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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을 타고난 사람, 왼손잡이?

  • 작성자 르샤마지끄
  • 작성일 2007-10-20
  • 조회수 14,357


왼손을 타고난 사람, 왼손잡이?



  지난 5천 년 동안 자연은 인류에게 항상 10%의 왼손잡이를 남겨놓았다. 악성 베토벤, 독일의 대문호 괴테 등 수많은 위인들 또한 왼손잡이다. 특히, Rock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미 핸드릭스의 왼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타 연주를 가이 역대 기타리스트 중에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에게 왼손은 매우 중요하게 쓰여 왔다. 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전쟁에서 전사는 오른손엔 칼을 들지만, 왼손에는 방패를 든다. 상대를 죽이는 손은 오른손이지만 자기를 살리는 손은 왼손이다. 심장은 왼쪽에 있다. 하지만, 왼손은 주체일 때보다 비주체일 때가 더 많다. 위에서 예를 든 전쟁만 하더라도 전쟁의 이유가 상대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전쟁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는 손은 왼손이 아닌 오른손이다. 뜨개질을 할 때도 실을 기웠다 떼었다 하는 손은 오른손이고 왼손은 거들 뿐이다. 기타 연주에서도 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손은 오른손이고 왼손은 그저 음을 짚어서 오른손을 돕는 역할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인류에게 왼손잡이는 그저 멸시되고 조롱당해왔다.


  왼손(sinstra) : 불길한, 결함 있는, 서툰, …….


  ‘왼손을 타고난 사람’들은 지난 5천 년의 역사에서 정상적인 오른손잡이들에 의해 비정상적인 ‘왼손잡이’로 규정되고, 타락하고, 천성을 거부하라는 강제를 받아왔다. 숟가락을 오른손으로 쥐어라. 글씨를 오른손으로 써라. 조금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일본에서는 결혼 후 여자가 왼손잡이인 것이 판명되면 남자는 쫓아낼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중국에서 왼손으로 명함을 내밀면 그 협상은 결렬된다. 인도, 네팔, 일부 중동에서는 오른손은 밥 먹는 손, 왼손은 밑(용변 후 항문)닦는 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왼손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히틀러의 나치시대에 유태인들은 거리의 왼쪽으로 걸어 다니게 했다. 히틀러는 그들을 괄호 밖의 존재들로 규정짓고 길을 걸을 때도 왼쪽으로 걷게 해 그들의 신분을 눈에 띄게 했다, 등1).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했듯이 역사 속에서는 왼손잡이 위인이 많이 탄생했다. 특히, 예술은 거의 왼손에서 탄생했다.2) 이러한 현상의 이유로 학자들은 왼손을 타고난 사람의 우뇌 발달을 든다. 왼손을 타고난 사람은 사회에 의해 오른손을 강요받게 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플러스가 되어 그들은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쓰는 양손잡이가 될 수 있고, 이는 대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를 균형 있게 발달시킨다. 하지만,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사회는 왼손을 타고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사실을 자아낸다. 무슨 뜻이냐, 단지 저 말대로라면 오른손을 타고난 사람에게 왼손을 강요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왜? 지금 사회는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꿀 수는 있지만,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건부터가 왼손잡이에게 열악하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키보드를 비롯해, 사람이 쓰는 대부분의 물건이 오른손용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 왼손잡이는 좌뇌, 우뇌 다 발달시킬 수 있고, 오른손잡이는 편하게 살 수 있고, 서로 윈윈이네, 그럼 된 거 아닌가? 지금 사회가 뭐가 문제라는 거지? 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인권을 생각해보자. 사람에게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 자유의지란, 외적인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아니하고 내적 동기나 이상에 따라 어떤 목적을 위한 행동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의지3)를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천재가 되길 원한다고 해서 왼손을 타고난 모든 사람이 천재가 되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의지가 있다. 지금은 사회가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유의지를 가진 그들에게 오른손을 강요하는 일은 일부에서는 여전히 팽배하고, 사회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녹아있다. 가령 앞서 말한 지금 사회의 대부분의 물건이 오른손용이라는 것, 그리고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어? 너 왼손잡이네? 라고 말하는 것 자체 말이다. <왼손잡이>, 과연 정당한 언어일까?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심리학자 코런 박사는 인간은 본래 오른손잡이이며 왼손잡이는 대개의 경우 비정상적인 태아의 위치 등으로 인해 자궁 속의 태아에 손상을 주는 소위 '출생스트레스'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코런 박사는 출생전 뇌 손상이야말로 왼손잡이의 대부분이 심리적, 정서적 장애를 겪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이 사람은 심리학자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모두 왼손을 타고난 사람이다. 이미 둘 다 양손을 쓰게 되었지만, 이 심리학자의 말대로라면 내 인연은 심리적, 정서적 장애자가 된다. 전혀 그렇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는 심리적, 정서적으로 불온전한 왼손잡이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출생 스트레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더욱 보호하고 격려해주는 것이 롤스의 정의론에 따른 원칙이다. 물론, 이 심리학자가 왼손을 타고난 사람을 비꼬기 위해서 저런 결과를 낸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수많은 역사 속에서 왼손을 타고난 사람은 왼손잡이가 되어 수없이 핍박받았다. 지금도 핍박까지는 아니지만, <왼손잡이>라는 용어를 쓰는 한 왼손을 타고난 사람이 어떻게든 살기가 힘들다는 사실은 유효하다. 여태까지 사회에서 이 용어를 버리기는커녕, 그에 관한 문제 제기 마저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왼손잡이>는 지금부터라도 한시 바삐 버려야 할 용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 프랑스의 식민지 언어정책 등과 다르지 않다. 언어로 인한 세뇌는 그 어떤 사회적 통념이나 교육으로 행하는 세뇌보다도 훨씬 더 무서울 수 있다. <왼손잡이>라는 용어에 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1) 네이버 지식in - 왼손잡이에 관한 편견

2) Paul Feyerabent 『시간 죽이기』 - “예술은 모두 왼손에서 탄생한다.”

3) 네이버 국어사전 - 자유의지 [自由意志]


※ 참고 : 『왼손잡이의 역사』, 푸른 미디어

         『왼손과 오른손』, 시공사

          EBS 지식채널e - 『왼손에 관한 짧은 진실』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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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앞에 놓인 카타르시스성 폭력-드라마 '참교육'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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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날밤 새워 코피만 터지지 않도록 ^~ 최익현 『유한라신기』처럼 멋진 기행문 한 편 써서 올리겠습니다!

    • 2007-10-20 22:48:18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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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에 나온 단편이에요. 이번에 황순원 문학상이었나 거기 후보로도 올라왔었고 뭐 몇개 더 있던거 같았는데...

    • 2007-10-20 22:47:48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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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이거 큰일 났습니다. 여태까지 공식 발언만 하던 '물처럼!'.... 학생들 앞에서 모두 무장해제 당하는 분위기로군요. 그래도 가끔은 파격도 있어야 사람이 숨도 쉬고, 쉼도 있지요. 수학여행, 단풍이 참으로 아름답겠군요. 단풍빛보다도 노을빛보다도 더 붉고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은 청춘의 피! 날밤 새워 코피만 터지지지 말고 멋진 추억 가득한 가을 되길 바랍니다. 은희경, 소설 찾아보겠어요.

    • 2007-10-20 22:46:59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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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샤마지끄

    저는.. 저 개인적으로는 전혀 어색하지가 않답니다. 두 분 다 너무 편하고, 그나저나 선생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

    • 2007-10-20 22:46:15
    르샤마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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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우리 사이트는 공식적인 댓글만 허락하는 방식이니 어쩌면 댓글다는 친구끼리 조금은 의사소통이 약간은 어색할 듯 해보는 점이 우리 사이트의 장점이자 단점이란 생각이 문득 드는 시점이로군요.

    • 2007-10-20 22:43:45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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