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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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수상작 숨바꼭질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시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숨바꼭질 허승화 가만히 있는 할머니에게 기억이 자꾸 숨바꼭질을 하자고 한다 오늘은 글자도 모르면서 도서관에서 어제를 잔뜩 빌려왔다 글자 모른다는 걸 까먹었다나? 할머니는 마늘을 까다 빌려온 어제를 하나 까먹고 말았다 어데 숨었노? 자꾸 왜 그래, 할머니 까려면 마늘이나 까야지! 뭔가 중요한 사실을 얘기할 차례가 될까 두려워진 나는 할머니를 잃어버릴 작정으로 데리고 밖에 나갔다 흰 머릿속에 숨었던 어제들이 하나씩 나타나 나에 대해 자세히도 말해 주었다 아랑곳 않고 나는 할머니를 도서관에 버렸다 책인 척 꽂아두자, 할머니는 부서진 글자처럼 구겨졌다 할머니 꼭꼭 숨어, 머리카락 보일라 놓고 떠나려는데 할머니는 숨바꼭질을 하는 거냐며 버려진 줄도 모르고 예쁘게 웃었다 꼭 그림 같았다 나는 엉덩이가 다 보이게 숨은 그녀를 다시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모든 것을 까먹고도 기어코 나를 찾아낼 사람이라서 나는 질 수밖에 없다 집에 가자 할머니는 아주 오래 묵은 된장으로 직접 깐 마늘을 넣은 된장찌개를 능숙하게 끓여냈다 그 안에서 잃어버린 어제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가 먹느라 정신 팔린 사이, 나는 할머니보다 먼저 오늘을 숨겨버리기로 했다 결국 할머니는 찾아낼 테지만.  
작성일 2022-10-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1 조회수 2065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나의 의심을 팔아볼까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시 부문 우수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나의 의심을 팔아볼까 정유리 아빠 나는 지금 오독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요. 아빠를 부르면 달이 자꾸만 작아져요. 입 대신 잎으로 호흡하는 아빠를 보면서 계절이 또 농담처럼 지나갔다고 생각했어요. 나보다 오래 산 아빠의 수염은 이름을 불러도 도무지 문밖으로 나오지를 않네요. 슬픔은 빚쟁이처럼 끈질겨요. 나는 자꾸 아빠가 책장이 되는 꿈을 꾸죠. 미래의 뒷모습을 본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슬픔의 가계도는 슬픔뿐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빠 오늘 아빠의 손톱에서 햇볕 냄새가 났어요. 초록은 아무리 울어도 초록이었습니다만. 눅눅한 절망들이 서로 눈치를 봤어요. 나는 이 순간만큼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불행만 우리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고 이 세계에 대해 어떤 믿음도 갖지 못했었는데 나는 이제 반대로 희망, 하고 웃기로만 합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작성일 2022-10-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772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통조림 시점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통조림 시점 조민아 통조림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바깥쪽으로 꺾는다. 손톱 아래로 고리가 튕긴다. 동그란 알루미늄 몸체에 틈이 생긴다. 딱, 소리가 날 때 뚜껑을 뒤로 젖히고 그대로 잡아당긴다. 안에 묻은 기름이 진득하게 흘러내리고, 비로소 꾹꾹 눌려 있던 참치가 보인다. 탁한 분홍빛 속살에서 비린내가 난다. 군데군데 거뭇한 자국이 있다. 상한 건 아니다. 노란 겉면 어디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먹어도 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을 거다. 나무젓가락으로 헤집으면 퍽퍽한 살이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굳은 채 튀어나온다. 그러면 마요네즈를 꺼내 그 위에 한 바퀴 두른다. 미끌미끌한 참치 조각이 혀끝에서 느끼하게 번진다. 동시에 고시원 공용 전자레인지로 미리 데워두었던 즉석밥을 한 젓가락 떠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먹는다는 말은 과분하다. 그저 텅 빈 채 떨리는 위장에 음식물을 채우는 행위에 불과하다. 참치 통조림과 즉석밥, 나무젓가락을 검정 봉투에 담아 묶는다. 그리고 창문을 연다. 창문은 천장과 맞닿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어, 열기 위해서는 창문 위로 올라가야 했다. 아마 위층 창문과 연결되었던 것을 고시원 층수를 확장하며 반으로 나눴을 거다. 전체적으로 방 모양은 직사각형이었다. 문으로 들어오면 왼쪽에 침대가 있었다. 몇 센티의 틈도 없이 빼곡하게 찼다. 꽃무늬 이불이 있었는데, 묘하게 쿰쿰한 냄새가 났고 곳곳이 헐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침대 아래 서랍이 달려 있어 안은 여름옷과 통조림으로 가득했다. 오른쪽에 책상이 있었다. 침대와 벽 사이에 빈틈없이 낀 상태였다. 고등학생 때 쓰던 책상보다 약간 넓은 수준이었다. 수능 특강 세 권을 옆으로 놓으면 책이 손가락만큼 삐져나왔다. 벽에 울퉁불퉁한 스트라이프 무늬 벽지를 발랐지만, 이전에 쓰던 걸 뜯지 않았는지 물방울 무늬가 희미하게 비쳤다. 코를 박고 있으면 곰팡내도 났다. 방 안에 가구를 꾹꾹 눌러 담아 꼭 통조림 같았다. 밀폐된 방 안에 있으면 나도 참치 조각처럼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책상 위로 올라갔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불안했다. 헐거워진 못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손을 뻗어 녹슬어 있는 고리를 잡아당겼다. 손이 하얗게 될 때까지 힘을 주자 창문이 열렸다. 창문이 틀에 부딪히며 딱, 소리가 났다. 지금 있는 고시원이 다른 곳보다 나은 이유 중 하나였다. 주변 시세보다 만원을 더 내고, 책 한 권 정도의 크기라서 환풍 통로 수준에 그쳤지만 상관없었다. 바깥과 연결되는 좁은 길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속이 조금은 트이는 기분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책장 한 번 펄럭이지 못할 만큼 약했지만 불어
작성일 2022-10-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720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늦은 숨바꼭질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우수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늦은 숨바꼭질 김복애 계절때문은 아니지만 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근무지 근처에서 휴게시간 30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계속 갖다 맞춰도 짧았던 이 시간은 근처 작은 도서관에서 책 3권을 빌리기에는 충분했다. 도서관에 꽂힌 책들을 눈으로 훑다 문득 들어온 책 한 권이 있었다. . 나도 모르게 스르륵 꺼내 넘겨 보았다. 서울에서 살아내며 한 평의 땅에, 그것도 안 되며 화분으로라도 정원을 만들고야 말았던 정원쟁이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책이다. 책장을 넘기던 내 손이 딱 멈춰 섰다 남산이 기둥처럼 등대처럼 우뚝 선 모습으로 보이던 나의 옛집을 작가는 언제쯤 다녀간 것일까? 사진 속 나의 동네는 내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잘 지냈느냐고, 어찌 살아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부모님은 무수히 많은 집들을 옮겨 다니다 서계동에 정착하셨다. 당시 서울집들이 보통 그랬듯이 거미줄처럼 난 길을 따라 지렁이처럼 구불거리는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도시에 번져갔다. 그 길따라 올망졸망한 집들 중에 나의 집도 있었다. 골목은 늘 아이들로 넘쳐났다. 아이들은 낮에도 밤에도 골목길을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대로 시골 아이로 자랐으면 꽃을 베러 들을 누볐을 시간을 비슷한 사연들로 모인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보냈다. 그 시간들을 스릴과 모험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숨바꼭질이었다. 사람만 모이면 시작할 수 있는 숨바꼭질은 아주 공평한 놀이였다. 힘도 기술도 필요 없었다. 공기나 고무줄을 못하는 내겐 고마운 놀이였다. 숨바꼭질의 시작은 가위바위보였다. 가위바위보를 못하는 나는 영락 없이 술래다. 술래가 되는 순간 나는 빠르게 나라면 어디에 숨을까 생각하고 골목마다 콕콕 박혀 숨어 있는 아이들을 쏙쏙 찾아냈다. 아이들은 내가 술래가 되면 전봇대로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와하고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날도 그랬다. 숨바꼭질 하겠다고 따라나온 2살, 5살 터울 두 동생을 챙기면서도 등줄기에 땀이 나도록 숨은 친구들을 찾고 또 찾았다. 술래가 바뀌는 사이 딸이 떠오르고 내가 술래가 되었다. 경자, 정숙이, 희경이는 이미 찾았고 내 동생 봉순이도 찾았는데 막내동생인 정희가 보이지 않았다 다음 술래인 정숙이가 전봇대 앞에 서 있는데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도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도 다급한 나의 목소리에 함께 온 동네를 뒤져도 정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작성일 2022-10-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77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앞집 아이 사용법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장원 ? 〈동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앞집 아이 사용법 곽윤숙 우유가 사라졌다. 이번주에만 두 번째다. 우유가 사라지는 일만 빼면 새로 이사 온 집이 마음에 들었다. 전에 살던 반지하는 햇볕이 잘 안들었다. 이번 집은 1층이라 하루종일 환해서 좋았다. 신고를 하자는 내 말에 엄마는 더 지켜보자 했다. 내 생각에도 오백 미리 우유가 없어졌다고 경찰이 오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소중한 아침밥이 두 번이나 사라진 큰 사건이다. 배달 사고인 줄 알고 연락을 했지만, 배달원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일주일에 세 번 배달되는데, 이번 주만 두 번 사라졌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 떡볶이 간절. 배달시켜도 됨? 나도 배달앱을 깔고 직접 배달 음식을 시켜보고 싶었다. 엄마를 통하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시켜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텐데. - 엄마 외근나옴. 사다 줄게. 이번에도 꽝이다. 이 기분으로 숙제를 하고 싶지도 않다.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한 동만 덩그러니 있는 낡은 아파트다. 우유를 훔친 범인의 단서를 찾고 싶었다. 현관은 한곳이고 우리 집은 1층이다. 경비실은 없다. 몇 번을 마주친 위층의 아저씨가 지나갔다. 인사를 해도 본 척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저씨! 혹시 우리 집 우유 가져가셨어요?” 용기를 내서 물었지만 아저씨는 대답 대신, 인상을 구기면서 바닥에 침을 뱉고 갔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마주친 중학생 형에게도 물어봤다가 혼만 났다. 도대체 누가 우유를 훔쳐 갔을까? 내가 생각하는 용의자는 앞 집이다. 분명 안에서 소리가 나는데, 한 번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창문은 두꺼운 커튼이 처져서 집안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도 누가 사는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작은 화단을 건너 앞집 베란다 창앞에 섰다. 까치발을 들고 안을 보려고 기웃거렸다. “거기서 뭐 해?” “으헉!” 놀라 그대로 주저앉았다. 뒤돌아보니 엄마가 서 있었다. “남의 집을 왜 기웃거려?” 우유 도둑을 잡으려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내 대답을 듣고 엄마가 고개를 절레거리며 봉지를 내밀었다. “나도 배달앱 써 보고 싶은데.” 뿌루퉁하게 나온 내 입을 엄마의 손가락이 밀었다. “비싼 배달비 대신에 엄마도 보고 얼마나 좋아? 저녁에 보자.” 엄마는 찡긋 윙크를 하며 뛰어갔다. 떡볶이
작성일 2022-10-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04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숨바꼭질
[제40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우수 ? 〈동시〉]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숨바꼭질 배연주 나는 나무 뒤에 숨고 하율이는 미끄럼틀 안에 숨고 예나는 시소 옆에 숨었는데 달팽이는 집에 쏙 들어갔다 몸 속에 숨는 건 반칙이야! 외쳤지만 아차, 달팽이에게는 귀가 없지 내 등에도 숨을 곳이 붙어 있으면 좋을 텐데 숨바꼭질 일등은 오늘도 달팽이 《마로니에여성백일장》 jQuery(document).ready(function() { var playerId = $('.mejs__container').attr('id'); var player = mejs.players[playerId]; player.remove(); $('#wp_mep_2').removeAttr("style"); });
작성일 2022-10-21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57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암묵적 약속
[제37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시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암묵적 약속 유태양 접시에 물을 받고 달그림자를 담았다 달도 부위별로 다른 맛이 날까? 염소처럼? 달이 접시에서 튀겨지고 있다 회색빛 살갗이 노랗게 익어간다 내가 담았던 것은 기름이었나 우리는 암묵적으로 식탁에 앉아 창문 너머 달을 보면서 숟가락으로 물을 떠먹었다 달을 먹은 날에는 몸이 무언가의 알로 가득찼다 생각했다 부화장치가 된 나의 내장 알을 까고 내장을 걸어다니는 다리들 이빨 사이로 눈이 들어차는 기분 곁눈질을 하면 안개가 축축하게 꼈다 창문틈을 비집고 안개가 들어찬다 나는 젖는다 짠맛이 난다 나는 왜 안개의 맛을 알고있는가 혓바닥이 거짓말을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안개와 혓바닥의 약속이었을까 왜 아무도 의심하지않나 뱀의 혀는 간사하다던데 나는 울고 너는 웃었다 사라지는 달을 보면서 너는 어둠이 차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잘리는 달을 생각하고 너는 빛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생각했다 배를 가르는 상상을 하면 싱크대 위로 알을 토해냈다 나는 싱크대 구멍으로 흘려보내는 일을 반복하고 너는 구멍에 스피커를 달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언제 이런 약속을 했을까 병뚜껑에 물을 따라 마시기로 우리의 구도는 자꾸만 엇나가
작성일 2022-10-0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070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먼지
[제36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시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먼지 허인혜 방문 여는 소리에 자폐적 어둠에 부유하던 시간의 지층이 출렁였다 미처 태어나지 않은 선들을 끌어안은채 아리아스는 마지막 인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다듬어 놓은 턱 선으로 섬세한 먼지가 탈색된 머리카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이마의 명암은 수없이 혼자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고 눈동자 없는 눈에서 먼지는 유적처럼 쌓여갔다 회반죽처럼 서서히 굳어간 웃음과 눈빛 텅 비어 있어 더 무거워지는 얼굴이 있다 전생을 비춰보던 벽거울 속에서 거미줄로 뒤덮인 석고상 하나를 더 발굴한다 멀리서 겉돌고 있는 혹성 남 같은 내가 궤도를 이탈 중이다 재활용스티커 한 장을 뒤통수에 부쳐야 될지 이마에 부쳐야 할지 망설인다 오래 전 눈빛이 빠져나간 자리 내려 앉은 입자들이 먼 미래를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 jQuery(document).ready(function() { var playerId = $('.mejs__container').attr('id'); var player = mejs.players[playerId]; player.remove(); $('#wp_mep_2').removeAttr("style"); });
작성일 2022-10-0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60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가방
[제37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시 부문 우수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가방 김소나 나는 나를 꺼내지 못해요 나는 낯선 곳에 빠져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아요 내 비명소리가 흘러넘쳐 벽에 떨어뜨린 물감처럼 흘러내리고 나는 내 입에서 튀어나온 딱딱한 글자들들 등에 대고 눕죠 부드럽지 않지만 괜찮아요 종일 여기서 나를 기다릴 거예요 이보다 좋을까요 나는 쓰잘데 없는 것들을 가방 안에 넣어 두곤 하죠 검은색이 되어보지 못한 백색의 문장들 뱉고 뱉은 색으로 까맣게 변한 스케치북 잘 열리지 않아 빽빽한 서랍들 친근하지 않은 왼쪽 손목 안개 한 줌, 연기 다섯 줌, 싸락눈 여섯 줌, 폭우 한 줄기 빨다 버린 사족들 기차처럼 바닥이 덜컹거려요 울랄라 나는 매일 가방 안으로 출근해요 붉은 속지 속 무가당 사탕, 은근한 바닐라 초콜릿 향, 검은 구름으로 가방을 만들어요 가방 바닥에는 발자국으로 어지러운 구름 아끼고 아껴 뚝 떼어 보관해둔 여덟 번째 요일 내가 버린 손가락들이 있죠 천둥과 번개와 폭우도 넣어두고 가끔, 길을 걷다, 꺼내보는 가방 이보다 더 좋을까요 내 가방엔 아무 것도 담지 않아요 그래서 더 무겁죠 나는 가방 안으로 외출해요 오늘도 피사의 사탑이 더 기울어져요 《마로니에여성백일장》 jQu
작성일 2022-10-0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885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아버지의 라디오
[제36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아버지의 라디오 구지희 아버지의 슬픈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지루한 영화의 영상이 되풀이되듯 기침 소리는 멎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침이 잦아드는 것 같으면 뱃속에서 끌어올린 가래를 재떨이에 탁 뱉었다. 노란 고름같은 액체였다. 칠흙의 먼지 알갱이가 아버지의 얼굴 위로 흩날렸다. 담뱃재였다. 아버지는 가슴에 싸인 화와 절망을 담배연기로 연소시켰다. 끝내 연기가 되지 못한 가슴 속의 덧없는 꿈들은 까만 재가 되었다. 아버지의 가슴에서 끌어올릴 무엇인가는 남아있지 않았다. 텅 빈 황무지였다. 아버지는 노쇠한 당나귀였다. 무거운 다리를 끌며 제가 짊어진 삶의 무게로 휘청거리며 히잉, 히잉 우는 슬픈 짐승이었다. 담배를 태워 절망을 연소시켜 재를 쌓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문 밖에는 엷은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쓸쓸한 양철지붕 아래, 늙은 아버지와 어린 내가 누워 있었다. 누군가의 슬픈 마음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방안을 떠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랜 시간 숱하게 피워올린 절망의 그림자였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아랫목에 누워 계셨다. 방바닥은 차가웠다. 초가을 오후의 서늘한 기운이 쓸쓸한 낙엽처럼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버지가 움직일 때마다 얇은 종이인형이 바람에 뒤집히는 듯 희마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누워 계셨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었다. 가벼운 공기처럼 차가운 방바닥을 부유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쓸쓸하고 추운 무엇이 되어 세상 한구석에 짐덩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바짝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사각거리며 빈 하늘 속으로 제 몸을 날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가 찌든 이불 위에서 불안하게 몸을 움직이는 소리였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아버지는 바스락거리며 엷은 안개비 세상에 속삭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머리맡에는 낡은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라디오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혼자서 중얼거렸다. 라디오는 아버지 대신 슬픈 목소리를 내며, 아직은 생의 촛불을 켤 기운이 남아 있다는걸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라디오 소리는 내게 벌이 윙윙거리는
작성일 2022-10-0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253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일기장
[제37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산문 부문 장원 ?]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일기장 남설희 오전 내내 자다 동생과 점심 준비 (동생이 거의 만들고 나는 간만 봄) 돼지고기 김치찌개. 호박전. 엄마 외삼촌 외숙모 12시에 들깨 베고 오심. 1시에는 동생과 같이 엄마 외삼촌 외숙모랑 들깨 베기. 외삼촌 외숙모께 늘 감사하고 동생도 고맙다. 씻지 않고 해물찜 가게로 외삼촌 외숙모 모시고 저녁. 막내가 일을 도와드리지 못했다고 밥값 냄. 7시 30분 집 도착. 씻기. 오랜만에 낫질을 해서 온 몸이 쑤시다. 내일 마로니에 백일장. 대충 어제 일기 내용이다. 나는 10년째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처음엔 하루를 그냥 흘려 보내는 게 아까워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일기의 대부분은 무엇을 했고 먹었고 보았는지의 내용 뿐이다. 그리고 그 끝엔 괴롭다. 죄스럽다, 죽고 싶다 적었다. 20대 내 일기장은 잿빛이었다. 집에서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을 돕는 나는 매일이 지옥이었다. 그렇다고 집을 나갈 용기도 의지도 없었다. 그저 동굴에 갇혀 일기나 쓰며 우울하게 지내는 것을 업 삼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나마 일기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내 일기장에는 사계가 뚜렷했다. 계절에 맞춰 고추씨를 언제 틔우고 이식을 하고 비닐을 씌우는지 하나 하나 적혀있다. 부모님과 함께 일을 했기에 일기장은 농사일지이기도 했다. 고추 따는 날은 대부분 우울했다. 대게 새백 6시에 나가야 했기에 엄마는 내 뒷모습을 보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했다. 딱 그 마음이었다. 난 이렇게 살다 죽겠지. 작가가 되고 싶어 집에 있었다. 단순히 나가서 글을 쓰는 것 보다 집에서 쓰는 게 더 경제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의 고혈을 빨고 사는 기생충이 되었다. 그래서 최대한 깊은 곳에 나를 숨겼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게. 나에겐 발전이라는 게 없었다. 가끔 그 시절 일기를 들춰 본다. 예민하고 열등감에 늘 좌절하던 나. 이제는 그대로의 너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일기 끝에 ‘나는 가능이다’라고 적었다. 나는 가능해. 사실 나는 아직도 이 가능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 나의 결심은 내게 늘 실망을 주지만 예전만큼 우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쓰게 된 건 매일 무엇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은 자세하게 나진 않지만 감사 일기를 쓰면 우울
작성일 2022-10-04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964상세보기 -
주요수상작 아빠에게
[제36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 아동문학 부문 장원 ? 〈동화〉]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40주년을 기념하여 5개년(2018~2022년)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 장원·우수상 수상작품이 게재됩니다. 아빠에게 백경륜 2018년 9월 5일 날씨 흐림 아빠, 기억나? 그 날도 엄마한테 엄청 혼났잖아. 5학년은 혼자 자는 거라고. 엄마는 막무가내야. 그래도 화내지 않을게. 내일은 엄마랑 화해할게. 아빠가 그랬잖아. 엄마는 우리들의 공주님이라고. 오늘은 아빠랑 만든 음원을 꼭 틀어 놓고 자야겠다. 아빠도 같이 듣고 자자. 아빠, 잘 자. “안 돼! 절대 안 돼!” 찬이가 그렇게 강하게 나올지 몰랐습니다. 다른 때였으면 잡히는 대로 빗자루라도 들고 때리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혼자 결정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아빠가 함께 고민해 줄 때는 덜 불안하고 결정하기도 쉬웠습니다. 아니, 아빠가 있었다면 애초에 땅을 팔고 이사를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찬이네는 당진에서 크게 고구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아빠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고구마를 직거래하고 농사도 짓고 계셨습니다. 물론 엄마도 일을 도왔지만 어디까지나 아빠가 계획한 일을 거드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돌아가셨습니다. 엄마는 당장 고구마를 수확하고 그 많은 양을 어떻게 처리할지 막막합니다. 그럴 때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엄마도 찬이 아빠가 일구어 놓은 터를 쉽게 포기하는 것이 속상합니다. 오늘 밤은 잠이 안 올 것 같습니다. 찬이 방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드문드문 벌레 소리, 새 소리, 고양이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 지나가다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찬이와 아빠 목소리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건 그만 녹음하자.” “아니야, 조금만 더 해. 너무 짧으면 효과가 없다니까.” 찬이는 계속 엄마, 아빠와 자려고 했습니다. 그 날은 꼭 혼자 재우겠다고 엄마가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결국은 고집을 부리던 찬이가 엄마에게 혼나고 눈물을 흘리며 제 방으로 쫓겨났습니다. 아빠는 엄마 눈치를 보면서 슬며시, 찬이를 따라 들어가 누웠습니다. 찬이는 화가 많이 났는지 아빠가 옆에 누워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찬아, 너 핸드폰으로 녹음해 본 적 있어?” 그제야 찬이가 아빠 쪽으로 돌아눕습니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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