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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한 모금

  • 작성일 2025-09-01

   은하수 한 모금


이원규


   목덜미에 땀띠 나도록 덥지요? 

   찬술을 마셔도 목이 마르고 

   밤새 눈꺼풀 파르르 잠도 안 오지요?


   걸어서 더 캄캄한 곳으로 가요

   잠시 핸드폰이며 헤드라이트 끄고 

   “밤하늘의 별빛을 보며 길을 찾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를 잊고 살아도

   북두칠성 큰 국자는 하늘물을 담고 있으니

   견우직녀 울며불며 만나는 칠월칠석날도 좋지요


   남쪽 하늘의 은하수 남두육성이 

   한 바가지 퍼부어 주는 시간에 딱 맞춰

   은하수 한 모금 마시러 가요

   강원도의 고랭지 배추밭

   경북 상주의 폐사지 천년 석탑

   서해 신안의 증도 도초도

   제주도의 아부오름 분화구

   별 볼 일 없는 세상에 별을 보여 드릴게요

   영혼의 양수가 벌써 다 말랐지요?

   골수 얼얼하도록 은하수 한 모금 마시러 가요


   눈이 나빠도 별은 보이지요

   남두육성 삼신할매가 

   다시 한 국자 별빛 생명수를 퍼부어 주네요

   정수리 확 열고 다 마셔요

   별침을 맞고 별빛 내시경을 받아 봐요

   늙어 갈수록 자주 영혼을 헹구며

   고향의 초롱초롱 소년 소녀로 돌아가요


   잠시 용량초과의 세상사 다 내려놓고

   우울증 분노조절장애의 얼굴도 지우고

   가요, 제2의 화살이 별빛으로 쏟아지는 곳

   빠진 머리카락보다 더 많은 별침이 내리꽂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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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탄 물총새

오토바이 탄 물총새 이원규 길 위에서, 섬진강 861번 지방도 샛노란 중앙선 위에서 어린 새 한 마리가 길을 막았다 다 저물녘에 질주하던 나의 오토바이 앞에서 울며불며 물총새 새끼가 길을 물었으니 급브레이크를 잡았다 구례 플라타너스 카페에 가수 안치환의 공연 보러 가는 길, 어두워지는데 트럭은 막무가내, 어미 새는 보이지 않았다 착한 척하는 것도 큰 병이라는데, 일단 물총새 새끼를 오토바이 뒷자리 짐통에 태웠다 남도대교 건너 화엄사 입구까지 알피엠 3500 이하의 저공비행으로 19번 국도를 달리며 나의 마지막 직업이고픈 퀵서비스를 자처했다 가출한 물총새인지, 어미에게 버림받았는지, 얼떨결에 유괴된 새 새끼인지, 오토바이 엔진 소리에 울고 안치환 노래에 울고 왕복 이백 리 밤길을 돌아와 우리 집 현관에서 밤새 울었다 행여 우리 집 고양이 별이와 몽희가 덮칠세라 고양이집 철망 속에 가두었다 물을 주고 찬물에 불린 멸치를 먹였으니, 어린 새를 노리고 멸치를 노리는 고양이가 없는 고양이집 속의 물총새여, 난생(卵生)처음 오토바이 탄 물총새 새끼여! 날이 밝자마자 섬진강 861번 지방도 노란 중앙선, 다시 그 자리에 풀어놓자 폴짝폴짝 강변 풀숲으로 나뒹굴더니 왕버들 아래로 신나게 몸을 날렸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으니 이토록 다정한 무관심이라니! 저는 저대로 사라진 것들이 어디 물총새뿐이랴 나는 언제쯤 나의 길을 막고 물어보며 울어나 볼 것인가 나는 아직 40년 지나도록 낡고 다정한 오토바이를 떠나지 못했다 한반도 남쪽에서만 지구 30바퀴 넘는 거리를 달리고 또 달리지만 아무 상관도 없이, 아무 질문도 필요 없이 내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오늘도 아직 어린 물총새가 울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아비 없는 그 소년이 앉아 있다

  • 이원규
  •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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