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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와 토끼

  • 작성일 2025-03-01

   성자와 토끼 


안상학


   권정생 선생이 작고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성자라고 불렀다


   성자란

   세상의 아픈 소리를 볼 줄 알고 

   세상의 슬픈 장면을 들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진정한 성자라면 다만 여기까지여서는 곤란하다

   성자란

   세상의 아픈 소리를 같이 낼 줄 알고

   세상의 슬픈 장면을 같이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또 

   어떻게 하면 아픈 소리가 사라지는 세상일까 

   어떻게 하면 슬픈 장면이 끝장나는 세상일까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역시 다만 여기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모름지기 성자란 

   아픈 소리가 없는 세상을 위하여 피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슬픈 장면이 없는 세상을 위하여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성자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권정생은 어쩌면 성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자이기에 앞서 권정생 자신은 

   아픈 소리 그 자체였고 슬픈 장면 그 자체였다

   성자이기에 앞서 그 또한 바닥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과 아픔이며 슬픔을 나누고 어르며 살았던 한낱 범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꿈은 아픔과 슬픔에 처한 사람들이 바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었지만 자신만큼은 오히려 바닥보다 더 깊은 바닥을 선택하며 사는 것이었다    


   단언컨대 그는 한 마리 토끼였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풀과 꽃이 불쌍하여 

   하느님에게 차라리 이슬만 먹으며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는 그런 토끼 같은 존재였다   

   그 토끼를 불쌍히 여겨 같이 눈물을 흘린, 스스로가 스스로의 하느님이 되고자 몸부림친 한 마리 토끼와도 같은 존재였을 뿐이다  


   그는 다만 그렇게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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