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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생활 계획표

  • 작성일 2024-10-01

   여름 생활 계획표


김중일


   당신이 온다고 해서 수박을 샀어요. 청과점에서 가장 큰 수박을. 십 킬로는 훌쩍 넘을 거예요. 걸음마를 떼고 막 뛰기 시작한 한 아이가, 공처럼 어디로 뛸지 종잡을 수 없는 아이가,

   넘어질라 붙잡으려 해도 달처럼 맴돌던 아이가 불시에 내 품안으로 넘어질 때처럼, 와락 뛰쳐 들어올 때처럼 묵직한 수박을 받아 안습니다. 아이가 두드린 가슴이 텅텅 울리네요. 수박을 두드려 봅니다. 물동이처럼 묵직한 수박,

   덕분에 심장이 다시 뜁니다. 수박을 들고 오는 내내 또 떨어뜨릴까 놓칠까 많이 애썼어요.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산산조각 깨뜨리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이 온다고 해서 깨끗이 목욕시킨 수박을 반으로 잘랐습니다. 당신은 오지 않아 그 많은 걸 혼자 다 먹었어요. 체내에 수분이 들어차니 눈물도 쉽게 툭툭 잘 나와요. 슬플 때 먹어 보시면 알아요. 걸으면 몸 안이 철렁 철렁합니다.

   다음날 당신이 다시 온다고 해서 남은 수박을 반으로 잘랐어요. ‘잠자기’하듯 잠자코 기다려도 당신이 오지 않아 혼자 먹었어요. 또 또 눈물! 그런 핀잔을 먹더라도, 수박의 그 많은 수분이 눈물이 되더라도 먹어야죠.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찬 눈물은 다 버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여러 번. 마지막으로 당신이 온다고 하는데, 한 번도 온 적이 없는데 이번의 마지막은 어떤 마지막인가요.

   일일 생활 계획표의 삼십 분짜리 칸만큼 남은 수박은, 오든 말든 당신을 위해 남겨 뒀어요. 차 한 잔도 못 마실 짧은 시간을. 선잠이라도 들라고, 당신이 오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을 먹지 않을 생각입니다. 눈물로 바꿔도 얼마 되지 않고, 그 마른 눈물은 되레 나를 마른 수건처럼 쥐어짜는 일이거든요.

   사실 삼십 분 동안 ‘준비’를 하게 계획되어 있었어요. 무슨 준비인지 궁금하시다면 수박 먹으러 오세요. 오신다니 다 제쳐 두고 준비하고 사내아이의 까만 머리통 같은 흑수박 한 통 사러 가려 해요.

   얼마나 많은 그림자를 욱여넣어야 이렇게 속이 새빨갛나요. 세상의 모든 그림자를 화장해서 담으면 이렇게 새빨갛군요. 수박을 반으로 가르듯 한순간 한낮의 열기가 툭 내려앉는 여름 유독 빨간 저녁.

   마지막으로 온다던 당신은 마지막으로 오지 않고. 잘라 놓은 반을 그 많은 걸 ‘기다리기’하며 또 혼자 다 먹어요. 밤이든 낮이든, 어느 걸 남겨 두고 어느 걸 먹을까요. 기다리다 지쳐도 빨간 눈두덩을 하고 창밖으로 내다버릴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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