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O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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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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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으려한다. 우리는 위선자다. 너무나도 위선적이어서, 이제는 그 위선이 소시민적이라는 개소리마저 지껄이며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게다가 거기에 여러가지, 오래되거나 새로운 정체성을 가져다 붙여다가 가끔씩 글이나 영화로 만들어 판다. 아마도 여러가지 흔히 알고있는 변명거리들이 생각나긴 할거라 짐작한다. 분명 밥을 남기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 혼을 냄에도 사회환원에 대해선 일단 자기 일을 끝낸 뒤에 남의 일을 생각한다면서 여러 사회단체들에 십일조정도의, 혹은 대체로 훨씬 적은 돈을 내고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어른들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도 사실을 굉장히 교과서적이며 동시에 희귀한 중산층의 모범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정도의 위안조차도 구매하지 못하고 아마 우리도 그러지는 못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사회적 모범의 틀을 제외하고서는 그닥 제대로된 변명은 개발되지는 않은 듯하다. 끽해봐야 빈곤포르노나 사회적 박탈감 정도일려나.
위선!위선!위선!!
굳이 필요없는 곳에 느낌표를 이렇게나 무의미하게 적어 놓아서 미안하다. 오랫동안 묵어왔던 말이라 어떻게든 크게 소리질러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적어내어 보았다. 크게 생각을 하진 않지만 독자중에 이처럼 괴팍한 난제에 맞닥뜨린 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항상 이런 생각이 너무나 이단적이며 불문율로서 언급해선 안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룻밤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떼로 죽어가며, 굳이 그렇게 멀리 가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위선자라는 이름을 새삼스럽게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을 울린 악역에게 쓴다는게 필자로서는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충격을 주었다.
이쯤 되었을 때 필자는 그대가 그 변명이라 지칭된 해명을 생각하거나 찾아왔기를 바란다. 오, 우리는 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화사, 혹은 국가를 운영하고 그들에게 원조를 주며 우리의 국제기구는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굉장한 도움을 주고 있다. 수없이 많은 국제기구들(대부분은 당신같이 질문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치료하고 생계를 찾아주고 있으며 그들 또한 종국에는 잘 살게 될 터인데 왜 걱정인가? 우리가 그들처럼 못 사는 거지가 되어서 이 비참한 위선자의 신분을 벗어나길 바라는 건가? 당신이 가서 그들을 구하지 왜 여기 앉아서 이딴 쓸데없는 글이나 쓰고 있는 건가? 또다른 훌륭한 해명이 당연히 가능하겠지만 지금으로선 이정도도 충분히 적당할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기부와 참여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무익하다는 이야기도 나올 것 같다. 그다지 상관없다. 어차피 위선을 고치는 것에는 아직까지는 관심이 없다. 아니, 아직 생각을 하기 싫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혹자는 생각하지 않음의 위험성을 알고 곧바로 지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요즘 필자가 자주 복용하는 진통제겸 마약이다.
저 해명이 옳은가? 꽤나 자유시장주의적인데다 국제주의적이다. 이 해명이 쉽게 반박되지 않는다면(비록 꽤나 깔끔한 설명이라 누가 시도를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 공은 아마 지난 수십년간 노력해온 유럽의 엘리트 외교관들에게 돌아가야할 것이다.
동정심에 겨워서 추진되는(듯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본적이 있는가(말뿐이든 아니든 경제적 수익성을 설명해 주는 곳이 상당히 있다)? 깨끗하고 훌륭해보이는 계획들은 수도없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테지만,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듣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흑인이 타겟으로 하는 범죄의 상당수는 흑인이 한다는 것은 꽤나 유명한 말일 것이다. 그게 약간 핀트가 엇나가지 않았나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거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가장 큰 요인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고 동시에 그들을 구하는 것도 같은 사람들이다. 분명 광고에서는 흰 피부의(한국인의 피부는 대체로 백인만큼 하얕지 않나 싶다) 사람들이 빼빼 마른 아이들을 안고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AK를 들고 도로 변에서 세금을 요구하며 동시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넘어와 사람들을 돕고 있다는 것, 유럽인들의 (이제는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위선적인 프로젝트들은 같은 피부색의 가까운 사람들을 원조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은 알기 어렵지 않을까한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결국 가치지향적인 논쟁은 이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이런 것을 대답하는 것만큼 복잡한 것도 없으며 필자 또한 몸 편한 밑도 끝도 없는 비판가로 죽어버리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며 데이터가 축적이 되어있는 방법을 소개하지 않는 것 또한 글의 목적에 그다지 부합하지는 않아보인다. 몇가지를 끄적여 보겠다.
그냥 살아라.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두번째로는 편한 침대에서의 섹스와 배달이 가능한 수백칼로리의 양질의 음식(대체로 1-2시간의 일을 하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과 커리어를 포기하고 어딘가로 날아가서(굳이 비행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예수가 시킨데로 사람들을 도우면 된다(이 순간이 되면 기독교를 아무리 혐오한다 하더라도 복음서의 내용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인간이 흔하다고는 못하겠지만 당신이 (아마도) 지금 살거나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신축 아파트를 짓고있는, 혹은 짓고 있을 외노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필자가 만난 예시에 근거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굳이 외노자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유럽인들의 지원 없이는 양복을 입고 오지 않는다)
혹은 톨스토이가 인생의 마지막 수년 동안 열심히 적어놓고 실천한(물론 현대인들은 휴짓조각취급조차 안 할 것이다) 금욕적인 귀농생활을 해도 된다. 그러나 한국의 농토가 쓰레기일 뿐더러(그래도 문명과의 접촉을 최소화 해야되니 비료는 차치해 놓자) 주변 사람들은 사이비를 먼저 의심할 것이며 단순한 귀농은 톨스토이가 역설한 바와 맞지도 않는다.
이토록 위선적인 문명(혹은 그 문명이 설계해준 라이프 스타일)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톨스토이가 대안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상상했을 때보다 교묘해짐과 동시에 결론적으론 어려워졌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 문명은 그대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다소 특별한 이유로 이 모든 것은 꽤나 어리석은, 아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주장이 되었다. 애초에 그 전제, 그 자체가,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위선자라는 게 이제는 우리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맞이할 운명때문에 의미를 잃을 뿐더러 꽤나 드라마틱하게 멋있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인구통계학을 개발해 낸뒤로는 처음 맞이하는 일일 것이다.
몇살까지 살고 싶은가? 아니, 그보다도, 한국에서 죽을 것인가? 잠시만 시간을 내어서 생각해주길 바란다. 악취를 풍기면서 아파트 세대 안에서 널부러진 채 죽어있는 그대의 시체를 말이다. 치우지도 못하고 방치된채 파리들을 배불리 먹이는 그 기아에 시달리다 쓰러져 죽은 그 몸뚱아리말이다. 노인들을 수용하는 작은, 어쩌면 수많은 주공 아파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는 그 단지에서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를 괴롭히는 악취를 풍기며 가히 수개월간, 어쩌면 몇년, 심지어는 완전히 방치되어 그대의 시체는 썩어간다. 물론 그대에게 자녀가 없고, 또 여러가지 불행이 겹쳤을 때에야 상상할 수 있는 협박이다. 그대가 조금 더 일찍 죽는다면 혹여나 우리나라에 들를 역사가가 굳이 공포감을 느낄만한 끔찍한 광경을 자아낼 일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자, 아무튼 여기 그대의 시체가 아마도 식탁을 나가려다가 넘어져 죽은 듯이 널부러진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시시각각 가스로 변환되어 가고 있다. 어쩌면 가득 차버린 기저귀를 찬 채 말이다. 우리가 그 혹은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까? 우리는 우리가 지금 폐지를 주우면서도 근근히 살아는 가는 노인들보다는 나은 죽음을 맞을 거라 꽤나 당연히 믿기는 하지만, 굳이 질문한다면 말이다. 지금의 80대들을 생각해보라. 열심히 살아서 많은 아이를 낳고 나라를 이렇게 훌륭하게 만든 다음 자살을 하고 있다. 하! 얼마나 훌륭한 국가인가? 우리시대의 여자들은 그들과는 다르게 여성해방주의,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쳐보자. 가부장제는 그 자체로 젠더간의 훌륭한 협력적 약속이고 오직 퇴폐적인 해체주의 풍조 때문에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지피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를 조심히 지켜다보면, 현실은 단순히 페미니즘이 아니라, 그저 상호를 소유하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와 동시에 결혼이라는 제도적 장치에다 성욕, 로맨스같은 너무 맛이 강해서 역겨워진 향신료를 많이 뿌린 탓이다. 여성을 인간으로서 보면 대화의 상대지만, 이성으로서는 감정적, 성적 만족감이나 여성에게 가정을 요구하려는 욕구를 남성은 아직 참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는지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것은 모두, 사실은 수요에 가깝다. 안타깝게도 매춘은 발달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불법이기 때문에 남성은 비 금전적인 재화로 그 수요를 만족 시켜야만 한다. 더 길게 끌 것이 없으니 빨리 결론을 짓겠다. 어차피 해법따윈 없으니 더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는 어머니보다 아내나 여자친구에 대한 수요가 더 크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모두 그렇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언어는 꽤나 극적으로 사멸한 언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런 죽음에게 이정도의 위선이야 딱 알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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Ö의 하루는 망가졌다. 원래 그것은 아주 기분 좋고 활기차며, 또 인간관계적으로 건강하다고 할 순 없겠다만 여러 학원 사람들을 만나며 굳이 콕 짚어서 후에 나쁘다고 평하진 않을, 그런 평범한 삶의 인상 중 하나가 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런 그의 생각은 당연히 일종의 자기 최면이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굳이 그 하루에 대해 기분 좋고 활기찰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 며칠의 밤과 낮들이 여러 의미로 고통스러웠으며(과식으로 일요일 밤에 구토를 하고 다음날 연락도 남기지 못한 채 학원을 빠진 탓이 컸다.) 그와 동시에 기분 좋고 활기찬 삶을 구성하는, 그러니까 그런 조건에서 기분 좋고 활기차지 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확신으로 그가 꺼내어 생각해 놓은 조건들이 그 이상으로 훌륭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재정적 능력은 가족과 그가 제공하는 적절하고 필요한 자기절제의 인식으로부터 격리되어 나와 더욱 부유한 그의 조부모의 지원을 받게 되며, 또 여느 아시아 국가가 당연히 그래야 하듯 상당한 저물가 때문에 그가 새삼 고백하듯이 지극히 정상적인 형태로 과도한 그의 소비생활을 조금의 부족함 없이 틀어막는 중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의 학업적 성취로 미루어 보건대 그의 후견인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도발할 정도의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학업적 성취에 대해 대단히 특별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다만 그의 선생들이 그를 무시하는 것만큼은 굉장히 싫어했다. 스스로 겸양을 위선이라 치부하는 유아적인 발상을 굳이 부끄러워하지 않았기도 했으며, 또 그가 실제로 그가 유년기에 그랬던 것처럼 촉망받는 인재이지는 못할망정 그 작은 국제학교에서는 가장 유망한 학생임이 아주 공공히 확실하진 않아도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수도, 아니, 더 이상 그런 것들에 대해 조금도 의미가 없다는 것 외에 다른 결론을 내려고 애를 쓰는 것에 완전히 기가 빨려 지쳐버렸다. Ö는 그가 직접 Ü에게 고백하며 적은 것처럼 불행한 남자들 중 하나였다. 단순히 차인(Ö는 차였다는 말을 싫어한다. Ü가 한국어로 그를 거절하지도 않았거니와 그는 이제 언어를 완전히 불신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것보다 그리하여 그런 수많은 남성들 가운데 하나로 스스로를 여기는 것이, 또 남들에게 여겨짐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되는 모든 것이, 잘못되어버린 자기 사고의 구조와 이기성과 자기의식이, 또 그것들에 의해 폭발적으로 연소해 버린 수많은 밤들과 각각의 밤들의 망상들이 혐오스러웠다. Ö는 그에게 그토록이나 잔인하게 말해야 했던(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Ü의 착하디 착했던 행동적 특성에도 불구하고(behavioral trait정도로 번역될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때문에) Ü가 전혀 밉지 않고 차라리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문제는 곧 그런 대단히 훌륭한 여성을 종속시키면서까지 그곳 객지에서의 삶을 살고 싶었다는 Ö 자신의 오욕으로 재귀해 왔다. 그는 급히 세수를 하고 털어냈다. 그는 그가 보게될 미소가, 그게 그 누구의
- 기능사
- 2025-12-25
늦은 밤중에 이렇게 타자기를 보다니 아무래도 이 때즈음의, 그러니까, 이때만의 격동은 격동대로 나를 후려치는 듯하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잠까지 설치며 적겠다는 의지를 관철함은 또 그럴 이유가 (합당한 이유라고는 적지 못하겠다) 있는 탓이겠지 하며 씹어 물고 있다가 뱉어버리고 내가 진정으로 시간을 쏟아 생각해야 할 것으로 넘어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므로 또 그렇게 적겠다. 나의 만성적이고 난치한 짝사랑들을 그저, 어느 정도는 태생적이며 그 때문에 언제고 대수롭지 않은 아토피쯤으로 격하하려 했던 나의 공격적인 문학들은 이제 나의 가식이 주는 기쁨과 위안이 사그라듦에 따라 어느 정도 공연한 빈말이 되어버렸으며, 나의 고민은 또한 한두 번 내 친지들에게 고해한 것처럼 이를 자세히 부연해 적어 밝혀 놓아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내가 사랑했으나 이제는 더는 사랑하지 않는 것들, 그것들은 아마 수도 없이 많을 것 같다. 중학교의 초반까지는 아주 진지하게 고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실제로 그 때문에 이후 진학에 있어 중대한 몇 개의 결정을 내렸으나, 이제는 그것들을 제하고 나 자신을 설명할 수도 없는데다 고생물학의 꿈은 영영 사라져 의미가 퇴색되다 못해 탈락했다고 말해도 될 지경에 이르렀다. 다만 문제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들, 우주론적 지평선마냥 내 어린 나이를 핑계 대며 되돌려 놓을 수도, 혹은 아예 만날 수도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생각 중인 사람은 3명 정도다. 3명인 이유는 어느 순간 이전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고, 또 내가 접촉할 연락처가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중학교 어린 날들, 또 어린 밤들의 망상 속에 있던 사람인데, 1학년 이후로 극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 다소간의 극적으로, 다만 여전히 무의미하게 작년 초여름 즈음에 두 번 만난 것이 전부이고, 지금까지도 일절 연락하지 않고 있다. 자세히 밝히지는 않겠다만, 그보다 더 확정적으로 끊어졌다는 인상을 받았던 관계는 이제껏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중학교 3학년 때의 반 친구, 연락하는 것이 어색하진 않지만 단지 그뿐인 사람이다. 내 지인과 친구 중에서 그에 대해 비슷하게 분류되는 감정을 가지고, 또 고백한 사람을 나는 서너 명은 댈 수 있다. 마지막은 나름 독특한 부류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자연한 감정이라기보다 그 이전에 그를 사랑하겠노라 한 내면적 선언에 의해 연역된 채, 단지 잔류할 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또 어차피 다음 날엔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매일 밤의 망상들에 침습하는 병원성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첫 선언이 무엇이었건 간에 더 이상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마음껏 자조하고, 또 결심하여 관계를 확정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나의 우유부단함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나의 감정에 대해 그 상대의 동의나 용인이 떨어질 수 있겠단 생각이 간혹 드는 것을 아예 말할 순 없겠다만 크게 대단치 않은 망상일 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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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8
"술 같은 건 마시지 않을 거예요. 정말요. 그저 춤을 추고 싶어요." 나는 그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하고 술집 앞을 쭈뼛쭈뼛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깠다. 아무래도 펠트슐뢰센은 레몬 맛 무알콜을 왜 내놓는지 모르겠다니까 하며 화제를 돌려봐도 곧 다시 내가 춤이라고 어영부영 돌려 말하려 했던 그, 그 무언가로 돌아온다. 그것을 언어로 옮기기는 싫다. 아니, 언어로 옮기려 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의 오만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봤던 그 인상 속에 담겨 있는 걸로 만족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것을 원한다. 너무 멜랑콜리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다. 이 지루한 나라는. 생각해 보자면 그것을 춤이라 부르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기만적이다. 춤은 그 의미 자체로 정격적이고 억압적이다. 배워서 추는 춤이란 의미에서 말이다. 또한 수많은 문학주의자들(나를 포함하여- 또한 나는 그들을 경멸한다)이 미학이란 걸 만들어놓고 그것을 적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그것은 절대로 춤이 될 수 없다. 그런 사상의 연장에서 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춤을 극도로 (심지어는 유치하고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혐오했고, 또 그에 맞서 나름 시위까지 벌였다(학교 행사에 댄스 동아리가 공연이라도 나오면 후드를 깊숙이 뒤집어쓰고 돌아앉은 채 끝나기까지 기다렸었다. 이유야 붙이기 나름이겠지만은 그저 그러한 미학이 띄는 우매한 대중성이 역겹다고까지 생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 보면 내로남불이지만서도 말이다). 그러나 나 또한 육체적 정숙성에서 탈선했는데, 그것은 1년 전 지금 수학여행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그때 우리 학년이 간 곳은 발리스 칸톤의 베흐비에라는 곳이었는데, 우리의 숙소는 지하에 파티장이랄까, 아무튼 파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자세히는 다루지 않겠다. 기억도 자세히 나지 않는다. 나는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가장 깊이 인상에 남았던 각편은 내가 그간 받았던 스트레스를 연관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타아에 대해 단정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것은 스트레스나 우울에피소드 같은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그것은 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무아지경도 아니었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더 본능적이고 강렬하며, 이질적인 것이었는데, 다소간의 과장을 보태어 그것을 하기 위해 태어난 기분이었다. 절대 기쁘거나 황홀하거나 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한번 시작한 이상 끝낼 수 없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느 정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존성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또한 더 덧붙여 둘 것은, 내가 춘 것은 자주 보이는 리듬 타기 같은 게 아니라, 말하자면 카자크 춤과 수피즘의 혼합이었다). 여하튼 간의 지하 당구대와 탁구대가 붙어있는 스위스식의 옛 된 콘크리트 지하실에 붙어있던 목제 파티룸에서 근 2시간 정도 춤을 추다가 그날 밤에 곧바로 종아리에 쥐가 났다.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춤을 추면 쥐가 나야 한다. 쥐가 난 것은 춤을 춘 두 번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처음 춤을 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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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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