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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처럼 종로5정목에 간다

  • 작성일 2025-07-01

   첫눈처럼 종로5정목에 간다

  

송재학


   1925년 내내 

   경성일보의 백두산 화산 소식을

   정기구독했다

   입구가 비좁은 땅의 숨소리 때문에

   잉크 냄새와 검음은 서로를 알게 되면서 분주하다

  

   말린 꽃을 판매하는 잡화점마다 

   닙보노홍 일츅 죠선 소리판의 광고,

   도월색과 김산월이 부른 

   「압록강절」 「장한몽가」 「이 풍진 세상을」 「시들은 방초」의 노랫말은

   열대어 주둥이처럼 납작하고 뾰족하니 수줍은 느낌

   「B사감과 러브레터」와 「벙어리 삼룡이」는 

   진열대 앞자리여서 선 자리마다 몇 쪽씩 읽고

   나는 누구일까 되새김하는 어린 사람들

  

   연해주나 오사카로 훌쩍 떠나간 친척들은

   그곳에서도 알음알음이 있다

   할미꽃 김음전이 태어난 해, 

   을축년 대홍수를 기록한 경성부 수재도를 남겼다는 1925년

   아직은 성기지만

   종로5정목을 지나가면 

   조선약학강습소의 근처 약 냄새는 뭉뭉하다

   모던 보이도 기다리는 전차가 돋을새김한 흑백 삽화들


   버짐나무 잎들은 진즉에 누레졌다

   종로5우편소가 회색 목을 뽑아서 어딜까 기웃거리는데

   양옥과 화옥 돌담을 듬성듬성 셈하면서

   상해 황포구 소문에 귀 기울인다


   경성 정동에 적기가 꽂힌 공사관이 있다지만

   싸락눈 때문에

   관절염이 도드라지는 골목길은 구부러지면서 

   북로군 흔적을 지우니까

   어떤 목질의 주소라도 자꾸 희미해진다


   연해주에서 북만주까지 대설주의보에 휩싸이는 

   청춘의 강설량은 들쑥날쑥하다


   국경의 밤을 넘나드는 순애보는 일찍

   북촌과 남촌이라는 이중도시 경성의 밤길을 

   창백하게 비추는 가로등 아래 

   폐결핵과 마주쳤다

   무섭고 버거운 일이 많은

   친일문학선집의 등뼈는 잘 꺾어지기에

   진둥걸음으로 뒤쫓아 간다

   첫눈과 함께 도착한 옛날 경성의 단색

   두꺼워지는 경성백과사전을 믿는다


   2025년에서 출발하여 1925년 구간을 왕래하는 

   경성열차궤도에 각혈이 파인다

   들꽃이 피고 진 흔적이 고스란히

   화물칸에 적재되어 있다

   음영이 많은 경성역의 재능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묶는 일

   백 년의 연대기에서 수줍은 삭망을 골라 낸다

   외롭고 뿌연 유리창에 

   입김으로 써 내려간 

   상하이 경성 도쿄를 오가는 우울하고 비뚤비뚤한 직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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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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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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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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