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에 대한 다소 불편한 진실
- 작성자 泥花
- 작성일 200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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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기 2009년은 단기로 환산하면 4342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이 '단기'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무엇을 근거로해서 단군조선을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다고 판단하며 또 그것을 환산해 왜 현재가 단기 4341년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역사상에서 최초로 단기에 대해 연대환산을 언급한 사람은 고려의 '백문보'이다.
고려사 열전 25권 백문보 편을 살펴보면
且天數循環周而復始 七百年爲一小元積三千六百年爲一大周元 此皇帝王覇理亂興衰之期 吾東方自檀君至今已三千六百年乃爲周元之會
자연의 운수는 순환하며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700년을 한 개의 소원(小元)이라 하고 3600년을 쌓아 한 개의 대주원(大周元)으로 되는바 이것이 황, 왕, 제, 패(皇王帝覇)의 치란 성쇠의 주기(週期)입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부터 지금까지 이미 3600년이 되니 이것은 한 개의 주원이 되는 시기입니다. (북한사회과학원 고전연구소 역)
라는 기사가 나와있다.
일단 간략하게 우리나라의 단기 사용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대한제국에서 연호와 함께 단기가 병용되기 시작하여, 해방 직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부터는 연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단기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폐지법령이 선포되어 현재에는 비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대에 사용하는 단기는 고려시대 백문보가 말한 단기와는 그 연대가 다르다. 현재의 단기연대를 확정적으로 서술한 것은 서거정의 동국통감이다.
동국통감을 보면
是爲檀君 國號朝鮮 是唐堯戊辰歲也
이가 단군이며 국호는 조선이라 하였는데, 바로 당요 무진년이었다.
라고 나와서, 단군이 요임금 즉위 후인 무진년에 조선을 세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사실, 동국통감에서 그 연대를 확정짓기 전에 이미 고려시대 일연도 삼국유사에서 단군의 즉위년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壇君王儉以唐高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 即五十年丁巳 非 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今西京] 始稱朝鮮
단군 왕검은 당고(唐高)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요가 즉위한 원년元年은 무진戊辰년이다. 그러니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庚寅은 아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평양성(지금의 서경)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이라고 불렀다. (직지프로젝트 역)
라고 해서 단군의 즉위를 요임금 즉위 50년 후라고 비정했다. 그러나 주석에서 보시다시피 일연은 이러한 사실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는데, 사실 요임금 즉위 후 50년이면 일연의 주석대로 정사년이고 이것을 소급해 올라가면 그나마 가장 BC2333년과 가까운 연도가 BC2344년으로 계산되지 완벽히 BC2333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단군 즉위년을 BC2333년으로 확정하게 된 것은 동국통감이 최초인 것이다. 동국통감은 어째서, 무엇을 근거로하여 BC2333년이라고 한 것일까?
그 이유는 서거정이 지은 '필원잡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嘗考 自唐堯元年甲辰 至洪武元年戊申 摠三千七百八十五年 自檀君元年戊辰 至我太祖元年壬申 亦三千七百八十五年 吾東方歷年之數 大槩與中國相同 帝堯作而檀君興 周武立而箕子封 漢定天下而衛滿來平壤 宋太祖將興而高麗太祖已起 我太祖開國亦與太祖高皇帝同時
일찍이 상고하건대 당요(唐堯) 원년(元年) 갑진년으로부터 홍무(洪武 명 태조 연호) 원년 무신년까지가 총 3785년이며, 단군(檀君) 원년 무진년으로부터 우리 태조(太祖) 원년 임신년까지가 역시 3785년이니, 우리나라 역년(歷年)의 수가 대개 중국과 서로 같다. 제요(帝堯)가 일어나자 단군이 일어났고, 주 무왕(周武王)이 나라를 세우자 기자(箕子)가 봉해졌으며, 한(漢) 나라가 천하를 평정하자, 위만(衛滿)이 평양으로 왔고, 송 태조(宋太祖)가 장차 일어날 때에 고려 태조가 이미 일어났으며, 우리 태조가 개국한 것도 명 태조 고황제(明太祖高皇帝)와 같은 시대이다. (* 정확하게는 3725년임. 서거정은 1갑자를 틀리게 계산함.)
간단하게 말하면 대중화大中華인 명나라 건국은 요 즉위로부터 3785년, 소중화小中華인 조선 건국은 단군 즉위로부터 3785년으로 같으니, 따라서 대명과 조선은 동일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의 기술은 오기라 할 수 있고, 동국통감을 통해 서거정은 '단군의 즉위는 요 즉위 25년 후인 무진이다' 라고 개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서거정이 편찬에 관여했던 동국통감에서는 고기(古記)의 기록을 부정하고, 단군 즉위를 무진년이라 밝혔다. (* 송나라 때 쓰인 '황극경세서' 에서 요의 즉위연도가 BC2357년 갑진이라는 설이 언급되어진 이후로, 원나라 때 그 내용이 국내에 흘러들어와, 서거정은 그에 맞춰 이를 계산한 것이고, 이 갑자대로라면 BC2333년에 개국했다는 추측도 있는데 틀린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대주의의 산물이 '단기'라는 것이다.)
애당초 간지기년이 한나라 이전에 사용되고 있었는가라든지, 전 사료, 전 지역, 전 시대에 동일할리가 없다라든지, 간지기년을 계산해 연대를 정확하게 논하는건 오류라든지 하는 사실들을 무시한 채, 기록에 의거해 만주의 청동기 연대를 억지로라도 끌어올리려 애쓰는 한국 역사학계는 어째서 이러한 사실을 침묵하는 것일까? 이것은 절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고구려사 연구의 권위자 노태돈 교수가 어느 논문에서도 BC2333년이라는 것은 정확한 연도라기보다는 그냥 의의만 둘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이래도 단기는 자주성의 표방일까? 아니, 그것은 한국의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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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께서도 님의 가치관을 가지시고 많은 생각을 하신것 같고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저의 의견도 님의 의견에도 어느 의견이 옳다고 단정짓지는 못할 것입니다.하지만 확실한 점은 저 역시 탈민주주의가 되어 객관적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과 님 역시 민족주의의 가치관을 배척하려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를 이해하신 상태에서 세계적인 시각을 가지시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우리 자신에게 내뱉는 쓴소리가 싫다고 ''''''''''''''''다른 나라나 까라''''''''''''''''는 시각은 어린 나이에 별로 좋은 태도라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죠. 이런 말은 상대를 의해하고 고려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저뿐만 아니라 님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제가 대한민국인이라고 해서 굳이 타국 먼저 비판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김션님이 중대하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지요. 갑자기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라는 성경의 구절이 생각납니다. 어쨌거나 타국의 역사왜곡에 응대하는데 있어 민족주의는 별 쓸모가 없습니다. 이성적인 태도로 타국의 역사왜곡을 상식으로 논파하고 냉소를 보이는 게 더 확실한 대처법입니다. 타국이 얼마나 뻔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민족주의 감성에 휩싸일 일이 아니라 상식으로 판단하면 된다는 말이지요.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말이 여기서 왜 쓰이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언급했다시피 국적에 상관없이 내셔널리스트들이 모두 적대적 공범자의 관계인 이상,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일이 곧 타국의 민족주의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또 타국에 대한 비판은 굳이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전 그래도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거구요.
저는 ''우리나라에 끼치는 피해에 대한 언급을 생략한 글''은 쓴 적이 없습니다. 애초에 글에서 타국의 민족주의에 대해 논하지 않았는데 무슨 우리나라의 피해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자시고 합니까? 제 글의 요지와는 전혀 무관한 사항인데요. 그리고 저의 행동이 대한민국인으로서의 상식인지 아닌지는 김션님이 판단해주실 일은 아니라고 보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