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를 읽고-인간 사회와 언어
- 작성자 김션
- 작성일 2009-12-20
- 좋아요 0
- 댓글수 23
- 조회수 11,604
모국어와 외국어
미국의 매래학자 앨빈 토플러에 의하면 세계는 제4의 물결이 흐르고 있고 제4의 물결은 세계화아고 했다. 국가와 언어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지구촌 모두가 하나가 되어가는 세계화의 흐름은 인류역사의 한 흐름일 것이고 그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책에서도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말의 '순수'를 지킨다는 일은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분명 세계화의 흐름에서 언어의 순수성만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 조선후기 사회 근대화기술의 무조건적인 배척에 의해 국력의 약화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현실로 이어진 어리석은 사례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언어의 순수성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외래어의 수입을 허용하란 말 역시 모순이다. 언어에는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때 조선어말살정책을 편 것도 이것 때문이다. 분명히 반세기의 우리 조상의 삶이 담긴 언어는 소중하고 지켜야하는 것이 틀림없다. 세계화 시대가 진행되어간다고 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잃고 아무런 근본의식 없이 세계화에 몸을 담는 것은 어쩌면 세계화시대를 이끄는 강대국의 정신적 노예가 될 수 있는 위험한일이다. 즉 민족의 혼 즉 우리말을 잃고 세계화시대에 발을 들려놓으면 일본에 의한 강점기가 아니라 세계화에 의한 정신적 강점기가 찾아올 것이다. 고1 국어시간에 배우는 최재천의 '황소개구리와 우리말' 에서처럼 황소개구리가 참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그에 발맞춰 살아가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래어와 우리말과의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말의 순수성을 머리 속에서 모두 지워서는 안된다. 민족의 순수성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혼합된 새 시대의 언어를 들여오는 일은 우리 개구리들을 돌보지 않은 채 황소개구리를 드려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래어와 혼합된 현대의 언어를 받아들이되 학교 교육과정에서 언어의 문법을 가르치는 단원에서 순수한 우리말을 상기시키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언어, 인간사회의 표현
문학이란 언어를 재료로 인간의 삶을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가치를 드러내는 언어예술이다.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는 의사전달과 감정 표현의 수단, 현실과 사실을 재현함, 선전과 설득의 기능이 있다는 것에 공통점을 가지면 인간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아왔으며 세계화 시대가 흐르는 현재 미래에도 줄기차게 번영할 것이다.
우선 문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인간의 감정은 무한하며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연적 욕망이다. 그래서 몇몇 문학작품들과 본인(김시헌) 창작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사랑)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쉼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라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비교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가 내 초라한 입에서 떨어지는 말 가운데 몇 마디에 기꺼이 대꾸를 해주는 것도 영광인데, 하물며 나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또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고 나왔다는 것.]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아랭드보통(소설)
미인도 - 김시헌(창작)
베란다 화폭가득
너의 붉은 치맛자락 흔들린다
연애라도 걸어볼 양으로
새들은 노래하고
틀러올린 머리칼 사이로 흐르는
늦 봄의 바람
누가 그려놓고 간 그림인가
넝쿨 장미 화폭 가득
치마 물들이고
내 속에선 그대
물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이별)
[올챙이가 팔다리 흔드는 걸 막으려면 그 꼬리르 잘라야만 하는가? 카페 검은고양이의 석판에 적힌 오늘의 메뉴처럼 엘레나에 대한 추억도 지워야만 하는가."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어요."엘레나는 그렇게 속삭였다."우리를 결코 잊지 않겠소."나는 그렇게 대꾸했다.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말들.그리고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거리로 사라져갔다.증발되어버렸다.] - '꽃들의 질투'/이자벨 라캉(소설)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어지고 / 남포에는 임 보내니 슬픈 노래 울리다 /
대동강 저 물은 어느 때나 마르겠나 / 해마다 흘린 이별 눈물이 푸른 물결 보태니] - '송인'/정지상(7언절구 정형시)
슬픔 - 김시헌(창작)
눈가에 글썽이는 작은 햇살,
노오란 민들레 한송이 한송이
수수로이 부서져 흩날린다
어디에 무릎 꿇어야 하나
내쉬는 숨결 홀로
차디찬 바람이 되어
가슴 속 일렁이는 한 뼘의 무지개는
아주 낮은 문턱 조차 넘지 못한다
조용한 공간 속 소리없이 울먹이며
차갑도록 목이 메여오는 오늘,
당신과 나 사이에 문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 고운 볼을 타고 흐르는 슬픈 시선
멈출 수 없는 순간 내 눈도 물에 젖는다
아득한 소리 넘어는 빈 구름 뿐이다
(참회/자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중략)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락으로 닦아보자/.........(중략)]
- '참회록'/윤동주(시)
[모든 것이 포함된 하나의 장소... 라고 말하려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였다. 아짤 스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체념을 한 죄수처럼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중략)... 낮게 낮게 발굽 소리를 퉁기며 내닫기 시작했다.] - '말 발굽소리를 듣는다'/윤대녕(소설)
정전 - 김시헌(창작)
화려한 이야기가 꺼졌다
불빛 없는 공간
멈춰 버린 시간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둑 어둑 스며드는
무엇이라 말 할 수 없는 공간
남길 것 마저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시간
오늘, 나에 대한 삶
보이지 않는 거울 앞에
나의 모습이 없다
보이지 않는 얼굴, 나는 누구인가
(사회)
-산업화와 가난, 빈민층의 서글픔
[만석은 서서히 잡을 향해 발길을 옳겼다. 곱창골목을 빠져나와 좁다란 시장 사거리로 접어드니 혜성극장이 보였다. 삼류저질영화만 상영하는데도 공단 주변에 우글거리는 실업자들로 인해 항시 만원을 이루는 극장이다. 공단 게시판에 모집공고가 하루도 거리지 않고 닥지 닥지...(중략)] - '봄배 내리는 날'/김한수(소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가 아버리를 보았다. 아버지가 바른손을 들어 집을 가리키고 돌아섰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집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소설)
[ "삼포에서요? 거 어디 공사 벌일 데나 됩니까? 고작해야 고기잡아니 하구 감자나 매는데요." "어허 몇 년만에 가는 거요?" "십년" 노인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삼포 가는 길'/황석영(소설)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는 흥분한 소리가 까막득히 먼 곳에서 자기를 향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오한을 느끼며, 원구는 호박넝쿨 우거진 밭두킬을 앓고 난 사람 모양 허전거리는 다리로 걸어가가는 것이다.] - '비 오는 날'/손창섭(소설)
-비판,풍자,저항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 만한 것 같은 모양이다.] - '미스터 방'/채만식(소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중략)....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중략)...가각 자기 자리에 않는다./주저앉는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시)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중략).../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러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중략)...../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 '광야'/이육사(시)
산야에서 -(국회) - 김시헌(창작)
어두운 그늘 밑에 독버섯이 위태롭다
왁자지껄 득실대는 나방들
서로의 자리싸움에
힘없는 풀들은 쓰러져 신음한다
누구의 아픈 가슴 짓밟고 서려는가
찢긴 세월에 쫓겨난 햇살은
산 그늘로 몸을 숨기고
모난 세월,
서글픈 장맛비 막바지 턱
빛가린 세상 속 구름에 얹힌 그리움
바위틈 사이로
숨어버린 작은 햇살,
스스로 말라버린
벼랑 위에서 꽃잎 떨군
생각만 해도
듣기만 해도
한 없이 그리운 이름
휴전선에서 - 김시헌(창작)
우리들은 제발 처참한 6.25의 허물에서 벗어나자
바래진 기억 속에 타다 남은 사랑 한 조각을
출렁이는 압록강 푸른 물결에 띄워
깊고 깊은 동해에 가득 채우며
휑하니 뚫려버린 가슴 속으로
묻어두었던 그리움,
백두대간의 장엄함에 기대어
고요한 외침으로 다가가자
가끔은 어깨를 들썩이며
고인 눈물을 흘리고 희미한 기억 속
사랑했던 만큼 그리워지는 작은 슬픔을
가슴 한켠에 남기어
작은 불씨로 타 오른
지리산 속 갓 피운 야생화처럼 풋풋한
따스한 봄날 제주도 유채꽃과 같이 정겨운
소년 소녀의 사랑으로 기억하자
시베리아의 차가운 고독이 찾아오더라도
퍼붓는 총탄이 심장을 꿰뚫어도
우리들의 사랑 막을 수 없다고 포옹한 채
분단의 휴전선을 베어버리고
산골짜기 흐르는 정갈한 물로
비무장 지대 녹슨 철책을 걷어버리자
학교 - 김시헌(창작)
뜨거운 여름날
쓰레기 더미 위에서
썩은 생선 쪼가리 찾으려는 듯
서성거리는 고양이를 본다
음식 찌꺼기 먹고 살며
어린 자식들에게
훔치든, 죽이든
땅을 파서라도 먹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가르친다
햇살 따뜻한 마당가에서
행복을 꿈꾸던 어린 마음
썪은 물 줄기 흐르는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는
그것,
고양이 학교...... .
울지도 못한다
생각도 못한다
그날,
내가 본 고양이 학교는
똥물이 줄줄 흐르는
쓰레기 위에 지어졌다
재미있지 않은가
위 와 같인 사회 인류는 계속해서 문학을 통한 언어로 삶을 표현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문학을 이룩한 언어를 통해 세계화 시대 각 나라와 민족의 정서와 현재 상황을 교류하며 서로 공감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추천 콘텐츠
들어가는 말 미래학자 앨빈토플러가 말했듯, 세계는 제4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제 4의 물결은 세계화이며 이는 미래사회의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며 세계는 활발한 국제공조와 다양한 활동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화의 긍정적인 면에서 모든 국가가 전 인류적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으며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평화를 가장하며 강대국 간의 패권싸움이 진행되는 현실적이며 부정적 측면을 가진다. 결국, 세계화에서는 세계의 중심을 자국으로 옮겨오기 위한 국가와 국가간의 외교전이 치열해질 것이다. 소련의 해체 후 세계의 중심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의 패권을 가진 미국과의 활바란 외교와 민간교류는 현재 자국의 국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며 일방적인 미국에 대한 의존적 외교는 현재 눈앞의 이익만 쫒는 어리석은 일이여 미래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필자는 미국 외의 새로운 정치/사회적 동맹관계를 구축해야함을 역설하며 그 중에서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조하려 한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러시아와 소련을 구분하지 못하기도 하며 러시아를 망한 부자의 나라 혹은 사회주주의 근원지인 악의 축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향저 시각은 결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와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강국이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비록 현재는 경제가 침체되고 사회가 불안정하지만, 푸틴 정권 이후로 사회는 빠른 안정을 찾아가고 있으며 아직까지 군사, 시초과학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우리는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현실적/ 잠재적 러시아의 국력을 의식하며 한러 관계의 숙명성을 인지해야할 시기이다. 가) 한*러 관계, 왜 침체 되었을까 ㄱ. 냉전적 시각의 어두운 잔재 1991년 해체된 소련의 법적 계승국이 러시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 후 시장 민주주의 국가로 탄생한 러시아를 아직도 소련으로 호칭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국제정치적 현실감각 지체현상이기도 하며 강렬한 소련의 그림자가 남긴 영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러시아와 소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냉적적 시각이다. 러시아를 소련의 연장에서 아직도 냉혹한 사회주주의 근본지이자 북한의 공산체제와 연결시키며 악의 제국으로 인식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국의 국익에 거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러시아는 소련의 법적 계승국이지만 소련은 아니다. 소련 중앙정부의 권력 약화에 따라 70년 동안 주도 민족인 슬라브족에게 밀려왔던15개 구성 공화국들이 주권 독립을 선언하며 소련은 해체되었다. 우선 러시아는 소련과 국가체제의 성격이
- 김션
- 2010-09-13
파란만장한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으로 인해 한반도의 거의 모든 생산 시설이 파괴되고 전 국토가 초토화가 되었었다. 전쟁 직후 한국은 전쟁고아, 미망인, 상이군인, 거지 등이 들끓는 가난과 질병, 그리고 파괴와 무질서의 나라로 세계 최하위의 빈민국으로 외국인에게 알려졌었다. 이러한 시절을 거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계속되는 발전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13위권의 경제대국이자 IT, 선박업의 최강국의 위치에 있다. 한국은 이렇게 지금도 계속되는 변화와 발전을 갈구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을 이끌 학생들은 가정과 학교로 부터 뜨거운 교육을 받고 있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빈부에 상관 없이 학문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교육령을 지금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높고 멋진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교육과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스스로 아파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는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며 그 어떠한 상황보다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 그 무엇보다 아이의 심성,인성 교육을 통한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 우리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속하게 되는 집단은 가족의 품 속인 가정이다. 가정에서 아이는 사회구성원으로써 기초적인 심성과 예의를 배워나아가며 자신의 꿈과 열정을 자긴 파랑새를 가슴 속에 키우게 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의 마음 속의 파랑새는 철장에 갇혀 서서히 죽어간다. 아직 한국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영어공부를 하고 영어유치원에 간다. 심지어 뱃속의 태아시절 부터 동화책을 영어로 듣고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초등학교에 간 아이들은 자신의 파랑새를 지켜볼 어떠한 여유도 없이 명문학교 입학을 위한 입시교육을 받는다. 매일밤 늦은 시간에 한참 꿈나라에 있어야할 아이들이 학원버스에서 내린다. 지친몸을 이끌고 겨우 잠이 들면 얼마 후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하교 후에는 영어, 수학, 한문, 바이올린, 피아노, 한문 등 학업을 배우고 밤늦게 집에 온다. 과연 이러한 가정에서 어떤 대화가 있겠으며 자신의 꿈과 목표를 키우고 창조적이고 씩씩한 사람이 되라는 교육은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으로써 명문대를 진학한다고 해서 남은 것은 목적이 없다는 허탈감이거나 사회의 기초적인 요소를 모르는 마마보이 혹은 폐륜아 밖에 될 수 없다. 또, 우리는 교육의 목적이 사회의 명문대 진학에 있는 듯 여기는 사회의 분위기에도 눈살을 찌푸려야한다. 인천광역시 정신보건센터가 지난해 '청소년 우울 및 자실 사고의 심각도'를 주제로 지역 중학생 1천 739명과 고교생 3천 914명을 설문조사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6.5%가 '우울성향'을 보였고 비율상 5명 중 1명은 '우울 자살 생각 위험군'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이는 입시, 경쟁, 공부 스트레스, 놀이문화의 변질 등 사회교육환경 문제가 자살 발생
- 김션
- 2010-05-22
우리는 살아가면서 단 한번이라도 심장이 진정으로 뜨거웠던 적이 있을까? 바쁜 일상을 보내고 하루 하루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되돌아 본 적이 있는가? 흔히 영화나 소설 그리고 위인전에서 등장하는 가슴시린 사랑, 뜨거운 우정 , 조국애, 야망 등을 실제로 살아가며 단 한번이라도 도전하고 이루어본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해나아간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며 그 꿈을 잃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린시절 자신의 꿈이 작가, 과학자, 선생님, 소방관이란 분홍빛 동심은 점점 더 많은 월급과 명예를 지향하게 되며 검사, 판사, 변호사, 의사. 대기업입사 등 으로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린채 살아간다. 살아가며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을 잊고 그저 육체적으로 풍족하게 살아가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것은 절대로 환영받지 못한 일이다. 진정한 뜨거운 가슴이 없이는 절대 자신의 인생으로 부터 'welcome'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그 뜨거운 가슴 속 불꽃은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외면하고 현실에 안주해버릴때 꺼져버릴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우울증에 사로잡혀 수험을 앞둔 시험기계로 살아가며 우연히 <월컴>이란 영화를 보았다. <웰컴>은 제목처럼 환영의 인사를 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 청년 쿠드르인 '비랄'의 영국을 향한 밀항이 계속해서 실패하면서 시작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영국으로 떠나자 그녀를 만나기로 작정한 비랄은 4000km의 사막을 건너 프랑스에 도착해서 다시 영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밀항을 시도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결국 그는 수영을 배워서 35.4km의 도배해협을 헤엄쳐 사랑하는 여자인 '미나'를 만나려고 한다. 그렇게 수영장에서 수영코치를하고 있던 시몬에게 레슨은 받게 되며 시몬은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촬영내내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비랄의 사랑을 조용하면서도 잔잔히 보여주면서도 불법이민자들의 서글픈 삶은 조명하기도 한다. 항구에서 집단적으로 있으며 사회봉사자들이 주는 한끼의 식사로 끼니를 해결하며 돈이 있어도 매장에서 물건을 사지 못하는 인종차별을 받기도 한다. 그들은 더럽고 물건을 훔칠 수도 있기 때문이란 이유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모습은 보는 내내 인간으로서의 존중감을 생각하게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나 6.25전쟁때 수많은 사람들이 일본,중국, 미국, 러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넘어가 불법체류자가 되었을텐데 그 시절 우리 민족 역시 저런 모욕과 탄압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시치고 지나가며 가슴을 시리게 했다. 영화 속에서 시몬은 수영레슨에 집착하는 비랄에 호감이 생기고 그렇게 알아가며 그와 가까워진다. 그리고 갈 곳없는 그와 친구를 집에서 한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데 그러한 장면에서도 이웃들의 방해와 경찰의 조사 등 많은
- 김션
- 2010-01-25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덧붙여 주장의 요점에 맞춰 여러 논지를 펼쳐야 하는데, 아주 많은 예시를 들었으나, 우리말로 창작하는 일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하는 방식이 되어서 아쉬움이 남는 주장글이었습니다. 댓글달며 진지한 토론을 하신 여러 분에게 감사합니다.
국제화는 통신,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세계인이 서로 교류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현상을 말하고, 세계화는 이를 바탕으로 제1세계 자본, 혹은 다국적 자본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언어, 법률, 금융, 정보통신 등의 운영체제를 본사의 입장을 강요하는 이기적 독단적 정책을 말합니다. 그러니 언어를 경제적 편리성과 수익성 창출을 위해 외국어 공용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편협한 주장이 됩니다. 이런 점에 대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는 논쟁의 초점이 잘 맞지 않게 되니 점검해야 합니다.
"" 세계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언어의 순수성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외래어의 수입을 허용하란 말 역시 모순이다.""이라는 주장을 펼치고자 한 의도에 대해 여러 토론이 오고 갔군요. 우선 세계화 현상과 국제화 현상을 구분은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통문화가 외래문화들한테 밀려서 주체성을 잃고 있다고 주장하면 그건 또 너무 저만의 생각일까요? 언어의 형태 또한 바뀌어버린 한글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말은 사물보다 밴드음악을 좋아하는 지금의 청소년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말처럼 들리네요. 물론 100% 순수성을 고집하는 것도 웃기는 소립니다. 당장에 애들이 교복은 한복이고, 음악은 사물이다. 외치는 것도 우스은 일이죠. 다만, 저는 지금의 시점이 외래문화와의 조화를 주장해야 되는 시기일까.. 오히려 우리것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그 경계를 명확히 해야되지 않을까요? 물론 언어의 역사성이란게 있죠. 언어는 불변하지 않아요. 비단 언어뿐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타문화를 만났을때 변화가 일어나죠. 지금 우리의 언어도 외래어를 만나서 이전의 국어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요. 쉽게 생각해서 일본어 번역체나 영어 번역체와 같은 것들. 근데 이미 김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언어가 그 사회의 문화, 얼을 반영한다면 지금의 외래어가 뒤섞인 국어는 외래문화가 뒤섞인 지금의 우리문화를 반영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