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사람 사이 우린 매일 후회한다 {드라마:7인의 부활}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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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1,055
괴물이 괴상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다. 또한 사람은 일장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라고 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괴물이란 이미지는 난폭해 보인다. 그 이윤 아마 책, 영화, 드라마 등에서 괴물을 난폭하게 그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괴물은 과연 평생 괴물일까? 그럼 사람은 평생 사람일까? 이 질문이 매번 생각이든다. 왜냐하면 요즘 테레비 뉴스나 인터넷 댓글창 등 다양한 사람을 볼 수 있는 곳에서는 괴물과 사람의 경계가 얕아졌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개인방송 등에서는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치는 마녀사냥이 시작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일반 사회로 나오면 어떻게 살아갈까? 옛날 백수 오타쿠 형식의 이미지일까? 라는 생각을 관념적으로 하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우리와 똑같고 일반적인 사람들이 한 사람을 몰고가는 마녀사냥의 괴물들이 된다.
드라마 <7인의 부활>은 <7인의 탈출>의 후속작이다. <7인의 부활>은 <7인의 탈출>과 똑같이 방다미라는 학생의 죽음으로부터 시작 된 주홍글씨라는 사회적 괴물인 가짜 뉴스들과 싸우는 복수극이다. 초반 복수를 시작하는 사람은 본인의 친.양 부모와 동생이 죽은 민도혁과 그의 고모 심미영, 동생을 잃은 세계적 감독 미쉘[송지선],친 딸 다미와 그녀의 조부인 방칠성을 잃은 강기탁 이렇게 4인만이 복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복수는 매번 위기에 놓였다. 대표적으로 미쉘이 그녀의 카메라에 메튜리 즉 심준석에 모습을 다큐로 찍으려고 했는데 이게 실패로 돌아갈려고 했다. 그러나 이 때 조력자가 있었다. 조력자는 메두사였다. 메두사는 금라희,메튜리를 포함한 7인의 악인을 모두 벌하려고 했다. 그 이윤 메두사가 다미의 친엄마인 금라희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조력은 가짜 뉴스들과 메튜리를 이길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도 등장하듯 그녀는 신의 노여움을 받았다. 왜냐 그녀는 다미를 학대하고 죽음까지 몰고 간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괴물에게 사람의 복수는 어울리지 않은 것이었다. 급하게 개과천선한 금라희는 결국 자신의 다리와 목숨을 잃어 지옥으로 갔다.
그러나 메두사에 죽음은 악인 5인을 한, 두 발짝 움직이게 했다. 악인이었던 차주란,남철우,고명지,양진모, 한모네는 금라희가 소중한 것을 지켜줬기에 그들은 괴물과 사람 사이의 선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드라마는 이어진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복수자 쪽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함세에도 복수는 쉽지 않았다. 그 이윤 그들 역시 신에게 노여움을 받은 악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에 벌을 받았다. 차주란은 사랑하던 남철우를 잃고 남철우는 세상을 떠나며 태어날 자식을 보지 못했고 고명지는 한나를 구하다 총에 맞아 본인이 제일 아끼는 가족을 잠시 보지 못했고 양진모 또한 같은 벌을 받았으며 한모네는 동생을 잃고 엄마가 치매에 걸리고 죽는 것으로 그들의 벌은 집행 되었다. 이는 드라마에서 한번 악인은 꼭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김순옥 작품의 큰 특징인 인과응보의 원칙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 7인 시리즈는 전작 <펜트하우스>나 <언니가 살아있다>,<아내의 유혹>과 달리 그들을 후회를 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괴물에서 사람으로 갱생 시켜줬다. 이 때 나는 김순옥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바로 마녀 사냥의 죄는 7인의 악인도 죄가 있지만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부정한 우리의 눈과 귀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한번 괴물이 된 우리는 더 이상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후회하고 참회 속에 살아간다면 신의 입장에서 괴물의 이미지는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똑같은 괴물이 재등장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마지막 메튜리의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한 사람의 거짓말은 또 다른 누군가의 거짓말이 더해지고 더해지다가 급기야 주홍글씨라는 사회적 괴물을 탄생시켰다. 주홍글씨에겐 진실보다 조회수와 돈이 중요했다. 그것을 믿고 옮기고 즐겼던 우리 모두가 피고인의 조력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피고인이 긴 시간 동안 권력 안에서 보호받고 처벌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그 때 교사는 학생을 지키고 의사는 환자를 지키고 경찰은 시민을 지켰다면 방다미 학생의 참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직접적으로 주제를 보여줬다.
드라마는 마지막을 계속 달렸다. 그리고 괴물과 사람사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인의 악인들은 후회하며 참회하며 봉사하며 살고 있었다. 괴물이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괴물이 사람 구실은 할 수 있다. 드라마는 이를 보여주며 마녀사냥과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를 전달하고 혹은 가해자가 되어도 후회를 하고 진심으로 참회하며 벌을 받는다면 가짜 뉴스와 악플 등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괴물이 되었던 우리도 이젠 눈을 떠서 괴물에서 사람 구실을 하는 괴물로 변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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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찬님 안녕하세요. 드라마 <7인의 부활>에 대한 글 잘 보았습니다. 이 글을 보니 예전에 송희찬님이 <7인의 탈출>에 관해 쓴 글이 떠올랐어요. 이번에 쓴 글은 지난 번처럼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지 않고 ‘괴물’과 ‘사람’이라는 말을 중심으로 문장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만큼 ‘괴물’과 ‘사람’은 이번 글에서 드라마를 바라보는 송희찬님의 중심 생각을 담은 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도 바로 이 두 말과 관련이 있어요. 사전을 참조하여 ‘괴물’과 ‘사람’에 관한 정의를 옮기고 있는데, 송희찬님이 생각하는 ‘괴물’과 ‘사람’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를테면 ’괴물‘을 ’괴상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라 하였는데, 이때 ’괴상한‘이라는 표현이 송희찬님에게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나요? ’괴상한‘이라는 말이 다른 모습과 어떻게 구별된다고 보았나요? 마찬가지로 ’사람‘을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을 갖춘 이”라 하였지만, 그 자격이나 품격이 어떠한 것인지는 추상적이죠. 무엇이 사람을 사람일 수 있게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충분한 생각을 함께 담아내며 글을 전개하면 좋을 듯해요.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소개하려다보니 중심 주제가 있음에도, 이 글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길이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아요.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가장 문제적인 인물 혹은 행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살펴보고 그에 대한 생각을 쓰는 방향으로 폭을 좁히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한 글쓰기 생활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김태선 멘토님 안녕하세요~^^ 제가 김순옥 작가를 너무 좋아해서 위 시리즈는 배신하지 말고 꼭 쓰고 싶었어요.^^ (대중적으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저는 재미있었고 전 시리즈보다 배우들 연기가 좋아져서 썼어요.)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