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어둠 6
- 작성일 2025-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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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둠 6
하혜희
제삼 계절의 광증, 제사 계절의 광증, 제오 계절 제육 제칠 계절의, 으스러지는 계절마다의 새로운 병명들, 느낌을 일깨우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 주기만 하고 절대 받지 않는 하늘이, 우리를 만든 자연의 전파와 우리가 만든 전파의 자연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음이 이제는 전해지고
동전은 외상으로 글자는 공중으로, 기쁨은 살 속으로, 날을 숨기고 나갔던 산책에서 짐승들 돌아오면, 눈물들이 나무둥치를 껴안고 있었다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가지마다는 옛날이 피어나고 있었다 하는데, 인간은 이제 그만! 발아래 머리 위에 우리는 너무 많이 쌓였다. 남아도는 피돌기로 손발 아리고 불 꺼지듯 안다. 만사가 새끼를 책임지지 않는다, 새끼가 만사를 책임지려는 것이고, 열기 반납한 아스팔트에 기어 보는 우리의 양친, 긁힌 길이 희게 일어나 평행으로 가리키는, 고향 없이도 향수 젖은 병사들의 머리 터진다. 더운 전쟁이 길고 축축한 후퇴는 더 길다. 우리가 사랑해야 함이 이제는 전해지고, 일렁이는 철편에 속속 불꽃, 불나지 않는 여기서, 불타지 않는 여기서, 간교한 광증이, 축척을 벗어난 시간과 함께, 그 언제도 우리의 목적을 드러낸 적 없다는 데서, 방아쇠를 당기고 잇따라 숨을 삼키는데
물 위에 떠오른 아득한 무늬 모두가 공모하여 찢어질 리 없는 것을 찢기 위해 가장 깊은 골짜기의 시내까지 핥는 것은, 나뭇잎의 서툰 비유를 비웃으며 검댕으로 만드는 것은, 관들을 끼고 돌던 지하의 물길로 번져 나가는 것은, 학살자들, 다른 말을 동시에 하는, 우리를 심판하려는, 예, 아니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할까? 이렇게 하자, 폭풍에 달려 나가는 듯이 끄집어내기를, 핏덩이를 쥐어 으깨고 이빨 구멍에서 말 뽑아내기를, 수풀을 달라, 뿌리를 달라, 자신과 맞서라고? 그것을 원할 때에, 만들어 달라, 명령을 듣기만 하는 우리를, 우리를 따르기만 하는 너희를, 그것이 자기를 깨우는 줄은 알고 있으면서, 부서질 것들만 건드려 이 모양이 되어 있는 다시 빗속에, 그토록 무서웠던 지난밤도 흩어진다, 보라 대적자를, 등에 잿더미를 지고 너로부터 일어나 구정물 흘리는
더한 어둠 앞에 어둠이 엎드린다. 엎드려 발목을 잡아챈다. 덜한 어둠이 더한 어둠을 거꾸로 든다. 계절은 하룻밤에 바뀐다. 망해 버린 그날의 밤들은 억 수십에 걸쳐 겹쳐 있다. 옛것이 거느렸던 단어들 일제히 자세를 바꾸고, 위험한 시기 지나면 더 위험한 통치가 왔다. 돌아앉아 일제히 우좌로 고개를 흔드는, 너희는 아무것도 안 했지, 이렇게 되도록 아무것도. 죽을 이는 죽었고 아닌 이도 죽었지. 우린 망설일 대로 망설였다. 그만둬야 할 때 그만두면서! 소리를 질러도
속수무책으로 가로놓인 자신 앞에서 혜희는 거닌다. 이 방을 떠나야 한다. 내가 돌아올 날을 기다릴 필요 없다. 나는 돌아올 때에 돌아온다. 너는 아직 말하는 법을 모른다. 너는 용서해 달라고 빌면서 무릎으로 퇴장해야 한다. 네 때가 올 날을 기다려야 한다. 혜희는 혜희의 손을 쥔다. 그러나 그 전에 말하라, 혜희는 나라,
세상에서는, 있는 것들만이 살아나는, 눈 감고 말 멈추는 순간 없어지는 세상에서는, 죽음은 너무 흔해 드물고 아무 값 매겨지지 않고, 네 바깥의 것들이 너처럼 전부 괴롭고 뜻으로 무겁다. 그러니 이제 말하라고, 누구를 죽일까, 너를? 나를? 너도 나도 아닌 것을?
인간이 불쌍하니? 인간이 하나도 불쌍하지 않니? 하나도 고백하지 말라.
영원이니 무한이니 하는 것들은 자신 말고 누구도 돌본 적 없는 이들의 꿈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것이고, 그릇들을 씻다가 잃어버리면서만 빛나는 것이다. 아이를 참칭하며 아이를 구할 수 있느냐? 그저 악몽처럼 괴롭히는 것, 네가 지금 이러하듯이다. 혼자 사는 것이 두려우냐? 혼자 살지 않는 것이 두려우냐? 무엇이 시작되고 언제 끝났는지도 모른 채로 우리는 이 어둠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일인데 어쩌겠습니까? 나는 그렇게 묻고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신은 어떻게 미래로부터 여기로 쏘아져 보내지는 것일까, 먼저 갈 친구들 때문에 천국으로부터의 추억 찢어져도
먼저 가는 친구 되어 못으로 박아, 드디어 믿지 않게 되는 일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는 걸까. 옷들을 널면서 앉았다 일어나면서
거짓을 이해하는 일이 아닙니까, 아니겠습니까, 점점 뜨거워지는 쾌락에 겨운 악마들이 맨몸으로 시달리면서, 전언은 번개로 도래 중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후려치면서, 이 종의 과거가 수십 세기의 빛으로 쪼개지고, 제 납골함 기념비를 이제는 들고서, 수렁에 빠진 내일이 없어서 더 좋은, 이 기도 운집 가운데 극은 죽어도 시작되지 않고, 진정 자신에게 버려져 자신에게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빌지도 않는 것, 언젠가 빛 걷히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고, 역사를 부숴 버린 우리가 몸만 훌쩍 자라 바로 이러한 식으로, 아무것도 아무것도 못 했는데 하며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쥐의 자식인 뱀, 배 속에 쥐를 넣는 뱀이며 산 뱀을 토하는 뱀, 네 안에서 너를 기동시키는 불쌍한 악마의, 네 밖에서 네게 애걸하는 악마의 열정이, 서툴게 분노에 차 갈피 없는 혼 선생 없는 혼이 오로지 한 인간으로 잔을 채우듯 너를 채워 버릴 때, 우리는 죽음 냄새의 안개이자 도처 벽에 걸린 단도
네 손에 들어가 너를 찌르고, 외계가 그러하듯
이제 당신 앞에서 한 번 죽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를 폐허로 만들고 깨진 코를 주워 갑니다. 내가 나와 당신보다 더 많은 이들을 데리고 돌아올 날을 위해, 지금은 정산하는 시간, 정산도 도망치는 시간.
용서하십시오, 나라고 하는 일을 이렇게 하십시오. 이전에 자행했던 모든 용서를,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일을, 나는 그렇게 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전혀 다르게 다시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바라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나를 삼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만 빼고. 하나만 빼고.
하잘것없이 나는 있다. 이야기가 이기게 두고 싶지 않다. 엎드린 채 떠오른다. 목구멍 너머는 따뜻하다 하며 축축하다 한다. 한 나가 곧 이 고장으로 온다. 데리러 갈까? 파란 불이 냄비 속의 물을 끓이는 것으로 이것은 일단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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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유월 성곽 돌기 손유미 그거 아세요? 윤년 윤유월에 성곽을 한 바퀴 돌면 삼 일만 앓다 죽는다고 합니다 귀신이 쉬는 날, 귀신이 잡아갈 만한 일들을 고백하며 지난 왕조의 성곽을 돌면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휘휘 내 할머니의 할머니는 그 지복을 누리고자 휘휘 어린 내 할머니의 손을 붙들고 강화산성을 기를 쓰고 도셨답니다 머리에는 죽음을 이고 손에는 어린이를 붙들고 중얼중얼 휘휘 나는 그때 내 할머니의 할머니가 고백한, 귀신이 잡아갈 만한 일들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합니다만 세월도 휘휘 몇 바퀴를 돌아 이미 땅에 묻혀 백골도 흙이 된 지난 세기의 고백 그리고 휘리릭 내 할머니는 내 손을 붙들고 휘리릭 은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수원화성을 돕니다, 관광열차를 타고 마침 인간의 쉬는 날과 귀신의 쉬는 날이 맞아서 휘리릭 바람에 날아갈까 삶을 누르며 손에는 다음 세대의 손을 붙들고 할머니, 이렇게 쉬운 방법으로 귀신을 속일 수 있을까? 직접 땅을 밟지 않고 말이야 이다음 세대야, 팔십 년을 넘게 살아남으면 귀신 속이는 건 일도 아니란다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 보렴 이 관광열차는 십 분 후면 다시 출발지로 도착할 것이고, 이 열차를 함께 탄 이들은 제각기 돌아가 몇십 년 후 혹은 짧으면 몇 분 후··· 각자의 삼 일을 앓다 죽을까? 궁금하면, 죽어라 살아남아야 할 일 그런데 귀신은 무엇으로부터 쉬려나? 묻자, 지겨운 고백들로부터 고만고만한 인간들의 오만함으로부터 짧은 해방 쉬쉬 바람이 분다
- 관리자
- 2025-11-01
청화백자 손유미 백자에 푸른 학을 앉힌다. 푸른 소나무를 뻗치고. 푸른 솔잎들, 푸른 솔잎들, 손끝을 찌르고 싶은 푸른 솔잎들. 푸른 안료에 붉은 피의 리듬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아, 이 푸른 선은 내 것이다. 이 청화백자는 내 것이고 나는 고유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 살아 있는 청화백자에 무엇이든 넣고 싶다. 불로장생하는 무엇이든 넣고 싶어. 드글드글 생명이 끓는다. 생명과 엎치락뒤치락하며 고독은 익는다. 청화백자 열기에 푸른 모란이 핀다, 다 잡아먹을 듯이 입을 크게 벌리며 활짝. 푸른 모란의 속에는 생명과 범벅된 나의 사랑‧‧‧ 우글우글 나의 욕망들. 나는 천삼백 도가 넘는 가마 속에 나의 생명, 나의 고독, 나의 욕망을 넣는다. 나의 생명, 나의 고독, 나의 지리멸렬함, 나의 분노, 나의 권태, 나의 인내 인내 인내, 나의 사랑, 나의 욕망을 굽는다. 아니 충분치 않다. 나의 수치, 나의 공포, 나의 비관, 나의 좌절, 나의 파렴치함, 나의 살의, 나의 간절함, 나의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음 어쩔 수 없음까지 빠짐없이 굽는다. 서로가 서로를 참견하여 균열을 내더라도‧‧‧ 내 것이기에. 아, 이 균열은 내 것이고 나는 비로소 고유하다. 그것은 정말로 중요했다. 이 청화백자를 갖기에 가난하다는 것,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하지 않았어. 학이 어깨 넘어 날아간다. 기를 쓰고 날아간다. 다른 시대에 발견되리라.
- 관리자
- 2025-11-01
눈물 이현아 무덤 나란히 다섯 개. 풀숲이 무성해질 때마다 집안 남자들이 찾아가 깎았던. 이곳은 연안 이씨 가문의 선산이고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은 크고 무겁다. 조상의 무덤을 파 본 적 없지만 무덤 안은 깊을 것이다. 아빠는 그곳에 부모를 묻었을 것이다. 묻다니. 묻는다니. 아빠는 오른쪽 무덤을 가리키며 엄마라 부르고 왼쪽 무덤을 가리키며 아버지라 부른다. 아빠는 무덤 앞에 납작 엎드린다. 나도 납작 엎드린다. 무덤은 크고 봉긋하다. 무덤 안은 김장독처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할 것 그곳에서 시체는 천천히 썩어 갈 것 감히 나를 묻다니 나는 무덤 안에 있고 아빠는 내게 납작 엎드린다. 엄마도 오빠도 선생도 친구도 엎드리고 내 남자 친구는 저 옆에 서서 오열하고 내 전 남자 친구도 찾아오고 저들끼리 엄숙하고 슬프지만 나는 아주 깊은 곳에 있을 뿐이다. 나는 내 위에 엎드리는 당신들을 보며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만 나는 그저 크고 봉긋할 뿐이다. 당신들은 나를 두고 떠나며 이제 차를 타고 식사를 하러 갈 뿐이다. 나는 언덕에서 내려와 밤을 줍고 차를 타고 선산을 떠난다. 아빠가 죽으면 내가 어떻게 해 줄까 묻어 줄까 태워 줄까 묻고 아빠는 자기를 데리고 다니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 차 사고가 났다. 나는 봉안당 안에 있고 이곳은 계약 기간이 20년이라는 관리자의 말과 부모님이 늙으시면 관리를 못 하실 테니 저희가 하겠다는 당신들의 포부와 매년 찾아오겠다는 눈물의 다짐과 이제 당신들은 식사 중 나도 식사 중 내가 죽는다니 난 안 죽어 여긴 봉안당도 선산도 장례식장도 아니고 차 사고 따윈 없었고 아무도 죽지 않았으므로 그곳들은 다 텅텅 비었고 장례 업체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여긴 그냥 극장이야. 죽음에 대한 영화도 아니야.
- 관리자
- 202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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