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를 읽고-인간 사회와 언어
- 작성자 김션
- 작성일 20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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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와 외국어
미국의 매래학자 앨빈 토플러에 의하면 세계는 제4의 물결이 흐르고 있고 제4의 물결은 세계화아고 했다. 국가와 언어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지구촌 모두가 하나가 되어가는 세계화의 흐름은 인류역사의 한 흐름일 것이고 그 흐름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책에서도 ['세계화 시대'가 될수록 우리말의 '순수'를 지킨다는 일은 너무나 힘겨워 보인다.] 라는 말이 있다. 분명 세계화의 흐름에서 언어의 순수성만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 조선후기 사회 근대화기술의 무조건적인 배척에 의해 국력의 약화 그리고 일제강점기라는 현실로 이어진 어리석은 사례와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언어의 순수성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외래어의 수입을 허용하란 말 역시 모순이다. 언어에는 민족의 혼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때 조선어말살정책을 편 것도 이것 때문이다. 분명히 반세기의 우리 조상의 삶이 담긴 언어는 소중하고 지켜야하는 것이 틀림없다. 세계화 시대가 진행되어간다고 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잃고 아무런 근본의식 없이 세계화에 몸을 담는 것은 어쩌면 세계화시대를 이끄는 강대국의 정신적 노예가 될 수 있는 위험한일이다. 즉 민족의 혼 즉 우리말을 잃고 세계화시대에 발을 들려놓으면 일본에 의한 강점기가 아니라 세계화에 의한 정신적 강점기가 찾아올 것이다. 고1 국어시간에 배우는 최재천의 '황소개구리와 우리말' 에서처럼 황소개구리가 참개구리를 잡아먹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그에 발맞춰 살아가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데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는 외래어와 우리말과의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말의 순수성을 머리 속에서 모두 지워서는 안된다. 민족의 순수성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혼합된 새 시대의 언어를 들여오는 일은 우리 개구리들을 돌보지 않은 채 황소개구리를 드려오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래어와 혼합된 현대의 언어를 받아들이되 학교 교육과정에서 언어의 문법을 가르치는 단원에서 순수한 우리말을 상기시키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언어, 인간사회의 표현
문학이란 언어를 재료로 인간의 삶을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가치를 드러내는 언어예술이다. 문학 언어와 일상 언어는 의사전달과 감정 표현의 수단, 현실과 사실을 재현함, 선전과 설득의 기능이 있다는 것에 공통점을 가지면 인간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아왔으며 세계화 시대가 흐르는 현재 미래에도 줄기차게 번영할 것이다.
우선 문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인간의 감정은 무한하며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연적 욕망이다. 그래서 몇몇 문학작품들과 본인(김시헌) 창작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사랑)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쉼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라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녀와 비교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가 내 초라한 입에서 떨어지는 말 가운데 몇 마디에 기꺼이 대꾸를 해주는 것도 영광인데, 하물며 나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또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고 나왔다는 것.] -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아랭드보통(소설)
미인도 - 김시헌(창작)
베란다 화폭가득
너의 붉은 치맛자락 흔들린다
연애라도 걸어볼 양으로
새들은 노래하고
틀러올린 머리칼 사이로 흐르는
늦 봄의 바람
누가 그려놓고 간 그림인가
넝쿨 장미 화폭 가득
치마 물들이고
내 속에선 그대
물들어 지워지지 않는다
(이별)
[올챙이가 팔다리 흔드는 걸 막으려면 그 꼬리르 잘라야만 하는가? 카페 검은고양이의 석판에 적힌 오늘의 메뉴처럼 엘레나에 대한 추억도 지워야만 하는가."당신을 결코 잊지 않겠어요."엘레나는 그렇게 속삭였다."우리를 결코 잊지 않겠소."나는 그렇게 대꾸했다.그들이 마지막으로 나눈 말들.그리고그녀는 숨을 들이마시며 거리로 사라져갔다.증발되어버렸다.] - '꽃들의 질투'/이자벨 라캉(소설)
[비 갠 긴 둑에는 풀빛이 짙어지고 / 남포에는 임 보내니 슬픈 노래 울리다 /
대동강 저 물은 어느 때나 마르겠나 / 해마다 흘린 이별 눈물이 푸른 물결 보태니] - '송인'/정지상(7언절구 정형시)
슬픔 - 김시헌(창작)
눈가에 글썽이는 작은 햇살,
노오란 민들레 한송이 한송이
수수로이 부서져 흩날린다
어디에 무릎 꿇어야 하나
내쉬는 숨결 홀로
차디찬 바람이 되어
가슴 속 일렁이는 한 뼘의 무지개는
아주 낮은 문턱 조차 넘지 못한다
조용한 공간 속 소리없이 울먹이며
차갑도록 목이 메여오는 오늘,
당신과 나 사이에 문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 고운 볼을 타고 흐르는 슬픈 시선
멈출 수 없는 순간 내 눈도 물에 젖는다
아득한 소리 넘어는 빈 구름 뿐이다
(참회/자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중략)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락으로 닦아보자/.........(중략)]
- '참회록'/윤동주(시)
[모든 것이 포함된 하나의 장소... 라고 말하려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였다. 아짤 스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아이를 안고 체념을 한 죄수처럼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중략)... 낮게 낮게 발굽 소리를 퉁기며 내닫기 시작했다.] - '말 발굽소리를 듣는다'/윤대녕(소설)
정전 - 김시헌(창작)
화려한 이야기가 꺼졌다
불빛 없는 공간
멈춰 버린 시간
작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둑 어둑 스며드는
무엇이라 말 할 수 없는 공간
남길 것 마저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시간
오늘, 나에 대한 삶
보이지 않는 거울 앞에
나의 모습이 없다
보이지 않는 얼굴, 나는 누구인가
(사회)
-산업화와 가난, 빈민층의 서글픔
[만석은 서서히 잡을 향해 발길을 옳겼다. 곱창골목을 빠져나와 좁다란 시장 사거리로 접어드니 혜성극장이 보였다. 삼류저질영화만 상영하는데도 공단 주변에 우글거리는 실업자들로 인해 항시 만원을 이루는 극장이다. 공단 게시판에 모집공고가 하루도 거리지 않고 닥지 닥지...(중략)] - '봄배 내리는 날'/김한수(소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가 아버리를 보았다. 아버지가 바른손을 들어 집을 가리키고 돌아섰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집을 쳐부수기 시작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소설)
[ "삼포에서요? 거 어디 공사 벌일 데나 됩니까? 고작해야 고기잡아니 하구 감자나 매는데요." "어허 몇 년만에 가는 거요?" "십년" 노인은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삼포 가는 길'/황석영(소설)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 하는 흥분한 소리가 까막득히 먼 곳에서 자기를 향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오한을 느끼며, 원구는 호박넝쿨 우거진 밭두킬을 앓고 난 사람 모양 허전거리는 다리로 걸어가가는 것이다.] - '비 오는 날'/손창섭(소설)
-비판,풍자,저항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 만한 것 같은 모양이다.] - '미스터 방'/채만식(소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중략)....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중략)...가각 자기 자리에 않는다./주저앉는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황지우(시)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중략).../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러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중략)...../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 '광야'/이육사(시)
산야에서 -(국회) - 김시헌(창작)
어두운 그늘 밑에 독버섯이 위태롭다
왁자지껄 득실대는 나방들
서로의 자리싸움에
힘없는 풀들은 쓰러져 신음한다
누구의 아픈 가슴 짓밟고 서려는가
찢긴 세월에 쫓겨난 햇살은
산 그늘로 몸을 숨기고
모난 세월,
서글픈 장맛비 막바지 턱
빛가린 세상 속 구름에 얹힌 그리움
바위틈 사이로
숨어버린 작은 햇살,
스스로 말라버린
벼랑 위에서 꽃잎 떨군
생각만 해도
듣기만 해도
한 없이 그리운 이름
휴전선에서 - 김시헌(창작)
우리들은 제발 처참한 6.25의 허물에서 벗어나자
바래진 기억 속에 타다 남은 사랑 한 조각을
출렁이는 압록강 푸른 물결에 띄워
깊고 깊은 동해에 가득 채우며
휑하니 뚫려버린 가슴 속으로
묻어두었던 그리움,
백두대간의 장엄함에 기대어
고요한 외침으로 다가가자
가끔은 어깨를 들썩이며
고인 눈물을 흘리고 희미한 기억 속
사랑했던 만큼 그리워지는 작은 슬픔을
가슴 한켠에 남기어
작은 불씨로 타 오른
지리산 속 갓 피운 야생화처럼 풋풋한
따스한 봄날 제주도 유채꽃과 같이 정겨운
소년 소녀의 사랑으로 기억하자
시베리아의 차가운 고독이 찾아오더라도
퍼붓는 총탄이 심장을 꿰뚫어도
우리들의 사랑 막을 수 없다고 포옹한 채
분단의 휴전선을 베어버리고
산골짜기 흐르는 정갈한 물로
비무장 지대 녹슨 철책을 걷어버리자
학교 - 김시헌(창작)
뜨거운 여름날
쓰레기 더미 위에서
썩은 생선 쪼가리 찾으려는 듯
서성거리는 고양이를 본다
음식 찌꺼기 먹고 살며
어린 자식들에게
훔치든, 죽이든
땅을 파서라도 먹기만 하면 된다고
그렇게 가르친다
햇살 따뜻한 마당가에서
행복을 꿈꾸던 어린 마음
썪은 물 줄기 흐르는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리는
그것,
고양이 학교...... .
울지도 못한다
생각도 못한다
그날,
내가 본 고양이 학교는
똥물이 줄줄 흐르는
쓰레기 위에 지어졌다
재미있지 않은가
위 와 같인 사회 인류는 계속해서 문학을 통한 언어로 삶을 표현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문학을 이룩한 언어를 통해 세계화 시대 각 나라와 민족의 정서와 현재 상황을 교류하며 서로 공감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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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운문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이 작품이 잘 읽힐지 모르겠다. 으음 그래도, 이 시를 한 편의 소설이라고 생각해 봐. 두 사람은 초능력을 가진 누군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그 초능력은 보잘 것 없는 초능력이야. 우산을 쓰면 자신에게만 비(슬픔)가 내리고, 우산을 접으면 온 세상에 비가 내리는 능력이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그는 비를 맞아야만 해. 외롭겠지. 혼자만 동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거야. 남들이 보기엔 길을 가다가 넘어진 것처럼,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런데 그런 얘기에 빠져 있던 ‘너’에게 ‘나’는 말해. “외롭다는 거지? 아니, 그 사람 말고, 너 말이야.”“너 집이 어디야? 내가 데려다줄게.” 그 말에 ‘너’는 집(안식처,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는 곳)이 없다며 우물쭈물하게 대답해.그런 ‘너’에게 ‘나’는 흔쾌히 우산을 빌려주지. 영원히 비가 내리면 어떡할지 걱정하는 ‘너’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 영원히 내리는 비는 없다고. 온 세상이 흐린 법도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의 감정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영원히 ‘외로우면’ 어떡하지, 그 마음을 비 내리는 풍경에 빗대 말한 ‘너’에게, ‘진짜 비’를 예시로 든 ‘나’가 ‘너’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 괜히 퉁명스러워져선 “내가 그걸 모르겠어?” “이건 시(비유)라고.” 대답해.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해. “아니, 이건 대화야.”여기서 대화는 무슨 뜻일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할 때 대화의 방식을 사용하잖아. 대화를 하면서 곁에 함께 있어주잖아. 그러니까 대화는 위로라는 뜻이야. 더불어서 좀 크게 보면 ‘대화’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해. 이건 ‘시’가 아니라 ‘대화(시 제목)인데? 하는, 맛이 나는 농담이기도 한 셈이지.어쨌든 세상에 비가 내리거나 비가 내리지 않거나 상관 없이, 혼자만 늘 비를 맞는 듯하고, 영원히 비를 맞을 것만 같은 외로움 속을 걷는 너를 위로하는 ‘대화’의 뜻 아닐까?즉 이 시는 ‘위로’를 말하는 시인 거지.‘ 너’는 ‘나’가 건넨 우산을 쓰고, 비를 맞지 않은 채 걸어가. 우산은 빗속을 뚫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슬픔을 견디는 힘이야. 그렇게 함께 가던 중 우산을 파는 편의점을 발견한 너는, 너만의 우산을 쓰고, 각자의 길을 갈 수 있게 되지. 인생의 길 속에서 우리는 가끔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겠지. 그 길을 혼자서 갈 수 없다면 함께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그렇게 걷다 보면 네게도 너만의 힘이 생길 거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기를 수 있겠지. 편의점에서 새 우산을 구입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위로를 얻은 상대와 늘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시절인연이라는 단어 알지? 잠시 같은 마음을 나눴던 사람일지라도 평생 인생의 길을 똑같이 걸을 수는 없어. 우리는 그 상대와 헤어질 수도 있으며, 어쩌면 시 속의 ‘너’와 ‘나’처럼 영영 다신 마주칠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두 사람이 함께 빗길을 걸어갔던 건, 좁은 우산을 나눠 쓰며 어깨나 등이 조금씩 젖으면서도 위로를 나눴던
- 방백
- 2026-07-13
서론2024년, 이상문학상의 주관사 은 재정난으로 인해 휴간을 하게 되었다. 결국 이상문학상의 주관사도 문학사상에서 다산북스로 변경되고, 표지 디자인도 바뀌게 되었다. 이상문학상이 가지는 한국 문학의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문학상 하면 거론되는 3대 문학상은 다음과 같다.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물론 ‘상’ 하나가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이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도 아니고, 작가는 상 하나를 받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상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적어도 현재 한국 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한국 문학을 접하는 일반 독자의 경우에도 현대 한국 소설을 읽기 위해서 문학상 작품집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예지와 같은 문학 잡지들의 경우에는 일반인이 접하기 쉬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로 문학상 작품집이 독자들의 첫 현대 한국 문학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상문학상이 2026년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코멘트를 보던 중 흥미로운 코멘트를 발견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겼다. '순수 문학은 더 이상 대중문학이라 볼 수 없는 것일까?'“한국 소설에서 부족했던 순전한 재미 요소가 느껴진다. 장르 소설 순문학 나누는 거 웃긴데 장르 소설 같은 면이 있어서 재밌음. 글고 눈과 돌멩이는 너무 조은 순소설 같다. + 뒤에 작가 인터뷰가 있는데 소설가를 하나의 셀럽으로 만들기 위한 혹은 하나의 소설을 진득하게 같은 느낌이었음. 다른 마케팅이 시작된 느낌. 민음사 tv로 촉발된.. 그리고 웃기게도 나는 모든 사람이 책을 중요히 여긴다고 살다가 이게 아주 극소수의 리그라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된다. 대중문학이라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일단 이 코멘트는 사용자 한 명의 의견으로 한국 문학 전체를 대표하진 못한다. 그러나 한 독자의 의견으로 충분히 얻어갈 수 있는 부분이 존재했다. 하나씩 문단을 끊어 보면,1) 한국 소설에서 부족했던 순전한 재미 요소가 느껴진다.-> 이 사용자가 바라 본 한국 소설들은 아마 매우 최근의 것으로 추측되는데, 재미 요소가 그리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2) 장르 소설 순문학 나누는거 웃긴데, 장르 소설 같은 면이 있어 좋았음.-> 최근 자주 거론되는 문제인 장르 문학과 순수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은 장르 문학처럼 보이는 소설도 많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3) 그리고 웃기게도 나는 모든 사람이 책을 중요히 여긴다고 살다가 이게 아주 극소수의 리그라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된다. 대중문학이라는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순수 문학은 극소수의 독자들이 읽고 있다고 인식하며, 순수 문학이 대중 문학적이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두 문구를 통해 우리는 세 가지를 알 수 있다. 1. 한국 문학은 재미 요소가 비교적 덜하다. 2. 그럼에도 이번 작품에는 장르 문학적 요소가 있어 더욱 재미를 더한 것 같다. 3. 그러나 읽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순수 문
- 노스텔지아
- 2026-07-12
40년대 샹송 가수와 파리를 노래한 목소리, 장밋빛 인생을 꿈꾼 '작은 참새',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 Nous aurons pour nous l'éternité 우리에게는 영원이란 시간이 있어요 Dans le bleu de toute l'immensité 끝없이 펼쳐진 저 푸른 하늘 속에서 Dans le ciel, plus de problème 하늘에서 걱정이란 있을 수 없어요 Mon amour, crois-tu qu'on s'aime 내 사랑, 우리의 사랑을 믿어요 Dieu réunit ceux qui s'aiment 하느님은 연인들을 다시 이어주시기에 " - 1950년에 발매된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Hymne à l'amour)', 2024년에 셀린 디온이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함.■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연하는 셀린 디온https://www.youtube.com/watch?v=9wQ-GYnKPYM■셀린 디온의 공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0년작 '인셉션'의 삽입곡으로 알려진 곡, '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의 이 곡은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들이 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인셉션'의 여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코브'의 연인 '말'을 연기한 프랑스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2007년에 이 노래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다룬 영화, '라 비 앙 로즈'의 주연을 맡게 된다. 비참하고 서글픈 에디트 피아프의 일대기는 올리비에 다앙 감독의 비선형적 편집 방식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절정의 무대 뒤에서 곧바로 약물과 병과 마약에 찌든 노년의 육체로 우리를 내던지고, 다시 비참하고도 낭만적이었던 유년의 기억으로 시공간을 무작위로 교차(Non-linear)시킨다. 이러한 비선형적 편집은 관객에게 극심한 감정의 멀미를 유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이야말로 평생 고독과 중독, 신체적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던 피아프의 내면을 가장 날것 그대로 체감하게 만드는 영리한 장치가 된다. 가로등처럼 스쳐지나가는 그녀의 파편들 속에서 관객들은 지금껏 알아오던 아티스트로써의 '피아프'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에디트'를 만난다.이 영화는 언뜻 보면 보통의 일대기 영화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가난하게 태어나고, 우연히 작곡가를 만나고, 찰나의 성공과 밝게 빛나는 스타, 연예계의 중심이 되어 부귀영화를 맛보지만, 결국엔 죄악에 빠져 허우적대다 결국에는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 나처럼 음악가들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지켜봐 온 사람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닳을 대로 닳은 클리셰(cliché), 아니, 흔해빠진 전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감독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전개를 제멋대로 휘어잡아, 독창적인 방식으로 동정의 눈물을 자극하고, 에디트 피아프가 대부분의 뮤지션들의 '보통' 정도의 비극을 지극히 뛰어넘는, 그녀가 노래한 '장밋빛 인생'(La vie
- 손석호erik1234
- 202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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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외래어와 뒤섞이고 있는 현재의 언어를 받아들인다고 했을때 이 경계를 어디까지로 허용해야 될까에 있지 않을까요? 김션님도 외국어한테 모국어만큼의 지위를 주자는 얘기가 아니라 현재의 모국어, 즉 국어의 순수성을 생각했을때 지금의 국어가 100%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언어가 아니며, 현재의 국어가 외래어와 뒤섞인 점이 많으나 그 점을 조화롭게 받아들이자는 거 맞죠?
맞아요. 일제시대때 일본애들이 왜 국어교육을 탄압했겠어요. 언어는 그 사회의 얼을 반영해요. 지구상에 언어가 6000~7000개 있다고 할때 언어마다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죠. 어떤 언어는 형용사가 많고, 어떤 언어는 문장구조에서 동사가 먼저 나오고, 어떤 언어는 사냥용어만 많기도 하죠. 이런 것들은 언중의 생활형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언어 자체가 그 사회의 고유한 생활모습을 나타낸하고 할 수 있죠.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전 님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A라는 근거를 통해 B라는 명제가 나오는 합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님이 한국어가 좋고 영어가 좋다는 사실을 주장해서 지적한 게 아닙니다. 언어에는 우위성이 없다는 점을 밝히기 위한 근거일 뿐이었죠. 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한게 절대 아닙니다. 오해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제가 더 확대해석해서 언어를 내준다라는 식의 표현은 오해를 살만 했습니다. 하지만, 국어와 외래어가 적절히 안배된 언어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님의 의견은 맨 처음 댓글에 분명히 명시했고요. 님께서야말로 제 의견을 편파적으로 보시고 왜곡하신건 아니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