데,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키르케고르를 처음 접했다. 사실 놀라웠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실존주의자들이 무신론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 유신론이라는 가정 자체가 이미 신이 나를 창조했기에 자동으로 인간의 삶의 목적도 신에게 귀속된다. 신을 찬양해야 하고, 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자유의지가 아무리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신을 믿냐, 안 믿냐의 선택의 정도이지 주체성이 강조되기 어렵다.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를 아주 잘 표현해낸 사상가였다.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거기서 주체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이를 3단계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심미적 실존이다. 심미적 실존은 좀 더 파고들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동물적인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매일 쾌락을 추구하려고 하는 한 사람을 생각해보자. 과연 그 사람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은 불안하고 결국 행복에 다다를 수 없거나, 행복도 아주 잠시의 쾌락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음 단계인 윤리적 실존으로 향한다. 윤리적 실존에서 사람들은 어느정도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가지만 문제는 이것으로도 결국 다시 회의감과 절망에 빠진다. 두 단계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향한다고 키르케고르는 이야기한다. 결국 그는 마지막 단계인 종교적 실존에 이르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점이 상당히 다른 신학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신과 단독자로서 만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현실에 있는 모든 규범(법, 윤리 등등)을 모두 초월한 단독자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직 나와 신 이렇게 둘이 1대1로 만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주체성을 발휘해야 한다. 종교적 실존으로 이리는 것은 결국 나의 결단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신학에도 실존주의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다고만 생각하고 지나갔다. 나의 주 관심사는 여전히 사르트르였다. 이후에도 나는 사르트르를 계속해서 탐구했다. 나의 생기부에도 사르트르의 이야기를 많이 집어넣었다. 나의 소설에도 사르트르를 인용하고자 노력했고, 보고서를 쓸때조차 누벨바그 영화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 대해서 분석했다. 참고로 누벨바그 영화 또한 당시 1960년대 프랑스의 6.8혁명과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생겨난 새로운 장르였기 때문에 실존주의의 영향이 컸다. 나는 대한민국에 실존주의 열풍이 돌았으면 했다. 절망에 빠진 청년들이 다시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으면서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와 같이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사회 분위기로 자리 잡아 사람들 서로가 자신의 주체적 결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이상사회를 꿈꾸기도 했다. 어쩌면 마음만큼은 6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와 함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서 나는 지금까지 5월을 절망으로만 채웠다. 자주 쓰던 소설 또한 잘 쓰지 못하게 되면서 글로써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이제는 서툴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은 나의 중간고사 성적과 6월 모의고사였다. 방학 때부터 학기 중에도 나는 꽤 최선을 다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이 공부를 해본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사항이 우리 학교에 왠만한 내신을 챙기는 아이들에게는 모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고3이 되어서 공부를 안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성적을 겨우 올리기는 했으나 내가 기대한 만큼 올릴 수는 없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형, 누나들의 명문대 진학 소식을 들으며 점점 위축되어갔다. 나는 처음으로 사르트르의 사상에 의문을 품었다. 과연 내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점점 주체적인 공부를 해나갔다. 예전에는 무조건 학원에 따랐다면 이제는 학원 수업도 조절하면서 자습시간을 늘리고자 했다. 그러나 성적은 생각보다 오르지 않았기에 나 자신에게 점점 의문을 품었다. 실존주의는 참고로 자기자신이 중요하다. 신이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믿기 어렵게 되었다.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나무젓가락처럼 허약하게 쌓아놓은 구조물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현역 고3은 수능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내신을 챙기기 위해 1달을 모두 사용하면 나머지 1달은 수행과 세특을 채워야 하고, 내신 공부도 조금은 해야한다. 나는 나름대로 학원을 조정해가며 6모를 준비했으나, 6모를 잘 보지 못했다. 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것에 의문이 갔다. 되려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질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제서야 실존의 감정을 느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내던져진 인간이 되어버렸다. 실존주의자의 길은 외롭고 처참하며, 어둡다. 그 누구도 없는 곳에서 나의 본질을 찾아나서야 한다. 빛을 어떻게든 내가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고3이나 되었지만 아직 고3밖에 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누구에게도 내 선택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증명하라고 했지만 나는 증명하지 못했다. 


그렇게 절망하던 중에 철학이라는 과목을 들으며 나는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다. 신기한 점은 모든 과목이 선택과목인데 철학만큼은 필수 이수 과목이다. 철학 선생님은 절대 자습을 주지 않으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사실 나도 불만이 어느정도 있었으나 철학 선생님의 수업은 매우 가치있었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3이 되면서 평소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단 한 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철학 시간에 보는 영화만큼 값진 것이 또 없었다. 최근에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철학 시간에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다시금 종교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두 교황에서는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시스코 교황이 등장한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내려놓으려고 하지만 보수파인 베네딕토와 다르게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프란시스코 추기경이 다음 교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란시스코 추기경은 당시 추기경직을 은퇴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당시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임서를 보내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보기로 한다. 두 사람은 만나고서도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동성결혼 문제, 각종 차별 문제에 관한 두 사람의 입장은 너무나도 확연하고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은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한다. 서로가 고해성사를 하면서 각자의 아픈 내면을 드러내고, 신에게 기도하며 서로를 용서한다. 베네딕토 교황은 프란시스코가 자신과 입장이 다르지만, 교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프란시스코의 은퇴서를 거절하고 교황 자리에서 사임한다. 프란시스코가 콘클라베로 교황이 되면서 이 영화는 마무리된다. 2시간동안 이어지는 두 교황의 대화는 이상하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생각보다는 키르케고르의 사상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종교 내에서 자신들만의 실존을 해낸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 내에서도 신학은 수 많은 각주와 해석을 낳는다. 성경의 한 구절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두 사람은 그 어떠한 오류가 없다. 성서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나름대로 실존을 해냈을 뿐인 것이다. 신학이라는 공간 내에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창조하며 신앙을 완성시켰던 것이었다. 나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다시 회상해보았다. 단순히 시련이 찾아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신의 존재를 없앴다. 중학교에 가서도 실존주의라는 매력에 빠졌지만 정작 나는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것을 고등학교에 와서야 깨달았다. 결국 나의 답은 다시 신으로 향했다. 


키르케고르의 <죽음의 이르는 병>을 통해 나는 종교적 실존으로 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일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외로운 실존주의자의 길에 잠시나마 곁에 있을 존재를 만드는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던 실존의 3가지 단계와 나는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추구해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나의 길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결과는 모두 절망이었다. 내가 가야할 마지막 길은 종교적 실존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이사야 41:!0 10~13)


신에게 의지한다는 것은 신이 나의 본질을 만들고, 오직 나의 의무는 신에게만 있다는 것. 나는 아직도 이 사실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잠시 한 걸음 물러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에게로 향하는 길은 너무나 춥고, 어두운 길 뿐이었다. 잠시나마 빛을 찾기 위해 나는 어릴적 잊었던 신을 다시 찾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내 주체성을 잃고 싶지는 않다. 두 교황에 나왔던 그 두 사람처럼, 신이라는 존재 속에서도 자신만의 신앙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처럼 나도 종교적 실존으로 나아가고 싶다. 중요한 것은 신이 있냐, 없냐가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나의 주체성으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직까지도 찬송가를 가끔 듣곤 하신다. 아마 습관은 고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정말 좋아서 듣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아직도 신을 믿어? 라는 질문을 하려고 했다가 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는 의미가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택배를 하면서도 교회를 꾸준히 나갔던 이유를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낸 것이었다. 아버지는 신을 믿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실존해왔을 뿐이었다.


철학자 플로티노스는 모든 만물은 일자로부터의 유출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유출'은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개념이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자, 순선무악한 진리이다. 플로티노스는 인간 또한 일자의 유출이기 때문에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자로 돌아가는 상승 운동, 즉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플라톤과 매우 유사한데 그래서 플로티노스를 신플라톤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일자로의 회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시 나의 근본으로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이제 고3 생활도 절반을 지나가고 있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절망적인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극복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창조해나간 아버지처럼 나도 이제 다시금 이전의 실존주의적 삶으로 회귀하고자 한다. 나는 새로운 신을 부활시켰다. 초등학교 때 처음 만났던 그 신이 아니라 내가 만든 신은 또 다른 신이라 할 수 있다. 그 신이 아직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 신의 의미 또한 내가 앞으로 만들어나갈 것이다. 다시 새로운 세계로의 문이 열렸다. 

노스텔지아

추천 콘텐츠

목수는 앉고야 말겠지

부서진 망치를 쥔 목수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야 슬픈 일이니까 글루건이 잔뜩 붙어버려서 떼지 못하는 인생 같은 건 사실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지도 모르지 아우성을 내지른다고 해서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아무렴 숨을 쉬기만 하면 된다고 누가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은데 식탁을 만들어내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겠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인정하게 되는 거 아닐까 사포가 갈리는 소리 웅웅대는 그라인더와 함께 지워낼 수 있다고 여기는 거겠지 부서져도 남아있는 게 있다고 믿으면서 얼기설키 뭉친 톱밥 그러모으면 새로운 의자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슬픔 없이도 말이야 조각내야만 하겠지만 그런데 목수는 사랑했을까 그의 작품을? 아니 연대기를? 그게 뭐든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손에 쥔 것들을 그게 무슨 소용이야 손바닥을 보이지도 못하는데 그러나 여전히 북적이는 공방 설계도 하나 없이 만드는 커다란 식탁과 단 한 개의 의자 목수는 앉고야 말겠지 왼팔과 오른팔을 헤집으면서도 새하얀 망치가 부서지고도 내려앉지 않고서

  • 서벽
  • 2026-08-25
그저 그런 일상  

아깽이 새해가 지나고 또 해가 뜨는 날에, 길고양이를 주웠다. 점심을 먹으려고 막 밖을 나선 참이었다. 아파트 화단 앞에 자그만 솜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말하기를 아침부터 저곳에서 꼼짝하나 안하고는 이따금 울어댔다는 것이었다. 갈색과 흰색이 섞인 흔한 고양이였다. 다만 지금까지 본 고양이 중에서 가장 새끼였다는 점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결국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한 번쯤 키워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 끝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다고, 내버려 두면 어미가 찾아올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만 동물을 한 번 키워본 사람은 또다시 동물을 키우게 된다는 말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차 안은 분주했다. 아니 사실은 마음 놓고 먹지도 못했다. 그러니까 결국 결말을 알면서도 또다시 같은 책을 읽듯이, 허무한 결말일 거란 걸 알면서도 끝까지 읽어버리고야 마듯이. 그 중간중간의 행복을 도무지 놓칠 수가 없어서. 역시나 한 시간 뒤에 돌아온 아파트 화단 앞에 그 녀석은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엄마가 말했다. 내 손에 잡히면 데려갈게. 아니면 그냥 놔둬. 그리고 그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손을 뻗은 순간 고양이는 품에 안겼다. 빳빳한 빗자루 같은 촉감이었다. 한겨울의 추위를 한껏 머금어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몸이었다. 병원에 가자마자 수액을 맞았다. 의사 말로는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도대체 그 몸으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4시간이 지나서야 집으로 들어온 고양이는 담요 안에 안겨서는 온종일 잠을 잤다. 그제서야 좀 살아있는 게 느껴졌다. 잠결에 꿈틀거리는 발도, 밝은 금색의 눈동자도 모두. 이름은 아깽이로 했다. 그러니까 아기고양이, 임시 보호만 해야지 하는 다짐이 담긴 이름이었다. 고양이는 키워본 적도 없으니까. 그냥 이 정도의 책임만 지자고, 네 다리가 나을 때까지만, 딱 그 정도의 정만 주자는 생각으로. 그런데 그 다리가 말썽이었다. 입양공고를 올리려면 적어도 붕대는 풀고 있어야 할 텐데 3개월이 지나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진물이 터져 매일매일 소독해 주어야 했다. 도대체 검지만 한 다리가 뭐가 문제라고. 다만 아깽이는 그쯤 아주 날아다녔다. 분명 붕대를 감고 있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텐데 오른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우다다 달리기 일쑤였다. 그 모습에 결국 속상해하다가도 웃음을 터트리고야 마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집안이 활기로 가득 차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쯤, 미래를 예견했던 듯하다. 저 고양이가 이곳을 종착점으로 삼게 될 거라는 걸, 그리고 우리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정을 주고야 말았다는 것을. 물론 1킬로였던 고양이가 그 두 배가 되고 결국은 반년 만에 4킬로가 될 것이라는 건 몰랐지만. 그렇게 어느덧 한겨울이 지나고, 더위로 가득한 계절이 다가온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깽이는 집에 눌어붙어 있다. 아마도 앞으로 20년은 더 머물러있겠지. 그때가 되어도 여전히 아깽이일 테고.

  • 서벽
  • 2026-08-21
지상에서 맞는 환상적인 삶

은유게임이란, 아무 단어를 제시어로 던졌을 때 그 단어의 본질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유의어와 반의어를 말하는 것으로 최근 친구들과 하기 시작한 게임이다. 얼마 전, 혼자 은유게임을 하다가 ‘상실’을 제시어로 던졌다. 곰곰히 생각하다보니 삶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이 단어는 분명 게임의 답이 맞는데, 유의어와 반의어 중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그러던 중 문득, 좋은 은유는 어느 쪽의 말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지점이 찾아왔다. 삶은 상실과 유사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상실과 반대인 말이 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같은 성질’과, ‘다른 성질’을 넘어선 본질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상실과 삶은 본질적인 ‘성질’을 공유하고 있다.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하고, 보지 못하지만 느낄 수 있는 것. 잃음과 얻음이 한 판의 유리장처럼 서로 붙어 있어 떨어트릴 수 없는 것. 한 쪽을 바라볼 때 다른 쪽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삶과 상실의 동일한 면이었다. 그렇기에 삶은 즉, 상실이 될 수 있다. 삶은 상실이라는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 상실을 통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또 얻어간다. 임선우 작가의 소설집, 을 읽고 나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상실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햇빛에 비춰 보는 다각면의 보석처럼 여러 인물들과 상황 속에서, 환상적인 장치 속에서 세심하게 어루만지고 있는 것일까? 소설은, ‘상실’이라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내리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궁금증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평을 쓰고자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실이 삶이고, 삶이 상실이라면, 결국 그게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우리가 카페에 앉아 유리창의 얼룩을 바라보고 있더라도, 멀리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결국 반대편의 거리를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생의 목표하는 지점들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한 것이 아니라 사실 긴 터널과 같이 이어져 있다. 소설집에서 사용되는 환상적인 장치들은, 독자가 익숙하다고 여겼던 세상과 몰입하는 것을 계속해서 깨트리며,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독자를 타자화시키면서, 독자는 인물들이 목표하는 띄엄띄엄한 지점들이, 멀리서 보았을 때 전부 이어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촉수에 닿으면 인간이고 동물이고 전부 해파리로 변”하는 “변종 해파리”의 출현은, 인물의 상황이 실화가 아닌, ‘지어낸 이야기’임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만든다. 그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수’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히키코모리가 된 사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도둑질을 하다가 해파리 변신 대행업체를 찾아간 사건은, 삶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소설의 마지막 결론을 위한 하나의 수순처럼 느껴진다. 즉, 이 소설집에서 나타나는 ‘상실’은 ‘환상’과 결합하는 순간 ‘잃었다’는 의미보다 ‘생겨남’의 의미로 연결되게 된다. “변종 해파리”의 출현 전까지, ‘수’의 ‘현실적인’ 상황들(히키코모리, 아버지의 돌아가심,

  • 방백
  • 2026-08-2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