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적재 창고
- 작성일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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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적재 창고
나지환
계절을 일곱 개로 나눠서 생각한 지는 오래되었다.
일곱 계절
1월~2월은 <눈어깨>라고 한다. 눈어깨에 내리는 눈은 군중의 뒷모습처럼 눈부시다.
3월~4월은 <봄>. 봄에 당신은 꽃이 아니라 꽃의 뿌리들이 구름을 작명하는 소리를 듣고,
5월~6월은 <구름어깨>. 6월의 구름은 버섯 모양으로 피어오르고, 그것은 일제히 지나간 이들의 발걸음 같다.
7월~8월 21일은 <1차 여름>이다. 수집된 여름의 증거들이 모두 모였다가
8월 22일~10월은 <2차 여름>. 다시 흩어져 가던 숲의 너머로, 지붕의 너머로
11월은 <가을>. 흘러내리던 단풍 다음에는 가지들도 흘러내린 끝에
12월은 <겨울>. 찬 숨이 그곳에 남는다.
시립문화센터의 옥상 공원에 앉아 나는 할머니들과도 어울렸고, 아이들과도 어울렸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던 아저씨들과도 어울리며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지난 분기에 독서 강좌를 진행했다고 하자 모두들 믿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나름의 계절에 대한 소고를 들려주었다. 특히나 자신이 문화센터의 모든 비상구와 탁자의 개수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3학년의 그 아이는, <1차 여름>이라는 계절을 삼등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건의했다.
삼등분된 1차 여름
7월~8월 10일은 <전부 사라지는 여름>, 사라진 것들이 모기가 되어 돌아오는 여름.
8월 10일~8월 21일 오전은 <다시 태어날 것 같은 여름>, 은하수 너머에서 지상에 자식들을 보낸 모기의 큰 부모들이 웃고 있는 여름.
8월 21일 오후, <여름 중심>. 지구상의 모든 모기가 한 마리의 모기가 되어 한 사람을 깨물러 간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조용히 벤치 뒤편의 흡연소로 갔다. 담배 하나를 꺼냈다. 반팔 티셔츠 속에서 움찔거리는 날개를 참았다. 기다란 주둥이를 꺼내어 불을 지폈다. 내뿜으며 겹눈으로 연기의 향방을 좇았다. 그리고 다시 주둥이를 숨긴 뒤 옥상 공원으로 돌아갔다. 3학년의 아이는 팔뚝에 커다란 모기 물린 자국을 보여 주며, 자신이 4학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는 건 나에게도 너무 간지러운 일인지라, 오늘 8월 21일, <여름 중심>을 또 여러 개로 나누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계절을 초 단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종합열람실 하나가 품고 있는 수백만 장의 종잇장이 살랑거리듯이, 계절이 순간 속에서 넘쳐흐르려고 한다. 선풍기의 목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도서관장이 눈을 감고, 빛에 물든 벌들이 되돌아간다. 그 아이가 책장 속에 숨고, 시립문화센터의 가장 깊은 지하 매점, 그 앞 창고에 계절들이 무서운 속도로 쌓이기 시작한다. 나는 계절의 적재 창고에 계절들이 쌓이는 소리를 들으며, 모기 주둥이를 쓰레기통에 버린다. <2차 여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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