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흐른다고 믿은 것
- 작성일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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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흐른다고 믿은 것
김선오
안녕
베를린에는 눈이 많이 왔어
걸음이 오고
입김이 왔어
개를 숨 속에 파묻었어
흰 눈송이 개 한 사람
구름 걷히지 않는 종이
숨 위에 개의 이름을 썼다
개가 키득키득 웃었다
내 이름을 쓰고
네 이름도 썼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름인지 모르겠는 이름
눈밭 같은 이름
위에
누웠다고 생각했는데
밤새 켜 둔 형광등
안이었어
바닥에는
Made in China
라고 쓰여 있었고
전등 바닥에 달라붙은
죽은 날파리들이
우리의 이름이었어
Made in China
Made in China
추운 형광등 속에서
시계는 어딨지
있을 리가 없지
시계가 나를 향해 바늘을 흔들었어
나방이 나의 시간을 날아왔어
나의 시간을 머뭇거렸어
구름이 깜빡깜빡
침대 밑에 어른거렸어
날파리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나는 니하오, 말했어
날파리 1이 엔슐디궁, 답했어
너 우리 개 못 봤니, 물었더니
날파리 2가 키득키득 웃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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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오
-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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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오
- 2021-06-25
문장웹진 시
41J41J 김선오 통로가 둘이었다. 셋이고 넷이었다. 동공은 어둠 속에서 짝수로 늘어 갔다. 악당의 뼈를 내놓으라. 목소리가 하나였다. 열이고 백이었다. 열린 목구멍들이 통로의 어둠을 끝없이 깊어지게 하고 있었다. 뭐야, 지루해. 비행기 의자 뒤통수에 설치된, 손바닥만 한 화면이 어두워져 봤자 심연처럼 깊어져 봤자 앞사람 정수리에도 닿지 못할 텐데. 그러나 영화는 암흑 속에서 빛나는 악당의 뼈를 끝끝내 보여주겠다는 듯 새카맣게 새카맣게 되고 있었다. 손에 들린 여권이 하나였다. 손가락 열 개였다. 의자가 백 하고도 서른여덟이었다. 앉아 있는 승객들 사이로 걷는 사람이 열. 열둘. 열넷. 어두운 좌석마다 검은 눈동자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수십 개의 국경을 건너는 동안 끝없이 깊어지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 김선오
-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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