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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얼음

  • 작성일 2025-10-01

   모조 얼음


이새해


   나쁜 생각이 너를 빠져나와 나에게 들어오려는 것을 보자 


   안락의자에 걸터앉아 이쪽을 노려보는 선생의 분노를 보자 

   제 방인데요, 말하는 순간 창틀 넘어 도망치는 선생의 꽁무니와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의 침착함을 보자 


   여긴 내 방이야

   네가 경고한다


   선생이 놓고 간 비닐봉지 속에는 

   신선한 식재료가 섞여 있다

   소금, 붉은 양파, 레몬즙과 올리브유 조금

   생선살을 조각냄으로써 나는 세비체를 완성한다

   완성은 네가 좋아했던 것

   세비체는 우리가 공유했던 것


   너는 봉지에서 얼음 하나를 꺼내 보인다

   진짜보다 투명한 

   아크릴 모조 얼음 한 조각


   모조는 올려놓기에 좋다

   테이블 위에

   혓바닥 위에

   꿀꺽 삼키는 척했다 뱉어도 

   그대로여서 좋다


   너는 빈 유리잔에 모조 얼음을 넣고 

   가볍게 흔들어 본다

   그 잔을 나에게도 건넨다


   할 말이 남았다며 돌아온 선생이 창밖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자 할 말을 잊고 우리를 잊고 제라늄 심기에 여념 없는 모습을 보자 지친 선생이 쪼그려 앉은 채로 기체가 되어 가는 풍경을 보자 

   화단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선생의 캐리어를

   가지고 오자


   거기 들어 있는 것이 편지라면 열어 보겠지 

   폭약이라면 사용해야 할 곳이 있다

   네가 기다리던 소식이라면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뭐가 더 있어

   봉지를 뒤지면서 네가 말한다 


   다리 하나가 부러진다

   안락의자가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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